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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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박사 강신주가 시를 논한다?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이란 부제를 달고 나온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동녘 펴냄)’은 두툼한 책 내용에 걸맞게 21편의 시와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에 놀라고, 엄청난 양에 놀랐습니다. 시도 시지만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몰랐고 한번 읽어서는 힘든 내용이 많았습니다. 철학이라는 심오함을 제가 이해하지 못한 탓이겠죠.
 
그래도 좋은 책을 읽게 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는 시와 철학, 둘 다 능통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도전해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 책에서 우리 삶을 조망하는 데 도움이 되는 21개의 봉우리를 만들어놓았습니다. 각 봉우리에서마다 지금까지 접해 보지 못한 삶에 대한 새로운 전망, 각자의 고유한 개성을 내뿜는 다양한 전망들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모든 봉우리마다 머물고 있는 21명의 철학자와 21명의 시인들이 여러분의 산행을 도와줄 테니 미리부터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 p6 들어가는 글 ‘철학의 능선에서 시를 읽다’에서
 
유하는 자본주의의 유혹, 다시 말해 소비 사회의 유혹에 누구보다도 민감했던 시인이었습니다.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라는 시집이 〈오징어〉라는 서시에서 시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겠지요. 오징어를 어떻게 잡는지 들어 보았나요?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깊은 바다로 배 한 척이 나아갑니다. 그리고 갑자기 배 위에 설치된 모든 전등을 일시에 태양처럼 밝게 켭니다. 이것을 보통 집어등(集魚燈) 이라고 부릅니다. ‘물고기(漁)를 소집시키는 (集) 등불(燈)’이라는 의미이지요.
이렇게 해 놓으면 오징어들은 어두운 밤바다에 내리쬐는 이 집어등의 유혹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합니다.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징어들은 미끼를 덥석 무는 것이지요. 시인에게 ‘압구정동’, 그러니까 강남의 화려한 네온사인들은 바로 우리들 자신을 유혹하는 치명적인 ‘집어등’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집 전체를 통해서 유하는 백화점과 쇼윈도의 불빛에 유혹되어 비틀거리는 우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 p123 ‘소비사회의 유혹_벤야민과 유하’ 중 ‘욕망의 집어등!’에서
 
시인의 상처는 현대 사회가, 혹은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서로를 자유로운 주체, 즉 주인으로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통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도 누구 한 사람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바로 대도시인들이 가진 삶의 태도니까 말이지요. 누가 죽든 그 일이 나의 삶에 부당하게 개입만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하나의 건물이 세워지고 또 하나의 건물이 철거되는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태어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죽어 갈 뿐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 p390 ‘인정에 목마른 인간_호네트와 박찬일’ 중 ‘물화의 세계를 넘어 인정의 세계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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