기후위기 부의 대전환 - 기후변화 10년 후 한국의 미래와 생존전략
홍종호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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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고 생각되는 기후변화와 이로 인한 현재 상황, 세상의 움직임과 변화 등에 대해 ‘정말로 쉬운 언어‘로, 나에게 말을 하듯이 쓰여진 ‘읽기 편한 책’ 입니다. 객관적 데이터를 활용하여 극단적이지도 않고, 낙관적이지도 않게 담담하게 서술하는 저자의 전개방식도 존경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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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부의 대전환 - 기후변화 10년 후 한국의 미래와 생존전략
홍종호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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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과 거주지, 학교 성적과 경제성장, 심지어 신생아 건강과 운동경기에 이르까지 날씨와 기후는 크고 작은 인간 삶의 영역에서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P207)

매일 방송되는 8시 혹은 9시 뉴스 끝에는 항상 ‘내일의 날씨’가 있습니다. 날씨는 주로 온도, 습도, 풍속, 태풍의 방향 등 대기압의 흐름과 현상 만을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는 이 코너 제목이 ‘내일의 기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기후’ 라는 단어는 ‘날씨’ 보다는 그 범위가 좀 더 넓다는 느낌을 주며, 아래와 같은 형식으로 보도형식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기상청’ 직원과 ‘경제학’ 전문 기자가 팀을 이루어 ‘기후경제’ 뉴스를 매일 방송하는 순간도 가까운 미래에 접할 수 있으라 예상해 봅니다.

‘100mm 이상의 폭우가 전국에 걸쳐 예상되는 내일입니다. 이로 인한 1인당 개인적인 경제적 손실은 하루에 약 10만원, 가습기가 전체 빌딩에 가동되는 30층 아파트의 경우 전기료는 하루에 300만원씩, 15일 연속 비가 내리는 기간 동안 총 4500만원의 추가 상승이 예상됩니다. (*미래에 예상되는 가상의 일기예보 예시)

1850년대부터 석탄 사용량 증가, 1930년대의 대규모 유전개발과 이후 진행된 석유사용량 급증으로 인해 이제는 전 세계 99%가 넘는 과학자들은 화석연료 때문에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고 객관적인 연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기후변화에 따른 재해의 95%가 태풍과 폭풍우로 인한 홍수 피해이고, 폭설로 인한 피해는 5% 입니다. 자연재해가 발생할 경우 농어민이 가장 먼저 1차로 손실이 생기며 이로 인한 경제적 삶은 극도의 어려움이 처합니다. 도시 거주하는 시민들도 식자재 가격 폭등으로 2차 피해를 직접 경험합니다. 한국의 곡물 자급율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최대 20% 밖에 되지 않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식량의 80%를 수입해야 하는 한국 입니다.

경제불황에 이어 ‘기후불황 Climate Recession’이란 신조어도 등장했습니다. 보험산업이 대표적인 피해업종 입니다. 해외의 경우, 대형 태풍과 산불로 2017년에 1440억 달러(160조원)에 달하는 보험금을 지불하여 기후문제가 보험회사의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등장했습니다.

한국 보험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난 2022년 8월에 발생한 서울 강남지역 집중 폭우로 인한 침수 차량은 총 9189대, 이에 따른 추정 손해액은 1273억 7000만 원으로 지난 ‘20년간 피해액 중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출처: ‘폭우 차 침수 피해규모, 역대 최대 1300억원 육박’, 서울경제, 2022년8월 11일자 기사) 일시에 막대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보험사로서는 모르긴 해도 일순간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 입니다. 이 정도 규모의 폭우가 연달아서 4-5회 이상 집중적으로 반복되면 웬만한 보험사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현재의 우리가 ’기후위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이제는 대형 재난이 일상화 된 시대를 맞이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현재의 상황이 더 이상 먼 미래에 다가오는 기후위기가 아니라, 남의 일도 아니며 ‘오늘’ 우리 삶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나의 일’이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p226)

석탄과 석유 등 화석 연료 기반으로 경제 성장을 이룩하며 한발 앞서간 국가들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50%를 차지하고 있고, 이제는 경제발전이 시급한 다른 나라들이 또 다른 부담과 차별을 당하는 시대 입니다. 동남아 대부분 국가의 경제발전이 선진국 수준에 못미치거나 제대로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2023년 현재, 선진국들은 난데없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자고 주변 국가들을 상대로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50년 동안 ‘세계화’와 자유무역체재를 지속해 온 국가들 사이에 2020년을 기점으로 ’자국 중심의 경제‘로 회귀하면서 이전 세기에는 없었던 ‘전혀 다른 형태의 기후 무역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습니다.

2022년 5월에 유럽연합은 ‘리파워 EU 계획’ 수립했고, 2025년까지 태양광시설 2배 증설을 비롯하여 2030년까지 600기가와트의 태양광설비 규모를 갖춘다는 계획 하에 예산을 투입하며 착실하게 실행 중입니다. 독일은 아예 2035년까지 100% 달성 목표를 세우고 다른 국가들보다 좀 더 과감하게 추진 중입니다. 먼 미래 시간 같지만, 계산을 해 보면 앞으로 12년 정도 남았습니다.

세계 7위 천연가스 생산국이자 세계 3위 천연가스 수출국인 노르웨이도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이 상당합니다. 덴마크는 2020년 화석 연료(석탄, 석유) 채굴산업 종료를 선언한 세계 최초의 국가입니다. 석유시추 중단은 물론이고, 2050년까지 기존 생산마저 모두 금지한다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세계 주요 선진국들은 탈탄소를 계기로 창조적 파괴와 창조적 혁신을 스스로 동시에 추진 중입니다. 풍부한 천연자원을 가진 부러울 것 없는 나라들이 왜 우리보다 더 긴장을 하면서 이런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을까요? 이들 국가들은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것이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이고 객관적인 현실‘이니 현상을 유지하며 마냥 버티기 보다는 차라리 이번 세대에 기후 대응을 최대한 역으로 활용하여 경제를 다시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의도가 숨어있습니다.

한국은 변화하는 4계절로 인해 재생에너지를 추진하기에는 기후가 적합하지 않다는 오해도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틀린 사실입니다. 독일은 한반도보다 지리적으로 더 위쪽 북위에 위치하고 있어 태양 일조량이 한국보다 오히려 적습니다. 그런 그들은 이미 재생에너지 비율이 전체 전기 생산량의 40%를 넘어섰습니다.

한국은 독일보다 일조량이 더 많습니다. 일조량이 우리보다 적은 독일도 하고 있는데, 한국이 하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또한, 독일과 달리 한국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해상 풍력 발전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다국적 풍력회사들이 인천 앞바다에 대규모 풍력발전 단지를 건설하겠다고 투자를 추진하고 있거나 투자할 의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익성이 보장되는 곳이면 지구촌 어디든 찾아가는 외국 기업들이 우리가 생각하듯 재생에너지에 적합한 나라가 아니라면 한국에 투자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한반도 서해 앞바다에 엄청난 자금을 투자하겠다는 것은 한국 스스로가 재생에너지 산업에서도 상당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탈탄소 국가를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당분간은 수 천톤의 철강을 계속 만들고, 대규모 인원을 수송하는 제트엔진의 항공기, 많은 에너지가 사용되는 초고속 기차, 천 명이 넘는 승객을 태우고 항해하는 대형 크루즈선박, 대용량 화물을 싣고 오대양을 항해하는 초대형 선박 등은 당분간 원유에서 추출한 연료를 계속 사용할 것 입니다.

또한, 현대 산업발전에 필수적인 4대 물질인 철강과 시멘트(사회 인프라 건설 원료), 암모니아(식량 생산을 위한 비료의 원료), 플라스틱(각종 생활용품의 원료)은 순수 재생에너지 만으로는 생산할 수 없습니다. 산업혁명 시대와 근대 경제발전의 원료인 지하 속에 묻혀 있는 철광석과 석유 자원을 앞으로도 계속 사용해야 합니다. (참고문헌: Vaclave Smil, <How the Word Really Works>, ‘Understanding Energy’, p41)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면서도 당분간은 매장되어 있는 지하 자원과 화석 연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분명한 한계는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대형 운송수단에 필요한 대체 원료를 개발하고, 친환경 건축 자재를 개발하는 등 우리 스스로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부 차원의 정책 수립 및 시행, 그리고 산업 발전에 필요한 에너지원의 변화에 따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가 필요한 미래 인력 양성과 현재 인력의 재배치를 위한 미래 기술교육도 병행하는 노력이 반드시 함께 진행되어야 전환기에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바야흐로 약 200년간 지속되었던 석탄과 석유에서 태양과 바람 등으로 산업 발달에 필수적인 에너지원이 바뀌는 ‘대변혁의 시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석탄발전소, 원자력 발전소, 천연가스로 터빈을 돌리는 발전소도 당분간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미래를 생각한다면 더 이상의 확대는 안됩니다.

기존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이전 세대의 시설에 투자할 여력이 있다면…앞으로 그 돈은 미래의 에너지원 전환에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10년, 20년 후에 장년이 되는 지금의 청년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성세대가 될 수 있습니다.

강원도 지역에 석탄발전소를 추가로 3기를 건설하고, 한반도에 핵 발전소를 확대할 만큼 대한민국은 결코 한가하지 않습니다. 핵 발전의 미래는 불투명합니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한국이 앞장서서 투자할 이유 역시 없습니다.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 중에서 핵 발전 시설을 확장하고 있는 국가는 중국, 인도, 그리고 한국 세 나라 뿐 입니다. (Still, the future of nuclear generation remains uncertain. Only China, India, and South Korea committed to further expansion of their capacities. - Vaclav Smil, <How the World Really Works>, p40) 실제로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은 재생에너지 활용 비율이 2023년 현재 최하위(꼴등) 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분야에서도 가까운 미래에 상위 5위 이내로 진입하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국가부도 직전인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상황에서 전 국민이 나서서 금을 모으고, 외화를 만들어 낸…세상에서 보기 드문 높은 응집력을 보유한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민들입니다. 국가가 망할 지경에서도 당당하게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 반열에 당당하게 진입한 저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착실하게 준비하고, 과감하게 뭔가를 실행해 나간다면 ‘코로나 위기 극복, 세계 최우수 국가’로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듯이, ‘기후’라는 일상의 단어에 ‘위기’라는 접미어가 붙은 시대에도 우리는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판단합니다.

그래서, 책을 완독한 시점에 돌이켜 보니 저자가 쓴 책의 제목이 <기후위기 부의 대전환> 인 이유는, 현재의 위기를 슬기롭게 잘만 극복하면 ‘한국과 한국인들이 만들어 갈 수 있는 또 다른 선진국, 그로 인해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새로운 중.상류층이 될 수 있는 전환점‘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2035년을 목표로 나아가는 선진국의 목표 시간을 대비시켜 보면 한국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아야 12~13년 입니다. 세계 각국이 목표로 하고 있는 2045년-2050년을 감안해도 20년 조금 넘게 남았습니다. 각 산업분야 추진 모델과 삶의 양식 혹은 한국인의 일상적인 문화가 몽땅 바뀌어야 하는 가까운 미래를 생각한다면 15년-20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닙니다.

정부, 회사, 단체(조직), 개인 등 각각의 사회의 구성원들이 내일부터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 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쉬운 책 입니다. 어려운 분야를 무척 쉽게 설명해 주신 저자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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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로운 식탁 - 우리가 놓친 먹거리 속 기후위기 문제
윤지로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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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집이 연일 계속되는 폭우로 마침내 침수되거나, 일주일 내내 퍼붓는 폭설로 인해 도로를 달리는 내 차가 거리 한복판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전기나 가스 공급이 중단되어 대중교통이 중단되고, 집에서 밥도 못해 먹고, 100년 만에 처음 보는 초강력 태풍으로 인해 지붕과 살림살이가 날아가고, 한 달 내내 지속되는 폭염으로 곳곳에 정전과 대형 산불 화재가 도로를 지나서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와 집들을 덮치지 않는 한...기후변화는 ‘현재의 내 삶’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고 사람들은 느낍니다.


이 글을 쓰는 제 자신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식탁에 흔하게 보이던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식재료가 어느 순간부터 시중에 유통되지 않고, 100년 만에 처음 당하는 폭우, 폭설, 강력한 태풍, 한파로 인해 국내와 해외의 목초지, 사육장, 가두리 양식장 등이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다는 것이 원인이라면 그 때 가서 ‘조금씩’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백만 명이 유투브 ‘먹방’ 채널을 구독해서 보는 나라, 해산물 섭취 세계 1위, 돼지고기 소비량 세계 2위, 쇠고기 소비량 아시아 1위. 심지어 인사를 할 때도 “밥 한번 먹자”, “밥은 먹고 다니냐”, “식사는 하셨냐” 라고 끼니를 챙기는 나라.


그야말로 먹는 일에 진심인 한국이다. 한국‘만’ 그런지, 한국‘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은 먹는 일에 대한 자부심, ‘먹부심’이 충만한 나라다.


그런데 먹는 일에 정성을 쏟는 우리는 이상하게도 먹거리가 밥상에 오르는 과정에는 놀라울 만큼 무관심하다. 먹거리가 나오는 논과 밭, 축사, 바다와 양식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p12)

위의 글로 시작되는 이 책은 지은이가 그 동안 기자로 활동하며 육지와 바다에서 먹거리를 생산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터득한 지식과 시사점, 그리고 저자 스스로 조사한 국내와 해외의 기후 관련 각종 데이터를 기초로 작성한 리포트 자료와 에세이를 혼합한 형식의 책 입니다.


유쾌한 문체를 따라가며 쉽게 책을 읽지만, 한번 더 생각해야 하는 내용과 의미는 사뭇 진지하고, 때론 거북하거나 다소 심각합니다. 


왜냐하면 식탁과는 아무상관 없을 것 같았던…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된 피의자인 ‘이산화탄소’를 비롯, 메탄과 일산화탄소 등 지구 온난화의 주범과 공범들, 그리고 주범과 공범을 양산하는 원인과 과정, 방대한 국내외 통계자료를 활용하면서 사회 체계(시스템)까지를 내 밥상에 올라오는 다양한 식재료를 생산하는 분야와 연결하여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산화탄소(메탄 가스 등 몇몇 물질이 더 있습니다) 증가와 그로 인해 지구가 더워지면서 과학자들은 연일 기후위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는데, 저와 같은 일반 사람들은 이게 뭔 소리인지 아직도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지구 온도를 낮추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지구 온난화의 유력한 용의자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어떻게 든 줄여야 한다고 지은이는 주장합니다. 각종 기후변화에 관련 서적이나 통계자료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산화탄소 배출의 원흉으로 당당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소(젖소 포함)를 비롯하여 돼지, 닭 등을 사육하고 기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정에서 생긴 ’편견의 문제‘ 역시 다룹니다. 


그렇다고 각종 고기를 이제부터는 좀 더 많이 먹어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세계식량기구에 따르면 가축 부문이 뿜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배출량의 14.5%에 달한다. 이게 어느 정도냐 하면 자동차, 화물차, 비행기, 선박 등 온갖 교통수단이 내뿜는 양에 맞먹을 만큼 많은 양이다. 그 중에서 41%는 쇠고기, 19%는 우유 때문이다. 그러니까 ‘소’가 문제이다.” - P83

가축이 생산하는 온실가스 비율이 14.5%이라면, 그럼 나머지 온실가스 85.5%는 도대체 어디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일까요? ‘말도 못하고, 풀만 뜯어먹는 소’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한 현실이라 상상이 됩니다. 진짜 범인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으니까요…’소‘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기 1kg을 얻기 위해 먹여야 하는 사료의 양은 닭은 3.4kg, 돼지는 6.4kg인데 소는 25kg가 필요합니다. 사료 제조에 필요한 옥수수, 콩 등 곡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넓은 농경지가 필요합니다. 전 세계 콩 생산량은 3억 6천만 톤이지만, 이중 77%는 가축 먹이용이라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가축들이 이렇게 콩을 많이 소비하는 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은 사료 원료의 90%를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콩은 187만여 톤을 수입했고, 옥수수도 897만여톤 을 사료용으로 수입했습니다. (2019년 기준)


가축 사육 과정에서 생기는 분뇨(똥과 오줌)를 처리하는 문제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이것 역시 법령 시행으로 인해 바다에 버릴 수가 없기에 어찌되었든 이제는 육지에서 처리되어야 합니다(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바다에 버렸습니다). 가축 분뇨 정화시설 가동하는데 한달 전기료 4천 만원, 정화용 약품 비용도 2천-3천만원 등 상당한 비용이 소요된다는 것도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냄새가 난다’ 이유 하나 만으로 생기는 각종 민원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정화시설 등을 마음 편하게 운영하지 못하는 업체들의 고민도 알게 되었습니다. 다양하고 신선한 고기는 먹어야 하는데, 그 고기의 생리현상 결과물을 처리하고 활용하는데 있어서는 반대가 심한 것이 사람들의 딜레마로 보입니다. 반대하는 사람도 정작 '소고기 등심구이'는 좋아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봅니다.


육지에서 생산되는 '고기' 못지 않게 이산화탄소를 상당량 뿜어대는 ‘바다’를 언급한 대목에 이르면 더욱 대책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해산물을 잡기 위해 국내 어선이 사용하는 면세유의 양은 연간 10억7900리터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이 가능하지만, 원양어선에 사용되는 기름 소요량은 통계가 들쑥날쑥하고, 정확한 통계치도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10톤 미만의 연근해 어선 총 3만 8천대가 등록된 나라가 한국이지만, 2대중 1대는 16년 이상된 노후 선박으로 기름도 많이 잡아먹는 바다 위의 인공하마 입니다. 또한, 양식장을 운영하기 위한 물고기 식량공급과 온도, 습도, 공기 순환에 소요되는 각종 에너지 소비 등 해산물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도 참 다양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험난한 여건임에도 어떻게 든 의지를 가지고 환경을 조금이라도 더 생각하고, 이산화탄소를 줄이면서도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기업들의 이야기도 마지막 장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금융전문가에서 ICT기술 기반의 첨단 양돈 농장 사장님으로 변신한 분, 수경재배 딸기 농장 사장님, 분뇨 처리에 커피 찌거기를 처음 활용한 사장님, 모내기도 하지 않으면서 룰루랄라~~하면서 상당히 편한…‘태평농법’ 이란 방법으로 벼농사를 짓는 신박한 농민 등 다양한 친환경 농축어업 사례를 책장을 덥기 전에 접합니다.


커피를 주문하면서 종이컵, 플라스틱 대신 텀블러와 종이 빨대를 사용하고, 전기차 이용하고, 재활용 분리수거 열심히 하는 것도 소비자 측면에서는 의미있는 행동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제 자신이 정말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봅니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독자들에게 당부하는 말이 따로 있지만, 저의 입장에서는 선뜻 그것마저 어떻게 실천에 옮길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좀 더 고민을 해 보겠습니다. 개인 차원에서 탄소를 줄이는 문제는 이래저래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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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의 귀향 - 집으로 돌아가는 멀고도 가까운 길 헨리 나우웬 영성 모던 클래식 1
헨리 나우웬 지음, 최종훈 옮김 / 포이에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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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아가 성공해야 한다‘고 말하던 아버지와 ”죽는 날까지 지극히 사소한 일 하나라도 예수님 사랑에 의지하라“는 어머니 사이의 딜레마에서 성장한 한 사람. 아버지의 가르침 대로(?) ‘목회자’ 만 되기에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왠지 양이 차지 않아 ‘심리학자’ 라는 타이틀 하나를 더 취득했던 사람.

네덜란드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하고 돌아와 노트르담 대학에서 강의. 다시 노트르담 대학에서 예일 대학교로, 예일 대학에서 또 다시 하버드 대학교로 자리를 옮기면서 학자로서, 강연자로서 ‘지적인 세상의 사다리 꼭대기’까지 올랐던 사람… 저자인 ‘헨리 나우웬’이 지적 장애인들의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던 인생 전환기 직전까지의 개략적인 삶의 행로이다.

‘헨리’의 사회적 이동 경로를 보면 전문직 교수로서, 그리고 40여 권의 책을 서술한 작가로서, 나는 이 사람이 ‘엄청 성공한 사람’ 이라 생각한다. 이 책 <탕자의 귀향>만 하더라도 영문판으로 100만 권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각 국 언어로 번역이 되어 세상에 나갔으니 100만권 플러스 알파가 될 것이다. 이 책 이전에 출간한 ‘The Wounded Healer: Ministry in Contemporary Society’(1972) 등 나머지 책들도 베스트셀러가 여러 권에 달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1978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 부재로 인해 스스로의 존재감 상실, 외로움 속에 심리적으로 극심한 내리막을 걷는다. 오죽하면 남들 다 부러워하며 가고 싶은 ‘하버드대학교’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와 강의를 하는 ‘교수직’으로 일하던 사람이 정작 본인은 그 유명한 명문 대학교에서의 생활이 가장 불행한 시기라고 고백을 할까…

“1980년대 초 하버드 대학에서 보낸 마지막 학기는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불행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외로움을 뒤로 한 채 ‘**라르쉬’를 향해 가는 일생일대의 장정을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습니다“ - 헨리 나우엔 지음. 최정훈 옮김. <*집으로 돌아가는 길 HOME TONIGHT>. 포이에마(2010). P23

* <집으로 돌아가는 길 HOME TONIGHT>은 헨리 나우웬이 <탕자의 귀향>을 쓰기 3년 전, 렘브란트의 그림과 예수님의 비유를 생각하며 얻은 통찰을 ‘라르쉬 데이브레이크’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나눈 워크숍 녹취록을 정리한 미발표 원고이다.

** 라르쉬(L’ARCHE): 지적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따듯한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공동체로 ‘방주’라는 뜻이다. 1964년 캐나다 사람 ‘장 바니에’가 프랑스 트로즐리에 처음 설립했다. 헨리 나우웬은 1986년 이곳의 캐나다 분원인 ‘데이브레이크’에 들어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던 1996년 9월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1986년 7월 26일 토요일 오후. 헨리 나우엔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램브란트’의 작품인 ‘돌아온 탕자’를 러시아 지인의 도움을 받아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삶에 지치고 정신적으로 황폐해진 채 무릎을 꿇으면 다가가서 누군가에게 위로 받고 싶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마주보게 된다.

저자 개인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치고, 심리적으로 공허하고 외로운 시기에 우연히 만난 그림 작품 하나. 약 일주일간 박물관에서 그림을 접하고, 1세기에 쓰여진 성경 속 이야기를 오버랩시키는 동안에 떠오른 깨달음과 지적 장애인들의 공동체인 ‘라르쉬’에서의 생활경험과 깨달음을 상호 비교하며 덤덤하게 써 내려간 자기성찰에 관한 기록이다.

하버드대학교 교수직을 벗어던지기까지는 외부에서 보기에 세상에서 나름 성공한 사람이었고, 세상의 불편한 이슈에 대해서는 적당한 거리를 두었던 ‘비판적 관찰자’로 살았던 저자는 스스로 엉망진창이 된 모습을 탈피하고자 일반적인 세상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라르쉬’라는 공동체로 들어가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게 됩니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인상 깊게 본 것은 책의 초반에 나오는 저자의 솔직함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 모여있다는 하버드대학교 교수 일을 스스로 접고, 지적 장애인들의 공동체에서 생활을 하기 시작했을 때의 느낌…스스로 무릎을 꿇고 ‘사랑으로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를 향해 한 걸음 더 들어가는 과정…

처음 보는 사람을 덥석 끌어안으며 ‘와 반갑습니다!’ 라고 말하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한 사람의 ‘조건없는 환영인사 겸 포옹’을 생애 처음으로 접하는 저자의 느낌은 무척 당혹스러우면서도 솔직하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현대인으로서의 성공적인 삶의 현장에서 벗어던지고, 처음에는 비록 고달프지만 점차 램브란트가 그린 <돌아온 탕자> 속 둘째 아들의 모습을 지나고, 첫째 아들의 처지와 분노를 극복하고, 마침내 슬픔과 용서와 너그러움을 모두 갖춘 그림 속 아버지의 모습을 향해서 저자 스스로 위대한 사건의 일부가 되어가는 영혼의 자화상이 흥미롭다.

하버드에서 라르쉬로 옮기면서 ‘비판적 구경꾼에서 삶의 주인공’으로, 이성을 기반으로 판단하는 ‘습관적인 재판관’에서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스스로의 삶을 회개하는 죄인’으로, 사랑에 관해 가르치는 교사(목사)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그리고 진정으로 사랑받는 인간’으로 변해 가는 정신적 여정이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완전하게 실패했다고 여길 때, 남들은 괜찮다고 위로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정작 인생 자체가 엉망진창이라고 여겨질 때, 가정과 사회에서 시기와 질투로 괴로워할 때에 어떻게 하면 실패감 혹은 좌절감 혹은 시기와 질투에 이은 분노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육체적 정신적으로 탈진해 있을 때에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에 적지 않아 도움이 되는 책이다.

책 속에는 ‘하나님’이란 단어가 수시로 등장한다. ’하나님‘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가진 분들은 그 단어를 상상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정말로 자상하고 인자하고 포근한 참 어른의 모습을 모두 갖춘 아버지’로 치환해서 읽으면 무리가 없다. 혹시라도…성장하면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가정 내에서 ‘아버지’로 인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은 분들이 있다면 그 분들도 ‘상상 속 아버지’를 통해서나마 조금이라도 위로 받기를 희망한다.

어쩌면…살아가면서 그런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면, 책 속에 등장하는 그림 속 아버지처럼 ‘슬퍼할 줄 알고, 용서할 줄 알며, 너그러움을 가진 ‘성숙한 어른’이 되는 방법 중 한 두가지를 이 책은 나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알려주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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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의 길 -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서해문집 사회과학 시리즈
낸시 프레이저 지음, 장석준 옮김 / 서해문집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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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자본주의 특징을 재조명하고, 현재에 맞는 21세기 자본주의의 속성과 그 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자본주의 시스템의 뒷면을 탄탄한 논리와 근거,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 훌륭한 책이다. <좌파의 길…>로 시작되는 한국어 번역본의 제목은 개인적으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원래의 책 제목은 <Cannibal Capitalism: How Our System is Devouring Democracy, Care, and the Planetand What We Can Do About It 식인 자본주의: 우리의 시스템은 어떻게 민주주의, 돌봄, 그리고 지구를 잡아먹고 있으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책을 읽은 나로서는 저자의 기본 논지가 ’자본주의‘는 단순한 진영의 논리만이 아니고, 영어 제목에 표기된 것처럼 ‘우리 시스템(Our System)의 문제’라는 점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자본주의 특징은 1) 공적 영역이자 농산물 생산의 기반이 되었던 토지 거래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파생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2) 법률적 지위가 자유롭고, 생계수단과 생산 수단의 확보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의 거래’를 탄생시킨 ‘자유로운 노동시장’, 3) 자본가의 자유로운 ‘자기자본의 확장’, 4) 상품생산에 쓰일 ‘토지, 노동, 자본’ 등 투입요소 할당과 사회적 에너지의 집단적 적립 현상인 ‘잉여 자본’을 어떻게 투자할 지를 결정하는 ‘시장의 역할’ 로 상징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의 자본주의는 21세기 자본주의가 몰고 온 국가간의 문제와 사회 구성원 계층간의 문제, 젠더(Gender) 문제, 지구 환경 문제를 온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 한가지 사례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잉여 자본’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로서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자본주의 자체는 그에 대한 해답을 노골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 가정생활.여가.기타 활동들과 ‘생산적 일’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나아가 인간과 자연은 어떤 관계를 맺길 원하는가,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등의 물음에 대해 자본주의 먹이사슬의 최고 정점에 있는 자본자와 공룡같은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은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원래부터 자본주의 제도 자체는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를 책임지지 않는다. 원천적으로 사회적 부와 인간 복리의 질적 기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메커니즘이다.

이에 따라 ‘자본’의 원래 창조주인 인간을 오히려 자본의 ‘종복(노예)’으로 전락시킨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노예’가 아니라고 감히 단언할 수 없다. 웬만한 사람들은 온갖 대출금과 신용카드 결제대금을 상환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어딘가에 묶여있다. 주인이 명확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자본의 추악한 비밀은 시장적 관점에 따른 주장과는 다르게 ‘상품의 교환으로 상징되는 등가물의 교환’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시간 중 일부를 보상하지 않음’으로써 확대된다는 사실이다. 즉, 임금노동이라는 순화된 강압 이면에 보이지 않는 적나라한 폭력과 수탈(노골적인 도둑질)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논쟁하나가 최저임금인데, 이걸 단돈 1천원 올리기가 쉽지 않다. 3천원 이상 하는 별다방 커피는 스스럼없이 사드시는 분들이 자기를 대신하여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임금을 올려주는데에는 사회적 합의나 협상을 해야할 정도로 인색하다. 건물주는 시장 상황이 나쁘다고 임대료를 깍아주지 않는다. 물론…드문드문 착한 건물주도 있긴 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극소수일 뿐이다. 다들 왜 그럴까?

기존의 이론으로는 현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모순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한국 사회도 자본주의 체제라고 하지만, 난데없이 불거진 남녀간의 젠더갈등, 저출산 문제, 환경문제와 해결책을 자본주의는 스스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만 전체적인 관점에서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고, 그에 따른 합당한 해결책이나 문제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도출할 수 있다.

인식의 전환에서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한가지 핵심적인 것은 단순한 ’생산‘의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사회적 유대를 생산하고 지탱하는 상호작용, 필수재 공급, 돌봄 제공의 형태들을 의미하는 ’사회적 재생산‘으로 나아가는 전환이다.

위와 더불어 현대 사회에서 ‘제 1권력’이라고 하는 ’화폐‘에서 ’생태‘로, ‘경제적’인 것에서 부의 축적을 뒷바침하고 있는 법과 제도를 형성하는 ’정치적인 것‘으로, 노동력의 ’착취‘ 개념에서 지구가 제공하고 있는 자원을 거의 공짜로 사용하고 있는 ‘수탈’의 개념으로 인식의 전환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아닌, ’제도화된 사회질서‘로서의 자본주의를 전체적인 하나의 사회 시스템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의 전환에서 발생하는 이해당사자 상호간의 갈등과 충돌을 ‘경계투쟁’이라는 용어로 정의한다.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상품 생산과 잉여 가치’에 대한 분배권을 놓고 다루었던 ’계급투쟁‘을 확장한 개념이자, 기존 이론의 한계를 탈피하고자 한다.

경계투쟁의 기본 개념은 정치 vs 경제, 자연 vs 인간, 중심부 vs 주변부, 경제적 vs 비-경제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이해관계(집단)의 다양한 충돌을 의미한다. 현대의 자본주의는 단순히 ‘경제’를 넘어 비-경제적 영역까지 거리낌없이 착취와 수탈을 자행하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의 21세기 자본주의는 기존의 ‘중상적 자본주의’, ‘자유주의-식민주의적 자본주의‘, ’국가-관리 독점 자본주의‘, ’지구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등 역사적으로 등장한 다양한 형태의 ‘자본주의’를 밑바탕에서 지탱하고 있던 사회의 본질적 부분이면서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와 화합하며 서로를 구성해 오는 동안 나름의 발자취를 남긴 ‘각 영역별 공생관계’ 마저 무너뜨리는 ‘제 살을 깎아먹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식인 자본주의’ 관점으로 현재의 자본주의를 바라 볼 경우에 새롭게 파악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주요 속성과 역학을 저자는 아래 5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 ‘자본주의의 수탈과 착취 분할’을 다룬 인종적.제국주의적 역학. 둘째, 자본주의 시스템에 돌봄 폭식가의 낙인을 찍는 ‘자본주의의 재생산과 생산 분할’을 다룬 젠더화된 역학. 셋째,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자본이 꿀꺽 삼키는 ‘자본주의의 자연과 인류의 대립’인 생태-포식의 역학. 넷째, 경제와 정치 분할에 내장된 속성으로 ‘공적 권력을 먹어치우고 민주주의를 도살’하려는 충동의 자본주의와 마지막 다섯째, 자본주의를 식인종으로 바라보게 되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차이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 지와 더불어 2020년에 발생한 코로나 팬데믹에 관한 이해 역시 어떻게 변화되는 지를 탄탄한 이론과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를 바탕으로 ‘21세기 자본주의’ 문제를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현재의 한국 사회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각종 어려운 문제점도 자연적으로 연상하면서 질문을 해 보게 된다.

‘한국인은 외국과 달리 스타트업 창업보다는 왜 그렇게 부동산 취득에 집착하는가?‘ 부동산을 재산축적의 손쉬운 수단으로 드라이브를 걸었던 세력은 일반 서민층일까? 아니면, 드러나지 않는 어떤 자본세력일까. 정치권은 왜 난데없이 남녀간의 젠더 갈등을 집권을 위한 선거이슈로 들고 나왔을까? 그렇게 함으로서 정치권력이 얻는 진정한 이익은 무엇일까. 그리고…선진국 및 거대 다국적 기업이 최근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 RE100, 탄소 제로 정책 등 지구 온난화 해결책은 그들이 진정으로 지구의 생태계를 걱정해서 하는 주장이고 정책들인가? 아니면 망가진 환경을 이용하여 그 동안 자본주의 제도를 활용하여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한 집단이나 국가가 ’지구 생태복원‘ 이라는 또 다른 아젠다로 자기들을 추격하는 일반 중산층이나 ’선진국‘이라는 단어를 아직 붙이지 못하는 경제개발중인 국가의 진입장벽을 또 다시 차단하려는 ’21세기의 보이지 않는, 교묘한 장벽‘인가?

‘식인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어렵다면 아주 쉬운 생생한 사례가 우리 주변에 있다. 상권이 조금 잘된다 싶으면,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상승시킨다. 임대료를 내지 못해 그 지역 상가 운영자들은 폐업을 한다. 여러 가게가 순차적으로 문을 닫아 결국 상권이 완전히 죽어버린다. 건물 임대가 나가지 않으니 이번에는 건물주들이 힘들어진다. 이런 결과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바로 건물주 자신이다.

또한, 지하수를 개발하여 플라스틱 병에 생수를 담아서 파는 기업들은 지구촌 최대의 골칫거리로 부상하고 있는 플라스틱 생수병을 스스로 회수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지구가 주는 지하의 수자원을 개발하여 팔 수 있는 권리는 있어도, 자기들이 만들어서 온 세상에 뿌려대는 일회용 플라스틱 생수병을 회수할 의무는 애초부터 없었다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각종 음식을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서 팔아 이윤을 획득하는 수 많은 각종 식품회사와 그 회사를 이끌고 있는 사장님, 혹은 회장님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저자인 낸시 프레이저는 자본주의 체재하에 벌어지는 이런 일련의 행위를 (자원의) ‘수탈’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대목에서 ‘건물주, 생수회사 사장님, 대기업 식품회사 회장님을 비롯하여 이를 유발하는 사회적 조직 시스템’ 이라는 단어를 ‘자본주의’로 변환시켜보면 된다.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을 스스로 몰락시키는 주인공은 다른 것이 아닌 ‘자본주의 자체’이다. 저자는 인간이 형성하고 있는 공동체를 비롯하여 사회 각 분야에서 도대체 이런 현상들이 왜 벌어지는 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책은 한 페이지를 넘기기가 녹녹치 않다. 무척 집중해서 들어야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는 고급 강연을 접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렇지만 생각을 하면서 페이지를 넘기면, 그 다음 페이지에서 현대 자본주의에서 살고 있는 내 자신이 ‘보다 나은 사회 혹은 국가는 어떠한 모습을 갖춘 곳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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