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길 -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서해문집 사회과학 시리즈
낸시 프레이저 지음, 장석준 옮김 / 서해문집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통적인 자본주의 특징을 재조명하고, 현재에 맞는 21세기 자본주의의 속성과 그 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자본주의 시스템의 뒷면을 탄탄한 논리와 근거,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 훌륭한 책이다. <좌파의 길…>로 시작되는 한국어 번역본의 제목은 개인적으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원래의 책 제목은 <Cannibal Capitalism: How Our System is Devouring Democracy, Care, and the Planetand What We Can Do About It 식인 자본주의: 우리의 시스템은 어떻게 민주주의, 돌봄, 그리고 지구를 잡아먹고 있으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책을 읽은 나로서는 저자의 기본 논지가 ’자본주의‘는 단순한 진영의 논리만이 아니고, 영어 제목에 표기된 것처럼 ‘우리 시스템(Our System)의 문제’라는 점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자본주의 특징은 1) 공적 영역이자 농산물 생산의 기반이 되었던 토지 거래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파생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2) 법률적 지위가 자유롭고, 생계수단과 생산 수단의 확보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의 거래’를 탄생시킨 ‘자유로운 노동시장’, 3) 자본가의 자유로운 ‘자기자본의 확장’, 4) 상품생산에 쓰일 ‘토지, 노동, 자본’ 등 투입요소 할당과 사회적 에너지의 집단적 적립 현상인 ‘잉여 자본’을 어떻게 투자할 지를 결정하는 ‘시장의 역할’ 로 상징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의 자본주의는 21세기 자본주의가 몰고 온 국가간의 문제와 사회 구성원 계층간의 문제, 젠더(Gender) 문제, 지구 환경 문제를 온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 한가지 사례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잉여 자본’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로서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자본주의 자체는 그에 대한 해답을 노골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 가정생활.여가.기타 활동들과 ‘생산적 일’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나아가 인간과 자연은 어떤 관계를 맺길 원하는가,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등의 물음에 대해 자본주의 먹이사슬의 최고 정점에 있는 자본자와 공룡같은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은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원래부터 자본주의 제도 자체는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를 책임지지 않는다. 원천적으로 사회적 부와 인간 복리의 질적 기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메커니즘이다.

이에 따라 ‘자본’의 원래 창조주인 인간을 오히려 자본의 ‘종복(노예)’으로 전락시킨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노예’가 아니라고 감히 단언할 수 없다. 웬만한 사람들은 온갖 대출금과 신용카드 결제대금을 상환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어딘가에 묶여있다. 주인이 명확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자본의 추악한 비밀은 시장적 관점에 따른 주장과는 다르게 ‘상품의 교환으로 상징되는 등가물의 교환’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시간 중 일부를 보상하지 않음’으로써 확대된다는 사실이다. 즉, 임금노동이라는 순화된 강압 이면에 보이지 않는 적나라한 폭력과 수탈(노골적인 도둑질)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논쟁하나가 최저임금인데, 이걸 단돈 1천원 올리기가 쉽지 않다. 3천원 이상 하는 별다방 커피는 스스럼없이 사드시는 분들이 자기를 대신하여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임금을 올려주는데에는 사회적 합의나 협상을 해야할 정도로 인색하다. 건물주는 시장 상황이 나쁘다고 임대료를 깍아주지 않는다. 물론…드문드문 착한 건물주도 있긴 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극소수일 뿐이다. 다들 왜 그럴까?

기존의 이론으로는 현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모순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한국 사회도 자본주의 체제라고 하지만, 난데없이 불거진 남녀간의 젠더갈등, 저출산 문제, 환경문제와 해결책을 자본주의는 스스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만 전체적인 관점에서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고, 그에 따른 합당한 해결책이나 문제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도출할 수 있다.

인식의 전환에서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한가지 핵심적인 것은 단순한 ’생산‘의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사회적 유대를 생산하고 지탱하는 상호작용, 필수재 공급, 돌봄 제공의 형태들을 의미하는 ’사회적 재생산‘으로 나아가는 전환이다.

위와 더불어 현대 사회에서 ‘제 1권력’이라고 하는 ’화폐‘에서 ’생태‘로, ‘경제적’인 것에서 부의 축적을 뒷바침하고 있는 법과 제도를 형성하는 ’정치적인 것‘으로, 노동력의 ’착취‘ 개념에서 지구가 제공하고 있는 자원을 거의 공짜로 사용하고 있는 ‘수탈’의 개념으로 인식의 전환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아닌, ’제도화된 사회질서‘로서의 자본주의를 전체적인 하나의 사회 시스템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의 전환에서 발생하는 이해당사자 상호간의 갈등과 충돌을 ‘경계투쟁’이라는 용어로 정의한다.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상품 생산과 잉여 가치’에 대한 분배권을 놓고 다루었던 ’계급투쟁‘을 확장한 개념이자, 기존 이론의 한계를 탈피하고자 한다.

경계투쟁의 기본 개념은 정치 vs 경제, 자연 vs 인간, 중심부 vs 주변부, 경제적 vs 비-경제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이해관계(집단)의 다양한 충돌을 의미한다. 현대의 자본주의는 단순히 ‘경제’를 넘어 비-경제적 영역까지 거리낌없이 착취와 수탈을 자행하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의 21세기 자본주의는 기존의 ‘중상적 자본주의’, ‘자유주의-식민주의적 자본주의‘, ’국가-관리 독점 자본주의‘, ’지구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등 역사적으로 등장한 다양한 형태의 ‘자본주의’를 밑바탕에서 지탱하고 있던 사회의 본질적 부분이면서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와 화합하며 서로를 구성해 오는 동안 나름의 발자취를 남긴 ‘각 영역별 공생관계’ 마저 무너뜨리는 ‘제 살을 깎아먹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식인 자본주의’ 관점으로 현재의 자본주의를 바라 볼 경우에 새롭게 파악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주요 속성과 역학을 저자는 아래 5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 ‘자본주의의 수탈과 착취 분할’을 다룬 인종적.제국주의적 역학. 둘째, 자본주의 시스템에 돌봄 폭식가의 낙인을 찍는 ‘자본주의의 재생산과 생산 분할’을 다룬 젠더화된 역학. 셋째,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자본이 꿀꺽 삼키는 ‘자본주의의 자연과 인류의 대립’인 생태-포식의 역학. 넷째, 경제와 정치 분할에 내장된 속성으로 ‘공적 권력을 먹어치우고 민주주의를 도살’하려는 충동의 자본주의와 마지막 다섯째, 자본주의를 식인종으로 바라보게 되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차이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 지와 더불어 2020년에 발생한 코로나 팬데믹에 관한 이해 역시 어떻게 변화되는 지를 탄탄한 이론과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를 바탕으로 ‘21세기 자본주의’ 문제를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현재의 한국 사회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각종 어려운 문제점도 자연적으로 연상하면서 질문을 해 보게 된다.

‘한국인은 외국과 달리 스타트업 창업보다는 왜 그렇게 부동산 취득에 집착하는가?‘ 부동산을 재산축적의 손쉬운 수단으로 드라이브를 걸었던 세력은 일반 서민층일까? 아니면, 드러나지 않는 어떤 자본세력일까. 정치권은 왜 난데없이 남녀간의 젠더 갈등을 집권을 위한 선거이슈로 들고 나왔을까? 그렇게 함으로서 정치권력이 얻는 진정한 이익은 무엇일까. 그리고…선진국 및 거대 다국적 기업이 최근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 RE100, 탄소 제로 정책 등 지구 온난화 해결책은 그들이 진정으로 지구의 생태계를 걱정해서 하는 주장이고 정책들인가? 아니면 망가진 환경을 이용하여 그 동안 자본주의 제도를 활용하여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한 집단이나 국가가 ’지구 생태복원‘ 이라는 또 다른 아젠다로 자기들을 추격하는 일반 중산층이나 ’선진국‘이라는 단어를 아직 붙이지 못하는 경제개발중인 국가의 진입장벽을 또 다시 차단하려는 ’21세기의 보이지 않는, 교묘한 장벽‘인가?

‘식인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어렵다면 아주 쉬운 생생한 사례가 우리 주변에 있다. 상권이 조금 잘된다 싶으면,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상승시킨다. 임대료를 내지 못해 그 지역 상가 운영자들은 폐업을 한다. 여러 가게가 순차적으로 문을 닫아 결국 상권이 완전히 죽어버린다. 건물 임대가 나가지 않으니 이번에는 건물주들이 힘들어진다. 이런 결과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바로 건물주 자신이다.

또한, 지하수를 개발하여 플라스틱 병에 생수를 담아서 파는 기업들은 지구촌 최대의 골칫거리로 부상하고 있는 플라스틱 생수병을 스스로 회수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지구가 주는 지하의 수자원을 개발하여 팔 수 있는 권리는 있어도, 자기들이 만들어서 온 세상에 뿌려대는 일회용 플라스틱 생수병을 회수할 의무는 애초부터 없었다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각종 음식을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서 팔아 이윤을 획득하는 수 많은 각종 식품회사와 그 회사를 이끌고 있는 사장님, 혹은 회장님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저자인 낸시 프레이저는 자본주의 체재하에 벌어지는 이런 일련의 행위를 (자원의) ‘수탈’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대목에서 ‘건물주, 생수회사 사장님, 대기업 식품회사 회장님을 비롯하여 이를 유발하는 사회적 조직 시스템’ 이라는 단어를 ‘자본주의’로 변환시켜보면 된다.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을 스스로 몰락시키는 주인공은 다른 것이 아닌 ‘자본주의 자체’이다. 저자는 인간이 형성하고 있는 공동체를 비롯하여 사회 각 분야에서 도대체 이런 현상들이 왜 벌어지는 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책은 한 페이지를 넘기기가 녹녹치 않다. 무척 집중해서 들어야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는 고급 강연을 접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렇지만 생각을 하면서 페이지를 넘기면, 그 다음 페이지에서 현대 자본주의에서 살고 있는 내 자신이 ‘보다 나은 사회 혹은 국가는 어떠한 모습을 갖춘 곳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