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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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어느 고3의 명언’이라는 사진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1/2/3 등급은 치킨을 시켜먹고, 4/5/6등급은 치킨을 튀기고, 7/8/9등급은 치킨을 배달한다.’
 
이 사진이 사람들에게 웃음이 아닌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던 건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우리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 ‘치킨’이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는 정은정 씨는 치킨이 우리나라에서 어떤 존재인지, 그 속에 숨겨진 현실을 파헤치기 위해 ‘대한민국 치킨展(전)’(따비 펴냄)을 썼습니다.
 
치킨, 저도 참 좋아하는 데요. 치킨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치킨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들이고 있는지 상세히 기록한 이야기가 ‘대한민국 치킨展(전)’에 담겨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전체 내용을 일일이 나열할 수 없어 여러 부분을 인용하며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장인 『나의 ‘통닭기억’ 투쟁기』는 저를 포함한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습니다. 아버지 세대 혹은 우리 어렸을 적, 통닭에 관한 추억거리가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통닭 혹은 치킨이 우리 역사에 들어 온 것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닭으로 먹을 수 있었던 건 백숙이나 구이뿐이었습니다. 그러다 6·25 전쟁 이후 미군이나 선교사를 통해 미국문화가 급속도로 퍼져나갔는데 시초가 크리스마스에 칠면조구이를 먹는 미국 개신교도의 전통이 퍼지면서 생겨난 것이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당시 칠면조를 키우지 않았기에 대체 수단으로 닭을 골랐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꿩 대신 닭’인 셈입니다. 거기에 7~80년대 치킨 문화가 유입되면서 전기구이로 먹던 통닭을 튀김으로 바꾸게 됩니다. 그러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치킨의 대명사인 ‘KFC’가 1984년에 들어와 환영을 받게 되면서, 지금까지 치킨 생산 업체 간의 무한경쟁체제가 이어지게 됩니다.
 
‘대한민국 치킨展(전)’은 치킨을 튀길 때 쓰는 방식과 역사 등 깨알 같은 지식을 다루고 있습니다. 덕분에 치킨을 먹을 때 ‘이 가게는 어떤 방식으로 튀겼구나.’하는 걸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치킨이 우리 사회에서 미치는 영향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왜 치킨이 끌리게 될까?’부터 치킨을 둘러싼 사회현상까지 읽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또, 정은정 씨는 치킨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면도 같이 다루고 있었습니다. 서문에서 뒷장까지 사이사이에 말이죠.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의 대리점 점주 교육을 밀착 취재한 것은 물론 치킨을 만들기 위한 양계·사료·도계 등에 보이는 대기업의 그림자를 고스란히 담아낸 내용이 한 편의 탐사보도 혹은 다큐멘터리 같았습니다.
 
치킨을 통해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을 담아내려고 노력한 ‘대한민국 치킨展(전)’은 치느님에 빠져 사는 우리에게 주는 ‘트리니티의 빨간약’같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사회현상을 다룬 책에서 전문가의 견해나 당사자의 말을 담다 보니 점점 지루해지는 모습이 보이는데 정은정 씨는 지루하게 보지 않도록 사이사이 익숙한 단어나 이야기를 넣었습니다. 그 점에서 저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책을 내며’에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난 4월,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중략)
그런데 어느 날 진도 팽목항에 놓인 치킨을 보고 말았다. 자녀의 생환도 아닌 주검 수습을 애타게 기다리며 부모들이 차려놓은 부모들이 차려놓은 음식은 치킨, 피자, 과자 등이었다.
(중략)
처음부터 이 책은 ‘치킨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치킨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시작한 것이었다. 치킨을 누가 튀기고 먹는지, 그리고 닭은 누가 키우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p26
‘통닭’이 갖는 추억의 보편성 때문일 것이다. 특히 1990년대 중반의 대학생, 지금은 40대인 사람들에게 통닭이란 일종의 집단기억이다. 지금도 ‘통닭’이나 ‘치킨’을 얘기하는 ‘먹방’이나 음식 기고문에는 천편일률적인 문장이 등장한다. "그 옛날, 아버지가 월급날 사오시던, 노란 봉투에 담겨 있던 통닭 한 마리!" 그리고 한 가지가 더 따라붙는다. "식지 않게 외투 속에 꼭 끌어안고 오시던 통닭!"

p273 ‘양계유감’에서
먹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맛있게 먹고 그걸로 끝인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면서 우리 또한 맛의 지옥에 갇힌 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늦은 시간까지 노동을 하고 그 노동의 고통을 치맥으로 달래다 결국 치킨집 사장님의 삶에서 내 미래를 간보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오늘 한 마리의 치킨과 한 잔의 맥주가 결코 즐겁지만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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