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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유산 - 억압과 저항으로 물든 제국주의 잔혹사
캐럴라인 엘킨스 지음, 김현정 옮김, 윤영휘 감수 / 상상스퀘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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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대 프랑스에서 대중을 상대로 하는 유료 영화가 처음으로 상영되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1930년대에 영화는 일반인들이 선호하는 시각적인 미디어였다. 종이 신문 구독자도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났고, 소리로 정보를 접하는 라디오 역시 소중한 미디어였다.


사람들은 새로운 미디어를 접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았고, 주변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선거 등 정치 현안도 '수다'를 떨었던 주제의 하나였다. 전쟁이 한창일 때, 정치 권력가들은 위의 새로운 미디어를 이용하여 정권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명한 집단지성은 권력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대체로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과 독일의 히틀러도 전쟁 중에는 인기를 얻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이 새로운 미디어의 영향력에 의해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오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맹활약했던 영국의 수상이자 시온이즘(Zionism*)을 옹호했던 '윈스턴 처칠(1874년-1965년, 90세)'은 전쟁 후에 선거에서 참패하며 노동당에 정권을 내주었다. 영국인들은 종전 이전에는 전쟁에 휘말린 영국을 처칠만큼 잘 이끌 사람이 없다고 믿었지만, 전쟁 후 폐허가 된 국가(사회)의 재건과 민생 회복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인식했다.


대중의 지지를 얻은 노동당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 총선 역사상 가장 큰 격차인 12퍼센트 차이로 처칠이 수장이었던 보수당을 따돌리며, 146석의 의석 차이로 압승을 거두었다.


문화 민주화가 노동당 지지율 중가와 함께 영국의 일상생활 거의 모든 부분을 파고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광고, 영화, 라디오, 인쇄 매체의 혁명 덕에 영국인은 아주 빠르게 다양한 견해와 이미지를 소비했다.

1939년에는 5000만 영국인 중 거의 절반이 매주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았고, 70퍼센트 이상이 라디오를 소유했다. 라디오 소유주가 겨우 1퍼센트 정도였던 1922년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발전이었다.

영국의 주요 일간지 일일 판매 부수는 1922년부터 두 배 이상 늘어나 약 1100만 부에 달했다. 영국 정보성은 이 점을 정확히 파악해 제국 (홍보)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 지은이 '캐럴라인 엘킨스 Caroline Elkins', 옮긴이 '김현정', <폭력의 유산 Legacy of Violence>, 상상스퀘어(2025), Page 518


노동당의 승리는 우연이 아니었다. 한층 발전한 특정 정당의 정책이 향상된 대중 매체를 타고 국민에게 전달되면서 대중의 포용력이 더해진 결과였다. 영국의 노동당은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는 의회를 완전하게 장악하지 못하다가 1997년 영국 총선에서 역대 최다 의석수인 418석을 차지하며 약 13년간(2010년까지) 집권하였다. 2010년 이후 14년 동안 보수당에 정권을 내주었던 노동당은 가장 최근에 치른 총선이었던 2024년에 413석을 차지하며 또다시 압승을 거두었다.


2010년부터 2024년까지 정권을 유지한 영국의 보수당은 캐머런 총리가 약속했던, 유럽 연합(EU, European Union) 탈퇴 찬반을 결정지었던 2016년 6월에 열린 영국 국민투표 개표 결과 72.2%의 투표율과 51.9%의 찬성으로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를 확정 지었고, 2020년 1월 31일 유럽 연합에서 정식으로 탈퇴하였다.


위의 영국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미디어 영향력과 집단지성의 현명함은 권력자 한 두 명이 영원히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현재까지 어느 정도 민감한 정치적 여론 통제에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언제까지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1890년대부터 발달한 대중매체는 '스마트 폰(iPhone 아이폰)'이라는 '손 안의 컴퓨터'가 세상에 처음 공개된 2007년 1월 직전까지 약 110년 동안 레거시 미디어로서의 영향력을 마음껏 행사했다.


유튜브(*哔哩哔哩 삐리-삐리 Bilibili), 페이스북 & 트위터(*新浪微博 신랑-웨이보 Xīnlàng Wēibó), 인스타그램(*小红书 시아오-홍-수 Xiǎohóngshū,  넷플릭스(*优酷 요우-쿠 Yōukù)등 사람과 집단이 만들어 내는 셀 수 없는 정보가 상호 연결되는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의 가장 큰 장점은 기존의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의 영향력을 무력화시켰다는 점이다. (*괄호 안은 거의 같은 기능과 역할을 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소셜 네트워크이다. 사용자는 기본 3억 명에서 최대 10억 명 이상이다)


최근 세계 각 국에서 일부의 극우 세력이 정권을 획득하고, 여론을 조성하는 사례도 있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개인적으로 예상한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호주의(무역과 경제 부문)극우 보수세력 혹은 독재자는 그 생명력이 오래가지 못했다.


어디서든, 무엇을 하든 자유롭고 싶어 하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과 반대되는 시스템이기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형성하는 것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한국은 헌법 제19조부터 22조까지 사상의 자유(양심의 자유, 제19조), 종교의 자유(제20조), 표현의 자유(언론·출판, 집회·결사, 제21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제22조)를 보장하고 있다. 이 중의 어느 하나라도 억누르려는 행위는 국가발전을 저해한다.


위의 조항에서 명시하고 있는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어야 사회 전반에 혁신이 이루어지고, 창의적인 경제가 발전하며, 문화가 융성하며,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정치권력을 사전에(혹은 사후에라도) 차단할 수 있다.


지난 2022년부터 오늘 현재(2025년 하반기)까지, 한국인이라면 이론으로만 알았던 위의 표현들을 현실에서 실감 나게 체험하고 있다.


어쩌면... 세상(지구촌) 사람들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비폭력과 상호 연대하는 방식으로 슬기롭게 행동했던 한국인들의 진면목을 알려는 노력을 시간이 갈수록 좀 더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덧붙이는 말) 유럽 연합 탈퇴전까지 무난한 성장을 계속했던 영국은 지난 2016년 보수당에 의한 유럽 연합 탈퇴로 제조업의 쇠태와 성장률 하락 등 내리막길을 걸었다. 영국의 자리를 대체한 국가는 독일이다.


지난 2005년~2021년까지 독일을 유럽 연합 내에서 최강국으로서의 성장 반열에 올려놓은 인물은 독일 최초, 최연소 여성 총리이자, 최장 기간(16년) 집권한 총리로 기록되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Angela Dorothea Merkel*)이다.


그녀는 보수당인 '기독민주당'에서 정치인의 길을 시작했지만, 보수이면서도 합리적이고, 진보에 가까운  연합행보를 보였다. 독일인들은 메리켈을 '엄마'라는 의미를 가진 '무띠(Mutti)'라고 불렀다.


그만큼 포용력 있는 독일의 총리로서 영국의 마가렛 대처의 11년 총리 장수 기록을 최초로 넘어섰다. 앞으로도 이 기록은 여간해서는 깨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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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 - 2세기에 걸쳐 진화한 세계화의 과거, 현재, 미래
마크 레빈슨 지음, 최준영 옮김 / 페이지2(page2)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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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삶에 물질이 넘쳐나고, 공급 과잉 세상의 뒷배경에는 ‘세계화’라는 경제 매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재료의 채취, 가공 및 생산, 물류를 활용한 공급과 소비가 ‘각기 다른 나라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정치경제학자들은 ‘세계화’라고 부른다.

값싼 노동력, 값싼 재료, 값싼 공장, 세금 혜택이 더 좋은 곳을 찾아 자본들이 대규모로 이동을 했다. 국경에 상관없이 물건과 사람, 금융자본(화폐)이 실시간으로 이동하는 세상이다.

세계화는 지구촌 평균 삶의 질을 높이는 긍정적인 기능을 일부 수행했다. 그러나, 좋은 열매는 일부 국가만 수확을 했고, 일련의 과정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간격을 더욱 벌려 놓은 부작용도 발생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기준은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의 기준은 소유하고 있는 자본의 규모이다.

하나의 경제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는 인간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생각된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대 목표인 ‘생존형 인간’과 존재의 가치를 찾는데 중점을 두는 ‘가치추구형 인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다양한 면에서 자신의 이익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의 독특한 특성은 소비형태를 보면 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생존형 인간은 고급 음식과 명품, 계층 상승, 권력 확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콘크리트와 철근, 고급 인테리어 자재로 지어진 50미터 이상 높이의 허공에 형성된 마천루의 매매 시세 차익이 높으면 금상첨화이다. 이들은 부동산 시세 차익 실현을 어렵게 하는 정권은 다음 선거에서 투표로 심판하기도 한다.

반면에, 가치추구형 인간은 물질이나 상품보다는 독서, 예술, 토론 등 지적활동에 참여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고급 상품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기에 어느 정도 품질이 보장되면서도 저렴한 가격이면 그걸로 족하다.

나는 대체로 가치추구형 인간에 가깝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자동차는 목적지까지 바퀴만 굴러가면 만족한다. 거주 공간은 추위와 더위, 비와 눈을 피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기에 상품 구매는 최소화 한다. 나에게 음식은 활동하기에 필요한 적절한 에너지를 얻기 위한 영양 공급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와 같은 사람이 많으면 제조업체 사장님이나 식당 주인들은 모두 망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 그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있다. 그러나, 공급 과잉으로 온갖 쓰레기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내 자신마저도 오염 물질 배출에 일조하고 싶지는 않다.

기술력으로 무장하여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중국이 급부상하여 그 동안 세계화를 주도했던 미국과 유럽이 거꾸로 피해를 당하자, 이제는 지역과 국가 보호주의로 본격적으로 선회하는 세상이 시작되고 있다. 일정한 패턴에서 벗어난 보기 드문 미국 대통령이 또 다시 선출되었기에 예상 가능한 일이다. 정식 취임도 하지 않았는데 동맹국이든 뭐든 상관없이 관세 20퍼센트 이상을 부과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가장 먼저 앞장서서 세계화를 주도했던 나라가 2025년을 기점으로 세계화를 쓰레기통에 버렸다고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약 200년간 직진하던 세계화 패러다임이 지역(국가) 중심주의로 유턴하여 방향을 바꾸면, 개인의 삶에도 변화는 필수적이다. 미국과 중국으로 상징되는 거대한 고래싸움에 튕겨나가는 새우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고래가 향하는 방향을 파악해야 한다.

오랜기간 경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마크 레빈슨’의 < 세계화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 (원제: Outside The Box( 2020) >은 불확실한 미래에 나아갈 이정표를 탐색하는 사람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과 방향성을 제공해 주고 있다.

관세를 무기로 사용하는 자국 보호주의, 인공지능으로 연결되는 초고속 사회,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 공급의 위기, 첨단 기술로 무장한 초거대 제조업 국가 중국의 수출전략이 동시에 벌어지는 것은 인류가 그 동안 겪지 못한 새로운 경제 패턴이다. 혼돈의 시대에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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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의 세계사 - 문명의 거울에서 전 지구적 재앙까지
로만 쾨스터 지음, 김지현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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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시자들(2013)‘의 한 장면에 용의자의 단서를 찾고자, 감시를 임무로 하는 특수경찰인 여자 주인공은 그가 버린 쓰레기 봉투를 수거한다. 테이블 위에 냄새 풀풀나는 쓰레기를 모두 펼친 다음, 뭔가를 찾는 장면이 나온다. 개인이 버린 쓰레기를 보면 그 사람의 일상이 보인다.

개인들이 모여 함께 만든 사회라는 조직도 똑 같다. 인천 쓰레기 매립장이나 송파구 재활용선별시설로 향하는 각종 쓰레기에는 도시민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도시가 발달하지 않았던 근대 이전에 쓰레기 처리는 크게 사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닐과 플라스틱 용기도 없었고, 콘트리트도 없었기에 그냥 근처 땅에 구덩이를 파고 버리면 비료가 되었다. 물건도 무척 귀해서 버릴 것이 거의 없었다. 웬만한 물건은 고쳐서 다시 썼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좀 더 안전하고 편하게 살고자 거대한 도시를 만들었고, 그 속에서 생활한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도시의 규모가 커질 수록 새벽 3시부터 아침 6시까지 진행되는 ‘쓰레기 처리’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높아진다.

특이한 책인 ‘쓰레기의 세계사‘(원제: Müll: Eine schmutzige Geschichte der Menschheit, 쓰레기: 추악한 인류의 역사)는 오늘날 세상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쓰레기의 역사와 사회학‘을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더 많은 물건을, 더 적은 비용으로 생산하는 데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남은 제품을 수거하고 재활용하는 능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이렇게 발생한 쓰레기 처리 문제는 이제 사회적 문제로 자리를 잡았다”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프랑스가 1883년에 뚜껑 달린 철제 쓰레기통을 최초로 도입한 국가라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았다. 책의 끝에서는 쓰레기의 유형과 처리방법은 단순한 환경문제를 넘어서며, 가난과 부의 격차 등 사회 불균형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 ‘갈등’을 처리하는 그 사회의 수준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천의 쓰레기 매립지 처리용량이 거의 만땅 수준이다. 이상적인 새로운 매립지를 찾아야 한다. 쓰레기 매립지 유치를 적극 환영하는 지역이 어디에 있을까? 서울 상암동 ‘소각장’ 설치 예정지는 몇 년째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쓰레기 매립지와 소각장을 구할 수 없다면, 방법은 딱 하나 밖에 없다. 쓰레기를 최대한 만들지 않으면 된다. 나는 다른 사람의 개인 삶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그러나,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 지에는 관심이 무척 많다.

매립지가 부족하고 소각장 설치가 어렵다는 소식에 나는 개인적으로 쓰레기 배출을 거의 안하려고 애쓴다. 개인적으로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추구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웬만하면 물건을 사지 않는다. 아플 때를 제외하고는 식사 배달을 시키지 않는다. 배달하시는 분들이 문 밖에서 건네주는 플라스틱 음식 용기 처리가 부담스러워서 배달 어플을 몇 번 쓰다가 삭제했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책도 집으로 배달시키지 않는다. 나는 택배 노동자들이 내 집에 물건 배달오다가 심장마비로 죽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같은 회사가 운영하는 중고 서점에서 픽업한다. 시내에 일보러 갔다가 매장에 잠시 들려서 직접 책을 가지고 오면 된다.

텀블러를 늘 가지고 다니며 음료는 거기에 담아서 마신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버릴 ’마땅한 곳‘을 찾을 필요가 없으니 좋다. 하루 3잔 테이크 아웃 기준으로 1년 동안 약 1,000개의 플라스틱 컵을 쓰레기 소각장으로 보내지 않았다 생각하니 별것 아닌 일에도 왠지 뿌듯하기도 하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단순한 나의 삶은 ’사회적 거울‘로 스스로를 비추어 본다면 여러 면에서 부담스럽지 않다. 단순한 삶은 기대 이상으로 무척 가볍고 경쾌하다.
——-
로만 쾨스터 지음, ‘쓰레기의 세계사 (원제: Müll: Eine schmutzige Geschichte der Menschheit, 쓰레기: 추악한 인류의 역사), 김지현 옮김, 흐름출판(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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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ise and Fall of the East: How Exams, Autocracy, Stability, and Technology Brought China Success, and Why They Might Lead to Its Decline (Hardcover)
Yasheng Huang / Yale University Press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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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에게는 ‘중국’이란 단어를 머리 속에 떠 올리면 긍정적인 것보다는 대부분 부정적인 사안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모양세다.

‘짝퉁의 나라’를 시작으로 불량식품, 중금속 오염 장난감과 화장품, 해외 여행지에서 개념없는 행동, 지독한 대기오염, 공산당, 독재정치, 감시사회 등 미디어들이 전해 준 네거티브 단어들이 한국 사람들의 뇌리에 안착되어 있다.

어쩌다 훌륭한 디자인과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 진 ‘메이드 인 차이나(Made-in China)’를 만나게 되면, 한국인들은 ‘대륙의 실수’로 평가절하한다. 거대한 국가의 기술력과 존재를 마음 속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깡그리 무시한다’는 표현이 좀 더 적절하리라 생각된다.

일반적인 관념과 달리 중국은 이미 한국보다 여러 분야에서 한참 앞서있다. 반도체 등 극소수 분야 1-2 개만 한국에 뒤져있을 뿐이다.

연간 실질 소득 1억 이상의 부유층이 1억 명 이상이고,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연 소득 3천 만원-6천 만원 인구도 약 3억 명을 넘겼다.

1년 동안 세계 각 국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전체 외국인 관광객 숫자가 약 1500만 명 전후라는 것을 감안하면, 중국의 모든 중산층이 한 번씩만 힌국을 방문해도 향후 20-30년이 걸린다.

유럽과 미국이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할 정도로 세계 최고의 전기 자동차 제조 기술 보유 및 수출국가(시장 점유율 55% 이상)이다. 전기차 배터리 생산 1위 자리를 내 주지 않는 최강 국가이기도 하다.

100% 중국 기술로 완성한 세계 최대의 수퍼 컴퓨터 서버와 데이터센터도 보유하고 있다. 풍력발전 및 태양광 기술, 설비 분야도 독보적인 세계 1위(시장 점유율 60% 이상)이다.

중국 본토인 광동성에서 마카오-홍콩까지 이동 시간을 자동차로 불과 38분으로 단축해 버린 세상에서 가장 긴 해상 다리(55km) 보유 기록도 연거푸 갈아치웠다.

우리가 태평양 건너편 국가를 바라보는 사이에 어쩌다가 중국은 이토록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민주주의도 아닌 나라가 어떻게 미국과 유럽이 태클을 걸 정도로 최단 기간에 수준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국가가 되었을까?

<The Rise and Fall of the EAST> 책의 저자이자 MIT 교수인 ‘야성 황(Yasheng Hwang)‘은 중국의 경제발전을 견인하고 있는 중국 정부 리더십의 뿌리를 고대 수나라 시절인 587년에 공식적으로 시작하여 명나라(1368-1644) 시절에 최고조에 달한 ‘과거제도(科举, Keju)’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14세기 후반에 중국이 세계 최초로 국가 차원에서 인재 선발과 육성을 위한 '단일화 된 국가 표준 측정 시스템'을 완성하였다는 것에 주목한다.

6세기에 시작하여 14세기 후반에 이미 완성된 국가 차원의 중국 인재선발 방식을 미국은 21세기에 들어서야 정착시켰다. 중국은 국가 발전에 필수적인 인재 선발 방식에서 미국과 유럽에 비해 최소 700년 이상 앞서 있었다.

과거제도는 '추천된 인맥 중심의 기득권 세력'을 무너뜨리는데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고, 우수한 능력을 가진 인재가 주목을 받는 '능력주의'가 정착되었다. 이는 자연스레 국가 리더십 강화로 이어졌다.

2024년 현재, 중국 공산당(China Communist Party) 정부는 고대 과거제도와 동일한 프레임과 인재 선발 프로세스로 움직인다.

시골 구석까지 촘촘하게 뻗어있는 우수한 인적 네트워크가 정부 정책의 신속한 수행을 위한 두뇌와 척추 역할을 한다.

중국에서 정부 고위관료가 되려면 ‘반드시‘ 전국 각지에서 선출되는 공산당원 9,600만 명에 속해야 한다. 승진을 하려면 이 중에서 다시 ‘전국 당대회 대표’ 2,300명 안에 들어야 한다. 한국의 국회의원 급에 해당하는 고위 관료가 중국에는 2,300명이 있다.

권력의 핵심에 좀 더 다가서기 위해서는 또 다시 ‘중앙위원’ 205명의 후보군에 속해야 한다. 이 단계는 미국 의회의 ‘상원의원’ 급에 해당한다. 그 다음 상위 레벨은 24명으로 구성되는 ‘중앙 정치국 위원’이다. 한국의 각 부처 장관에 해당한다.

마지막 단계가 중국 리더십의 최고 정점으로 불리는 ‘7인’으로 구성되는 ‘정치국 상무위원들’이다. 2024년 현재,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수장이 바로 ‘시진핑‘(Xi Jin Ping 习近平, 71세) 주석이다.

5년 단위로 설계되어 100년 후까지 지속되는 중국 정부 미래 정책이 ‘전국 당대회 대표(2300명)’회의를 거쳐 여기에서 승인된다.

최하위 단계인 공산당원으로 선발되고, 최고 권력층인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기까지에는 아무리 짧아도 약 40년이란 세월이 걸린다. 시진핑 주석도 1974년에 공산당원으로 선발된 후, 38년이 지난 2012년에 비로소 ‘후진타오’에 이어 ‘최고 권력자‘ 위치에 올랐다.

황제 체재에서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정부의 관리가 되었듯이, 오늘날에는 매년 1,380만 명 이상이 일제히 동시에 답을 제출하는 중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Gaokao 高考)에 응시한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경제개발 개혁을 추진한 지 불과 40년 만에 미국과 유럽이 강하게 견제를 할 정도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은 과거제도 DNA에 기초한 우수인재 확보 시스템이었다.

이와 더불어 전략적 사고로 무장한 정치 엘리트 중심의 공산당 중심주의와 사유재산 & 자유로운 경쟁을 허락하는 시장경제 시스템의 병행 운영이었다.

과거제도를 승계한 9,600만 명의 우수 인재 네트워크로 운영되는 중국 공산당(China Communist Party)의 운영방식은 현재까지는 성공적이다. 미래의 성공 여부는 공산당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13억 이상의 인구를 어떻게 경제발전을 위한 인력으로 활용하는가에 달려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 리더십이 첫 번째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좀 더 자유로운 창의력 발휘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사상(이데올로기)의 자유, 표현의 자유(언론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할 지가 관건이다.

두 번째는, 소득 격차에 따른 도시와 농촌 간의 불균형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수면 위로 이미 부상했다.

한국 인구의 약 2배에 달하는 9600만 명 이상의 집단 지성으로 형성된 중국의 리더십이 위 난제를 어떻게 풀어가는 지를 바라보면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여긴다.

이 책은 이런 점에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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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on2023 2024-11-12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은 이미 한국보다 여러 분야에서 한참 앞서있다. 반도체 등 극소수 분야 1-2 개만 한국에 뒤져있을 뿐이다.˝

중국의 저력과 국력을 항상 경계하고 조심해야겠네요.
 
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한강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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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의 삶은 대체로 생명을 지닌 하나의 존재로서 살아오고 있지만, 때론 투명인간처럼 존재감 없는 대상으로 살아가는 실로 고단한 인생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각자 한 가지 정도는 자신의 존재감을 소속된 그룹이나 공동체에서 드러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문제는, 어떤 차별화 된 존재감을, 사람들 앞에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 것인가? 이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Page 8)

한 사람이 일상에서 주로 무엇을 먹느냐? 그 행위 하나 만으로도 사회는 특정 인간을 판단하려 달려든다. 채식을 한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주인공은 특별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공동체에서 다수가 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의 첫 반응은 ‘당혹스러움’이다. 상대방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 모르기 때문에 애둘러서 ‘별난 사람 혹은 특이한 사람‘이란 표현으로 설명한다. 독특하기에 ‘본 받고 싶은 사람’이라는 의미보다는, 가능한 한 멀리해야 할 ’기피 대상‘이라는 뉘앙스에 더 가깝다.

동물과 사람을 확연하게 구별지을 수 있는 독특한 특성 중 하나인 ’인간의 존재감‘은 어디서 올까?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존재감은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까?라는 다소 어려운 문제도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아버지,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순간, 장인의 억센 손바닥이 허공을 갈랐다. 아내가 빰을 감싸쥐었다‘(page 57-58)

공동체의 삶과 다른 방향을 향하는 타인의 독특한 삶은 다양성을 포용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가족’이라 할 지라도 견디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무엇이든 허용될 수 있을 것 같은 ‘가족’이라는 운명 공동체는 통상적인 개념과는 정반대로 때론, 가장 은밀하면서도 처참하게 인격을 말살하기도 한다.

가정에서의 폭력에 소극적으로 저항하고자 소설의 주인공은 첫 행동으로 모두가 좋아하는 ‘고기’를 먹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한다. 급기야는 가족들의 압박이 더 심해지는 상황에서 모두 보는 면전에서 자신의 손목을 칼로 긋는 행위로 강력하게 저항한다.

“육식이란 본능이에요. ‘채식’이란 본능을 거스르는 거죠. 자연스럽지가 않아요. (중략) 골고루, 못 먹는 것 없이 먹는 사람이 건강한 거 아니겠어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원만하다는 증거죠.”(page 35)

문 밖을 나서면 이번에는 ‘사회‘라는 공동체가 ‘편견’이라는 가면의 탈을 쓴 채 ’소리없는 폭력‘을 행사한다. 그 폭력에 대응하는 자세로 침묵을 가장한 ‘묵묵히 성실한 사회생활’-바꿔 말하면 ’침묵‘이라는 비겁함-을 최선으로 선택한다.

공동체를 형성하는 구성원의 ’독특한, 혹은 해로운 행위‘를 통제하는 방법에서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큰 차이를 두지 않는다.

사람을 한번 물었다는 동네의 ’유별난‘ 개 한마리를 통제하기 위해, 인간은 개의 목에 쇠줄을 묶은 뒤 오토바이에 매달아 동네를 일곱 바퀴나 도는 ’응징‘을 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다. 작가는 그렇게 숨이 다한 고깃덩이를 요리재료 삼아 동네 사람들과 태연하게 저녁식사를 겸한 잔치를 벌이는 인간들을 묘사하며 공동체의 잔혹한 내면을 드러낸다.

’채식주의자‘에서 인간의 첫 번째 욕망인 ’식욕‘을 다루었다면, ’몽고반점‘에서는 두 번째 욕망인 ’성욕‘을 다룬다.

생명 탄생을 위한 성스러운 행위로서의 욕구과 오로지 육체의 쾌락 만을 위한 본능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을 ’형부와 처제와의 성관계‘라는 ’사회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금기‘를 소재로 사용하여 비판한다.

이 둘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역설적으로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꽃’이다. 책 표지 디자인을 천천히 다시 감상하면, 남성과 여성의 상징이 결합해 있는 것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녀의 몽고반점 위로 그의 붉은 꽃이 닫혔다 열리는 동작이 반복되었고, (중략) 가장 추악하며,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의 끔찍한 결합이었다.“ (page 169)

소설의 여자 주인공은 ‘고깃덩어리’로 상징되는 남성의 육체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사람 몸을 캔버스 도구로 삼아 그려진 ‘꽃’에 순수하게 반응할 뿐이다. 그에 반해 남성은 쾌락의 대상으로 여자 주인공을 바라본다. 확연히 다른 두 사람의 시선이 충돌하는 지점이기에 추악함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교차한다.

“어쩌면 그녀의 내면에서는 아주 끔찍한 것,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어, 단지 그것과 일상을 병행한다는 것만으로 힘에 부친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일상에서는 호기심을 갖거나 탐색하거나 일일이 반응할 만한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은 건지도 몰랐다. (page 125)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고, 복잡한 계산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 세상에는 신경쓸 사안들이 넘치고 넘친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은 오히려 지극히 단순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그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주인공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수시로 꿈을 꾼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온전한 잠을 잘 수 없는 환경이라 인간의 세 번째 욕망 또한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그녀는 말했다. “고기만 안 먹으면 그 얼굴들이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page 172). “언니,……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page 210)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받아줄 나무를 찾아낼 수 없었다. 어떤 나무도 그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짐승들처럼, 완강하고 삼엄하게 온몸을 비틀고 서 있을 뿐이었다.” (page 248)

주인공은 나무 혹은 꽃과 같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잎을 자라게 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동반 성장‘을 추구하는 세상에 살고자 한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세상과 그 주변은 그녀를 가만 놓아두지 않고 급기야 공동체에서 격리를 해 버린다.

주인공의 언니는 고기를 먹지 않고, 저항하다 지치고, 나무가 되어 뿌리를 내리려 했던 동생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격리 시설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숨이 꺼져가는 동생을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가치관의 폭력에 어릴적부터 ‘침묵과 성실함’으로 묵묵히 일상을 지내온 자신의 삶은 ’조숙함‘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것은 ’비겁함‘이었고, 다만 ’무난하게 살아가기 위한 생존의 한 방식‘이었을 뿐임을.

주인공은 아마도 각기 다른 형태의 나무들이 사이좋게 살아가는 숲을 이상적인 사회로 여겼을 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그늘을 제공하며 같이 성장하다가, 죽은 후에는 사람들에게 온기를 제공하는 땔감이 되어 마지막 불꽃을 발하는 따뜻한 존재!

남들과 ‘다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침묵’이라는 가면을 쓰고, 모두가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감추려는 사회는 '비겁한 사회'이다. 모두가 가면을 쓰라고 서로가 강요한다면 주먹과 칼을 사용하지 않을 뿐, 그건 또 다른 의미에서의 ‘폭압적인 사회, 잔인한 사회’이다.

나와는 다른 유형의 음식을 먹는 사람,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 몸이 불편하여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 태어날 때 부터 유전자 이상으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 지를 보면 그 사회의 ’성숙함’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작가는 우리 사회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행동을 해야 ’나무처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유별난 주인공‘을 품을 수 있을 지를 시적인 언어로 참혹하게 묘사하는 듯 하다.

나와 확연하게 다른 식성과 가치관,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을 인정하지 못할 때, 그 대상은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 지를 세 편으로 구성된 각각의 스토리에서 관점을 바꾸어 가면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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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on2023 2024-11-07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너무 잘쓰십니다 😀 완전 멋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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