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같은 사회 분위기로는 '경쟁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나온다면 깨나 팔릴듯 한다. 최소한 내가 나고 자라는동안 '경쟁'이 주변을 떠난 적이 없었지만, 그리고 아마도 인류 역사 내내 그랬겠지만 요새 유난히 '경쟁'에 대한 잔소리를 자주하고 자주 듣게 하는 일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나는 가수다'라는 기획이 돋보이는 TV프로그램이었다. 한 달 밖에 안된 이 프로그램의 이력과 운명에 관한 내용은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알것이다. 그러한 어지러운 일이 아니었더라도 화제꺼리는 충분한 프로그램이었다. 중견가수들을 모아 놓고 노래를 경쟁시켜서 매 번 꼴등을 탈락시키는 프로그램 방식에 대해 일부 가수와 시청자는 비판을 했고 일부는 선작용에 대해 칭찬을 했다. 특히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것까지 경쟁을 시키는 사회가 슬프다며 '경쟁중심', '남을 눌러야 내가 사는 삶의 방식'이 깊이 체화된 현실을 드러내는 일이라고까지 말했다.
칭찬을 하는 쪽에서는 '경쟁'없이 가수들의 이런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겠냐며 아이돌만 가득했던 방송에서 제대로된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평들을 주로 내 놓았다. 

마침 이와 동시에 인기몰이를 하던 다른 프로그램도 간간히 언급되고 있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가수'와 같은 방송사의 신인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인 '위대한 탄생'이 그것이다. 
이 프로그램 역시 오디션인만큼 '경쟁'이 그 핵심이고 '노래'라는 예술적 가치를 점수화, 서열화한다는 점에서 '나가수'와 동일한 쟁점을 불러올수도 있었다. 하지만 앞의 그것에 비하면 비판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경쟁의 강도는 헐씬 치열하지만 어떤 이유에 의해서 '경쟁'이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받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결정적으로 KAIST의 징벌적 등록금제.  소속 학생이 연달아 4명이나 자살하는 바람에 갑자기 주목을 받게된 문제다. 성적이 3.0이하인 경우 0.1점 마다 얼마씩 징벌적 성격의 등록금을 부과한다는게 이 제도의 핵심인데 걷힌 돈이 매년 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걸로 봐서 상당히 까다로웠을것이라는 생각이든다. 하고싶은 공부보다 점수따기 위한 공부, 거기에 100% 영어수업등 압박요소가  한 둘이 아니었던데다가 나름 수재들이 모인 학교이다보니 경쟁에서 이기기만 해왔던 학생들이 열패감에 충격을 받는 정도 또한 작지 않았을듯 하고. 

경쟁이란 무엇인가 
위 3가지의 경쟁프로그램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사실 '경쟁'이란 키워드로 이렇게 한데 묶어놓기도 어색할만큼 다르다. 목적도, 형식도, 의도하는 최종 결과도 다 다르다. 그러고 보면 경쟁이란 '남과 겨룬다'라는 핵심 요소를 빼면 함부로 같은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되는 가치인것 같다. 인터넷 국어사전으로 '경쟁'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니 반대말로 '독점'이 소개된다. 다분히 경제  위주의 내용이다.   이런..나는 경쟁의 반대말이 '나눔'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대말끼리 반대말이 되는 상황이라니.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면 '경쟁'에 '좋다','나쁘다' 라는 가치를 두기는 어렵다. 다만 경쟁을 어떻게 운용하는가만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때와 장소, 목적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을 적절히 고려한 경쟁만이 '필요한 것'이며 '그래야만 하는 경쟁'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가수'와 '위탄'은 상대적으로 심각하게 논할 문제는 아닌것 같다. 시청자들에게는 물론이고 참여자 자신들에게도 일시적 이벤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배려하기에는 프로그램의 영향이 너무 작고 짧다.  차라리 내 직장의 실적평가 시스템이 더 문제다.  크...... 

반면 카이스트의 서남표식 경쟁은 그 영향이 치명적이고, 이해가지 않는 점도 많다. 그건 경쟁이 아니라 차라리 이전투구라고 부르고 싶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돈과 수치심을 수단으로 학문을 도야하라고 하는 것인지 전혀 이해가 안된다. 모든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통섭이 중요해졌고 자율적인 사고방식으로 협력적으로 활동하지 않고는 이룰수 있는 학문적 성과는 없다해도 과언이 아닌데 타율과 비협력으로 학점만 따는 기계를 만들어서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상대평가였다고 하니 동료와의 협력은 불가능하고 서로가 서로를 골방으로 밀어넣는 시스템 아닌가!  하다못해 돈에 죽고 돈에 사는 비지니스세계에서도 금전적 보상이 성과를 높여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상식이 되고 있는 판에....  서남표 총장은 그냥 강남이나 분당 어디쯤 있는 입시학원 원장이나 하면 딱일듯 하다. 아니면 경마장 기수나 하던지. 짐승은 먹이주고 채찍질한 만큼 달릴테니 말이다. 

 

흔히 일곱빛깔 무지개라고 하지만 실상 무지개에는 7가지 색의 경계는 없으며 일일이 구분할 수 없는 여러가지 색깔이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나는 '경쟁'에도 이러한 층위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 편의상 몇가지 경쟁을 뚜렷이 구분하여 이야기할 수도 있고 '이정도면 빨강이다', '아니다 여기서부터는 주황이다' 라며 의견이 분분할 수는 있다. 하지만 분명한건 빨강이나 보라를 벗어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보이지 않거나 내 몸을 상하게 할 뿐이다.

나의 진보 이전에 남의 퇴보를 기대하게 하는 경쟁,
성취감보다 자괴감이 먼저 드는 경쟁,
사람이 죽어나가는 경쟁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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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04-1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쟁'의 반댓말이 '독점'으로 나온다니. 그것 참 씁쓸하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경쟁이란 무엇인가'란 책이 나오면 제법 팔릴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 달면서 생각해보니, 직접 한번 써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귀를기울이면 2011-04-12 17:38   좋아요 0 | URL
무한 경쟁의 끝은 결국 독점인데 세상은 그런걸 은폐하고 싶은가보더라구요.

칭찬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