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함과 무기력함이 함께 찾아든 11월을 그나마 굳은 의지로 버텼던 것은 이번달 함께한 네권의 소중한 책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먼저 <전태일 평전>을 이제서야 읽었다.때마침 내가 이 책을 다 읽었던 날이 바로 11월 13일이어서 그 의미가 남달랐다.전태일 열사와 함께 내가 존경하는 또다른 인물...조영래 변호사를 그 한권의 책에서 동시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아쉽게도...내가 그 책을 읽을 즈음엔 노동자들의 시위가 시내 한 복판에서 있었다 한다.화염병을 동반한...
노동자들의 시위 자체에는 내가 그 내막을 샅샅이 알 수 없으므로 감히 뭐라 할 수 없지만...언론에는 그들의 투쟁이 과격하게만 보여서 씁쓸함을 느꼈다.
그들의 불법적인(시위가 불법적이라고 판단하는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다.나는 다만 그들의 표현을 빌어 설명하는 것일 뿐) 시위가 있기까지...사태를 악화 시킨건 다름아닌...노동자들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그들임을 잘 알기에 말이다.
노동자 문제에 관해서는 아쉽게도 여기에 그쳐야 할 것 같다.나 역시도 미래의 노동자가 될 사람이고...아직 노동의 현실을 파악하기에는 모르는게 너무 많으므로...
그 다음으로 읽었던 책은 박노자 씨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이었다.
박노자씨의 눈에 비친 추악한 한국 사회의 이면을 나 또한 들여다 보면서 전적으로 공감이 갔다.바야흐로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불거진 탓일까.(그러나 어이없게도 강제추방이라니...해도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비겁한 한국인들의 의식구조에 나 또한 울컥 화가 치솟았다.나 또한 은연중에 이런 더러운 민족적 기질을 몸에 밴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올 해 책을 가까이 하면서 얻은 큰 수확은 홍세화라는 한 인물을 발견한 것이다.그런 인물을 이제서야 알았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덕분에 나는 몇 개월 사이 그분의 저서를 모조리 읽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이번 달에는 가장 최근에 나온 <빨간 신호등>을 읽었다.그분의 책을 읽을 때마다 인간적인 따스함이 묻어나는...고뇌하는 지성인의 참다운 모습을 간접적으로 나마 접할 수 있어서,그리고 내가 도외시 했던 현실의 문제를 그분을 통해 접할 수 있게되어서 얼마나 다행으로 여기는지...
마지막으로...기말고사를 준비해야 할 상황인데 나는 요 몇일 전공책을 치워두고 진중권 씨의 <폭력과 상스러움>에 빠져 오늘 드디어 마지막 까지 실소를 금치 못하며 책을 덮었다.그 분의 놀라운 언변에...지하철에서 종종 피식 거렸지만 무엇보다도 그러한 풍자적 해학 뒤에 숨어있는,현실을 바라보는 그 분의 냉철함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난해한 언어들이 종종 내 이해를 방해하였지만...나 역시 진중권 씨의 또다른 팬이 될것 같은 흐뭇한 예감이 든다.
끝으로...아쉽게 이 네권의 책에 밀려난(순전히 분량때문임) 체 게바라,프란츠 파농,마르코스 평전은...기말고사가 끝난 다음에 긴히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