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한강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통 사람의 삶은 대체로 생명을 지닌 하나의 존재로서 살아오고 있지만, 때론 투명인간처럼 존재감 없는 대상으로 살아가는 실로 고단한 인생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각자 한 가지 정도는 자신의 존재감을 소속된 그룹이나 공동체에서 드러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문제는, 어떤 차별화 된 존재감을, 사람들 앞에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 것인가? 이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Page 8)

한 사람이 일상에서 주로 무엇을 먹느냐? 그 행위 하나 만으로도 사회는 특정 인간을 판단하려 달려든다. 채식을 한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주인공은 특별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공동체에서 다수가 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의 첫 반응은 ‘당혹스러움’이다. 상대방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 모르기 때문에 애둘러서 ‘별난 사람 혹은 특이한 사람‘이란 표현으로 설명한다. 독특하기에 ‘본 받고 싶은 사람’이라는 의미보다는, 가능한 한 멀리해야 할 ’기피 대상‘이라는 뉘앙스에 더 가깝다.

동물과 사람을 확연하게 구별지을 수 있는 독특한 특성 중 하나인 ’인간의 존재감‘은 어디서 올까?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존재감은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까?라는 다소 어려운 문제도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아버지,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순간, 장인의 억센 손바닥이 허공을 갈랐다. 아내가 빰을 감싸쥐었다‘(page 57-58)

공동체의 삶과 다른 방향을 향하는 타인의 독특한 삶은 다양성을 포용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가족’이라 할 지라도 견디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무엇이든 허용될 수 있을 것 같은 ‘가족’이라는 운명 공동체는 통상적인 개념과는 정반대로 때론, 가장 은밀하면서도 처참하게 인격을 말살하기도 한다.

가정에서의 폭력에 소극적으로 저항하고자 소설의 주인공은 첫 행동으로 모두가 좋아하는 ‘고기’를 먹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한다. 급기야는 가족들의 압박이 더 심해지는 상황에서 모두 보는 면전에서 자신의 손목을 칼로 긋는 행위로 강력하게 저항한다.

“육식이란 본능이에요. ‘채식’이란 본능을 거스르는 거죠. 자연스럽지가 않아요. (중략) 골고루, 못 먹는 것 없이 먹는 사람이 건강한 거 아니겠어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원만하다는 증거죠.”(page 35)

문 밖을 나서면 이번에는 ‘사회‘라는 공동체가 ‘편견’이라는 가면의 탈을 쓴 채 ’소리없는 폭력‘을 행사한다. 그 폭력에 대응하는 자세로 침묵을 가장한 ‘묵묵히 성실한 사회생활’-바꿔 말하면 ’침묵‘이라는 비겁함-을 최선으로 선택한다.

공동체를 형성하는 구성원의 ’독특한, 혹은 해로운 행위‘를 통제하는 방법에서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큰 차이를 두지 않는다.

사람을 한번 물었다는 동네의 ’유별난‘ 개 한마리를 통제하기 위해, 인간은 개의 목에 쇠줄을 묶은 뒤 오토바이에 매달아 동네를 일곱 바퀴나 도는 ’응징‘을 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다. 작가는 그렇게 숨이 다한 고깃덩이를 요리재료 삼아 동네 사람들과 태연하게 저녁식사를 겸한 잔치를 벌이는 인간들을 묘사하며 공동체의 잔혹한 내면을 드러낸다.

’채식주의자‘에서 인간의 첫 번째 욕망인 ’식욕‘을 다루었다면, ’몽고반점‘에서는 두 번째 욕망인 ’성욕‘을 다룬다.

생명 탄생을 위한 성스러운 행위로서의 욕구과 오로지 육체의 쾌락 만을 위한 본능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을 ’형부와 처제와의 성관계‘라는 ’사회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금기‘를 소재로 사용하여 비판한다.

이 둘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역설적으로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꽃’이다. 책 표지 디자인을 천천히 다시 감상하면, 남성과 여성의 상징이 결합해 있는 것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녀의 몽고반점 위로 그의 붉은 꽃이 닫혔다 열리는 동작이 반복되었고, (중략) 가장 추악하며,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의 끔찍한 결합이었다.“ (page 169)

소설의 여자 주인공은 ‘고깃덩어리’로 상징되는 남성의 육체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사람 몸을 캔버스 도구로 삼아 그려진 ‘꽃’에 순수하게 반응할 뿐이다. 그에 반해 남성은 쾌락의 대상으로 여자 주인공을 바라본다. 확연히 다른 두 사람의 시선이 충돌하는 지점이기에 추악함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교차한다.

“어쩌면 그녀의 내면에서는 아주 끔찍한 것,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어, 단지 그것과 일상을 병행한다는 것만으로 힘에 부친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일상에서는 호기심을 갖거나 탐색하거나 일일이 반응할 만한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은 건지도 몰랐다. (page 125)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고, 복잡한 계산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 세상에는 신경쓸 사안들이 넘치고 넘친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은 오히려 지극히 단순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그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주인공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수시로 꿈을 꾼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온전한 잠을 잘 수 없는 환경이라 인간의 세 번째 욕망 또한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그녀는 말했다. “고기만 안 먹으면 그 얼굴들이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page 172). “언니,……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page 210)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받아줄 나무를 찾아낼 수 없었다. 어떤 나무도 그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짐승들처럼, 완강하고 삼엄하게 온몸을 비틀고 서 있을 뿐이었다.” (page 248)

주인공은 나무 혹은 꽃과 같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잎을 자라게 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동반 성장‘을 추구하는 세상에 살고자 한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세상과 그 주변은 그녀를 가만 놓아두지 않고 급기야 공동체에서 격리를 해 버린다.

주인공의 언니는 고기를 먹지 않고, 저항하다 지치고, 나무가 되어 뿌리를 내리려 했던 동생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격리 시설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숨이 꺼져가는 동생을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가치관의 폭력에 어릴적부터 ‘침묵과 성실함’으로 묵묵히 일상을 지내온 자신의 삶은 ’조숙함‘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것은 ’비겁함‘이었고, 다만 ’무난하게 살아가기 위한 생존의 한 방식‘이었을 뿐임을.

주인공은 아마도 각기 다른 형태의 나무들이 사이좋게 살아가는 숲을 이상적인 사회로 여겼을 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그늘을 제공하며 같이 성장하다가, 죽은 후에는 사람들에게 온기를 제공하는 땔감이 되어 마지막 불꽃을 발하는 따뜻한 존재!

남들과 ‘다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침묵’이라는 가면을 쓰고, 모두가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감추려는 사회는 '비겁한 사회'이다. 모두가 가면을 쓰라고 서로가 강요한다면 주먹과 칼을 사용하지 않을 뿐, 그건 또 다른 의미에서의 ‘폭압적인 사회, 잔인한 사회’이다.

나와는 다른 유형의 음식을 먹는 사람,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 몸이 불편하여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 태어날 때 부터 유전자 이상으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 지를 보면 그 사회의 ’성숙함’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작가는 우리 사회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행동을 해야 ’나무처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유별난 주인공‘을 품을 수 있을 지를 시적인 언어로 참혹하게 묘사하는 듯 하다.

나와 확연하게 다른 식성과 가치관,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을 인정하지 못할 때, 그 대상은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 지를 세 편으로 구성된 각각의 스토리에서 관점을 바꾸어 가면서 보여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가 올 것 같아” 소설은 이렇게 중학교 3학년 소년의 생각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일반 사람들은 비가 올 것 같으면 ‘우산’을 준비한다. 당연히 비를 맞지 않기 위한 것이 첫 번째 목적이다.

출근하기 위해 깨끗하게 다린 셔츠가 비에 젖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적절하게 얼굴에 바른 화장이 비에 젖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다양한 옷 맵시와 정성스럽게 손질한 머리 모양이 비에 젖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왜 이토록 비를 맞지 않기를 원할까? 그냥 맞아도 되는데 말이다. 모두 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함이라 여긴다.

아울러, 비에 젖은 옷에서 나는 비린내를 상대에게 품기고 싶지 않다. 우리는 그렇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에는 우산을 준비한다.

작가는 소년이 걱정하는 비가 단순한 가랑비가 아니라 생각했다. 무려 80만 발의 쇠로 만든 총알을 준비했던 ‘국가의 특정 집단’이 소년을 비롯한 ‘사람‘을 향해 쏟아지는 엄청난 ‘비’로 바라본 듯 하다.

너무 많은 비를 맞은 것이 아니라, 단 한 방의 ‘총알’ 비를 맞은 소년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순간을 맞이했다.

어린 새처럼 어린 청년의 영혼은 그렇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작은 영혼은 차마 자유롭게 날아오르지 못하였다.

소년은 왜 자기가 죽었는지, 누가 총을 쏘아 죽이라 명령 했는지, 누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었는 지 알고 싶었다.

군인도 사람이기는 매한가지였을 텐데 어찌 그리도 잔인하게 사람 몸을 훼손했을 수 있었을까?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특정 순간에 발휘된 것인가? 모를 일이다.

확실한 한 가지 문제는 그들은 ‘군대’라는 ‘군중에 속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또 다른)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 한강, <소년이 온다>, Page 95)

인간의 근본적인 야만성 반대편에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에 서 있던 소년이 있었다.

그걸 알고 싶었던 그의 혼은 ‘검은 숲’에서 썩어가며 악취가 나는 스스로의 몸을 힘겹게 바라보았다. 그의 영혼을 달래기라도 한 듯, 영문을 모른 채 죽은 또 다른 사람들의 차가운 몸들이 십자 형태로 포개진 채 함께 있었다.

소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을 죽인 것이 국가 권력임을 알면서 죽기 전에 애국가를 부르고, 시신이 담긴 관을 태극기로 감싸던 사람들의 행동을, 그렇게 행동했던 근본적인 이유를.

평범한 얼굴, 보통 사람의 손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손이 따귀로 연거푸 날아와 목이 휠 정도로, 안면 피부 안쪽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소년의 영혼은 지켜보았다.

총과 대검으로 무장한 압도적인 힘의 폭력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익히 잘 아는,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들…어두운 밤을 지새고, 동이 터 오면 죽어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보통의 사람들은 왜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을까?

양심!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단어. 그 어떤 무자비한 힘의 폭력이라 할 지라도 결코 꺾을 수 없는 인간의 존재 이유는 소년이 이해할 수 없었던 바로 그것, ‘순전하고 숭고한 양심’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맥박의 힘을 느끼게 하는 두 글자 때문에 옆구리에 총탄이 날아들어와 내장이 흘러내리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다.

대검이 목과 얼굴을 긋고, 총에서 가장 무거운 개머리 판이 인간 생명의 출발 지점을 무참히 짓이기는 고통 속에서도 사람들이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숭고한 집단이 되어버린 양심과 하나가 되었다는 강렬한 느낌이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 한강, <소년이 온다>, page 116

총을 가지고 무자비한 폭력에 대항은 했으나 결국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는 ’양심‘ 때문에 쏘지도 못할 총을 소지했던 시민들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은 또 다른 집단’에 의해 스러져 간 꽃들이 되었다.

숭고한 양심을 지켜내기 위해 어미새가 되기도 전에 영혼 만이 남은 작은 새가 되어 날아간 소년을 생각하며 작가는 말한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 한강, <소년이 온다>, Page 100

살아남은 것에 아파하는 것도 모자라, 치욕을 간직하며 남겨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년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인 숭고한 양심을 지키기 위해 무섭고, 어둡고, 그늘진 곳에 있었다‘고…그러니 ’이제 여러분들은 그늘진 곳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고, 밝은데 꽃이 핀 곳으로 가라고…‘

작가는 작품 전체를 통해 우리에게 커다란 질문 하나를 던지고 있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그) 무엇이지 않기 위해, (남겨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laton2023 2024-11-04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주학살의 현장을 소설을 통해서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작가의 역사에 대한 소명감과 우리가 잊었던 역사적 현장을 알게해준 또 그 일이 지금 현재적 사실로 남아있게 한 문학작품이네요. 쓰러져간 사람들을 위해 슬픈 마음을 간직하고자 합니다
 
똑똑한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질문하는가 - 사고력 실종의 시대, 앞서가는 사람들의 생존 전략
이시한 지음 / 북플레저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약 곧 죽을 상황에 처했고, 목숨을 구할 방법을 단 1시간 안에 찾아야만 한다면, 1시간 중 55분은 올바른 질문을 찾는데 사용하겠다.

질문이 정답보다 중요하다.

올바른 질문을 찾고 나면 정답을 찾는데는 5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1990년대까지는 선진국을 따라 잡기 위한 후발 주자 국가들은 선진국들이 먼저 시행한 경로를 그대로 따라하면 되는 시기였다. 메뉴얼대로 움직이고, 최대한의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바짝 뒤쫓아야 하는 패스트 팔로워 (fast follower)역할이면 충분했다.


단답형 질문, 객관식 질문에 정확하게 답변하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시대였기에 속칭 ‘돌아이’와 같은 독특한 생각에 이은 ‘특이한 질문’은 사회나 조직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시간도 없는데 한가하게 엉뚱한 아이디어에 자원을 낭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시대였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와 큰 흐름 하나가 나타났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의 출현으로 휴대폰이 손안의 컴퓨터 역할을 하면서, 단답형 질문과 답변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상이 되면서 암기력에 기반하는 지적 경쟁력은 그 가치를 상실했다.


2023년도에 시작된 인공지능의 흐름은 인터넷 발명에 이은 또 다른 산업혁명에 가까운 거대한 물결이자, 역대 인간이 겪지 못할 큰 변화를 사회에 몰고 오고 있다.


2024년 현재는 단답형 질문에 대한 ‘정답’마저 무의미해졌고, 인공지능이 알아서 요약문을 순식간에 작성해서 제시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인간의 사무처리 능력과 정보 수집능력, 분석능력, 검색능력을 한참 앞서는 거대한 컴퓨터망이 초고속으로 연결된 ‘괴물’을 인류 스스로 만들었다.


무엇이든 물어보면 장문의 답변을 척척 토해내는 인공지능 세상에서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존심인 ‘질문 능력’이 마침내 인류의 시험대에 올랐다.


어떻게 물어보느냐가 더욱 중요해졌고, 무엇을 물어보느냐에 따라 인공지능의 답변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방식이니, 정답보다는 ‘질문 자체’가 정말로 중요해 진 세상이 도래했다.


바꿔말하면, 뭘 물어야 할 지, 어떻게 물어야 할 지에 대한 ‘생각의 중요성’이 최고의 경쟁력이 되는 미래의 세상이 현재에 이미 도착하여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도 거절을 못했습니다
이지현 지음 / Book Around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인의 부탁을 어떻게 거절해야 할 지 몰라서 결국에는 (물건) 한 개 살 것을 두 개나 사고 집에 돌아와 혼자 있을 때면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창한 심리 이론이 아닌, ‘거절’ 못해서 경험했던 생생한 삶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도 거절을 못했습니다
이지현 지음 / Book Around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인지 모르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중략) 나의 이 거지 같은 소심함 때문에 놓치고 산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중략) 나는 도무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프롤로그 중에서 인용)


<오늘도 거절을 못했습니다>의 저자 ‘이지현’ 님은 그 동안 돌덩이처럼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던 주저함, 소극적인 태도, 전전긍긍, 소심함 등 그녀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막고 있던 장애물들을 이 책을 써 나가는 동안 상당히 많이 거두어 낸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이제야 비로소 정신적 혹은 심리적으로도 ‘자유롭게 할 말은 하면서 조금 더 주체적으로 삶을 살 수 있는 성숙한 인격체’를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음도 느낄 수 있습니다.


공동체 (가족을 시작으로 학교, 첫 직장, 직업 공동체, 취미 단체 등)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삶 속에서 자신의 주관적인 의견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개인적 입장에서 이런 상황이 오래 계속되면 자존감의 상실에 이어 소극적이거나 침묵하는 삶, 심할 경우에는 극도의 우울함을 지나 분노의 삶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Reading 독서> (Image from Unsplash (CC)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규범의 준수, 가족이 우선시 하는 가치와 형제자매 상호 간의 질서 및 태도, 타인과의 관계 형성 과정에서 본능적으로 작동하는 자신의 방어 본능과 공격성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안되요! 혹은 노 No!‘라고 말하는 것을 꺼리게 됩니다.


무엇인가를 요청한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 예상되는 보복과 거절에 대한 두려움, 무엇이 정의롭고 정당한 지에 대해 판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안된다고 말했을 경우 공동체 구성원으로부터 부정적인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노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또 다른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직감으로 알고는 있으나 그 감각을 신뢰할 수 없는 상태로 인해 ‘아니오!’ 라는 말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사회 공동체에서 혼자가 되거나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개인의 가치관 혹은 타고난 성격으로 인해 타인의 눈에 띄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직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미리 짐작하거나 가상하여 판단하는 경우에도 타인을 향해 선뜻 ‘아니요 혹은 안되요!’라는 발언을 하지 못합니다.


위의 모든 상황들은 사람의 타고난 개성과 진실성, 즉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진정한 필요와 욕구, 기쁨과 두려움, 열정과 신념…등 타인과 구별되는 진정한 자아 또는 온전한 정신적 충만감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데 강력한 방해물이 됩니다.


상황에 맞추어서 적절하게 "아니요"라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일과 삶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 생존하고, 자신을 발전시키고 번영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Nope' (Source: Photo by Daniel Herron on Unsplash (CC))


저자는 사람을 사귀는데 관심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독자인 내가 보기에는 마음 속에서는 그 누구보다 사람을 찾고 있음을 글 전체를 통해서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좋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지…그 방법을 몰라서 마음 속에 내재된 두려움이 행동 혹은 말하기를 주저하는 상태로 나타났을 뿐 입니다.


거절하는 방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동생이랑 유럽 갔다 와!“라는 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감히 거절도 못하고 숙제 하듯 떠난 한 달 간의 여행이 어쩌면 이 책을 쓸 수 있기까지 삶의 변화를 초래한 '전환점(Turning Point)'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가족 어른의 말에 거절 못하고 도착한 생애 첫 해외 여행지에서 저자는 횡단보도에서 무조건 정지해 주는 런던의 차들을 보면서 배려심이 넘치는 공동체가 존재함을 몸소 경험합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런던에서는 서로 서로 배려하는 일상의 문화가 전달해 주는 심리적인 안정감 속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체득했을 것 입니다.


속도의 한계 없이 달려도 되는 독일의 아우토반 (Autobahn)과 거리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보면서, 저자는 강요된 통제 없이도 사람은 얼마든지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스스로 자유롭게 살 수 있음을 느끼지 않았을까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원하는 공동체와 이상적인 관계의 모습은 저자 스스로 ‘가장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 있다’고 말하듯이 파리의 한 공원에서 보았던 자유롭고, 여유로운 - 좀 더 정확히는 내가 무엇을 하든 간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 혹은 존중할 줄 아는 - 관용이 있는 사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원하는 미래의 자신은 (그렇게 타인을 배려하는 공동체 안에서) 자유롭게 표현하고 행동할 줄 아는 '파리지엔(Parisienne, '파리에 사는 여자'라는 뜻)'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를 존중'할 줄 아는 '이성(Reason)'을 의미하는 '똘레랑스(Tolérence)'가 실제의 삶 속에 존재하는 공동체를 찾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눈치 안 보고 고백하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 라는 표현 속에서 저자가 살고 싶은 세상과 마음 편하게 표현하고 행동하고 싶은 미래의 모습을 잠시 나마 읽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가까운 미래에 우아함과 고상함, 똘레랑스을 갖춘 품격이 있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은 솔직하게 나서서 ”제 꿈은 작가이고요, 어리둥절 초대박 나서 떼돈 벌고 싶어요“ 라고 용기를 내어 말할 줄 아는 약간의 '건강한 뻔뻔함'도 이제는 생겼습니다. 보기가 참 좋습니다.


비록, 아직도 피아노 연주회에 나가면 어쩔 수 없는 긴장감 때문에 엉망진창이지만 처음 피아노를 마주했을 때의 악보를 다시금 보면서 자신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스스로 뿌듯할 줄 아는 내면의 건강함까지도 갖추었습니다.


‘거절을 못했던 오늘’과 달리, 내일부터는 남의 삶에 들러리 서지 않고,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개의치 않고, 오롯이 나를 위해, 해야 할 말은 하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살고 싶은 작가의 확 달라진 삶의 자세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자료출처>


눈치 안 보고 고백하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 - P14

이제는 ‘욕 저장장치 대신, ‘좋은 말 저장장치‘로 칩을 갈아끼웠다. - P34

기억 속에 저장된 그 때의 여유 넘치는 장면은 간간이 내 인생에 끼어들어 삶의 자세를 고치게끔 해 주었다. - P39

내 곁에 남길 좋은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서라도 할 말은 똑 부러지게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 P51

누구보다 나를 잘 안다고 자신했는데 갑자기 혼란스럽다. 행복해지려면 나 자신을 잘 아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 P60

재능이 없다면 그 재능 없음으로라도 먹고 살아야겠다고 각오를 다지면서 말이다. - P99

불행의 시작은 남과 나를 비교하는데 있다. 사실 나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 삶에 만족한다는 측면에서는 누구보다도 특출난 사람이었다 - P117

달리 방도가 없다. 많이 가진 사람을 그대로 인정하고 마음껏 부러워할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을 지니고 싶다 - P132

나는 어느 순간 ‘돈을 많이 벌고 싶어‘, ‘인생 날로 먹고 싶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이들을 좋아하게 됐다. (중략) 얌체 같은 발언임에도 당당한 게 좋아서다 - P149

밝혀낼 수 없는 병의 근원은 늘 스트레스로 귀결되듯이 오랜 시간 배에 돌덩이를 키워오던 시절은 스트레스가 유독 심하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 P173

요즘은 "느낌표!"를 쓰며 살고 있다. 내 기준에 더 큰 의미를 두고 무엇보다 내가 좋으면 묻지 않고 그냥 한다. (중략) 타인의 선택은 결코 내 마음을 들여다봐 주지 않는다 - P2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