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림자 도둑
마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그림자를 마지막으로 응시했던 때가 기억나지 않을만큼 '그림자'라는 것은 나이를 먹으면서 잊혀져갔다. 내 위에 빛이 있었다면 언제나 한결같이 발밑에서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그림자는 물론 다른 물체의 그림자 또한 인식하지 못한채 지내왔다. 상처를 눈으로 보기 전엔 상처의 존재유무도 모르다가 막상 외상을 보고나면 통증이 느껴지는 것처럼, 못보고 살땐 아무렇지 않았는데 막상 오랜만에 본인의 그림자를 보게 되니 그동안의 내가 너무나 바보스럽게 느껴지고 한심스러웠다. 10년만에 만난 내 그림자가 너무 반가웠달까.
이 책이 내게 그런 책이다. 그림자 도둑. 마크레비의 작품이다. 196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 때부터 6년간 적십자 활동을 했고, 대학 2학년 시절 첫 회사 "로지택 프랑스"를 세웠다. 1991년 컴퓨터 프로그를 이용한 건축 설계 전문회사를 설립하여 승승장구. 1998년 아들 루이를 위해 첫 소설 '저스트 라이크 헤븐'으로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지금까지 발표된 그의 소설들은 모두가 작품마다 프랑스에서 최고판을 기록, 총 2천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고 41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한참을 몰입해서 읽어가다가 책장을 덮을 즈음, 남자 주인공의 이름도 모른 채 읽고 있었다는 자각이 일었다. 소년은 이른 나이에 학교에 입학하여 키도 작고 숫기도 없어 왕따로 지낸다. 아빠는 바람나서 집을 나가고, 아빠의 빈자리는 항상 소년의 깊은 외로움으로 작용한다. 친구없는 설움은 너무 일찍 깨닫는 아이의 어투와 생각점은 굉장히 조숙하다. 아이는 그림자를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과거, 불행을 읽어낼 수 있고 그림자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학교 수위 이브아저씨와 친구가 되고, 그림자 능력으로 아저씨가 과거의 불운한 기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게 돕는다. 엘리자베스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정적이 된 마르케스에게 계속 당하고 있지만, 끝내 그녀는 마르케스와 짝꿍이 된다. 마르케스를 향한 도전으로 반장이 되고 , 빵집 아들 뤼크와 친구가 되며 방힉 때 놀러간 바닷가에서 농아인 클레아와 사랑에 빠지며 (어린 나이에 이뤄지는 절절한 사랑이다.) 깊은 추억을 만든다.
의대에 가서 소피와 사랑과 우정사이를 헤메며,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꿈을 접은 빵집 후계자 뤼크를 의대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소피는 주인공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지만 육체적 관계 이상의 감정교류는 어렵고 서로에게 지쳐간다. 뤼크와 소피, 주인공은 바다로 떠나고 거기서 주인공은 클레아와의 추억이 있는 장소와 물건, 편지를 발견한다. 소피와 결별하고 어렵사리 그녀를 찾아내 사랑을 시작한다.
아주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소설이다. 저자의 사진에서 필자는 장난기를 발견한다. 그런 장난기는 뤼크와 주인공의 대화에서 아주 잘 녹아나고 있다. 전개가 느리지 않으면서도 저자가 그려내고자 하는 바를 아주 명확히 그려내고 있어서 소설의 색채는 분명하고 읽기에 지루함도 없다. 특히 소년으로서의 주인공의 감성이 아주 매력적이고, 그의 상상력이나 생각들이 귀엽기 그지없다.
간간히 들려주는 시적이고 문학적인 문구들은 필자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데 조금의 제동도 없었다.
바다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처음 갔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116쪽)
가을비가 어깨를 두드리던, 집으로 향하는 길 위에 나는 어린 시절을 두고 왔다. (144쪽)
아주 좋은 작품을 만났다. 읽으면서 내내 행복한, 따뜻한, 평온한 책읽기를 할 수 있었다. 저자의 감성, 탁월한 필치가 필자의 어린 날 품던 가슴들을 회상하게 하고, 차가운 겨울날 메마른 감수성에 작은 물방울 하나가 되어 준 듯싶다. 마크 레비의 가치를 알게 된 좋은 시간이었고, 아주 기쁜 마음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마음 시린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