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훔치는 공간의 비밀 - 왜 그곳에만 가면 돈을 쓸까?
크리스티안 미쿤다 지음, 김해생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특정한 목적으로 설립된 건물은 그 나름대로의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을 방문해서 느끼는 감정은 비슷할 것이다. 숲에서 햇빛이 환하게 드리우는 벤치와  스탠드만 켜져 있는 컴컴한 독서실에서 각각 독서를 한다면, 같은 책으로부터 받은 느낌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공간이라는 개념이 인간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고 본다.

 

이런 부분은 상식적이지 새로운 지식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을 세밀하게 접근하여 심리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주는 사람이 있다. 크리스티안 미쿤다. 세계적인 공간연출 전문가이자 트렌드 연구가, 브랜드 마케팅 및 무드 매니지먼트 컨설턴트다. 연극미디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0여 년 동안 TV 방송기자로 일했다. 클라겐푸르트, 튀빙겐에서 객원교수를 하고 있고, 활발한 강의 활동을 한다. 저서로는 <제3의 공간><금지된 장소, 연출된 유혹>등이 있다.

 

사람에게 행복감을 주는 감정의 유형을 7가지로 설정한다. 영예, 환희, 파워, 탁월함, 열망, 황홀감, 여유의 감정을 그 주제로 한다. 그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저자는 꽤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감정의 유발 비법을 설명하고 있다. 일단 ‘행복감은 모태는 죄악이다’라는 말로 운을 띄우면서 주제가 사실은 오만, 탐식, 분노, 시기심, 탐욕, 음욕, 나태로부터 출발했고, 때문에 행복은 그 죄악시 된 감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인간의 감정을 호르몬의 분비에서 그 근원을 찾는 것으로 일축한다. 즉 호르몬의 정체와 그 활동성이 감정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이다. 심리는 ‘유발-감정이입-효능발휘’라는 구조로 작용한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매개체인 호르몬은 능동이고 그에 따른 감정은 자연히 수동적이 된다.

 

여기서 저자는 호르몬이라는 요소로 ‘감정의 일반화’를 시도한다. ‘이런 공간에서는 이런 느낌을 가진다 - 이런 감정을 유발하는 호르몬이 움직이기 때문이다’로 감정의 통일을 요구하는 것이다. 과연 인간의 감정은, 보는 것마다 동일한 호르몬의 작용으로 동일한 감정을 느끼는 투입과 배출이 뚜렷한 기계 같은 것일까? 상황변수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듯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엘렌 그리모의 연주를 보면 누구나 치유의 기적을 맛보거나 음욕적 욕구를 느껴야 당연하다고 보는 저자의 논지가 어설펐다. 그저 저자가 경험한 느낌 아닌가!


저자는 세계 주요공간들이 갖는 마케팅적 공간연출이 인간의 감정에 무엇을 유발시키며,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보는 자로 하여금 무엇을 유도해 내는지를 자세히 살피고 있다. 이 부분에서 세계유수의 탁월함을 지닌 공간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사진도 첨부하여 잘 느끼게 해 준다. 어떤 것들은 너무 당연해서 ‘별 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소요소 다 상술이 감정을 자극하고 있음을 이론화한다. 아무 데나 가도 볼 수 있는 풍경이 다 사람의 감정에 ‘도파민’같은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과잉해석이나 일본의 지나친 접대문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긍정적인 감정만을 유발시킬 거라는 그의 입장은 그 기본부터가 와 닿지 않는다.

 

어떤 공간이든 처음은 설렘과 호기심이 있고, 감정의 유발이 가능하며, 호르몬의 움직임이 되었든 맥박 수가 되었든 증가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기도 하며, 뭐든 쉽게 질리는데 일각연이 있는 생물이다. 저자가 말하는 공간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공간 자체만으로 사람의 기분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분명 시간적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공간은 ‘여행객’으로서 방문했을 때나 유발되는 것이지 지속적으로 그 공간에 노출되는 사람까지 늘 그런 흥분된 마음은 아니라는 것이 된다.

 

여러 가지 지식의 보고가 담겨있다. 그리고 그 지식을 쉽게 풀어놓는 부분에서 나는 저자의 내공을 엿볼 수 있었다. 저자의 기민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의 그 유명하다는 곳들의 실체 - 모두 그런 마케팅적 요소들로 도배되어 있었다는 사실 -를 보게 된다. 각 기업마다 그 브랜드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이미지 메이킹’은 다 저자의 분류 아래 놓이게 된다는 사실이 재밌다.

 

무엇보다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감각을 다 맡긴 채 수긍하기 위해 보는 책은 될 수 싶다. 주제가 ‘인간의 마음’이 아니던가. 그러니 이 책을 이성적으로 읽지 않으면 자칫 저자의 입장에 동화되는 그만의 기법에 빠질 우려가 있다. 저자가 극찬하는 많은 공간을 탐닉하고자 하는 이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 도대체 왜 이러나
김기수 지음 / 살림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중수교가 햇수로 20년에 접어든다. 중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인식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전 세계의 제조공장’쯤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중국을 ‘빨갱이’라고 인식하는 구시대적 발상에 갇혀있다. 이것은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러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 애써 부인하고 싶은 대목인데, 그들은 여전히 공산주의 체제로 유지하는 일당 독재로 북한 최후의 후견국가가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세계 각국은 북한만큼이나 중국의 행보에 관심을 기울였고,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중국의 입장에 앞서 언급한 한중수교의 단촐한 의미가 우스웠다. 현재 우리나라 산업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중국에 막대한 의존도를 보이고 있다. ‘꼭 이렇게까지 저 나라와 엮여야 되나’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나는 중국이란 나라 전반에 회의적이다. 그래서 이 책은 중국이 잘되면 배 아픈 내게 그럴듯한 통쾌함을 안긴다.

 

저자는 김기수. 미국 미주리대 국제정치경제학 박사과정 수료 후 세종연구소 국제정치경제 연구실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동아시아 역학구도: 군사력과 경제력의 투사>, <국제통화체제와 동아시아 통화협력: 통화권력과 경제적 이해>가 있다.

 

책은 크게 세 주제를 가지고 있다. 중국이란 나라의 특성과 그에 기반 한 외교술, 한반도에 대한 입장을 다룬 1장. 국제정치학이 가지는 핵심원리 ‘세력균형, 인접 국가끼리는 잘 지낼 수 없다’가지로 중국의 현 위치를 가늠하게 한다. 최근 1세기동안의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볼 수 있는 중국의 다변적 성격을 적나라하게 펼친다. 이러한 인식들의 연계로서 도마 위에 오른 동북공정의 배경 이야기는 아주 중요했다고 본다.

 

소련도 붕괴했고 동아시아 네 마리의 용도 그 위용을 잃었을 때, 이런 국가들의 성장둔화 틈을 타고 들어온 중국 역시 이전 국가들의 한계 - 투입 중심의 경제성장 -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생산성의 기반이 되는 과학기술의 뒷받침은커녕 기초과학의 토대마저 체제라는 한계성을 넘지 못하고 있고, 노동시장의 변화 - 임금 상승을 요구하는 노동쟁의 발발, 젊은 층 노동인력의 인식 변화 - 라는 변수를 안고 있다. 중국이 ‘현상유지’를 위해서 감수하고 떠안아야 할 국내외 정치·경제·사회·문화·환경오염 등 상호 연계된 과제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상기의 모든 것이 그냥 하다는 현실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강력한 권력이 위에서 누루는 것이 먹혀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p. 139)

 

3장은 중국이 미국을 넘어설 수 없는 이유를 군사력과 경제력인 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중국의 실제 군사력은 미국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패권이 되기 위한 중국의 도전은 경제력적인 면에 있어서도 무모한 도전이다. 저자는 이를 ‘불가능’이라는 확언으로 마무리 짓고 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중국의 경제성장이 전후 미국이 만든 국제경제의 틀 내에서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p. 222)

 

문체가 간결하고, 저자의 논리 흐름이 명확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적 사례를 돌아봄으로써 저자의 논지에 힘을 보태고 있다. 내용은 복잡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다 풀어놓고 있어서 일반 독자에게 어려움이 없으나 핵심적인 압축으로 지루함은 없앴다. 어투는 시원하고 그의 주장에는 크게 공감한다. 이 책으로 단순한 경제력 팽창을 겪고 있는 중국의 이면과 그 실체를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중국’의 실체를 부각하느라 현 미국의 상황을 놓쳤다는 점. 그로 인해 미국이 건강하고 탄탄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하여 중국의 거품에 놀아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이 세계경제의 패권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미국 또한 그 이면의 실체가 있다는 점에서 저자가 풀어놓은 건강한 미국에 무조건 동의할 수는 없었다.

 

좋은 책이다. 사고의 확장을 열어주었고, ‘세계정치경제학이 참 재미있는 학문이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중국의 덧없는 기세와 허영을 지식으로써 확실히 인식하고,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 보게 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물은 그립고 서른은 두려운 - 가지 못한 길은 후회되고, 가고 있는 길은 버겁지만, 세상의 중심에 서고 싶은 당신에게
이종섭 지음 / 베스트프렌드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20대 초반이 이런 시절인 줄을 미리 알았더라면, 지금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나는 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너무 무엇을 안 하고 지나왔음도 깨닫는다. 그러나 스물이 그립지 않은 이유는 진한 풋내 나는 그 시절 또한 치열하게 버텼던 까닭일 것이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표제의 후자. 나는 못내 서른이 두렵기 때문이다.

 

20대 중반을 걷고 있는 지금은 ‘여자 나이 서른’이 대수라고 느껴진다. 직위, 소유, 관계와 같은 일종의 외형적인 정도에서 느낄 서른에 대함이 아닌,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 있을 것인가에 관한 호기심과 두려움의 감정이다. 스물다섯에 이것밖에 안되는데, 서른에도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면 어쩌나 하는, 서른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런 부분을 다루고 있는 책은 아니다. 일종의 청년계발서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책이지만 제목은 내용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저자는 이종섭. 치열한 청춘을 살며 25살에 창업을 하여 현재 액트아카데미 원장과 (주)토리픽쳐스 대표이사로 재직중이다. 동국대 연극영화과와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고, 지금은 여러 가지 작업을 하며 지낸다. 저서로는 <서른에 은퇴하라><열정을 연기하라>가 있다. 

 

'31개의 편지’라는 형식으로 주제를 다루고 있고, 그 주제라는 것은 키포인트라기보다 저자가 이말 저말 조언하는 화두정도로 이해된다. 내용은 제목에 기반하고 있고, 제목은 내용의 핵심을 잘 대표하고 있기에 굳이 내용적인 측면에서 새롭게 기록할만한 것은 없다. 목차에 내용이 거의 다 있다.

 

그렇기에 새로운 내용, 저자만의 참신한 조언은 찾기 힘들다. 서점가에서 청년들에게 조언하기 위해 쏟아져 나오는 고만고만한 책들에 다 있을 법한 내용들이었다. 저자는 모든 주제의 앞머리부터 ‘자신과 비슷한 주제를 가진 책들’의 조언을 인용하여 한 주제에도 많으면 5개 이상 싣고 있다. 그러니 자연 저자의 생각에서 나온 주제인지 그 사람들의 주장을 전달하기 위해 만든 장인지 의문이 일게 된다. 오히려 저자가 아카데미에서 만난 청년들의 삶과 같은 실질적으로 저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을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기 때문에 한 주제 당 소요하는 장수가 많지 않고, 단락은 모두 확실히 구분되도록 여백을 주고 있기에 읽기는 편하다. 발췌문이나 중요한 부분에는 활자크기와 색을 구분해 놓은 점도 좋았다. 주제마다 흑백의 사진과 함께 명언 한 구절도 인상적이었다.

 

그리운 스물, 두려운 서른에 대해 통찰력을 지닌 새로운 감각을 열어 준다기보다 지금 현재에 충실해지도록 조언하는 책이다. 지금의 청춘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에 목이 마른지 알고 있는 저자가 조언하는 책이니 신뢰성이 짙고, 실제로 주는 조언들 대부분이 청춘에게 큰 활력을 줄 수 있는 행동 지향적, 실천적 조언을 담고 있다. 그를 만나 얻게 된 청춘이란 시기에 대한 고찰은 행복하게 마무리된다. 그러므로 ‘길’에 대한 고민이 있는 청춘들에게 권해봄직한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지코믹스 -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지음, 전대호 옮김, 알레코스 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이토록 많은 매체로부터 찬사를 많이 받은 책이라면, 그 장르가 무엇이 되었든지 일단 읽고 싶은 욕구부터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 핵심주제가 한 수학자의 삶을 다룬 것이라고 하기에 의문이 일었다. 버트런드 러셀과 그 주변 학자들의 삶으로 수학에서 논리학으로 이어지는 본격적인 진리 탐구의 과정, 이러한 것들로 어떻게 평균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책은 만화의 형식을 띠고 있다. 물론 이런 진지하고도 깊이 있는 학문적인 이야기를 다루는데 만화만큼 좋은 수단은 없겠으나 필자가 본 어떤 만화보다도 그 전달의 효과가 뛰어나다. 이 책은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가 기획하고 집필을 맡았고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가 고문역할을 했으며 알레코스 파파다토스가 만화를 그렸고 애니 디 도나가 인물조사를 맡았다. 그리고 그들이 직접 만화의 안내자가 되어 만화를 이끌어나가고 이 책을 쓰는 실제적인 과정에서 고민했고 논의했던 부분들을 숨김없이 다루고 있다.

 

버트런드 러셀은 조부의 집에서 엄격한 기독교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그런 교육의 모순을 느끼며 러셀은 수학이라는 가장 확실해 보이고 이성적인 학문에 눈을 뜬다. 대학에서 배우는 수학에 환멸을 느끼며 논리학이라는 ‘증명세계’에 발을 들인다. 여기서 러셀은 집합론과 논리학의 토대를 짓밟는 ‘러셀의 역설’을 발표하여 수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이후 뜻이 맞는 동반자 화이트헤드 교수와 그 역설로 무너진 논리학의 토대를 바닥부터 새로 재구성하기로 한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매진하여 간신히 ‘수학원리’라는 책을 낸다. 그러나 제자 비트겐슈타인에 의해 그가 세웠던 모든 논리학의 토대가 실패임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해 주는 말이 이 책이 기록한 많은 사고들 중에서 가장 진리에 가깝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문적인 삶으로 인해 주인공이 느끼는 학자 인생, 책과 씨름하며 진리탐구에 매진하는 사고(思考)에 갇힌 삶의 고통과 그 괴리감을 쉽게 공감할 수 있게 그려진 부분이 많았던 면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나는 불편한 진실을 대면했다. 수학과 서투른 청혼을 제외하면, 나는 철저히 외톨이였다. 나는… …어항 속 물고기처럼… …세계와 격리된 채… …틀에 맞는 것들만 주무르는 생활에 만족하면서 나의 지적이고 엄숙한 은신처를 방어하고 있었다. (p. 226)

 

내가 이 책을 처음 펼친 후 3장을 채 넘기기도 전에 도로 덮어버렸다.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 책은 나눠서 볼 수 있는 책이 아니고 집중해서 단 번에 삼킬 수밖에 없는 흡입력을 지닌 책임을 말이다. 그리고 읽는 순간순간 감탄하며 책을 놓고 화장실을 다녀올 수도 없을만큼 저자가 풀어놓는 이야기에, 주인공이 하는 명연설에 넋을 주고 말았다.

 

정말 오랜만에 뇌를 굴려가며 읽을 수 있는 좋은 지적 서적이었다. 철학과 논리학과 수학이 언급되면서 그 안에서 ‘진리’를 탐구해 나가지만, 깊이 파고들수록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꼴밖엔 아니었다는.. 엄청난 깨달음이다. 이 책을 보고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달려있다. 나에게 이 책이 위대한 학자들의 두뇌를 뒤쫓아볼 수 있는 가슴 떨리게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를 다시 쓴 10가지 발견 -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고고학적 발견들
패트릭 헌트 지음, 김형근 옮김 / 오늘의책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리히 폰 데니켄은 자신의 저서 <2012 신들의 귀환>에서 제목 그대로 ‘신들의 귀환’이 임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가 가진 고고학적 지식을 증거물로 쏟아놓는다. 하도 기가 차서 재밌게 읽었던 터라 아직도 기억하는 바, 그가 ‘신들의 베이스캠프’라고 지정한 곳이 잉카문명지의 ‘티와나쿠와 푼마푼쿠’이다. 에리히는 이곳을 외계문명 방문설의 근거로 들고 있다. 잉카문명이 고고학적으로 외계문명의 발상지라는 설을 제기 할 정도로 놀라운 문명이었다면 그 문명은 처음 발견한 이는 어땠을까. 지금 소개하는 이 책은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려는 목적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패트릭 헌트.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고고학과 고전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미국지리학협회의 한니발 유적 조사단을 이끌고 있으며, 영국 왕립지학회의 회원이기도 하다. 고고학 관련 잡지 및 학술지에 기고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Myths for All Time> 등이 있다.

 

책은 총 10가지 주제를 가지고 있다. 로제타스톤, 트로이, 아시리아 도서관, 투탕카멘의 무덤, 마추픽추, 폼페이, 사해문서, 티라, 올두파이 협곡, 진시황릉 이다. 세계사에 관심이 없어도 워낙 여기저기서 많이 회자되는 굉장한 유물들이기에 주제에 대한 낯섦이 없고,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좋은 재료들이다.

 

이 유물들은 최근에 발견되어 산정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들로 이제 막 그 연구에 운을 띄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표제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이 유물의 ‘발견’에 그 초점을 두고 있다. 10가지 유물의 역사적 발자취를 더듬어 유물이 탄생한 시점의 시대적·국가적·문화적 배경을 다루고, 최초발견자의 이력과 발견당시의 상황, 발굴 작업 과정, 발견당시까지 유물이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 유물에 대한 고고학적 가치, 현대 시점에서 유물이 가진 매력 등 여러 가지 관점으로 주제를 살피고 있다.

 

저자가 고고학자이기 때문에 고고학적 지식이 상당히 포함되어있어 지식적인 면의 충족이 일반 독자에게는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풍월로만 들었던 유명하고 귀중한 유물들에 관해 자세하게 알 수 있고, 고고학이라는 학문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평균독자, 즉 전문지식이 없는 독자에 대한 배려가 탁월하여 기초적인 부분부터 전문적인 지식까지 두루 갖출 수 있어 좋은 책이다.

 

이 책에서는 과거 선조들이 남긴 유물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또 잘 보존 된 한 국가의 문화양식이 후세에게 얼마나 많은 지혜와 깨달음을 전하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 많은 유물들에 대한 관심이 생겨남은 필시 저자가 전해준 이야기에 흠뻑 매료되었기 때문이리라.

 

아쉬운 점은 번역된 한국어본의 질이 낮다. 특별히 이 책의 1쇄 본은 돈을 주고 살 가치가 없다. 내가 찾은 비문과 오문이 26문장이고, 한 단락에서 같은 상황을 연속적으로 나열함에 있어 어미가 자연스럽게 통일되지 않아 - ‘사실이다. ~생각된다. ~했을 것이다. ~했다.’등 - 내용의 흐름 전달을 굉장히 어색하게 했다. (p.163) 또한 5개의 장은 잉크가 흐릿하게 인쇄되어 출판사의 편집부가 졸았는지 의심스러웠다. (p.86~87, 161, 164, 173, 176)

 

이렇게 좋은 콘텐츠의 책이 출판사의 안일한 일처리로 손상되어 독자의 손으로 옮겨진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2쇄가 정상적으로 출간될 수 있다면, 많은 이에게 구매를 추천해 주고 싶은 흥미로운 유물 발견 이야기가 담긴 재미있는 고고학 지식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