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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쇳물 쓰지 마라
제페토 지음 / 수오서재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 p24 ‘그 쇳물 쓰지마라’에서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마다 댓글로 시를 쓰는 ‘제페토’, 많은 이에게 회자되는 사람인데요. 실명도 얼굴도 밝히지 않는 그가 그동안 댓글과 블로그로 쓴 시를 모아 『그 쇳물 쓰지마라』(수오서재 펴냄)는 시집을 냈습니다.
그가 쓴 서문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겠다는 의지가 담겼습니다. 책에 실린 기사와 시를 함께 보면 그 날 무슨 일이 있었고, 느낌이 어땠는지가 나오거든요.
“출간결정에 따라 지난 글들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동안 우리 사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가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중략) 심각하게 다루어야져야 할 이슈가 얄팍한 이슈에 잡아먹히는 아이러니 속에서 매일 아침 인터넷 브라우저를 실행하는 일은 마치 판도라 상자를 여는 일 같았고,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흡사 아수라장의 중심부처럼 느껴졌다.”
- p4~5 서문 ‘풍선을 위로하는 바늘의 손길처럼 모서리를 둥글게 깎는 목수의 마음처럼’에서
한 번 읽어도 마음이 고요해지는데 또 읽어도 감동이 그대로 전해지는 게 신기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며칠 빌려 읽다 돌려주기 아쉬웠습니다. 그만큼 제페토가 전하려던 우리 사회가 거칠고 메말라간다는 뜻이겠지요?
우리 만나면 괴로운 얘기는 하지 말자
돈 얘기, 직장 얘기, 애 키우는 얘기
그런 얘기 말고 얘를 들어
톱스타 A와 B의 밀애에 관한 얘기
- p224 ‘술 약속’에서
제페토의 말처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와서 조금은 나른하고 사소한 것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첫 시집, 한 번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