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덕이네 밭에는 감자, 호박, 옥수수 그리고 들깨가 심어져 있습니다. 순덕이네 할머니는 어린 순덕이 간식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해마다 어김없이 감자와 옥수수를 밭 한쪽에 심습니다. 새순이 땅위로 하나둘 얼굴을 내밀던 어느 날, 마을 이장 김씨 아저씨의 포대자루에서 강낭콩 두 알이 떨어져 또르르 구르다 순덕이네 밭에 이르러 멈추었습니다.

  "아휴, 아퍼." 흙 속에 파묻힌 알콩이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괜찮니, 알콩아?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 뒤따라온 달콩이가 근심스러운 마음에 물었습니다.

  "우린 지금 흙 속에 있는 거야. 하마터면 우리도 장터에 팔릴 뻔 했지 뭐야."

  "정말?" 기쁨에 찬 목소리로 달콩이가 물었습니다.

  "응. 우리는 며칠 있으면 다시 흙 위로 나가게 될 거야."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알콩이가 대답했습니다.

  "김씨 아저씨의 포대자루에 다른 강낭콩들과 섞여 있으면서도 나는 줄곧 다시 밭에 뿌려지기를 바랐는데...... 정말 믿어지지가 않아." 여전히 믿기지 않다는 듯이 달콩이가 얘기했습니다.

  "근데 여기 너무 답답하지 않니? 깜깜하고 숨이 막힐 것 같아." 볼멘소리로 알콩이가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달콩이가 대답하기를,

  "내가 싹을 틔울 수 있다면 이런 것쯤은 조금도 문제 될게 없어. 한번 생각해 봐, 알콩아! 비록 어둡고 견디기 힘들지만 네 말대로 며칠만 지나면 우리는 다시 땅 위로 무럭무럭 자랄 수 있을 거야."

  어두운 땅 속에서 알콩이와 달콩이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감자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습니다.

  "애들아, 처음에는 이 어두운 곳이 무척 싫을 거야. 그렇지만 생각해 보렴! 너희들은 여기에 뿌리를 내리게 되고 흙으로부터 영양분을 얻게 되는 거란다. 그러나 아쉽게도 흙 밖으로 나가면 세상 사람 모두 너희들이 커나가기 위해 흙 속에서도 보이지 않게 노력해 왔었고 또 여전히 계속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 할 거야."

  감자 아주머니는 마치 엄마처럼 너무도 다정하게 땅 위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알콩이와 달콩이에게 당부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애들아, 땅 위로 올라가더라도 이것만은 기억해야 한단다. 겉으로 드러내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란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너희가 자라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보이지 않는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거란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너희 자신을 속이지는 말거라, 알겠니?"

  감자 아주머니의 말에 알콩이와 달콩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무척이나 고단했던 하루를 보냈기 때문일까요? 알콩이는 감자 아주머니의 말씀을 마음에 미처 새기지 못한 채 어느 새 지쳐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잠이 든 알콩이 옆에서 푸른 싹이 된 자신을 상상하던 달콩이도 잠시 후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촉촉한 뭔가에 놀라 달콩이가 긴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힘차게 기지래를 펴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순간, 달콩이 자신이 콩 껍질에서 벗어나 땅 위로 목을 빠꼼히 빼고 있는 게 아닌가요! 자신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르고 달콩이는 여전히 잠들어 있는 알콩이를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알콩아, 눈 좀 떠봐. 어서 일어나보라고."

  달콩이의 성화에 못 이겨 가까 스스로 눈을 뜬 알콩이는 이내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뭐야. 어, 비잖아. 에이. 내 몸이 다 젖네! 이럴 줄 알았으면 계속 땅속에서 자는 건데."

  듣고 있던 달콩이가 이야기 했습니다.

  "알콩아, 넌 우리가 싹을 틔운 게 조금도 기쁘지 않니? 비록 비에 몸이 젖긴 하지만 비를 맞아야지 우리도 자랄 수 있는 거잖아."

  "그걸 누가 모른대? 흙, 비, 햇빛 이 모든 게 있어야 내가 자랄 수 있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고!" 발끈 화를 내며 알콩이가 훽 고개를 돌렸습니다.

  "곧 비가 그치면 햇볕이 내리 쬘 거야. 그럼 그때 몸을 말리자." 달콩이는 알콩이를 달리 위로할 수가 없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는 조금 더 자라기 위해, 힘들지만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흠뻑 빨아들였습니다.

  다음 날 구름이 걷히자 비가 내리던 어제의 하늘에서는 눈부신 햇볕이 순덕이네 밭에도 내리 쬐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맑은 하늘의 햇빛은 알콩이와 달콩이를 비추었습니다.

  어느 덧 알콩이와 달콩이의 몸에서도 떡잎 두장이 떨어져 나가고 여린 줄기와 작은 잎이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되는 맑은 날씨 속에서 알콩이와 달콩이의 여린 줄기는 굵고 튼튼한 줄기가 되었고 말려 있던 작은 잎들도 이제는 크게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알콩이 달콩이 모두 따사로운 햇볕을 온 몸에 가득 담고 쑥쑥 자라가고 있었습니다.

  햇빛을 향해 자라가는 일이 무료하게 느껴지는 어느 날 오후였습니다. 알콩이는 '이제 내 키도 제법 컸겠지? 내가 달콩이보다 조금 더 크니가 어쩜 내가 이 밭에서 제일 클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며 순덕이네 밭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순덕이네 밭 저 끝 쪽에 그 높이를 알 수 없는 옥수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너무 분한 나머지 알콩이는 투덜대기 시작했습니다.

  "달콩아, 저기 좀 봐! 어서 저기 좀 보라고!"

  매일같이 햇빛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리며 자라던 달콩이가 알콩이의 성화에 못 이겨 알콩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달콩이의 눈앞에 펼쳐진 옥수수네 가족의 모습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달콩아, 우리도 옥수수네 가족처럼 매일 햇볕을 받고 자라는데 우린 왜 이렇게 작은 거지? 에잇... 평생 햇볕을 쬐어도 난 저렇게 자랄 수 없잖아." 잔뜩 화가 난 알콩이는 더 이상 태양이 걸려있는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 사실 나도 옥수수네 가족이 무척 부러워. 그렇지만 여기서 포기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옥수수네 가족처럼 자랄 수 없더라도 하는 데 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거든."

  풀이 죽은 알콩이와 달콩이에게 들깨 아저씨가 다가와 말을 건냈습니다.

  "애야, 우리들은 저마다 커가야 할 몫이 있는 거란다. 그러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말거라." 들깨 아저씨는 축 늘어진 알콩이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아저씨 역시 처음에는 저렇게 높이 자라는 옥수수씨네를 보면서 좌절 했었단다. 나 역시 쭉쭉 커나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데 왜 나는 옥수수씨네처럼 자랄 수 없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게 다가 아니란다. 우리가 어디까지 자라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자세로 어떻게 자라나가는지, 그 과정이 중요한 거지. 너희는 지금껏 강낭콩으로서 최선을 다해 자라왔었고 난 다만 너희들이 앞으로도 그렇게 자라주길 바란다. 그게 너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임을 명심하거라."

  들깨 아저씨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알콩이는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달콩이도 덩달아 후련한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알콩이와 달콩이의 잎 사이에서 흰색 분홍색 꽃망울이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하나 둘 터지는 꽃망울을 보면서 알콩이와 달콩이는 매일 즐거운 탄성을 질러댔습니다. 푸른 잎 사이 여기저기에 아기자기한 꽃들이 수줍게 피어있는 모습을 보고 알콩이가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 달콩아. 우리 꽃은 너무 작지 않니? 모양도 볼품이 없고 색도 화려하지 않고 말야. 벌과 나비도 우리 꽃 주위에 자주 놀러 오지도 않잖아."

  "그래도 난 내가 꽃을 피웠다는 사실에 너무 만족스러운걸. 넌 기쁘지 않니?"

  "아니 뭐... 꼭 그런건 아니지만..."알콩이는 그래도 뭔가 아쉽다는 듯이 말끝을 흐렸습니다.

  알콩이와 달콩이가 꽃을 피우자 누구보다 반겨주었던 호박 아주머니가 지켜보다가 시무룩해진 알콩이에게 말을 건냈습니다.

  "알콩아,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꽃이 있지만 저마다의 꽃들은 서로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단다. 세상 사람들은 가시 박힌 장미꽃이 오만할 거라고 생각하고, 담장 밑의 앉은뱅이 꽃 채송화를 가엽게 여기고,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들국화를 함부로 꺽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또 큼지막한 내 호박꽃을 볼품없다고 여기지만 사실 우리 꽃들은 저마다 서있는 자리에서 허락된 한 철, 열정을 다해 피고 지는 거란다. 물론 여기에는 시샘하는 마음이나 경쟁하는 마음이 들어설 자리도 없고 말이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호박 아주머니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한번 바라보렴. 너희 눈에도 내가 뚱뚱하고 못생긴 꽃으로만 보이니?"

  "그럴 리가요." 알콩이가 정색을 하면서 대답하였습니다. 이어서 달콩이도, "아주머니는 지금 피어계시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하신걸요! 아주머니께서 꽃을 피우셔야 나중에 그 자리에서 호박이 영글잖아요." 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래. 너희 말처럼 내가 최선을 다해 꽃 피워야지 내가 꽃을 피운 그 자리에서 호박이 자라는 거란다. 그럼 너희에게 내가 질문 한 가지를 할 테니 잘 듣거라." 아주머니는 알콩이 달콩이를 번갈아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꽃이 이 아주머니의 꽃보다 작고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너희가 피운 꽃들이 쓸모없는 것이니?"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알콩이가 씩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물론 아니죠. 이제야 알겠어요. 우리가 꽃을 피운 의미를요."

  달콩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아주머니 꽃에서 호박이 자라날 때쯤 우리의 꽃에서도 꼬투리가 자라나는 거겠네요."

  "그래 그렇단다. 이제 너희도 너희의 지금 모습 그 자체가 너무도 의미 있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무척 가치로운 과정의 한 부분이라는 것도 알게 됐구나." 아주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셨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어느새 꽃잎이 말라 오므라들고 그 자리에서 꼬투리가 쭈삣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두어 밤을 더 자고 나니 기다란 꼬투리에 몽글몽글 콩알이 차올랐습니다.

  콩깍지 속에서 잠들어 있는 콩알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 까요. 어둠이 순덕이네 밭에 내려앉자 알콩이와 달콩이는 밤하늘의 별의 세며 그동안 감자 아주머니, 들깨 아저씨, 호박 아주머니께서 들려주셨던 말씀들을 하나 둘 떠올려 봅니다. 콩깍지가 톡 하고 터지는 날, 알콩이와 달콩이는 또로록 땅에 굴러 떨어진 콩알들을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까요.

  달님도 잠들어 버린 늦여름 밤, 알콩이와 달콩이네 강낭콩들은 푸른 꿈을 꾸며 알알이 여물어 가고 있습니다. 알콩이와 달콩이는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교육과정이란 수업의 기말 과제가 키에르케고르의 주체적 지식의 점유화, 폴라니의 당사자적 지식,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가다머의 해석학적 관점, 장상호의 교육의 재개념화 등이 녹아들어간 소설,시나리오,에세이...등을 쓰는 것이었다.

계절학기 두과목을 듣는게 참 벅찬 일이었지만 좋으신 선생님 밑에서 의미있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내 인식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는 시간들이었다.

중문과 수업을 통해 다시한번 인문학을 하는 목적을 되새겨볼 수 있었으며 교육학과 수업을 통해 또다시 앎과 삶의 일치,인식의 성장 그리고 인식 지평의 융합...등 심오한 교육의 과정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만족스러울만큼의 노력을 하지 못해(두과목을 듣다 보니 한과목을 듣던 다른 친구들에 비해 조금 소홀히 했던것 같은 느낌이...)  약간 아쉬움이 남았으나 분에 넘치는 성적을 받아서 기분은 좋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아직까지 이렇다 할 만한 대답을 내놓을 수 없는 내게 교육에 관한 나의 첫 창작물(선생님께서는 이번의 "습작"을 통해 더 나은 관점과 안목을 지니게 될 거라 하셨다)은 미흡하지만 어쩜 올바른 교육관의 확립을 위한 첫번째 정리가 될런지도...

"교육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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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저녁해 창가에 머물며

내게 이제 긴 밤이 찾아온다 하네......

붉은 빛으로 내 초라한 방안의 책과 옷가지를 비추며

기나긴 하루의 노역이 끝났다 하네......

놀던 아이들 다 돌아간 다음의 텅 빈 공원 같은

내 마음엔 하루 종일 부우연 먼지만 쌓이고......

소리 없이 사그라드는 저녁빛에 잠겨

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울먹임에 귀기울이네......

부서진 꿈들......

시간의 무늬처럼 어른대는 유리 저편 풍경들......

어스름이 다기오는 창가에 서서

붉은 저녁에 뺨 부비는

먼 들판 잎사귀들 들끓는 소리 엿들으며

잠시 빈 집을 감도는 적막에 몸을 주네......

 

::: 남진우, 저녁빛

 

 

덧없이 지나간 하루의 끝에서 서쪽 하늘로 지는 노을을 보면 나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고여온다.

어려서부터 지녀온 버릇이다.

해 저무는 시간이면 깊은 숨을 내쉬며 서쪽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저 허허로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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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보낸 편지에 괴로움 말하려다               欲作家書說苦辛

흰머리의 어버이가 근심할까 염려되어,        恐敎愁殺百頭親

그늘진 산 쌓인 눈이 깊기가 천 길인데          陰山積雪深千丈

올겨울은 봄날처럼 따뜻하다 적었네.             却報今冬暖似春

 

::: 이안눌(李安訥), 기가서(寄家書)

 

멀리 떨어져 계시는 부모님께 전화한통 드리지 않는 내가 오늘은 학교가는 지하철에서 무심히 어머니께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문자메세지를 돋보기가 없으면 잘 읽으시지도 못하고 문자메세지를 보내실 줄도 모르시지만 항시 광고 문자만 받다가 뜬금없이 내 문자메세지를 받으면 무척이나 흐뭇해 하신다고 동생이 귀뜸해주었기에...)

숙제를 하느라 몇 일 밤 잠도 잘 못 잤는데 아무 내색 없이 안부를 전했다.

그 해 겨울 눈이 그리도 많이 내렸는데 봄날 같다고 태연히 말하는 소자의 마음이 어찌나 감동적인지...오래오래 나도 행복한 거짓말을 부모님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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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죽순(雨後竹筍)이란 말이 있습니다.

비온 뒤 여기 삐쭉 저기 삐쭉 죽순이 땅을 뚫고 나오듯 어떤 일이 예기치 않ㄴ게 많이 일어나고 순서 없이 벌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대나무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몸집과 키가 정해져 있답니다.

대나무의 직경은 처음 죽순의 크기가 자신의 몸집이며,죽순 속에 감춰진 마디의 수가 앞으로 자랄 자신의 키입니다.

어린 죽순을 호기심에 열어보고 수많은 대나무의 마디가 이미 그 속에 있음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하지만 그 뿌리에서 죽순의 모습으로 땅을 뚫고 나오기까지 4년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일단 땅을 비집고 나온 죽순은 대나무로 성장하기까지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하루에 한 자가 자라기도 한답니다.놀라운 성장력이지요.땅을 뚫고 나오기까지의 오랜 시간,힘들고 지루하고 그래서 포기하고도 싶은 시간이었겠지요.하지만 대나무가 지닌 무서운 성장속도는 바로 땅 속에서 지낸 인고의 시간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나무는 그 인고의 시간 동안 최대한 뿌리를 넓게 뻗고 자양분을 빨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긴 나무를 버티게 해주는 것 또한 죽순의 옹골찬 마디입니다.그 짧고 단단한 마디에서 강인함이 나오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아름답습니다.

 

...1년전 이맘때 이 글을 읽었을 무렵 나는 지루하고 추하기 짝이없는 기다림에 지쳐버렸을 때였다.하지만 이제는 안다.동일한 시간의 흐름을 두고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얼마만큼의 노력을 했는지가 그 아름다움의 척도가 된다는 것을...

2004년,나는,기다림의 미학을 절실히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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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한 해 내게 벅찬 감동과 기쁨을 주었던 세권의 책을 선정해 보았다.

나는 올해 무료한,그 끝이 보일것 같지 않은 무기력한 겨울방학동안 <지구별 여행자>라는 이 책 한권으로 희망을 품을 수 있었으며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우리 모두는 지구로 여행온 여행자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지...올드 시타람씨께서 들려주신 말씀은 지금도 가끔씩 내게 넉넉한 웃음과 잔잔한 깨달음을 가져다 준다.

 

<야생초 편지>라는 이 책 역시 내게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안겨주었던 소중한 책이었다.인간이 위대해 보일때는 자연에 대항하여 그 위에 군림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연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자연 앞에 겸허할 때가 아닌가 싶다.잡초가 아닌 야생초로 길가의 풀들을 무심히 바라보는 겸손한 눈길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이 책 뿐만이 아니라 <세느강은...>,<악역을...>,<빨간 신호등> 모두 올 한해 내게 많은 것을 일깨우게 했던 책이었지만 홍세화님의 저서 중 나는 이 책을 가장 먼저 접했고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나는 아마도 오래도록 잊지 못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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