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1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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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의 신화 혹은 영웅, 책도 많고 풍월도 꽤나 많이 쌓였으나 두꺼운 전집들을 탐독하여 보진 못했다. 책을 읽어가다 으레 만나는 그리스 신화나 세계역사 가운데 두드러지게 소개되는 로마의 전쟁영웅들 이야기는 필자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얇은 두께, 출판계의 보증수표, 역사서 저술의 명인.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룬 이 책은 두근거림의 시작이었다.

 

저자 이윤기.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소설가 겸 번역가.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숨은그림찾기 1-직선과 곡선>으로 동인문학상을, 소설집 <두물머리>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장미의 이름><변신이야기> 등에서 보여 준 품격 높은 번역으로 200년 대한민국 번역가상을 수상했다. 다수의 책을 집필하였고, 다수의 책을 번역하여 다 거론하는 것이 무리다. 2010년 8월 27일, 바로 얼마 전 안타깝게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책은 총 5명의 인물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테세우스, 알렉산드로스, 뤼쿠르고스, 솔론, 아리스테이데스가 그 주인공이다. 인물에 대한 주요사건을 화두로 하여 순차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이야기들은 상식으로 알고 있던 중요사건의 범주보다 디테일하게 들어가지 않고, 큰 그림만을 그리며 전개하고 있다. 그 외의 지식전달은 중간중간 삼천포로 빠지면서 시작된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한다.

 

저자의 문체가 아주 고급스러우면서 위트가 넘친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책에서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데 그의 성정은 재밌고 재기어린 면이 도드라진다. 그러한 뉘앙스를 그려내는 저자의 필력은 기어코 필자를 웃음 짓게 한다. 가히 당해낼 재간이 없는 내공이다.

 

첨부된 자료사진의 질이 우수하다. 유명한 명화나 조각상에서부터 낯선 유적지의 위엄 있는 사진까지 풍성한 자료제공이 좋았다. 특히 중요하다거나 다른 각도에서의 조명이 필요한 그림은 재차 보여줌으로써 독자의 편의를 돕는다. [ex) P.77 ↔ 84, P.74 ↔ 102] 청소년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국어학습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단어들이 많았다. [ex) 강화(講和), 회멸(灰滅), 황음무도(荒淫無道) 등]

 

저자가 선별한 인물에 대해서는 더 깊이 알고자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굵직굵직한 지식들을 얻었다. 영웅서라고 해서 남자아이들이 더 좋아할 요소가 많게 보이지만 여자아이들이 차분히 읽기에 좋은 문투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특별한 지식적 욕구가 아니더라도 그리스 로마영웅에 대한 이정도 지식은 상식선이 아닐까 한다. 역사라는 무게감에 혹은 어려운 이름들 뒤섞인 번잡한 전개에, 역사서는 엄두도 안 나는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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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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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 수집가가 꿈은 아니지만 세간의 향수(鄕愁)로 남아버린 것들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타입이다. 전자사전이란 제품이 출시되어 너도나도 구매하기 시작할 때 필자는 헌책방에 들러 누군가 씹어 먹다가 만 것 같은 너저분하고 오래된 사전을 구입했었다. 연락처는 휴대폰에 저장하면 되는 것을 필자는 이제껏 굳이 수첩에 적어두고 있다. 중요한 번호는 머리보다 손가락이 기억하고 있다.



미련한 뻘짓이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세상은 극도의 편리함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성을 높여 주느라 혈안이 되었있지 않은가. 대표적인 스마트 경쟁. 그것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지 click뿐이다. 지식과 정보를 떠 바치고 있는 스마트폰 시대, 우리는 그저 뜰채로 건지기만 하면 되는 시대인가. 그리고 그것이 건강한 지식인의 사회를 계속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가.



저자는 인터넷이 가져다 준 인간의 변화를 논하고 있다. 그 변화라는 것이 분명히 폐단의 결과를 낳았음에도 저자 자신도 인터넷을 비롯한 많은 기기들과 작별을 고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겸연쩍게 말하길 앞으로도 블루레이 플레이어 - WiFi연결이 가능하여 텔레비전과 스테레오를 이용해 판도라 서비스를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볼 수 있는 기기 - 없이는 살 수 없을 것만 같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 니콜라스 카는 세계적인 IT 미래학자이자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며 정보기술부문의 사상적 지주로 꼽힌다. 다트머스대학,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편집장을 지냈다. <파이낸셜 타임스><가디언><뉴욕 타임스> 등 영향력 있는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경영 컨설팅사인 메르세르의 대표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빅 스위치> 등이 있다.



책은 총 10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1부에는 전문적인 지식들을 토대로 저자의 논지를 강화하기 위한 준비운동을 탄탄히 하고 있다. 2부에서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1장는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터넷에 길들여진 뇌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을 서술한다.



나는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을 때 조차도 이메일을 확인하고, 링크를 클릭하고, 구글에서 무언가를 검색하고 싶어 했다. 나는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었다. (…)나는 이전의 뇌를 잃어버린 것이다. (p.36)



2장에서는 인간의 뇌에 대한 학술적 연구에 대해서 풀어보고 있는데 이것은 이후 7장과 9장에서 언급될 내용을 위해 뇌의 특성을 필요한 부분에 한해 다루고 있다. 3장는 문자에 대한 이해를 그 목적으로 한다. 문자의 역사와 그 특질, 문자와 인간의 사고력과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어서 4장에서는 지금의 책 읽는 방식이 고착화될 때까지의 ‘읽는 방식’ 변천사를 나열하면서 책을 읽는 문화의 영향력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5장는 인터넷의 발전과정과 그 파급력에 대해, 6장는 전자책의 등장과 그 미래를 다룬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손꼽히는 전 문화부장관 이어령 씨는 최근 한 TV인터뷰에서 킨들을 흔들며 ‘이런 전자책이 있으니 아주 편하고 좋다’고 말하며, 앞으로는 전자책을 애용할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저자는 ‘하이퍼링크’ 기능이 있고, 인터넷이 연결되어있는 전자책은 ‘읽기 위한 책’으로서의 가치 상실이 명백함을 말하고 있다. 산만함의 요소를 두루 갖춘 덕분이다. 멀티태스킹의 시대적 흐름 앞에서 필자는 ‘홀로 고독하게 몰입하는 행위로서의 책 읽기’를 홀대하는 전자책의 위세가 심히 걱정된다.



7장는 인터넷으로 멀티태스킹을 할 때의 우리 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다. 불과 1초 만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터넷으로 인간은 ‘깊이 읽기’는커녕 ‘훑어 읽기’도 제대로 못하겠는 습관을 기르고, 멀티태스킹으로 훈련되는 인간의 뇌는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방해받고 있다.



멀티태스킹을 더 많이 할수록 덜 신장해지고, 문제에 대해 덜 생각하고, 덜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독창적인 사고로 도전하기 보다는 관습적인 생각과 해결책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p.209)



8장은 구글 비판. 구글의 초창기 시절부터 그동안의 경쟁과정을 압축하면서 시작한다. 비판의 핵심은 구글 북서치이다. 지금껏 출판된 모든 책을 디지털화해서 본문 내용을 온라인에서 찾고 검색할 수 있게 만들고자 하는 시도이다. 10개가 넘는 업체와 학술 출판사, 그리고 세계적인 규모의 도서관들이 구글과 계약을 맺고 진행되는 프로젝트 이다보니 말들이 많다. 여러 논쟁거리 중에서 저자가 모든 책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은 책 그 자체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동이라고 지적하는 부분에 많은 공감을 한다.



책장을 따라 흐르는 본문의 응집력, 이야기와 논지의 선형성이 희생되고, 고대 로마 장인이 최초의 고문서를 만들 때 함께 꿰어놓은 것들이 풀어지는 것이다. 고문서의 의미의 일부였던 고요함 역시 희생된다. (p. 243)



스크린을 통해 보여지는 글을 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문서를 재빨리 해독할 수 있겠지만(오히려 예전보다 더 빨리 읽는다) 문서가 함축한 바에 대한 깊고 사적인 이해를 기대할 수는 없다. 대신 우리는 또 다른 관련정보의 조각으로 그리고 또 그다음, 또 그다음 조각을 향해 서둘러 달려든다. 이 ‘연관 콘텐츠’에 대한 노상 채굴은 의미 해석을 위한 느린 발굴을 대체하고 있다. (p. 244)



9장은 검색기능으로 인해 퇴화되어가는 인간의 기억력을 이야기한다. 기억력에 대한 부분은 먼저 의학적 이론과 실험을 바탕을 두고 서술한다. 생물체의 기억은 끊임없이 갱신하는 과정에 있고 기억을 확장할 때 마다 지적능력은 향상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인터넷은 개인적인 기억에 편리하고 매력적인 보조물을 제공하지만 인터넷을 개인적인 기억의 대안물로 사용하면서 내부적인 강화 과정을 건너뛴다면 우리는 그 풍부함으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을 텅 비게 하는 위험성을 안게 되는 것이다. (p. 280)



10장은 이제까지 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종합적으로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다. 기술의 힘을 지니기 위해 우리가 지불한 대가 중 지적 기술에 대한 비용이 어느 정도 큰지에 대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격동의 기술은 콩코드 역에 도착한 기관차와 마찬가지로 사색과 명상을 통해서만 가능한 잘 정제된 인식과 생각 그리고 감정을 잠식할 것이다. (p.321)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이 되고 있느냐가 아니라 결국 무엇이 되느냐다. (p. 320)



방대한 내용이기도 했지만 시기적절한 책이었다. 기술 문명이 빠르게 변화하여 따라가기도 벅찬 지금의 시대는 생각할 겨를 없이 일단 하고 보는 성격이 짙다. 대표적으로 스마트폰의 확산은 사용자에게 다른 세상을 선물하고 있는 듯하다. 한번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고개 한번 돌리기가 쉽지 않은지 지하철에서도 몇 정거장 지나치는 것은 예삿일이다. 진보한 기술에 대한 무분별한 흡수는 분명 그에 따른 부작용의 임상피실험자를 양산할 뿐이지 않는가.



특히 ‘책’과 ‘사고’라는 관점에서 인터넷의 영향을 살펴보는 일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실생활에서 너무나 유용하고 밀접하게 사용되는 인터넷이 인간의 뇌에 이러한 파괴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필자의 인터넷습관을 되돌아보게 했다. 책에 대한 바른 이해, 종이에 인쇄된 책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를 되새기게 한다. 앞으로 아무리 좋은 전자책이 출시되어도 후대에는 묵직한 종이책들을 물려주리라 다짐한다.



정말 제대로 된 지식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읽고 나서 저자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는 책. 구글을 다시 보게 만든 책. 전통의 지혜를 되새기게 된 책. 그리고 달변에 미혹됨 없이 무엇이든 더 깊이 있게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 준 책이다. 진정성 있는 글로 필자를 감동시킨 저자의 책, 기술의 편리가 유익함만을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안일한 얼리어답터에게 권해 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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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 다른 생각, 그러나 다투어야 할 생각
이일훈 지음 / 사문난적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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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와 수단이 극대화 되어있는 사회이다. 너도 나도 자신을 PR하고 나름의 생각을 피력하고자 온라인 공간을 이용하고 있다. 댓글이라는 도구 또한 특정 주제에 대한 ‘다른 생각’들의 집합소이다. 하나의 생각이 그저 일인의 의견 표출로서 존재할 때와 저서로 출간될 때는 그 의미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에게 저서가 그 값어치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으려면 철저한 검열의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다른 생각에 대한 존중’을 화두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필자는 ‘얼마나 존중받을만한 생각으로써의 가치를 지닌 책인지’에 집중해서 읽었다.



저자는 이일훈. 한양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했고 실무를 익히던 초창기엔 건축평론을 병행했다. 서울시 건축상, 크리악어워드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고, <가가불이><모형 속을 걷다><불편을 위하여> 외 공동 저술이 있다.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대우교수와 문화관광부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른 ‘개념’과 ‘생각’이 필요한 강연에 자주 초청되며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책은 총 3장으로 나뉜다. 숲의 둘레, 풍경의 둘레, 건축의 둘레. 저자는 환경보존주의자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1, 2장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고, 자신의 전공인 건축관련 이야기보다는 환경에 관한 생각을 더 나누려고 한다. 1장은 숲을 잃어버린 도시의 답답함과 숲의 성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도시인들의 아둔함을 말한다. 일례로 새에 대한 이해없이 새들을 괴롭히기나 하는 ‘새집 달아주기’ 운동을 비웃는다. 궁극적으로는 숲의 지혜를 배워가야 하고, 숲을 사랑하고 지켜내는 ‘숲퍼’가 되자고 주창한다.



숲 속에서 인간이 편하면 숲의 생리가 불편하다. 자, 그럼 숲의 기운이 살아있는 불편한 숲을 만들고 다시 그 숲으로 가자. 불편함이 숲을 구원하리니. (p.62)



2장에서는 지금껏 개발론자들에 의해서 실행된 정책들이 얼마나 위험하게 발전되고 있는지를 논하고 그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놀랐던 것은 공원조성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한결같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는 것. 그는 숲을 중심으로 한 도시를 원하기에 인공적인 잔디밭의 확산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 장은 숲이 가지고 있는 에두름과 비정형적 속성을 모토로 한다. 빨리빨리 해치워버리려고만 하는 도시인들의 해결방식에 반기를 들며 서두르지 말고 생각 좀 하자 한다.



모든 일들을 제발 천천히 하자. 느리게, 그것도 아주 느~리게! 그 속에 세상 꽃일게 하자. (p.231)



저자의 전공을 살린 3장은 건축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이야기들도 포함되어있다. 전통적인 건축양식에 대한 예찬과 동시에 현대 건축물의 용도별 비판도 들어있어 흥미롭다. 저자가 말하는 ‘좋은 집’을 위한 조건 3가지 - 쾌적한, 솔직한, 생각이 깃든 -와 생태 건축에 대한 조언들은 필자가 가진 ‘집’이라는 개념을 되돌아보게 한다. 특별히 좋았던 부분이라면, ‘공간에도 어두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지 못한 조언이었다. 조도와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전등을 켜는 버릇, 에너지를 고려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일상을 꼬집으며 공간을 조금 어둡게 사용하라는 그의 말이 새삼 신선했다.



석유를 아끼기 전에 근본적으로 우리가 조금 어두운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는 인식을 높이는 것이다. (p.280)



문체가 아주 시원시원하다. 욕만 없지 거칠 것 없이 풀어놓고 있어 같은 생각을 품은 사람이라면 웃어가며 개운하게 읽을 수 있지 싶다. 저자의 말처럼 건축은 인간의 삶을 아우르는 분야이기에 환경과 건축을 다루었음에도 일반인에게 친숙한 소재들로 이어지고 있어 전문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저자가 의견을 내는 방식에 있어 양복입고 객관적으로 토론을 하자는 ‘게시’의 격이라기보다는 판잣집에 앉아 막걸리 한 사발 마시면서 주저리 늘어놓는 모양이 떠오른다. 주제 하나 잡아서 이건 이렇고 저렇다고 하는 말발 좋은 이의 연설을 연상케 한다. 그것이 이 서적이 지닌 또 하나의 개성이 아닐까.



독자가 들려주고 싶은 자신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길 때엔 소설가가 겪는 산고의 고통은 아닐지라도 나름의 자기 검열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간혹 그런 점에서 아쉬운 부분들이 발견된다. 예를 들면, 간판을 거꾸로 단 영업집은 들어가기도 싫고, 왠지 손님의 뒤통수를 칠 것 같은 기운이 느껴져 즐겁지 않다고 말하는 부분(p.295), 야간 조명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자는 밤새 밝혀진 인공조명이 싫다고 하는 부분(p.154), 패럴림픽을 올림픽보다 먼저 시작한다면 장애우를 대하는 우리의 인식도 달라질 것이라고 하는 부분(p.236) 등이다.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독자에게는 하등 도움이 안 될뿐더러 저자의 수준을 낮추는 발언이지는 않는가. 일례로 어느 국민도 패럴림픽을 먼저 한다는 이유로 장애우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올림픽보다 먼저 한다는 것이 존중받을 수 있는 이유에 기여한다는 말인가.



다른 발상이 주는 즐거움이 크다. 그것을 배려하면서 읽을 수 있다면 좋은 양분을 많이 취할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좋은 집은 생각하게 하는 집이라고 했다. 이 책은 독자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저자가 통찰하는 이 시대상을 읽어보는 것도 젊은이라면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정치하는 이들, 정치를 꿈꾸는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이야기들이 떼를 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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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일하라 - 성과는 일벌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제이슨 프라이드 & 데이비드 하이네마이어 핸슨 지음, 정성묵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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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큐반(HDNet의 공동 창립자)은 이 책의 리뷰에서 ‘이 책을 읽은 사람과 MBA 출신 중에서 선택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읽은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라고 적고 있다. 언뜻 생각하면 그냥 MBA출신자를 뽑아다가 이 책을 읽히면 될 듯 한데 굳이 저렇게 분리해서 말하는 이유가 있을까.

 

저자는 이 책을 읽는 이들을 다 ‘우리’라는 범주 안에 넣고 있다. 나머지는 ‘그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현실세계는 ‘그곳’이다. 너나 나나 그러고 살고 있는 세상인데, 저자는 부러 나누려고 하고 있다. 굳어져버린 세상이론을 내세워 의지부터 꺾어버리는 ‘현실’에 대한 도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첫 장부터 ‘현실세계는 무시해야 한다’고 외치는 저자. 틀, 곧 세상에 만연한 관념들을 파괴하라고 주장하는 그는 ‘그들이 가는 곳’을 ‘절망의 무덤’이라고 표현하고, 그들의 헛소리가 만연한 현실세계에서 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현실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다. 단지 변명거리일 뿐이다. 시도하지 않는 자들의 변명이다. 현실 운운하는 이야기는 당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야기이니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 (20쪽)

 

비즈니스세계의 통속적 구조나 문화들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역설하는 것으로 논지를 굳히고 있다. 세상에서 배워먹은 ‘기본 마인드’라는 것을 근본적으로 뒤집고 있는 책이기에, 행동보다는 생각부터 하게 하는 책이다. 가볍게 보면 똑바로 일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을 디테일하게 주문하고 있는 방법론적인 책인 듯도 하다. 그러나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연계성을 다양화하여 적용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원칙의 적용이 참으로 탁월했다.

 

저자가 가진 원칙은 표제가 가진 ‘똑바로’라는 단어에서 힌트를 얻는다. 저자는 ‘그들’과는 ‘거꾸로’ 가고 있고, 그것을 ‘똑바로’ 가는 길이라 자부하고 있다. 단순히 현실이 낡아빠졌으니 하는 것마다 족족 반기를 드는 초등혁신은 아니다. 저자 본인이 기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구축한 경영자 정신을 기반으로 내용을 이끌어간다. 단지 저자의 경영방식은 시류에 반(反)한 그 나름의 원칙과 소신이었을 뿐.

 

아직 이만큼의 지혜를 담아내고 있는 비즈니스 서적을 본 일이 없다. 무엇보다 흡수력이 그만인 책이다. 한 번 잡으면 끝을 못보고는 잠이 오지 않을 만큼 흥미로운 시각으로 읽었다. 하고 있는 일 혹은 직업에 원인 모를 갈증이 있다면 꼭 한번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이러한 내용을 이만큼 끌어낸 저자의 내공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리뷰는 그만 쓰고 지금 당장 저자의 블로그를 방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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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 카페 - 작지만 큰 또 하나의 나, 우리가 몰랐던 진짜 콤플렉스 이야기
가와이 하야오 지음, 위정훈 옮김 / 파피에(딱정벌레)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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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 사전에서 나타내는 정신분석학적 용어의 개념과는 다르게 이 단어는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흔히 ‘불안성 혹은 심각성을 띤 상태로 인지하는 열등한 자의식’정도로 해석되어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흔히 연예인 인터뷰의 단골메뉴로 쓰이는 ‘당신의 콤플렉스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대다수가 외모의 한 부분을 언급해서 망언종결자로 기사를 장식하기도 한다. 친근한 단어가 되어버린 콤플렉스가 사실 정신분석학적으로 따져 묻기에는 단어 그대로 너무나 복잡다단한 세계라 필자 같은 일반인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주제이다. 그렇기에 이 주제로 대중의 입가를 적시려한 이 책의 집필은 대단한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가와이 하야오. 융심리학(분석심리학)를 일본에 최초로 소개한 선구자로 일본을 심리학의 제1인자‘라 불리는 일본의 실리학자, 교토대학 명예교수,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명예교수, 일본 문화청 장관을 지냈다. 일본에 모래놀이 치료를 도입, 보급한 사람이고, 1995년에는 페이 렉처에 일본인 최초로 초빙되었다. 저서로는 <마음의 처방전><옛이야기의 심층><무의식의 구조><융심리학 입문><그림자 현상학><생과 사의 접점><판타지 책을 읽는다><아버지의 힘, 어머니의 힘><어른의 우정> 등이 있다.

 

1장은 콤플렉스에 대한 개념과 현상 설명이다. 콤플렉스를 ‘감정으로 물든 복합체’라고 이름붙인 융을 소개하며 그의 실험과 분석을 토대로 내용을 진행하고 있다. 콤플렉스의식을 전제로 하며, 의식은 ‘이것’으로써 나타낼 수밖에 없어 객관적으로 설명이 어렵다고 한다. 의식을 경험하는 주체 - ‘자아’는 ‘언제나 미완의 상태이자 발전하려는 경향 쪽으로 열려 있는 존재’이다. 야스퍼스가 내세운 자아의식에 관한 네 가지 특징 - 능동성, 단일성, 동일성, 외계와 타인에 대한 대립 - 을 자세히 소개한다.

 

2장은 이중인격-한 개인에게 서로 다른 두 개의 인격이 번갈아 나타나는 현상 중 두 인격 사이에는 자아의식의 연속이 없는 모습, 도플갱어-자신이 중복존재로 체험되고 ‘또 하나의 자신’이 보이거나 느껴지는 현상, 열등감 콤플렉스, 마음의 상보성-콤플렉스가 자아의 일면성을 보상하는 역할- 를 다룬다. 이중인격·도플갱어에 관한 주제에서는 관련소재의 문학이야기로 도입하여 실제 사례를 보여주고  치료과정을 소개하여 문학작품과 대비시킨다. 열등감 콤플렉스 안에는 반드시 우월감도 혼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신선했다. 

 

3장에서는 자아와 콤플렉스와의 관계를 크게 4가지의 경우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 관계에 따른 자아의 변형을 사례와 함께 자세히 적고 있다. 콤플렉스가 자아에 영향을 미쳐 신경증 증세로 나타나는 노이로제는 자아와 콤플렉스의 상대적인 힘의 관계에 달려있기에 이 장에서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저자는 서두부터 노이로제가 된 사람의 자아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자아보다 반드시 약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104쪽) 노이로제의 치료를 명확히 제시한 프로이트는 불안 히스테리를 따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아가 콤플렉스의 존재에 의한 불안을 느끼고 있지만 콤플렉스의 본래의 대강에 관해서는 억압이 작동하고 그것이 보상기제에 의해 그 밖의 것으로 향해지고 있는 관념이라고 했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강한 열등감콤플렉스를 지닌 집단형성의 결속력이다. 그 집단구조의 힘은 강력한 연대감을 싣고 있기에 구성원의 개성을 죽이는 것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본질적으로 콤플렉스가 사라질 수는 없지만 그런 노력에 대한 이야기가 4장에 펼쳐진다. 저자는 ‘트릭스터’라는 역할자가 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저차원과 고차원으로 나뉘어서 행동하게 되는데, 그저 장난이나 치는 아이같다가도 고차원에서는 인류를 행복으로 이끄는 영웅이 되는 역할이다. 죽음체험 또한 콤플렉스 해소에 큰 영향을 준다고 하는데 이건 선택 받은 소수의 경험이니 자세히 밀고 들어갈 수는 없다.

 

5장은 자아와 과의 연계성, 그리고 그 안에서의 콤플렉스 출현을 말하고 있다. 꿈에서는 콤플렉스가 인격화되어 나타나는데 그 사례와 함께 꿈의 의미를 해석하고 있다. 꿈은 아직 인간이 지식으로 인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에 저자도 그저 추측을 남발한다. 이런 내용은 전달없이 재미없게 끌어지는 측면이 있다.

 

6장은 아주 흥미로운 내용들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원형: 인간마음 밑바닥 깊숙이에 전인류 공통적으로 보편적인 표상이 존재하며 그것을 유형화하며 파악하려는 시도 에 대해 논하고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보편적 무의식 층에서 보내져오는 표상에 자아의 의미부여에 따라 달라지는 창조적 생활 영위를 융은 ‘자기실현 과정’이라고 했다. 저자는 콤플렉스를 무조건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콤플렉스와의 대결을 통해 죽음과 재생을 체험하고 자아의 힘을 점차 강화시켜나가는 자기실현과정을 통과하라고 조언한다.

 

경어로 된 문체로 일관되게 설명되어있어 저자의 직강을 듣는 듯했다. 유명 정신분석학자의 학설들을 토대로 일구어져있어 내용의 90센트가 출처있는 이야기들이다. 저자의 저서라기보다는 소개서에 가깝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콤플렉스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면 그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총체적으로 알 수 있는 종합서로 생각된다. 다만 개인의 심리학적인 내용이라기보다는 역사적이고 융 학설 분석적인 책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듯하다. 콤플렉스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보다는 콤플렉스에 대한 지식을 구하는 자에게 맞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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