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초난난 -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
오가와 이토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미화(美化). 이것은 아주 치명적일 수 있는 작업이다. 그 대상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문제라면 더더욱 신중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안(私案)이든 감정에만 대고 호소한다면, 또한 그것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다면 비난받을 수 있는 여지는 준다. 이 책의 소재는 불륜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불륜’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일이 불경스럽게 느낄 정도로 이 책은 아름다운 정경으로 가득하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인 지금의 인식을 반영한 듯 주인공들은 ‘비도덕적 행위’가 아닌 ‘위험한 사랑’을 하고 있다. 단언할 수 있는 이유? 제목이 ‘초초난난’이니까.

 

작가는 오가와 이토. 1973년 일본 야마가타시 출생. 세이센 여대에서 일본 고대문학을 전공했으며, 1999년 <리틀 모어>에 ‘밀장과 카레’를 하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2008년 첫 소설 <달팽이 식당>를 포푸라샤에서 출간했고 스테디셀러가 되어 2010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외에 <패밀리 트리> <쓰루카메 조산원>이 출간되었다.

 

스토리는 보다 단순하다. 옛 정취가 맴도는 작은 동네에 앤티크 기모노 가게를 하고 있는 여자 시오리. 어느 날 다도회에서 입을 기모노를 구입하려는 남자 하루이치로가 방문한다. 다도라는 공통점으로 시작하여 말문을 튼 그들은 첫 만남부터 긴 시간을 향유한다. 남자는 바쁘고 여자는 수줍게 기다린다. 만남의 전개는 느리지만 주인공이 느끼는 속내는 뜨겁고 간절하다.

 

저자는 이 둘을 운명처럼 그려내고 있다. 마치 어떤 연결고리가 그들을 놓아주지 못하는 듯,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 그들은 꽤 진한 감정을 그리고 있다. 전 남자친구의 죽음, 또 가족 간의 유대회복, 잇세이 씨와의 데이트 등 잔잔하게 엮이는 시오리의 이야기들은 그녀의 삶이 지닌 외로움의 깊이를 더해 주고, 그녀의 사랑이 가진 감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와의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그리고 이별의 과정에서 느끼는 애끓는 슬픔도 마치 순수하고 깨끗한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서술해 낸다. 그러니까 ‘세상이 우리를 갈라놓아도’같은 상황을 연출하는데, ‘불륜이라는 안타까움’같은 표현이 경박하게 여겨질 정도로 파스텔적인 이별이다.

 

푸딩에 숟가락을 꽂는 순간, 이젠 틀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푸딩을 입안에 넣는 순간, 눈물의 홍수가 나를 무너뜨렸다. 마음이 방울진 눈물로 변해 발밑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나는 남의 일인 양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p. 374)

 

정신을 차려보니 땅위에는 선명한 빛깔을 띤 낙엽들이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빨갛고 노란 색색의 나뭇잎들은 눈이 아플 정도로 눈부셨다. (p. 381)

 

배경이 기모노 가게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특유의 정서와 분위기를 보여주는 면에서는 아주 탁월한 소설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심리를 그려내는 필력은 역부족이었다. 어떤 감정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듣겠는 정도. 그러나 감정에 공감하거나 주인공에 몰입해서 느끼기에는 어려웠다. 저자는 문학적 묘사에만 급급해 보인다. 모든 것을 아름답고 선하고 신비롭게 표현하고자 했는지 주인공의 감정선 마저 과장된 묘사가 깔끔하지 못하게 나열되어있다. 너무 많은 설명과 은유들로 독자가 가지고 가야 할 몫을 다 빼앗긴 듯한 느낌이다.

 

햇살 좋은 날 참한 마음으로 읽기에 괜찮았으나,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은 것은 불륜의 결말이 너무 연극적이고, 아름답게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덤덤하게 그려내야 할 현실마저 감정들로만 도배된 연출력에 묻혀 버리는 글이다. 미적인 소신으로 그려지는 스토리와 주인공들의 순수함마저 나중에는 질려버리는 면이 있다. 그것은 작가의 인위적인 포장지가 너무 뻔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작가의 조금은 부족한 면들이 잔잔히 실려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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