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에게 - 십대에게 말 거는 손석춘의 에세이 사계절 1318 교양문고 13
손석춘 지음 / 사계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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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의 순수에게(사계절 펴냄)를 접하게 된 것은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본 서평에 이끌려 읽게 되었습니다. 그 서평이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쳤으리라 생각합니다. 부제목으로 ‘십대에게 말거는 손석춘의 에세이’입니다. 저는 읽기 전에 10대의 다양한 고민과 예찬을 들려주는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예상이 빗나가 버렸습니다. 전에 읽었던 ‘신문읽기의 혁명’의 저자가 썼으니 어떻게 나갈 것인지를 잊고 있었네요.
 
서론은 이쯤에서 하고 책의 목차부터 봅시다.
 
1. 숨겨진 진실 밝혀내기
2. 자기 발로 우뚝 서기
3. 인류의 길로 톺아보기
4. 민주주의 나무 찾기
5. 자아실현의 길 그리기
6. 신문과 TV 짚어 보기
7. 자기 주도 학습 익히기
8. 싱그러운 사랑 배우기
9. 정치 경멸의 정치 읽기
10. 아름다운 집 상상하기
 
이 책에선 주로 ‘톺다’와 ‘고갱이’ 등 순 우리말 표현이 한번씩 나옵니다. 무슨 의미인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톺다【타동사】
(1)(사람이 어떤 곳을)무엇을 얻으려고 샅샅이 훑어보며 찾다.
(2)(사람이 주로 가파른 곳을)오르거나 내려오려고 매우 힘들게 더듬다.
 
고갱이【명사】
(1)[식물] 풀이나 나무의 줄기 한가운데 있는 연한 심.
(2)사물의 핵심이 되는 부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배추 속의 한가운데에서 올라오는 심과 잎. 빛깔이 노릇하고 맛이 달콤하고 고소하다.
 
표현이 참 낯설죠?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이 책의 대상은 당연 10대입니다. 특히 ‘21세기 첫 10년을 10대로 살아간 세대’를 1차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p208
그 세대는 과거 세대와 조금 다른 사회화를 경험했지요. 입시 지옥에 시달리긴 똑같지만, 군사 독재의 야만적이고 획일적 문화에 찌든 경험은 없습니다.
2002년, 2004년, 2008년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10대들은 1987년 6월 항쟁 앞뒤로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2~30대인 1차 독자들은 10대 때 인터넷의 발달로 지식과 정보를 많이 수용하면서 당시 권위주의를 무너뜨리고 시민들의 참여를 더 활발하게 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생각하는 바는 각자 다르나 참여의 열망이 컸던 세대지요. 그렇다고 이후 세대인 지금의 10대를 배려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10대가 되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인생입문서니까요.
 
첫 내용부터 대체적으로 촛불집회를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서 촛불집회를 불편하게 생각하신다면 양해바랍니다.
 
p12
10대가 앞서서 이끈 촛불 시위는 한국인이 창조한 새로운 집회 문화, 표현 문화로 어느새 자리 잡았습니다. 100만 개의 장엄한 촛불 시위를 세계 주요 언론이 아름다운 영상과 더불어 소개했지요. 촛불 든 한국의 10대 스스로 ‘촛불 세대’를 창조해 냈습니다. 세계의 민주 시민에게 촛불 집회는 인류사에서 한글의 독창성 못지않게 한국의 창조적 문화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또한 ‘진보와 보수’라는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진실을 밝히길 권하고 있습니다.
 
p22
우리가 인생의 먼 길을 걸어갈 때 선택해야 할 것은 ‘보수냐, 진보냐’가 아닙니다. 사안에 따라 얼마든지 보수와 진보를 선택할 수 있어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보수냐, 진보냐’ 이전에 ‘거짓이냐, 진실이냐’입니다.
(중략)
더 큰 문제는 진실의 가면을 쓴 거짓에 스스로 속아 거짓을 진실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 숱하다는 데 있습니다. 진실의 가면을 쓴 거짓을 벗기는 게 중요한 까닭이지요.
 
p23
보수와 진보의 틀을 넘어서는 데 고갱이는 진실입니다. 거짓이 진실과 맞서서 그것을 마치 보수와 진보의 시각 차이나 좌우 대결인 듯이 주장하는 사례가 많기에 더 그렇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진실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일, 그 어떤 이데올로기 보다 진실에 충성하는 일, 그것이 청소년이 순수성을 올곧게 지키며 살아가는 첫걸음입니다.
 
이후 내용은 독자에게 어떻게 진실을 찾아 낼 것인지 조목조목 따지고 있습니다. 자아의 직립, 민주주의, 미디어, 학습, 사랑, 정치 등 다양한 주제로 이루어져 있죠.
 
p30
타인이 하라는 대로 행동하는 ‘수동적 자아, 곧 객체로서의 자아’로 살고 싶은가요? 아니면 스스로 결정하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자아’로 살고 싶은가요? 간추리면 me냐, I냐? 선택의 문제입니다. 수동적 사회화에 머물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사회 읽기에 나서야 옳지 않을까요?
p64
많은 사람이 역사가 진보한다는 확신의 근거를 따지거나 발전의 의미를 묻습니다. 소박하게 답하고 싶습니다. 싱그러운 사랑에 더해 사랑답게 살고 싶어 나서는 슬기로운 싸움이라고.
 
특히 민주주의를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 표현한 것은 저에게 큰 신선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역사를 통해 대강 접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설명에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인류가 오랫동안 살았던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라는 실험을 하는 과정이 책 한 권에 들어왔습니다.
 
p72
민주주의는 피를 머금으며 싹텄고 피를 거름으로 자라난 나무입니다. 섬뜻하지만 감출 수 없는 진실이지요. 그 진실을 똑바로 알고 있어야 우리 각자가 민주주의 주체, 촛불 집회에서 노래한 민주 공화국의 주권자로 우뚝 설 수 있습니다. 그때 서로소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소중한 삶이 험한 세상에서 휘둘리지 않게 되겠지요.
 
p75~76
보통 선거권이 정립되는 역사의 전개 과정을 보면 여기서도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어요. 사회주의자들을 비롯해 끊임없이 아래로부터 투쟁이 있었기에 선거권은 확대되었지요. 선거권이 한 차원 더 넓어질 때마다 그 넓이만큼 민중이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투표권, 그것은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의 한 가지인 게죠.
 
그 외에도 수많은 조언들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별로 서술하기에 너무 많아 일부만 서술하겠습니다.
 
p146
대학 입시라는 장벽을 앞두고 있는 현실이지만, 좋은 책을 가능한 폭넓게 읽어 보길 권합니다. 사고의 폭과 깊이가 더해질 때, 학교에서 배우는 우주와 역사, 사회에 대한 이해력도 훨씬 높아집니다. 학교 수업에서 발상의 전환도 가능해지지요.
 
p179
10대는 ‘정치적 이용과 선동의 대상’이 될 수 없듯이 ‘육성의 대상’도 아닙니다. 10대 스스로 선택권을 지니고 자기 결정권, 자기 두 발로 서는 힘을 키워 가야 합니다. 그게 교육이지요. 청소년들의 순수한 촛불을 불순한 시각으로 덧칠하는 것이야말로 낡은 정치적 사고이자 비교육적 행태입니다.
 
이 책을 통해 느낀 건 내용자체가 흔히 생각하는 젊은 선배의 ‘꼰대’기질이 내는 잔소리가 아닌 천금 같은 조언이라는 겁니다. ‘순수에게’라는 제목과 달리 ‘순수’를 버리길 바라는 현실을 조언 형식으로 다루고 있죠.
 
p206
이 책에서 제안한 ‘숨겨진 진실 밝혀내기’에서 ‘아름다운 집 상상하기’까지 열 가지는 인간의 보편적 호기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 열 가지를 10대에 갈무리하면 평생을 심지 굳으면서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뭘 하고 싶은지 몰라 가슴이 먹먹할 이유가 없으리라고 감히 자부합니다.
 
10대는, 10대를 살았던 2~20대는 진보와 보수를 구분 짓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무언가 뻥 뚫리고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촛불은 긍정적인 걸로 여기는 부분에선 독자가 걸러 들었으면 합니다. 촛불은 분명 2000년대를 대표한 이래 2010년대인 지금까지 이어져 온 평화적인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침으로 인한 광기는 다루지 못한 건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를 향해 세상의 진실을 밝히고 주체적인 자아를 실현하라고 주문하는 이 책은 분명 모두가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읽고 나면 한번쯤 성찰하느라 마음이 무거워질 것 같습니다. 알고 있던 세상에 대한 시각을 다시 생각하고 바르게 나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요? 저는 이 책을 좋은 책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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