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짜증나게 더운 퇴근길이었다. 이 놈의 2호선은 왜이리 후텁지근한거야? 땀이 줄줄 흐르네. 어라? 아예 방송으로 노후차량이라 냉방이 나쁘다고 아예 대놓고 공지를 하네. 더우면 다음꺼 타라고? 참내... 다음건 시원하다는 보장은 있나...
가뜩이나 불쾌지수가 높아 짜증이 나는 참에 옆에 앉은 사람, 전철에서 비지니스를 하는지 연신 큰소리로 통화를 한다. 가만히 들어보니 날씨 이야기에 누가 누구를 만났느니, 언제 또 만나느니 어쩌구 저쩌구... 전철이 떠나가라 큰소리로 광고중이다. 중요하거나 급한 내용도 아니구만 정말 짜증에 짜증을 더하는군. 자제하라고 한마디 해줄려다가 결국 전화를 끊길래. 가만 있는다. 근데 바로 다른데 또 통화를 하네...으으으~~ 벌써 몇번째야. 도저히 못참겠다!
"야이 멍청아! 통화 좀 조용히 해!"
드디어 성질이 폭발하고 말았다.
그 인간 귓구멍에 대고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이 사람 잠시 벙찐 표정을 짓더니만 바로 짖어댄다.
"뭐라고? 이양반아! 어디다대고 멍청이래? 미쳤어?"
"안미쳤거든요. 전화를 하도 시끄럽게 하니까 좀 조용히 하던지 내려서 하든지 하라고요!"
"전화를 해야 할 사정이 있으니까 하는거지 니가 뭔데 하라마라 지랄이야! 다들 가만있잖아! 그리고, 내가 욕했어?"
"당신이 전화 큰소리로 하는게 당신 맘이면 나도 고개 옆으로 돌리고 크게 소리지르는거 내 맘입니다. 아, 저는 '멍청이'라고 말한데다가 당신 귀에 가까이 대고 소리쳤으니까 나쁘다고 하는건가요? 그럼 한 5cm떨어져서 소리치면 돼요? 10cm? 20cm? 아니면 가까이서 소리지르더라도 20데시벨이나 30데시벨 넘지 않으면 되나요? 기준이 뭔가요? 기준이 있다한들 누가 줄자랑 소음측정기 가지고 다니면서 판단하나요? 아니죠. 기준은 상식이죠. 상식을 벗어났는지 아닌지. 내가 보기에 당신은 상식을 한 참 벗어났고 그걸 알려줄려고 나도 어쩔수 없이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했죠. 하지만 당신이 당신 행동을 당신 자유라고 생각한다면 나도 당신 욕을 하든 소리를 지르던 내 자유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당신의 말이 당신의 행동과 모순된다는 걸 아직 인식 못한것 같네요. 자기 입에서 나는 소리는 자유라면서 남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지랄'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멍청이 맞네요. 그러니 내 말은 욕이나 비난이 아니라 당신의 비밀을 누설한 것 뿐이군요. 당신이 멍청하다는걸 널리알려 망신을 준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전 이만 내릴역에 다왔군요. 다신 전철에서 안만났으면 좋겠네요. 잘 가시든지 말든지.."
이렇게 내 말만 속사포처럼 쏘아대고는 어느 역인지도 확인할 틈 없이 내려버렸다. 집에는 좀 늦게 가겠지만 나는 다음에 오는 냉방 잘되는 전철에서 시원하게 남은 길을 갈수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며 옆사람을 다시 쳐다본다.
아직 통화중인데 계속 듣고 있자니 뭐 참아줄만하다.
그래 참자.
이어폰끼고 참자. 만물의 영장, 고등동물이자, 정의와 예의를 고민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고작 약간의 온도상승과 습도에 이리저리 휘둘리면 쓰겠는가. 호통치는 상상만으로 만족해야지.
이렇게 내안의 하이드(음.. 알라딘에서 많이 보던 이름?)는 기 한번 못써보고 잠들고 말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