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림의 희망 블루스
신현림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신현림. 그 이름 석자만 들어도 가슴 철컥 흔들리던 때가 있었다.  이십대 초반 그녀의 시는 내 지루한 일상, 내 나른한 사고와 시선에 핵폭탄이었다. 그때 나는 그녀의 시가 던져주는 그 핵폭탄을 몸이 부서져라 받았다.  재수, 삼수라는 공통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녀 역시 겪은 그 낙방, 추락의 불안함이 주는 외소감에서 나는 위로받고 싶었던 것일까. 노량진의 어느 재수학원 구석자리에서 나는 그녀의 시를 웅크리고 읽었다. 그녀의 시는 참이슬이었고, 천원짜리 디스 였으며, 100원짜리 오락실의 테트리스였고, 학원 앞 붉은 고추장칠을 한 닭꼬치 였으며, 엉덩이가 예쁜 어느 남학생이었고,  어느 봄날을 어지럽게 만들던 꽃가루였다. 나는 맹목적 신앙심(?)을 가지고 그녀의 시를 그리고 글들을 읽었다. 혹자는 거칠다, 뻑뻑하다, 젠체한다, 잡스럽다며 그녀의 글들을 손사치며 밀어내지만 그래도 나는 그녀의 글이 좋다!!! 물론 다량의 책을 내면서 그 질이나, 격이 조금 주춤하고 있긴 하지만. 글발 떨어졌나, 라는 괜한 오해를 가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그녀의 책을 어김 없이 손에 잡는다. 그녀의 글들이 조금씩 미적지근해지지만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그 삶의 무게가 무겁지 않은가. 이십대 초반 나는 그녀가 보았던 그림과 사진을 찾아서 보고 그녀가 들었던 음악을 찾아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읽었던 시들과 소설을 찾아 읽었다. 그래, 나는 이효리 따라하기가 아니라 신현림 따라하기를 한동안 시행했다.

(사설이 너무 길었다. 어쨋거나,) 이 책 "희망 블루스"는 작가의 일기를 옮겨 놓았다라고 보면 될 듯 싶다. 자신이 읽은 책의 어느 한구절 혹은 들었든 음악의 한 소절을 그대로 옮겨 놓으면서 연작처럼 자신의 생각들을 코멘트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사진들을 담아 놓고 있다. 그녀의 일기장 한 귀퉁이를 슬며시 훔쳐보는 느낌이 들면서 쓰지 못하고 책상 서랍속 깊이 넣어둔 내 일기장의 한부분을 채우는 것 같았다. 독서와 새로운 소리듣기(음악이라는 단어가 한참동안 생각나지 않았음)에 게으른 나로써는 여러권의 책과 여러 곡의 소리를 들어낸 것 같아 잠깐 동안의 포만감에 어찌나 두둑했는지. 분명 누군가는 이런 식의 글 모음이 너무나 안일하고, 식상하고, 상술에 절여진 단무지 같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책의 장수나 양장으로 된 표지에 비하면 책 읽는 시간이 너무나 짧으니 말이다. 그러나 읽고난 포만감을 시간으로 변용시켜 계산할 수 있을까. 시에서 보여준 신현림만의 치열함을 산문이란 형식에서 기대한 누군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기대감이 너무 큰 것을 아닌가하고 되묻고 싶다. 사랑니를 뽑아내듯 모든 이빨을 몽땅 뽑아낼 순 없지 않은가. 그러니 뽑아낸 사랑니, 그 이야기에만 주목하자.

 "희망 블루스"!!! 지루박, 차차차, 맘보, 탱고, 왈츠, 살풀이에 승무 ...그 다양한 춤사위를 두고 블루스라니. 촌스러운 어느 캬바레(카바레지만 나는 이상하게 캬~라고 말하고 싶다)의 싸구려 조명 아래에서 어설프게 흐느적 거리는 춤을 연상하게 되는 블루스. 희망을 그 블루스처럼 추라는 이야기? 희망이 그 블루스란 이야기? 어찌 뭔가 어울리지 않을 듯 싶은 두 단어의 결합에 나는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길지 않지만 깊이와 여러 생각들을 동반하는 글들을 읽어가면서 나는 희망, 그것이야 말고 블루스 리듬이 가장 적격이란 생각이 들었다.

파랑새는 가까이에 있다고 하지 않던가. 희망 역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잣거리 어느 술에 취한 아저씨의 바딧자락 끝에서 펄럭거리는 블루스처럼, 관광버스의 어깨춤 들썩이는 블루스처럼, 어느 캬바레의 촌스러운 움직임처럼 희망이라는 것은 어렵지도, 우아하거나 폼을 잡지도 않고 가까이에 있다. 때로는 "저런 촌스러운, 저런 경박한", 이라고 약간은 우습게 보는 블루스처럼 희망은 그리 고매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며 그저 우러러 보라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희망이여 촌스러운 블루스처럼, 촌스런 조명과 무대의  블루스처럼 그렇게 오라. 가볍고, 경박하게, 스텝이 좀 영켜도 오케이 그러나 느끼면서 신나게 쉬지말고... 희망이여 그렇게 오라.  

이 책은 희망으로 가는 블루스 스텝, 그 스텝을 알려주는 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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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피필름 2005-02-17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신현림 시인을 굉장히 좋아해요. 시를 좋아하게 해준 시인이죠.. 산문집들도 사진집들도 좋구요.. 힘들때 외로울때 위로받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

어항에사는고래 2005-02-17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요. 참이슬보다, 디스보다 아니 예쁜 엉덩이의 애인보다 더 위로가 되죠. 스타피님두 그러셨군요.

진진 2005-02-24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옛날 대학도서관에서 신현림의 에세이를 읽은적이 있는데..참 좋았어요..제목은 가물..ㅋㅋ..님 덕분에 신현림 글을 한 번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어항에사는고래 2005-02-25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해짐님, 옛날 대학 도서관이란 단어가 어렴풋하면서도,아련하면서도 참 따듯하게 들립니다. 낡은 책장과 낮은조도의 불빛 아래가 잘 어울리는게 신현림의 에세이가 아닌가 싶어요.

비연 2005-02-25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주의 리뷰로 뽑히셨네요. 축하드려요^^

어항에사는고래 2005-02-26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드려요, 비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