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 - 2세기에 걸쳐 진화한 세계화의 과거, 현재, 미래
마크 레빈슨 지음, 최준영 옮김 / 페이지2(page2)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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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삶에 물질이 넘쳐나고, 공급 과잉 세상의 뒷배경에는 ‘세계화’라는 경제 매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재료의 채취, 가공 및 생산, 물류를 활용한 공급과 소비가 ‘각기 다른 나라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정치경제학자들은 ‘세계화’라고 부른다.

값싼 노동력, 값싼 재료, 값싼 공장, 세금 혜택이 더 좋은 곳을 찾아 자본들이 대규모로 이동을 했다. 국경에 상관없이 물건과 사람, 금융자본(화폐)이 실시간으로 이동하는 세상이다.

세계화는 지구촌 평균 삶의 질을 높이는 긍정적인 기능을 일부 수행했다. 그러나, 좋은 열매는 일부 국가만 수확을 했고, 일련의 과정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간격을 더욱 벌려 놓은 부작용도 발생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기준은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의 기준은 소유하고 있는 자본의 규모이다.

하나의 경제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는 인간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생각된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대 목표인 ‘생존형 인간’과 존재의 가치를 찾는데 중점을 두는 ‘가치추구형 인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다양한 면에서 자신의 이익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의 독특한 특성은 소비형태를 보면 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생존형 인간은 고급 음식과 명품, 계층 상승, 권력 확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콘크리트와 철근, 고급 인테리어 자재로 지어진 50미터 이상 높이의 허공에 형성된 마천루의 매매 시세 차익이 높으면 금상첨화이다. 이들은 부동산 시세 차익 실현을 어렵게 하는 정권은 다음 선거에서 투표로 심판하기도 한다.

반면에, 가치추구형 인간은 물질이나 상품보다는 독서, 예술, 토론 등 지적활동에 참여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고급 상품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기에 어느 정도 품질이 보장되면서도 저렴한 가격이면 그걸로 족하다.

나는 대체로 가치추구형 인간에 가깝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자동차는 목적지까지 바퀴만 굴러가면 만족한다. 거주 공간은 추위와 더위, 비와 눈을 피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기에 상품 구매는 최소화 한다. 나에게 음식은 활동하기에 필요한 적절한 에너지를 얻기 위한 영양 공급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와 같은 사람이 많으면 제조업체 사장님이나 식당 주인들은 모두 망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 그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있다. 그러나, 공급 과잉으로 온갖 쓰레기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내 자신마저도 오염 물질 배출에 일조하고 싶지는 않다.

기술력으로 무장하여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중국이 급부상하여 그 동안 세계화를 주도했던 미국과 유럽이 거꾸로 피해를 당하자, 이제는 지역과 국가 보호주의로 본격적으로 선회하는 세상이 시작되고 있다. 일정한 패턴에서 벗어난 보기 드문 미국 대통령이 또 다시 선출되었기에 예상 가능한 일이다. 정식 취임도 하지 않았는데 동맹국이든 뭐든 상관없이 관세 20퍼센트 이상을 부과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가장 먼저 앞장서서 세계화를 주도했던 나라가 2025년을 기점으로 세계화를 쓰레기통에 버렸다고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약 200년간 직진하던 세계화 패러다임이 지역(국가) 중심주의로 유턴하여 방향을 바꾸면, 개인의 삶에도 변화는 필수적이다. 미국과 중국으로 상징되는 거대한 고래싸움에 튕겨나가는 새우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고래가 향하는 방향을 파악해야 한다.

오랜기간 경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마크 레빈슨’의 < 세계화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 (원제: Outside The Box( 2020) >은 불확실한 미래에 나아갈 이정표를 탐색하는 사람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과 방향성을 제공해 주고 있다.

관세를 무기로 사용하는 자국 보호주의, 인공지능으로 연결되는 초고속 사회,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 공급의 위기, 첨단 기술로 무장한 초거대 제조업 국가 중국의 수출전략이 동시에 벌어지는 것은 인류가 그 동안 겪지 못한 새로운 경제 패턴이다. 혼돈의 시대에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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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의 세계사 - 문명의 거울에서 전 지구적 재앙까지
로만 쾨스터 지음, 김지현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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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시자들(2013)‘의 한 장면에 용의자의 단서를 찾고자, 감시를 임무로 하는 특수경찰인 여자 주인공은 그가 버린 쓰레기 봉투를 수거한다. 테이블 위에 냄새 풀풀나는 쓰레기를 모두 펼친 다음, 뭔가를 찾는 장면이 나온다. 개인이 버린 쓰레기를 보면 그 사람의 일상이 보인다.

개인들이 모여 함께 만든 사회라는 조직도 똑 같다. 인천 쓰레기 매립장이나 송파구 재활용선별시설로 향하는 각종 쓰레기에는 도시민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도시가 발달하지 않았던 근대 이전에 쓰레기 처리는 크게 사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닐과 플라스틱 용기도 없었고, 콘트리트도 없었기에 그냥 근처 땅에 구덩이를 파고 버리면 비료가 되었다. 물건도 무척 귀해서 버릴 것이 거의 없었다. 웬만한 물건은 고쳐서 다시 썼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좀 더 안전하고 편하게 살고자 거대한 도시를 만들었고, 그 속에서 생활한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도시의 규모가 커질 수록 새벽 3시부터 아침 6시까지 진행되는 ‘쓰레기 처리’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높아진다.

특이한 책인 ‘쓰레기의 세계사‘(원제: Müll: Eine schmutzige Geschichte der Menschheit, 쓰레기: 추악한 인류의 역사)는 오늘날 세상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쓰레기의 역사와 사회학‘을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더 많은 물건을, 더 적은 비용으로 생산하는 데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남은 제품을 수거하고 재활용하는 능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이렇게 발생한 쓰레기 처리 문제는 이제 사회적 문제로 자리를 잡았다”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프랑스가 1883년에 뚜껑 달린 철제 쓰레기통을 최초로 도입한 국가라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았다. 책의 끝에서는 쓰레기의 유형과 처리방법은 단순한 환경문제를 넘어서며, 가난과 부의 격차 등 사회 불균형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 ‘갈등’을 처리하는 그 사회의 수준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천의 쓰레기 매립지 처리용량이 거의 만땅 수준이다. 이상적인 새로운 매립지를 찾아야 한다. 쓰레기 매립지 유치를 적극 환영하는 지역이 어디에 있을까? 서울 상암동 ‘소각장’ 설치 예정지는 몇 년째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쓰레기 매립지와 소각장을 구할 수 없다면, 방법은 딱 하나 밖에 없다. 쓰레기를 최대한 만들지 않으면 된다. 나는 다른 사람의 개인 삶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그러나,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 지에는 관심이 무척 많다.

매립지가 부족하고 소각장 설치가 어렵다는 소식에 나는 개인적으로 쓰레기 배출을 거의 안하려고 애쓴다. 개인적으로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추구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웬만하면 물건을 사지 않는다. 아플 때를 제외하고는 식사 배달을 시키지 않는다. 배달하시는 분들이 문 밖에서 건네주는 플라스틱 음식 용기 처리가 부담스러워서 배달 어플을 몇 번 쓰다가 삭제했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책도 집으로 배달시키지 않는다. 나는 택배 노동자들이 내 집에 물건 배달오다가 심장마비로 죽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같은 회사가 운영하는 중고 서점에서 픽업한다. 시내에 일보러 갔다가 매장에 잠시 들려서 직접 책을 가지고 오면 된다.

텀블러를 늘 가지고 다니며 음료는 거기에 담아서 마신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버릴 ’마땅한 곳‘을 찾을 필요가 없으니 좋다. 하루 3잔 테이크 아웃 기준으로 1년 동안 약 1,000개의 플라스틱 컵을 쓰레기 소각장으로 보내지 않았다 생각하니 별것 아닌 일에도 왠지 뿌듯하기도 하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단순한 나의 삶은 ’사회적 거울‘로 스스로를 비추어 본다면 여러 면에서 부담스럽지 않다. 단순한 삶은 기대 이상으로 무척 가볍고 경쾌하다.
——-
로만 쾨스터 지음, ‘쓰레기의 세계사 (원제: Müll: Eine schmutzige Geschichte der Menschheit, 쓰레기: 추악한 인류의 역사), 김지현 옮김, 흐름출판(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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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ise and Fall of the East: How Exams, Autocracy, Stability, and Technology Brought China Success, and Why They Might Lead to Its Decline (Hardcover)
Yasheng Huang / Yale University Press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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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에게는 ‘중국’이란 단어를 머리 속에 떠 올리면 긍정적인 것보다는 대부분 부정적인 사안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모양세다.

‘짝퉁의 나라’를 시작으로 불량식품, 중금속 오염 장난감과 화장품, 해외 여행지에서 개념없는 행동, 지독한 대기오염, 공산당, 독재정치, 감시사회 등 미디어들이 전해 준 네거티브 단어들이 한국 사람들의 뇌리에 안착되어 있다.

어쩌다 훌륭한 디자인과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 진 ‘메이드 인 차이나(Made-in China)’를 만나게 되면, 한국인들은 ‘대륙의 실수’로 평가절하한다. 거대한 국가의 기술력과 존재를 마음 속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깡그리 무시한다’는 표현이 좀 더 적절하리라 생각된다.

일반적인 관념과 달리 중국은 이미 한국보다 여러 분야에서 한참 앞서있다. 반도체 등 극소수 분야 1-2 개만 한국에 뒤져있을 뿐이다.

연간 실질 소득 1억 이상의 부유층이 1억 명 이상이고,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연 소득 3천 만원-6천 만원 인구도 약 3억 명을 넘겼다.

1년 동안 세계 각 국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전체 외국인 관광객 숫자가 약 1500만 명 전후라는 것을 감안하면, 중국의 모든 중산층이 한 번씩만 힌국을 방문해도 향후 20-30년이 걸린다.

유럽과 미국이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할 정도로 세계 최고의 전기 자동차 제조 기술 보유 및 수출국가(시장 점유율 55% 이상)이다. 전기차 배터리 생산 1위 자리를 내 주지 않는 최강 국가이기도 하다.

100% 중국 기술로 완성한 세계 최대의 수퍼 컴퓨터 서버와 데이터센터도 보유하고 있다. 풍력발전 및 태양광 기술, 설비 분야도 독보적인 세계 1위(시장 점유율 60% 이상)이다.

중국 본토인 광동성에서 마카오-홍콩까지 이동 시간을 자동차로 불과 38분으로 단축해 버린 세상에서 가장 긴 해상 다리(55km) 보유 기록도 연거푸 갈아치웠다.

우리가 태평양 건너편 국가를 바라보는 사이에 어쩌다가 중국은 이토록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민주주의도 아닌 나라가 어떻게 미국과 유럽이 태클을 걸 정도로 최단 기간에 수준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국가가 되었을까?

<The Rise and Fall of the EAST> 책의 저자이자 MIT 교수인 ‘야성 황(Yasheng Hwang)‘은 중국의 경제발전을 견인하고 있는 중국 정부 리더십의 뿌리를 고대 수나라 시절인 587년에 공식적으로 시작하여 명나라(1368-1644) 시절에 최고조에 달한 ‘과거제도(科举, Keju)’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14세기 후반에 중국이 세계 최초로 국가 차원에서 인재 선발과 육성을 위한 '단일화 된 국가 표준 측정 시스템'을 완성하였다는 것에 주목한다.

6세기에 시작하여 14세기 후반에 이미 완성된 국가 차원의 중국 인재선발 방식을 미국은 21세기에 들어서야 정착시켰다. 중국은 국가 발전에 필수적인 인재 선발 방식에서 미국과 유럽에 비해 최소 700년 이상 앞서 있었다.

과거제도는 '추천된 인맥 중심의 기득권 세력'을 무너뜨리는데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고, 우수한 능력을 가진 인재가 주목을 받는 '능력주의'가 정착되었다. 이는 자연스레 국가 리더십 강화로 이어졌다.

2024년 현재, 중국 공산당(China Communist Party) 정부는 고대 과거제도와 동일한 프레임과 인재 선발 프로세스로 움직인다.

시골 구석까지 촘촘하게 뻗어있는 우수한 인적 네트워크가 정부 정책의 신속한 수행을 위한 두뇌와 척추 역할을 한다.

중국에서 정부 고위관료가 되려면 ‘반드시‘ 전국 각지에서 선출되는 공산당원 9,600만 명에 속해야 한다. 승진을 하려면 이 중에서 다시 ‘전국 당대회 대표’ 2,300명 안에 들어야 한다. 한국의 국회의원 급에 해당하는 고위 관료가 중국에는 2,300명이 있다.

권력의 핵심에 좀 더 다가서기 위해서는 또 다시 ‘중앙위원’ 205명의 후보군에 속해야 한다. 이 단계는 미국 의회의 ‘상원의원’ 급에 해당한다. 그 다음 상위 레벨은 24명으로 구성되는 ‘중앙 정치국 위원’이다. 한국의 각 부처 장관에 해당한다.

마지막 단계가 중국 리더십의 최고 정점으로 불리는 ‘7인’으로 구성되는 ‘정치국 상무위원들’이다. 2024년 현재,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수장이 바로 ‘시진핑‘(Xi Jin Ping 习近平, 71세) 주석이다.

5년 단위로 설계되어 100년 후까지 지속되는 중국 정부 미래 정책이 ‘전국 당대회 대표(2300명)’회의를 거쳐 여기에서 승인된다.

최하위 단계인 공산당원으로 선발되고, 최고 권력층인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기까지에는 아무리 짧아도 약 40년이란 세월이 걸린다. 시진핑 주석도 1974년에 공산당원으로 선발된 후, 38년이 지난 2012년에 비로소 ‘후진타오’에 이어 ‘최고 권력자‘ 위치에 올랐다.

황제 체재에서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정부의 관리가 되었듯이, 오늘날에는 매년 1,380만 명 이상이 일제히 동시에 답을 제출하는 중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Gaokao 高考)에 응시한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경제개발 개혁을 추진한 지 불과 40년 만에 미국과 유럽이 강하게 견제를 할 정도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은 과거제도 DNA에 기초한 우수인재 확보 시스템이었다.

이와 더불어 전략적 사고로 무장한 정치 엘리트 중심의 공산당 중심주의와 사유재산 & 자유로운 경쟁을 허락하는 시장경제 시스템의 병행 운영이었다.

과거제도를 승계한 9,600만 명의 우수 인재 네트워크로 운영되는 중국 공산당(China Communist Party)의 운영방식은 현재까지는 성공적이다. 미래의 성공 여부는 공산당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13억 이상의 인구를 어떻게 경제발전을 위한 인력으로 활용하는가에 달려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 리더십이 첫 번째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좀 더 자유로운 창의력 발휘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사상(이데올로기)의 자유, 표현의 자유(언론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할 지가 관건이다.

두 번째는, 소득 격차에 따른 도시와 농촌 간의 불균형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수면 위로 이미 부상했다.

한국 인구의 약 2배에 달하는 9600만 명 이상의 집단 지성으로 형성된 중국의 리더십이 위 난제를 어떻게 풀어가는 지를 바라보면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여긴다.

이 책은 이런 점에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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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on2023 2024-11-12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은 이미 한국보다 여러 분야에서 한참 앞서있다. 반도체 등 극소수 분야 1-2 개만 한국에 뒤져있을 뿐이다.˝

중국의 저력과 국력을 항상 경계하고 조심해야겠네요.
 
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한강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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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의 삶은 대체로 생명을 지닌 하나의 존재로서 살아오고 있지만, 때론 투명인간처럼 존재감 없는 대상으로 살아가는 실로 고단한 인생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각자 한 가지 정도는 자신의 존재감을 소속된 그룹이나 공동체에서 드러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문제는, 어떤 차별화 된 존재감을, 사람들 앞에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 것인가? 이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Page 8)

한 사람이 일상에서 주로 무엇을 먹느냐? 그 행위 하나 만으로도 사회는 특정 인간을 판단하려 달려든다. 채식을 한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주인공은 특별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공동체에서 다수가 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의 첫 반응은 ‘당혹스러움’이다. 상대방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 모르기 때문에 애둘러서 ‘별난 사람 혹은 특이한 사람‘이란 표현으로 설명한다. 독특하기에 ‘본 받고 싶은 사람’이라는 의미보다는, 가능한 한 멀리해야 할 ’기피 대상‘이라는 뉘앙스에 더 가깝다.

동물과 사람을 확연하게 구별지을 수 있는 독특한 특성 중 하나인 ’인간의 존재감‘은 어디서 올까?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존재감은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까?라는 다소 어려운 문제도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아버지,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순간, 장인의 억센 손바닥이 허공을 갈랐다. 아내가 빰을 감싸쥐었다‘(page 57-58)

공동체의 삶과 다른 방향을 향하는 타인의 독특한 삶은 다양성을 포용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가족’이라 할 지라도 견디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무엇이든 허용될 수 있을 것 같은 ‘가족’이라는 운명 공동체는 통상적인 개념과는 정반대로 때론, 가장 은밀하면서도 처참하게 인격을 말살하기도 한다.

가정에서의 폭력에 소극적으로 저항하고자 소설의 주인공은 첫 행동으로 모두가 좋아하는 ‘고기’를 먹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한다. 급기야는 가족들의 압박이 더 심해지는 상황에서 모두 보는 면전에서 자신의 손목을 칼로 긋는 행위로 강력하게 저항한다.

“육식이란 본능이에요. ‘채식’이란 본능을 거스르는 거죠. 자연스럽지가 않아요. (중략) 골고루, 못 먹는 것 없이 먹는 사람이 건강한 거 아니겠어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원만하다는 증거죠.”(page 35)

문 밖을 나서면 이번에는 ‘사회‘라는 공동체가 ‘편견’이라는 가면의 탈을 쓴 채 ’소리없는 폭력‘을 행사한다. 그 폭력에 대응하는 자세로 침묵을 가장한 ‘묵묵히 성실한 사회생활’-바꿔 말하면 ’침묵‘이라는 비겁함-을 최선으로 선택한다.

공동체를 형성하는 구성원의 ’독특한, 혹은 해로운 행위‘를 통제하는 방법에서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큰 차이를 두지 않는다.

사람을 한번 물었다는 동네의 ’유별난‘ 개 한마리를 통제하기 위해, 인간은 개의 목에 쇠줄을 묶은 뒤 오토바이에 매달아 동네를 일곱 바퀴나 도는 ’응징‘을 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다. 작가는 그렇게 숨이 다한 고깃덩이를 요리재료 삼아 동네 사람들과 태연하게 저녁식사를 겸한 잔치를 벌이는 인간들을 묘사하며 공동체의 잔혹한 내면을 드러낸다.

’채식주의자‘에서 인간의 첫 번째 욕망인 ’식욕‘을 다루었다면, ’몽고반점‘에서는 두 번째 욕망인 ’성욕‘을 다룬다.

생명 탄생을 위한 성스러운 행위로서의 욕구과 오로지 육체의 쾌락 만을 위한 본능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을 ’형부와 처제와의 성관계‘라는 ’사회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금기‘를 소재로 사용하여 비판한다.

이 둘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역설적으로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꽃’이다. 책 표지 디자인을 천천히 다시 감상하면, 남성과 여성의 상징이 결합해 있는 것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녀의 몽고반점 위로 그의 붉은 꽃이 닫혔다 열리는 동작이 반복되었고, (중략) 가장 추악하며,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의 끔찍한 결합이었다.“ (page 169)

소설의 여자 주인공은 ‘고깃덩어리’로 상징되는 남성의 육체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사람 몸을 캔버스 도구로 삼아 그려진 ‘꽃’에 순수하게 반응할 뿐이다. 그에 반해 남성은 쾌락의 대상으로 여자 주인공을 바라본다. 확연히 다른 두 사람의 시선이 충돌하는 지점이기에 추악함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교차한다.

“어쩌면 그녀의 내면에서는 아주 끔찍한 것,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어, 단지 그것과 일상을 병행한다는 것만으로 힘에 부친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일상에서는 호기심을 갖거나 탐색하거나 일일이 반응할 만한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은 건지도 몰랐다. (page 125)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고, 복잡한 계산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 세상에는 신경쓸 사안들이 넘치고 넘친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은 오히려 지극히 단순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그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주인공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수시로 꿈을 꾼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온전한 잠을 잘 수 없는 환경이라 인간의 세 번째 욕망 또한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그녀는 말했다. “고기만 안 먹으면 그 얼굴들이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page 172). “언니,……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page 210)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받아줄 나무를 찾아낼 수 없었다. 어떤 나무도 그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짐승들처럼, 완강하고 삼엄하게 온몸을 비틀고 서 있을 뿐이었다.” (page 248)

주인공은 나무 혹은 꽃과 같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잎을 자라게 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동반 성장‘을 추구하는 세상에 살고자 한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세상과 그 주변은 그녀를 가만 놓아두지 않고 급기야 공동체에서 격리를 해 버린다.

주인공의 언니는 고기를 먹지 않고, 저항하다 지치고, 나무가 되어 뿌리를 내리려 했던 동생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격리 시설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숨이 꺼져가는 동생을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가치관의 폭력에 어릴적부터 ‘침묵과 성실함’으로 묵묵히 일상을 지내온 자신의 삶은 ’조숙함‘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것은 ’비겁함‘이었고, 다만 ’무난하게 살아가기 위한 생존의 한 방식‘이었을 뿐임을.

주인공은 아마도 각기 다른 형태의 나무들이 사이좋게 살아가는 숲을 이상적인 사회로 여겼을 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그늘을 제공하며 같이 성장하다가, 죽은 후에는 사람들에게 온기를 제공하는 땔감이 되어 마지막 불꽃을 발하는 따뜻한 존재!

남들과 ‘다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침묵’이라는 가면을 쓰고, 모두가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감추려는 사회는 '비겁한 사회'이다. 모두가 가면을 쓰라고 서로가 강요한다면 주먹과 칼을 사용하지 않을 뿐, 그건 또 다른 의미에서의 ‘폭압적인 사회, 잔인한 사회’이다.

나와는 다른 유형의 음식을 먹는 사람,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 몸이 불편하여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 태어날 때 부터 유전자 이상으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 지를 보면 그 사회의 ’성숙함’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작가는 우리 사회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행동을 해야 ’나무처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유별난 주인공‘을 품을 수 있을 지를 시적인 언어로 참혹하게 묘사하는 듯 하다.

나와 확연하게 다른 식성과 가치관,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을 인정하지 못할 때, 그 대상은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 지를 세 편으로 구성된 각각의 스토리에서 관점을 바꾸어 가면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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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on2023 2024-11-07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너무 잘쓰십니다 😀 완전 멋지심♡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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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 것 같아” 소설은 이렇게 중학교 3학년 소년의 생각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일반 사람들은 비가 올 것 같으면 ‘우산’을 준비한다. 당연히 비를 맞지 않기 위한 것이 첫 번째 목적이다.

출근하기 위해 깨끗하게 다린 셔츠가 비에 젖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적절하게 얼굴에 바른 화장이 비에 젖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다양한 옷 맵시와 정성스럽게 손질한 머리 모양이 비에 젖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왜 이토록 비를 맞지 않기를 원할까? 그냥 맞아도 되는데 말이다. 모두 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함이라 여긴다.

아울러, 비에 젖은 옷에서 나는 비린내를 상대에게 품기고 싶지 않다. 우리는 그렇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에는 우산을 준비한다.

작가는 소년이 걱정하는 비가 단순한 가랑비가 아니라 생각했다. 무려 80만 발의 쇠로 만든 총알을 준비했던 ‘국가의 특정 집단’이 소년을 비롯한 ‘사람‘을 향해 쏟아지는 엄청난 ‘비’로 바라본 듯 하다.

너무 많은 비를 맞은 것이 아니라, 단 한 방의 ‘총알’ 비를 맞은 소년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순간을 맞이했다.

어린 새처럼 어린 청년의 영혼은 그렇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작은 영혼은 차마 자유롭게 날아오르지 못하였다.

소년은 왜 자기가 죽었는지, 누가 총을 쏘아 죽이라 명령 했는지, 누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었는 지 알고 싶었다.

군인도 사람이기는 매한가지였을 텐데 어찌 그리도 잔인하게 사람 몸을 훼손했을 수 있었을까?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특정 순간에 발휘된 것인가? 모를 일이다.

확실한 한 가지 문제는 그들은 ‘군대’라는 ‘군중에 속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또 다른)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 한강, <소년이 온다>, Page 95)

인간의 근본적인 야만성 반대편에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에 서 있던 소년이 있었다.

그걸 알고 싶었던 그의 혼은 ‘검은 숲’에서 썩어가며 악취가 나는 스스로의 몸을 힘겹게 바라보았다. 그의 영혼을 달래기라도 한 듯, 영문을 모른 채 죽은 또 다른 사람들의 차가운 몸들이 십자 형태로 포개진 채 함께 있었다.

소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을 죽인 것이 국가 권력임을 알면서 죽기 전에 애국가를 부르고, 시신이 담긴 관을 태극기로 감싸던 사람들의 행동을, 그렇게 행동했던 근본적인 이유를.

평범한 얼굴, 보통 사람의 손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손이 따귀로 연거푸 날아와 목이 휠 정도로, 안면 피부 안쪽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소년의 영혼은 지켜보았다.

총과 대검으로 무장한 압도적인 힘의 폭력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익히 잘 아는,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들…어두운 밤을 지새고, 동이 터 오면 죽어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보통의 사람들은 왜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을까?

양심!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단어. 그 어떤 무자비한 힘의 폭력이라 할 지라도 결코 꺾을 수 없는 인간의 존재 이유는 소년이 이해할 수 없었던 바로 그것, ‘순전하고 숭고한 양심’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맥박의 힘을 느끼게 하는 두 글자 때문에 옆구리에 총탄이 날아들어와 내장이 흘러내리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다.

대검이 목과 얼굴을 긋고, 총에서 가장 무거운 개머리 판이 인간 생명의 출발 지점을 무참히 짓이기는 고통 속에서도 사람들이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숭고한 집단이 되어버린 양심과 하나가 되었다는 강렬한 느낌이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 한강, <소년이 온다>, page 116

총을 가지고 무자비한 폭력에 대항은 했으나 결국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는 ’양심‘ 때문에 쏘지도 못할 총을 소지했던 시민들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은 또 다른 집단’에 의해 스러져 간 꽃들이 되었다.

숭고한 양심을 지켜내기 위해 어미새가 되기도 전에 영혼 만이 남은 작은 새가 되어 날아간 소년을 생각하며 작가는 말한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 한강, <소년이 온다>, Page 100

살아남은 것에 아파하는 것도 모자라, 치욕을 간직하며 남겨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년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인 숭고한 양심을 지키기 위해 무섭고, 어둡고, 그늘진 곳에 있었다‘고…그러니 ’이제 여러분들은 그늘진 곳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고, 밝은데 꽃이 핀 곳으로 가라고…‘

작가는 작품 전체를 통해 우리에게 커다란 질문 하나를 던지고 있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그) 무엇이지 않기 위해, (남겨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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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on2023 2024-11-04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주학살의 현장을 소설을 통해서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작가의 역사에 대한 소명감과 우리가 잊었던 역사적 현장을 알게해준 또 그 일이 지금 현재적 사실로 남아있게 한 문학작품이네요. 쓰러져간 사람들을 위해 슬픈 마음을 간직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