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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타밈 안사리 지음, 류한원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1년 8월
평점 :
어렸을적 지리적 위치를 가르키는 용어들의 본 뜻을 알고 놀란적이 몇 번 있었다.
우리나라의 위치를 나타내는 '극동'은 세상의 동쪽 끄트머리, 오리엔트(동방)는 실은 중동 부근을 가르키는 말인데다가 그 중동이라는 단어마저 '동쪽의 중간'이란 의미라니... (거기가 중동이면 우린..... 아.. 극동이라고 했지...)
어린 내 눈에 세계지도에서 태평양을 품고 가운데 떡 버티고 있는 우리나라의 위치란, 지리용어만 보면 실은 헤게모니를 잡고있는 서방세계의 대서양 중심 질서(지도) 속 변두리 작은 반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이슬람문명권이나 아프리카 역사 같은건 말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다.
세월이 흘러 예전에 비하면 세계사를 좀더 균형감있게, 넓은 시야로 바라볼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여전히 이슬람 문명에 대한 이야기는 안개속이었다. 세계의 가장 큰 근심꺼리중 하나가 되어버린 서남아시아(중동)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은 9.11이후 '대체 왜?'라는 의문과 함께 더 커질수 밖에 없었고 십자군 관련 책을 들춰 보았지만 그것들은 역사의 한 장면에 불과한 이야기여서 현재진행되는 갈등을 이해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이런 중에 찾아들게된 책이 바로 이 책,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다.
이슬람판 '로마인 이야기'
약간 두꺼운 느낌의 책이라 읽기 전에 멈칫하게 되긴 하지만 한 번 읽어보자. 부러 이 책을 찾아들정도의 사람이라면 아마 대부분 중반 이후까지 거침없이 읽어나갈수 있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슬람판 '로마인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데, 역사를 옛날이야기 해주듯 풀어 놓아 양장본이라는 외양에서 받는 선입관과는 다르게 상당히 가볍고 경쾌하게 읽힌다.
무함마드라는 이슬람의 시조, 그리고 그의 후손들과 추종자들, 정치적 야망가들과 게으른 집권계층, 유럽이나 훈족, 몽골족같은 제3세력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장장 1500년이라는 대서사시를 써 온것이 바로 이슬람의 세계사다. 때로는 드라마틱하고 때로는 비극적이며 더러는 통쾌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낯선 세계의 이야기지만 결국 인간의 이야기이기에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읽으면서 특이했던 것은 이슬람권에서는 유럽 따위(?)는 그 존재만 알고 있었을뿐 거의 신경쓰지 않았다는 점.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은 이미 쇠락하여 흔적만 남은 상태고 유럽은 야만인들이 거주하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당시(로마제국 이후 ~ 중세까지) 상황을 보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니어서, 이 이야기는 유럽중심주의에 경도된 세계관에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는 흐르고.. 결국 유럽은 이슬람의 운명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는다.)
종교와 세속 사이
책이 중반 이후로 가면 이야기의 속도는 뚝 떨어진다. 중세까지는 자료의 제약도 있었겠지만 긴 역사를 함축하다보니 인물과 사건의 흐름 위주로 진행되는데 반해 중세를 넘어서면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는 외부세력과의 충돌문제 뿐 아니라 이슬람세력의 내부 분화와 갈등에 초점을 맞춰 진행된다. 아무래도 학자나 정치인, 종교인의 이름과 엇갈리는 사상과 주장 등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나같은 이방인에게는 아무래도 조금 흥미가 떨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마냥 무시하기도 어려운 것이, 이러한 이슬람 내부의 갈등과 분화는 지금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이슬람 세계에 대한 이해와 연관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듣는 이슬람 관련 뉴스들(무장단체, 테러, 지하드, 헤즈볼라, 시아파, 순니파....)에 대한 것들이 결국 이러한 이슬람의 갈등 속에서 싹튼 것이다. 물론 그게 갈등을 제공한 전부는 절대 아니지만.
이슬람권의 사회변화중 흥미로운 것은 세속화와 관련된 것이다. 하루에 5번씩 기도를 하고 생활의 모든 부분이 이슬람 규칙에 의해 규제/규정되는 사회에서 과연 근대적인 시민사회가 성립할수 있을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지만 그러한 노력들이 계속되어 왔다는 점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한편 그러한 사회변화는 당연히 갈등과 분쟁이 야기시키는데 서구사회가 그들의 탐욕을 채우기위해 이 갈등을 부추기고 이용해 먹은 사건들도 자주 언급된다. 결국 그러한 사건들은 이슬람사회가 자연스럽게 서구사회에 적대적이 되고 나아가 9.11사태까지 낳게한 원인이 된다.
왜 이슬람은 세계사에서 숨어버렸는가.
유럽은 대항해시대와 새로운 발견, 산업혁명 등으로 중세이전의 야만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결국 세계사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반면 선진문명을 가졌던 이슬람권은 세계사 전면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러다 결국 유럽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고 지금 현재 세계에서 가장 불안하고 고통받는 지역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인도네시아 같은 예외는 있다)
이 과정에서 안타까운 일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서구의 식민지배, 러시아 혹은 소련의 남하를 막고 석유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서구 열강들의 거짓말과 계략, 이스라엘의 건국과 연이은 아랍의 패전, 정치불안, 전근대적인 왕조들의 질긴 생명력과 국민의 정치참여 배제, 정교일치세력의 집권과 몰락 등등....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 는 말이 이처럼 적절할수 있을까? 한때 세상의 선두에 선 것처럼 보이던 문명은 결국 축복같아 보이는 오일머니마저도 소수 왕족의 호주머니만 채우고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석유때문에 벌어지는 분쟁에서 목숨만 잃는 결과를 낳았으니 말이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 이 책은 9.11사태 이후 사람들의 이슬람에 대한 관심 덕분에 나오게 된 책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슬람이 단지 무장폭력세력이 아님을, 한때 찬란한 문명을 이뤄냈으며 화합과 평화와 관용의 정신이 그렇지 못한 세력과 갈등을 빚고 때때로 이기기도 지기도 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온 아주 평범(?)한 종교이며 문명임을 드러내고 있다. 비이성적인 테러로 치자면 식민지 경영, 십자군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들이 뒤질리는 없고, 어느 문명이든 일부 극단을 보기보다는 전체를 보는 시야가 얼마나 중요하며 필요한 것인지 은근하게 전달해 주는 책이다.
이슬람 이야기가 가득이지만 한국인의 눈으로 본 '진짜'세계사를 위해서도 이 책은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