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지난 일이긴 한데 작년 여름 그리고 가을에 서로 다른 모임에서 같은 말로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1.작년 여름 모임.   

간만에 대학선배와 동기가 함께 저녁자리를 갖던 중이었다. 그 선배는 다니는 회사에서 주로 고객과 직접 대면을 할 일이 많아서인지 몰라도 말이 좀 많았다. 학생때부터 그러긴 했지만..  한 잔 두 잔 주고 받으며 회사일은 어쩌고 저쩌고 집안 일은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가 오가는데 흔한 질문 하나가 들어 왔다.  

"잘 하고 있냐?"   

가정 일이었는지 회사 일이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암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는데  대뜸 그는 버릇대로 내 뒤통수를 한 대 치며 말했다. "최선을 다하는건 필요 없어. 잘 해야지" 그 선배는 회사 후배들도 그렇게 키우고 있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 자신이 잘나가고 있는게 다 그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건 그거고 왜 때리고 ㅈㄹ이야 간만에 봤어도 그 버릇은 여전하네...) 하여간 우린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막판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의견 차이로 서로 말이 많아지면서 흐지부지 모임을 끝내고 말았다. 
 


2. 가을 회사 회식  

프로젝트가 막바지로 흘러가던 시기 회사 회식자리에서였다. 간만에 만난 차장님이 수고 많다며 건배를 권하고 마시며 대화하는 도중 나에게 이런걸 물어봤다. 바빠서 집에 있는 시간도 별로 없는데 (가족은)어떠냐고. 역시 나의 대답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였고 그순간 여름때와 같은 소리를 듣게되었다.  

"짜식아, 최선이 아니라 잘 해야지. 최선만 다하면 뭐해? 잘해야 결과가 좋은거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선배나 상사는 위계질서가 중요시 되는 우리 사회에서 나에겐 권력자이고,  별것도 아닌 내용을 그런 지위에서 오는 권력을 남용해가며 나에게 강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잘 한다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의 하위개념 아닌가? 잘하는 사람에게는 최선을 다하라고 할 수는 있지만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더)잘하라고 할수는 없는 것 아닌가? 

 

어찌보면 말장난이다. 그들이 의도한바는 잘못된 방향으로의 질주보다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소걸음이 더 낫다는 뜻일수도 있다. 뭐, 나는 방향을 찾는 일도 최선을 다하는 일의 범주에 넣었으므로 여전히 그들의 조언을 조언으로 인정할 수 없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준비하지도 않고 무작정 달음박질하는 걸 최선을 다한다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것, 자원(인적,물적,시간적)을 낭비하지 않는 것, 무엇보다 돌아보았을때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  이러한 지향점들을 바탕으로 깐 후에 '잘하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막무가내로 잘하라는 조언을 하는 건 '실적만 채우고 살살해라'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릴 뿐이다. 매일 하던 일을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잘하는 것은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물론 자기 전문인 일에 한해..)

 

쓰고보니 MBc가 생각난다. 아마도 그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가 온힘을 다하고 있는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것이 비극인 이유는 그이가 자신이 무엇을 해야 옳은 것인지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것 같다는데 있다.  가장 무서운 직장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열심히 하는 사원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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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7-06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과지상주의의 한국사회를 보는것같아 좀 씁쓸하네요.
아마 그분들은 그 대사와 행동이 윗사람으로서의 당연한 자세라고, 그래서 해야한다고 생각해서 그랬을수도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