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 1982년 나는 스물다섯 살이었고, 시카고에 있는 미국 변호사 협회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유일한 소망은 소설가가 되는 일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소설을 썼다. 저녁에 친구들과 모여 대화를 나누다가도 벌떡 일어나 말하곤 했다. 방금 기가 막힌 소재가 떠올랐기 때문에 얼른 집에 가서 글을 써야겠다고.
- 11쪽 `22,613명의 사람들로부터 인생을 배우다`에서

한 라디오 프로의 오프닝 멘트에서 댄 헐리의 『60초 소설가』(류시화 옮김, xbooks 펴냄)을 소개받았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찾아가 인생의 한 부분을 접하고 소설로 옮기는 저자의 실화지요. 인생의 전부를 글로 담을 수 없다면 한 부분이라도 옮겨보자는 말에 혹해 빌려 보았습니다.

읽으면서 크게 지겹거나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소설가를 꿈꾸는 이의 특이한 성공 이야기였으니까요.

저자는 누군가의 삶을 꾸며 적기 앞서 한 가지 철칙을 지킨답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고백하더라도 나는 판단이나 의견을 덧붙이지 않고 그냥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24쪽 `22,613명의 사람들로부터 인생을 배우다`에서

바쁘다 혹은 이상하다는 핑계로 지나칠 법도 한데 저자를 믿고 자신의 삶을 얘기해준 분들도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시련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딴 걸 왜 쓰냐는 비난은 물론이고, 자신 안의 악마가 드러나기도 하고, 유명세로 스트레스를 겪기도 합니다.

나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나를 쳐다보는 모습을 관찰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나 자신도 모르면서, 특히 화가 난 것처럼 내게 눈살을 찌푸리는 여자들과 걸어가면서 ˝안 하겠소˝라는 표시로 등 뒤로 손을 내젓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나는 감상한다.
또한 웃는 얼굴로 ˝아이디어 좋은데!˝라고 말하며 계속 갈 길을 가는 사람들과, 마치 내가 그곳에 없는 것처럼 완전히 무시하는 사람들, 지금 「선타임스」와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사람들이 나를 잊게 될까봐 걱정이 앞선다. 그렇게 되면 이 일은 사업이 될 지도 모른다. 어쩌면 직업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 일에 필요한 자격증이 없다고 경찰이 나를 체포할지도 모른다.
- 144쪽 `인생이 담긴 60초`에서

그럼에도 내외적인 부분을 이겨내고 자신이 즐기는 걸 해내려는 노력, 가상해보입니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긴 소설도 도전했다는군요.

처음으로 60초 소설을 쓴 지 10주년이 되는 기념일이 다가오면서, 나는 지난 10년 동안 줄곧 생각해 온 또 하나의 엉뚱한 꿈을 실현하고 싶었다. 그것은 뉴욕의 고층빌딩 꼭대기에서 하나로 이어진 종이에 글을 써서 빌딩 아래 거리로 천천히 내려가게 하는 것이었다.
- 191쪽 `세상에서 가장 긴 소설`에서
이제 전세계를 돌며 타자기와 통역자를 데리고 삶을 소설로 쓰겠다는 모험을 준비한다네요.

전에 사람들에게 이름을 듣고 진지하게 작품을 써준 분이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60초 소설을 쓰는 저자도 자신이 가진 능력을 충분히, 진지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게 아닐까요?

가볍게 읽었지만 가볍게 볼 수 없는 한 작가의 이야기, 『60초 소설가』, 저자가 우리나라에 온다면 어떤 이야기를 쓸까요? 기대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