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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독인 讀書讀人 - 독서는 인간을 어떻게 단련시키는가
박홍규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박홍규 영남대 교양학부 교수의 독서독인(讀書讀人, 인물과 사상사 펴냄)은 독서를 실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독서는 인간을 어떻게 단련시키는가’라는 부제는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단순히 읽는 것에서 벗어나 사람의 정신을 단련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제1부 독서, 권력을 훔치다
제2부 독서, 권력에 맞서다
1부와 2부 제목에서 보듯이 내용은 권력(權力)과 반권력(反權力)을 다루고 있습니다. 머리말에서도 이 부분을 언급하고 있지요.
p6
여기서 다룬 20명이나 우리나 모두 독서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 20명을 각각 권력과 반권력을 지향했다고 나누는 점이나 그러한 지향에 독서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기여한 바 컸다고 말하는 점에 이의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독서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고 좀더 자유롭고 비판적인 독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권력자나 권력을 지향하는 자들이 그런 독서를 했으면 좋겠다. 제대로 독서를 하면 과연 권력을 지향할지 의문이지만 권력을 잡아도 조금은 다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물론 나는 참된 독서인을 반권력자라고 본다.
역사에서 권력을 잡거나 권력에 맞선 인물들의 독서 편력을 수도 없이 들었을 겁니다. 독서를 통해 가치관을 세우고 활동으로 이어졌죠. 독서독인은 그런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무조건 치켜세우지 않고 잘못된 점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에이브러햄 링컨(p41, 45~46)
링컨은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과 조지 워싱턴의 전기를 읽고 사회적 신분 상승을 꿈꾸게 되었다. 또한 제국주의와 식민 정책을 지지하고 주장하며 실천했다.
링컨은 철저히 중간계급적인 사고를 했다. 그는 노예제가 나쁘지만 폐지론은 노예제의 폐해를 증대시킨다고 지적했다.
(중략)
그는 노예제에 반대했지만 흑인을 백인과 등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흑인을 해방시켜 아프리카로 돌려보내자고 주장했다.
마틴 루서 킹(p297~298)
무엇이 킹을 자유롭게 했는가?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독서였다. 그러나 제대로 된 독서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 불복종’을 읽은 것도 대학 시절이었다. 한 사람의 성실한 시민이 사회를 도덕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소로의 신념을 대중운동으로 승화시킨 간디에 대해서도 알았지만 처음부터 공감했던 것은 아니고 도리어 비실제적이라고 생각했다.
독서독인은 그동안 들어온 인물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기록된 사실을 인용한 거죠. 덕분에 위인전이 인물을 얼마나 미화시켰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르고 지냈던 사실도 알게 되었고요.
호찌민(p157~158)
호찌민은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자로 보기 어렵다 그가 유교 윤리와 프랑스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이상을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완화한 것이라는 주장은 일찍부터 소수이나마 존재했다. 그것은 베트남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호찌민의 구호 “독립과 자유보다 귀중한 것은 없다”를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루쉰(p255, 258)
루쉰은 권력과 지식인이 조작하는 모든 이데올로기적 허위에 대한 비판과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독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 전략이었다.
루쉰이 평생을 통해 추구한 주제도 권력을 가진 강력한 지배자 주인과 종 또는 노예로 차별된 대다수 민중의 불평등과 부자유의 사회, 그것을 합리화 하는 유교니 도교니 하는 전통문화와 사회주의 등의 이름으로 권력과 지식인이 조작하는 모든 이데올로기적 허위에 대한 비판과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의 구축을 위한 노력이었다. 그리고 독재와 노예근성이 빚어내는 정신승리법 따위의 허위주의와 실사구시를 거부하는 관념주의, 무엇보다 과장하는 거대주의, 개인에 대한 집단의 횡포와 혈연·지연·학연에 따른 대인(對人)주의, 무슨 일에나 자기 이익을 위해 적당하게 대처하는 편의주의, 모든 일을 관용이니 공정이니 객관이니 하며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 상대주의, 모든 일에 철저하지 못하고 적당하게 처리해버리는 처세술 등의 적당주의 등에 대한 비판이었다.
루쉰은 그런 비판의 대상으로 중국의 책을 지목하고 중국을 고치기 위해서는 중국의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제가 독서독인에서 관심을 보인 사람은 호찌민과 루쉰입니다. 딱히 동양인이어서가 아니라 권력과 반권력이라는 대척점에서 각각 너그러운 모습과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호찌민(p158, 163)
1947년 호찌민은 공자가 개인적 수양, 예수가 박애, 마르크스가 변증법을 각각 주장한 것을 종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베트남의 민족주의자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친 쑨원의 삼민주의에도 장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호찌민은 사회주의자이기 전에 애국자였다. 마르크스주의는 베트남 독립에 필요한 것이어서 선택되었을 뿐이다. 즉 독립자체가 목적이고 공산주의는 그 뒤에 할 일에 불과했다.
루쉰(p250)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루쉰의 치열한 논쟁은 유교 비판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유교 비판은 단순한 봉건 도덕 비판이 아니라, 비열함과 이기주의와 허위에 대한 분노였다. 그래서 루쉰은 중국 책과 고서를 읽지 마라 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조상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이라고 했다. 루쉰이 풍자한 아Q식 혁명은 문화 충돌이 없는 혁명이었다. 그런 정도의 혁명도 아닌 정권 교체를 이루지 못했다고 답답해할 것도 없고, 세대 갈등이라고 하는 것도 문화 충돌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니 역시 답답해할 것도 없을지 모른다. 더욱이 별안간 파시즘으로 바뀌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엄청난 변질이라도 초래된 것처럼 말하는 것이니 난센스다. 변한 것은 별로 없다. 100년, 1,000년 그대로다.
독서독인은 권력과 반권력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서를 통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우리가 어떠한 점을 배울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저 독서가 좋다는 식의 소개가 아니라 잘된 점은 무엇이고 비판할 점은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역사 교과서나 위인전 등에서 보아오던 인물들의 남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추구할 점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었고요. 독서독인을 통해 생각을 단련해보는 연습을 하고 어떻게 독서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