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5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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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의 세계문학전집 65번째 책, <아버지와 아들>이다. 당대에 워낙 말이 많았던 작품이고, 다양한 각도에서 이런 저런 견해들로 버무려진 평들이 많았기에 무엇보다 순순하고 쉽게 읽고 싶었다. 정치적·철학적·문화적 사상을 제쳐두고 작품 그 자체만으로도 벅찬 이 문학을 순순하게 접하고 싶었다.

 

‘롤리타’를 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나 ‘여자의 일생’을 쓴 모파상의 극찬을 받고 있는 저자 이반 투르게네프. 1818년 러시아 오룔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고, 농노를 천대시하는 어머니를 보며 농노제를 증오하는 마음을 품는다. 이런 ‘농노’에 대한 각별한 인식이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러시아의 지성계와 어울리면서 계몽의 가치에 대한 신념을 갖게 되었고, 1860년 이후 프랑스로 건너간 뒤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헨리제임스 등과 교류하며 지냈다.

 

대학을 졸업한 아르카디는 친구이자 정신적 지주 바자로프와 함께 아버지 니콜라이가 있는 고향으로 내려온다. 아버지는 아내를 잃고 형 파벨과 함께 살고 있는데, 철저한 니힐리스트인 파벨의 등장으로 이념적 대립과 충돌을 계속한다. 늙은이 둘과 젊은이 둘의 사상적 대립이라고 친다면, 파벨과 바자로프는 서로를 경멸하며 지내지만 부자관계인 아르카디와 니콜라이는 전혀 그 부분에서 대립이 없다. 아버지 니콜라이는 오랜만에 만난 아들의 흡연이 못마땅하지만 결코 내색 한번 없이 고개만 돌리고 만다.

 

이제 바자로프의 집으로 가본다. 부모는 아들을 만난 기쁨의 눈물을 흘리다 못해 아들의 한 마디에 절절 매고 긴다. 아들이 3일 만에 집을 떠난다고 하자 그들은 기절할 듯 절망한다. 노부부에게 아들은 ‘성은이 망극한 존재’인 듯하다. 다시 온 아들이 말 시키지 말라고 하자 어머니는 식사시간에도 질문 하나가 버거워 쩔쩔 거린다. 아들의 숨소리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부모. 바자로프가 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도 그들은 부모라기보다는 아들의 명(命 - 중의적 의미)을 기다리며 동동거리는 하인과도 같은 모습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본 ‘아버지’이다. 그럼 아들은 어떤가. 니힐리스트라는 독선적인 캐릭터. 이성이 아닌 모든 것을 부정하고 거부한다. 과학으로 분석되는 것만을 추구하면서 논쟁하기를 즐기는 그 젊은이들. 그들이 조소하며 부정하는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감정, 특히나 사랑. 그러나 마지막 그들은 터질 듯한 심장으로 ‘사랑한다’고 거듭 고백한다. 여기서 보는 것은 결국 그들이 줄기차게 외치던 그 ‘니힐리즘’의 세계가 그들에게서 죽어나가고, 혈기를 가지고 총부리를 겨누듯 경멸했던 ‘늙은 세대의 이념’이 완성됨으로써 그들이 ‘제대로’죽거나 살거나를 시작한다는 점이다.

 

과연 이뿐이겠는가. 이 책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무한히 많다. 무엇보다 저자의 문학적인 필력은 러시아 고전의 위대함을 맛보게 한다. 그저 구구절절이 영상미를 감돌게 하는 아름다운 문학이다. 절대적인 부정주의, 바자로프의 신념을 완전히 망가트리는 사랑이라는 것. 그 풋풋함이 그의 가슴에 밀려들어가는 과정과 그 마저 부정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히려 그런 과정에서의 몰입이 노인네들의 애틋함을 그린 장면보다 더 우수한 심리적 묘사라고 생각하는데, 제목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점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더 깊은 이야기들을 깨달으려면 거듭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바자로프가 사랑한 여인, 오딘초바가 ‘니힐리스트’가 가진 신념이 바로 선 상태에서 사랑에 빠질만한 매력적인 여인으로 설정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저 평범한 여인 그 이상도 아닌 것 같은데, 예쁘장하다고 빠질 리는 없다. 아마 그 점, 너무나 잘났다는 지성도 그저 평범한 꽃향기에 허물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일까. 대단치도 않은 과부에게 정열을 가한 바자로프의 사랑이 돋보인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마지막에서 너무 많은 인물들의 후일담을 적극적으로 설정하였다는 점이다. 독자의 상상을 배재시키고, 몇 년 뒤 인물들의 일상을 모두 담아냄으로써 종지부에서 흥미를 잃었다. 그리 여운을 돋아주는 에필로그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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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1. 더글러스 러시코프 <보이지 않는 주인> 

이 책은 현대사회의 '기업지배'현상이 끼치는 영향, 그 중에서도 일종의 폐단을 다룬 책이다. 크고 작은 경제문제 뿐아니라 문화와 사상적인 면에서도 '왜곡'의 본진이 되고 있는 기업지배의 실상을 보고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책은 제목도 근사하지만 목차를 보면 꼭 한번은 읽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굉장히 모순적이거나 비상식적인 접근의 제목 설정으로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 책의 목차는 독자의 호기심 유발에 그만이다. 또한 경제에 대한 아주 근본적이고도 필수적인 물음들을 지니고 있다.   

 

 

 

 

 2. 자크 아탈리 <더 나은 미래>

유럽 최고의 석학이라 인정받은 자크 아탈리가 쓴 책이다. 표지에서도 붉게 강조되어 있듯 그가 보는 '앞으로의 10년'에 대한 내용이다. 이 책에서는 앞으로 10년동안 전개될 경제상황 최악의 시나리오를 4단계로 다루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대단한 지성인의 통찰, 그것도 10년을 미리 앞서서 보는 그의 견지가 어떤 기틀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많은 이들이 경제 혹은 미래를 예측한다지만 자크 아탈리는 그의 명성만으로도 남다른 궁금증을 자아낸다. 더구나 최악의 위기상황을 보여준 다음 그가 제시하는 전략들의 핵심은 무엇일까.  
 

 

 

 3. 하워드 블룸 <천재 자본주의 vs 야수 자본주의>  

 과학계에서 '21세기 아이인슈타인, 다윈, 뉴턴, 프로이드'라고 불린다는 저자는 '진화론'의 대가이다. 역사의 진화, 인류의 진화를 넘어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의 진화'를 과학적으로 분석한다고 한다.

표지의 얼룩말 두마리가 엉켜있는 그림은 번영과 탐욕의 두 얼굴을 표상한다고 하나 사실 내용을 읽지 않고서는 표지의 정확한 이해가 어려울 듯하다. 저자의 방대한 지식이 역력히 묻어나오는 듯한 빽빽한 목차를 발견하고는 욕심이 생긴다. 야수를 지지하는 저자의 새롭고 놀라운 관점을 이해하고픈.  

 

 

 4. 게리 매클린 <조직개발의 이해> 

조직개발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게리 매클린의 조직개발 개론서라고 한다. 조직개발의 정의로 출발하여 미래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는 조직개발분야의 교과서라고 할 만 하다. 아직은 조직개발이라는 어감부터가 생소한 우리나라 경영진에게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는 책이라 사료된다.  

조직개발이라는 것이 다소 따분하게 여겨질 수 있는 분야이나 경영 전공자들은 물론이고 조직안에서 리더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인재들을 융화시키는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도 아주 실용적인 이론서가 될것이라 생각한다.  

 

 

 

5. 김양호 <킹스 스피치>

저자는 '한국언어문화원'의 원장이자 전국적으로 '언어교양대학'를 개최하고 있을 정도로 '언어'를 위해 사는 분이다. 이 책은 영화 '킹스 스피치'의 핵심요소인 언어능력의 중요성을 다루었다. 스피치를 위한 5가지 - 비전, 신뢰, 논리, 공감, 열정 -에 대한 전략을 설파한다.  


경영쪽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능숙한 언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주 필수적 요소로 꼽히는 이 능력을 단순하고 확실하게 정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책이라 생각한다. 링컨의 시대가 아님에도 우리는 오바마나 잡스의 연설을 주목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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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학생활 시크릿 - 스펙 종결자가 되는
린 F. 제이콥스 & 제러미 하이먼 지음, 서우다 옮김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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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학생활의 묘미. 남들은 연애다 스펙 쌓기다 여념이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학에 와서도 대학보다는 학원이 더 도움 되는 시대를 살고 있고, 대학에 와서 깊이있는 학문에 깨달음을 얻는 것도 아니고 좋은 교수들 밑에서 존경심을 가지게 되는 일도 드물다. 오히려 학위라는 것 자체가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끝없는 대학수험생활에 절망하게 되는 점이 더 많다는 것도 새삼스럽지는 않다. 등록금, 등록금 하는 시대에 등록금 냈으면 아깝지 않게 공부하고 싶은데 맘처럼 쉽지 않은 게 대학생활이다.

 

그런 나날들. 특히나 이런 봄, 푸릇푸릇한 날에 귀여운 후배가 있다면 꼭 한번 추천해 주고픈 책이 출간되었다. 린 제이콥스와 제러미 하이먼이 쓴 대학생활 시크릿은 대학생활에 충실한 이들이라면 완벽히 공감하면서도 아무나 볼 수 없게 숨겨놓고 싶을 정도로 보물 같은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다. 평소 저자가 조언하는 대로 대학생활을 빈틈없이 하고 있는 주변지인들은 오히려 이 책을 싫어한다. 경험으로 터득해야 할 부분까지도 세세하게 조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장점은 세심하고 디테일하다. 외국 저자가 써 놓은 그쪽의 환경을 우리나라 대학실정에 맞추어 번역하였기 때문에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불필요한 요소는 거의 없다. 이미 여러 서적들에서 대학생활에 대한 주제로 많은 조언들이 있어왔겠지만, 이 책은 그동안 신입생들이 접할 수 없었던 그 ‘실용적인 스킬’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저자가 교수이기 때문에 교수의 입장에서 학생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낱낱이 알려준다. 이 책을 읽고 따라한다면, 적어도 교수 눈밖에 날 일은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재미있는 점은 저자가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 학생의 심리, 신입생들의 덜떨어진 마인드부터 메일은 어떤 식으로 보내는지, 글쓰기 실력이 얼마나 쓰레기인지 등등. 그동안 교수로서 보아온 여러 모델들을 적절하게 보여줌으로써 절대 그런 학생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한다. 사실 신입생들은 교수한테 어떻게 잘해야 하는 건지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고, 에세이나 논문을 처음 써보는 아이들은 글쓰기 자체에 공포심이 있다. 뻔히 알고 있는 저자는 사설수업마냥 자세하고 똑부러지게 가르쳐준다.

 

대학생활 이후 대학원 진학이나 취업, 유학 등 여러 가지 진로에 대한 솔직한 상담과 도움이 되는 조언들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요즘 대학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서적임을 확신하게 하는 대목들이 줄을 잇는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 개인적으로는 너무 빤한, 안 들어도 되는 이라기보다는 너무 기본적인 것까지 언급함으로써 ‘요즘 애들은 이런 것도 몰라?’하는 마음이 들거나 교수가 너무 수준 낮은 것들을 거듭 강조하는 경향에 재미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신입생이라면, 혹은 대학생활을 도와주고 싶은 후배가 있다면 꼭 내밀어주어야 할 책이다. 나의 침 튀기는 몇몇 조언보다 그들의 위트 섞인 한마디가 우리의 후배를 더 훌륭히 변화시키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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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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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제목은 그 책의 분야 혹은 장르를 가늠할 수 있도록 설정한다. 가령 예술에 대한 책과 예술을 위한 책은 제목에서부터 구분할 수 있는데, 대개 전자는 내용의 핵심어를 내세우는 것이 일반적이고, 후자는 내용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을 내보이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책은 제목에서 벌써 반전을 만들고 있는데, 과학논문 주제 같은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혀 소설책이라고는 짐작할 수 없게 하는 제목이어서 호기심이 일었다.
 
저자는 앤드루 포터. 197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랭커스터 출생. 뉴욕의 바사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아이오와 대학 작가 워크숍에서 예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 메릴랜드 대학에서 방문 작가 자리를 얻으면서 발표한 단편들이 유명세를 타게 되었는데, <아줄>은 스티븐 킹이 선정하는 녗미국우수단편선집’에 들어갔으며, <외출>은 푸시카트 상을 받았다. 현재 텍사스 주 샌 안토니오에서 살면서 트리니티 대학에서 문예창작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이 책은 2008년에 출간한 처녀작으로 단편소설부문 플래너리 오코너상을 수상했으며, 스티븐 터너상, 패터슨상, 프랭크 오코너상, 윌리엄 사로얀상 최종후보작으로 뽑혔다.
 
총 10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제 각각 다른 시대와 장소, 그리고 색다른 사건들로 이어나가고 있으나, 본질적으로 주인공이 지닌 성격 즉 본성적인 면에 있어서 그리 다르지 않은 인물들을 차례로 만나고 있다. 다소 충격적이기도 하고 개인으로서 감당하기 벅찬 문제에 놓여버리는 사건들을 경험하고 있으나 저자가 그려내는 인물들의 심리는 크게 와 닿는다. 사실 경악스러울 정도로 공감이 가는 사실적인 심리 전개에, 또한 그 깊이를 문학적으로 술하게 감아놓는 터에 하나하나 매료되어 읽었다.
 
단편소설은 한편이 끝나고 곧바로 다음페이지에 시작되는 새로운 작품에서 독자들이 느끼는 괴리를 줄이는 작업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은 각 작품마다에 뚜렷한 공통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명료하면서도 어린 여운이 감돌게끔 하는 독특한 마무리기법이 돋보인달까. 작가가 20대 중반 즈음 생계를 유지 때문에 힘든 세월을 겪었다고 하는데, 젊은 나이에 처녀작으로써 이런 작품을 써내기까지 저자가 얼마나 삶과 인간에 대한 고민이 깊었는가를 생각하게 되는 문학이다.
 
번역이 좋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중에서도 작가가 쉼 없이 찍어댔을 ‘콤마’의 호흡을 있는 그대로 거의 살려놓은 느낌의 번역이 참 인상 깊었다. 심리적 호흡에 맞춰나가는 템포, 저자만의 운율이 있는 글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성격을 짐작하자면, 매우 침착하고 말수가 적고 배려심 많은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주인공들이 다 그런 면들이 짙고, 생각이 많아서 대화보다는 사색하는 장면이  더 많고, 본능보다는 이성이 앞서서 잘 흥분하지 않는 면모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그려내는 인물들이 매력적이었고 그 인물들의 심리에서 비롯된 행동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독자의 심리에 따라 여러 가지 빛깔을 띨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굳이 뭘 나타내려는 인위성은 없다고 보인다. 그저 읽어가면서 조금 더 스스로의 인생에 성숙함을 안길 수 있는 촉매가 되지 않을까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편은 단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었다. 나도 내 인생의 로버트를 만났고 이별했기 때문일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 순간, 그제야 우리 사이에 지금껏 말을 넘어선 교감이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나는 그때 그가 너무나 쉽게 나를 이해해버리는 것 같아화가 났지만 그가 훗날 내게 그랬다. (…) 그가 그 순간,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이해하는 같았기 때문이다. (p. 1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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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05-24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스런 서평 잘 읽었습니다.

푸른물 2011-05-29 20:48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초초난난 -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
오가와 이토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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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美化). 이것은 아주 치명적일 수 있는 작업이다. 그 대상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문제라면 더더욱 신중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안(私案)이든 감정에만 대고 호소한다면, 또한 그것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다면 비난받을 수 있는 여지는 준다. 이 책의 소재는 불륜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불륜’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일이 불경스럽게 느낄 정도로 이 책은 아름다운 정경으로 가득하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인 지금의 인식을 반영한 듯 주인공들은 ‘비도덕적 행위’가 아닌 ‘위험한 사랑’을 하고 있다. 단언할 수 있는 이유? 제목이 ‘초초난난’이니까.

 

작가는 오가와 이토. 1973년 일본 야마가타시 출생. 세이센 여대에서 일본 고대문학을 전공했으며, 1999년 <리틀 모어>에 ‘밀장과 카레’를 하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2008년 첫 소설 <달팽이 식당>를 포푸라샤에서 출간했고 스테디셀러가 되어 2010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외에 <패밀리 트리> <쓰루카메 조산원>이 출간되었다.

 

스토리는 보다 단순하다. 옛 정취가 맴도는 작은 동네에 앤티크 기모노 가게를 하고 있는 여자 시오리. 어느 날 다도회에서 입을 기모노를 구입하려는 남자 하루이치로가 방문한다. 다도라는 공통점으로 시작하여 말문을 튼 그들은 첫 만남부터 긴 시간을 향유한다. 남자는 바쁘고 여자는 수줍게 기다린다. 만남의 전개는 느리지만 주인공이 느끼는 속내는 뜨겁고 간절하다.

 

저자는 이 둘을 운명처럼 그려내고 있다. 마치 어떤 연결고리가 그들을 놓아주지 못하는 듯,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 그들은 꽤 진한 감정을 그리고 있다. 전 남자친구의 죽음, 또 가족 간의 유대회복, 잇세이 씨와의 데이트 등 잔잔하게 엮이는 시오리의 이야기들은 그녀의 삶이 지닌 외로움의 깊이를 더해 주고, 그녀의 사랑이 가진 감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와의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그리고 이별의 과정에서 느끼는 애끓는 슬픔도 마치 순수하고 깨끗한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서술해 낸다. 그러니까 ‘세상이 우리를 갈라놓아도’같은 상황을 연출하는데, ‘불륜이라는 안타까움’같은 표현이 경박하게 여겨질 정도로 파스텔적인 이별이다.

 

푸딩에 숟가락을 꽂는 순간, 이젠 틀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푸딩을 입안에 넣는 순간, 눈물의 홍수가 나를 무너뜨렸다. 마음이 방울진 눈물로 변해 발밑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나는 남의 일인 양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p. 374)

 

정신을 차려보니 땅위에는 선명한 빛깔을 띤 낙엽들이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빨갛고 노란 색색의 나뭇잎들은 눈이 아플 정도로 눈부셨다. (p. 381)

 

배경이 기모노 가게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특유의 정서와 분위기를 보여주는 면에서는 아주 탁월한 소설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심리를 그려내는 필력은 역부족이었다. 어떤 감정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듣겠는 정도. 그러나 감정에 공감하거나 주인공에 몰입해서 느끼기에는 어려웠다. 저자는 문학적 묘사에만 급급해 보인다. 모든 것을 아름답고 선하고 신비롭게 표현하고자 했는지 주인공의 감정선 마저 과장된 묘사가 깔끔하지 못하게 나열되어있다. 너무 많은 설명과 은유들로 독자가 가지고 가야 할 몫을 다 빼앗긴 듯한 느낌이다.

 

햇살 좋은 날 참한 마음으로 읽기에 괜찮았으나,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은 것은 불륜의 결말이 너무 연극적이고, 아름답게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덤덤하게 그려내야 할 현실마저 감정들로만 도배된 연출력에 묻혀 버리는 글이다. 미적인 소신으로 그려지는 스토리와 주인공들의 순수함마저 나중에는 질려버리는 면이 있다. 그것은 작가의 인위적인 포장지가 너무 뻔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작가의 조금은 부족한 면들이 잔잔히 실려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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