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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무엇인가 - 진정한 나를 깨우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철학 에세이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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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엊그제 직장 동료와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직장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의레 나오는 말은 다른 동료에 대한 이야기다. 대화의 요지는 이렇다. A라는 사람과 본인과는 관계가 매우 좋다고 했다.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일을 할때 딱히 그 사람의 단점을 찾을 수 없다. 그에게 A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A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가는 많이 다르다. A는 앞 뒤가 꽉 막힌 고집쟁이에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윗 사람에게도 아랫사람에게도 인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A의 정체가 뭔지 헷갈린다고 했다. 나를 대하는 태도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것이다.

어떤 모습이 A의 진짜 모습일까? 히라노 게이치로는 그의 "나란 무엇인가?"에서 모든 것이 A의 진짜 모습이라고 말한다. A를 좋다고 말하는 사람과 있어서는 그 사람에 맞는 A가 있다. 그리고 A를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또 다른 A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히라로 게이치로는 "분인"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인간이 언제나 수미일관하며 나눌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상대에 따라 가변적이라는 주장이다.

"얌전하고 평범했던 학생이 범죄를 저질렀는데, 인터넷에 올렸던 끔찍한 내용의 블로그나 글이 발견되면 메스컴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게 바로 그의 정체인 양 요란하게 떠들어 댄다. 사실은 이런 인간이었다, 그런데 왜 못 알애챘느냐고."(71쪽)

위의 예는 우리 주변에서도 무수히 많다. 한 사람, 한 개인에 대해 한 가지로 정의하려고 하면 위와 같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그 학생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분인의 개념에 의하면 학생이 이해된다. 얌전하고 평범한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하나의 분인일 뿐이고, 인터넷에 글을 올린 학생은 인터넷에서의 그 학생의 분인일 뿐이다. 자신이 마주해야 하는 상대에 따라 그 성향이 달라질 뿐이다.

분인의 개념에서 접근하면 우리가 직장이나 사회에서 흔히 접하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 사람이 싫다면 그 사람과의 분인을 줄여나가면 된다. 물론 그 사회생활에서 그 사람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기는 어렵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분인보다 비중을 낮추면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만날때는 다른 사람과 만날때의 분인으로 그를 대하면 된다. 결국 내 안에는 언제나 여러 분인이 존재하므로 혹시 분인 하나의 상태가 나빠져도 다른 분인을 발판으로 삼으면 된다. '이쪽이 안 되면 저쪽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러는 중에 여유가 조금 생기면, 상태가 나빠진 분인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된다.

사실 "분인"이라는 개념이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개인이라는 1개의 관점으로 자신의 모든면을 바꾸려고 하면 어렵다. 그러나 한 사람을 분인이라는 개념으로 잘게 쪼개고 문제가 생긴 분인을 해결하는 것은 쉽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작은 한 부분만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생소한 경험을 했다. 집에서는 소심하고, 말도 안 듣는 아이인데, 학교에서는 전혀 소심하지 않고, 선생님 말을 잘 들을 뿐만 아니라 교우 관계도 매우 좋다는 것이다. 한 사람을 한가지 관점으로 바라볼 때는 아이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가 의심스럽다. 그러나 분인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아이는 학교에서의 분인, 그리고 가정에서의 분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분인이 아이의 마음속에는 있는 것이다. 분인이라는 개념 덕택에 아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분인의 모델에는 자아니 진정한 나니 하는 중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그때 큰 비율을 차지하는 분인이 있다"(115쪽)

"나는 초등학교 무렵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중학생이 되자 어머니가 운동회 구경을 오는게 갑자기 싫어졌다. 나 뿐만이 아니다. 동급생들은 대체로 다 그렇게 말했다.

나는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었고, 반 친구와 죽어라 기마전을 하는 모습을 어머니에게 보이기는 더더욱 싫었다. (중략) 나는 역시 부모와의 분인과 친구들과의 분인이 섞여버리는게 싫었던 것이다. 친구와의 분인에 최선을 다하고 싫어도 어딘가에서 부모가 지켜보고 있다는의식이 그것을 방해하고 만다. 집에와서 '집에서는 못 보던 표정을 봤네'라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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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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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한때 유행했던 영화 대사이다.

저자는 책에서 수치심은 본인의 잘못이나 결함에 대한 타인의 지적을 받아들이면서 느끼는 부끄러운 감정이고, 모욕감은 상대방이나 나를 대하는 방식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 화가 나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수치심에는 죄책감이나 미안함이 섞일 수도 있지만 모욕감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모욕감을 유발한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서 분노나 원한 같은 감정을 갖게 된다.

그럼 모멸감은 뭘까. 모멸은 모욕과    경멸의 의미가 함께 섞여 있는 단어라도 말한다. 모멸은 수치심을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이다.

"모멸은 정서적인 원자폭탄이라는 비유가 있다"


모멸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폭력이며, 평생을 두고 시달리는 응어리를 가슴에 남기기 일쑤다.억울하게 수모를 당했다는 피해의식은 다른 집단에 대한 맹렬한 공격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멸감에 대해 다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타인으로부터 내가 받는 모멸감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타인에게 가하는 모멸감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하다.

그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이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어떤 일에 좌절했거나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 빨리 극복할 수 있다. 그것을 가리켜 '회복탄력성'이라고도 한다.

"비교 속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그것을 인정받는 게임에 몰두하다 보면, 행복과 불행의 양극을 오가는 진자운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그렇다고 모든 것을 개인에게만 맡겨 둘 수는 없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 주는 사회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들, 억지로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다.

내가 못한 모습을 드러낸다 해도 수치스럽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뒷담화를 하지 않으리라고 믿을 수 있는 신뢰의 공간이 절실하다. 그를 위해서는 자신과 타인의 결점을 너그러우면서 서로를 온전한 인격체로 승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258쪽)

"자신을 아는 것은 자신을 드려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열린 마음과 가슴으로 듣는 신뢰할 만한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을 스스로 들으면서 우리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서로의 삶을 인정하고, 서로의 입장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상처되지 않는 그럼 삶을 살아야지!!


인간은 목숨을 부지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을 원하는데 바로 존재감이다(62쪽)

개인주의는 여러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매긴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141쪽)

소통에는 정성이 중요하다. 정성이란 몸과 마음이 함께 있는 것이다. 지금 몸으로 함께 있는 사람이 내게 온 마음을 기울여줄 때 자신의 존귀함을 느끼게 된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사소한 부주읫가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로 받아들여져 섭섭한 감정을 자아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186쪽)

사회학에 "예의 바른 무관심"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공공장소에서는 신경을 끄는 것이 배려인 경우가 많다(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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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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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겨레 신문 구독자다. 언젠가 부터 신문에서 판사가 쓰는 소설이 연재되기 시작했다. 파산과 관련하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거의 한 면을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던 탓에 몇 줄 읽다가 포기했다. 판가사 할일도 많을 텐데, 혼자 쓰는 소설도 아니고 신문에 연재까지 하다니 참 특이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문유석 판사에 대한 첫 대면이다.

아이들과 함께 금산에 있는 지구별그림책마을이라는 곳에 갔다. 그곳에서 문유석 판사를 다시 만났다.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을 통해서 말이다. 책 표지를 감싸고 있는 띠지에 손석희 JTBC 앵커의 소개글이 나를 사로 잡았다.

"나는 문유석 판사 생각의 대부분과 그의 성향의 상당 부분이 나와 겹친다는 데에 경이로움까지 느끼면서 이 책을 읽었다. 이러면 훗날 내게 기회가 오더라도 이런 책은 쓸 필요가 없게 된다. 이 책이 그냥 그런 많은 책 속에 묻히지 않기를 바란다"


책을 넘겼다. 그의 삶에 대한 고백으로 책을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이 회식이고 등산이다고 고백한다. 단합을 도모한다는 직장 체육대회나 등산이 개인 시간인 주말에 개최되는 것을 치가 떨리게 싫어하고, 회식때 돌아가는 잔에 장단에 맞춰서 취한척 연기해야 하는 현실도 싫다. 그러나 그는 어렷을적부터 타인들이 원하는 연기를 잠시 해주면 내 자유가 더 확보된다는 걸 일찍 깨닫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잘해냈다. 서울대 법대에 합격하고 판사까지 되었다. 성공적인 인생이다.

그런 그가 개인주의자를 선언했다.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는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23쪽)"고 주장한다. 그가 생각하는 전근대적 집단주의 문화는 무엇인가? 그리고 합리적 개인주의는 어떤것인가?

그가 판단하는 우리사회는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기본적으로 군대 모델이 바탕에 깔려있다. 상명하복, 집단 우선이 강조되고 개인의 의사나 감정 취향은 무시되는 사회다. 그러나 그는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끈 엔진은 '개인주의'라고 주장한다. 서구에서 수입된 민주주의는 사회계약이고, 우리 헌법 질서의 근간도 같다는 것이다. 여기서 개인주의가 유아기적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와는 구별되어야 함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 개인주의가 왜 중요한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목적이고 나머지는 방편이다. 그러나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개인은 배제되고 집단이 우선시된다. 개인의 행복은 점점 멀어져가고 집단의 발전을 위해서 개인은 희생되어야 한다. 그리고 집단내에서 인정받기 위해 치열한 투쟁이 벌어진다. 그러면서 모두들 경쟁할 뿐 행복은 얻지 못하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세상은 행복하다. 그래서 합리적 개인주의는 우리가 삶의 중심에는 내가 있어야 한다. 내가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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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버, 제주 바다를 걷다 - 2016년 환경부 선정 우수환경도서
강영삼 글.사진 / 지성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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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렀던 바다와 그들의 역습
(다이버, 제주 바다를 걷다)

우리 바다가 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수온은 점점 올라가고, 이제 거의 아열대 바다가 되어버렸다. 해양생태계의 황폐화는 하루 이틀 듣는 소리가 아니다. 이젠 그런 말을 들어도 무감각하다. 그래서 더 무섭다. 일상에서의 해방과 힐링을 위해 ‘제주도 푸른 밤’을 외치며 떠나던 제주도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제주 지역신문의 해양탐사대가 서귀포시 남원읍 일대 바닷속을 탐사하고 그 결과를 보도했는데, 그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고 했다. 토사와 나무 등 육상 폐기물이 바다 아래 가득했다. 폐타이어와 로프, 폐콘크리트 덩어리들은 높게 쌓여 수중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었다. 제주 바다 어디에서나 흔하디흔했던 톳이나 보말, 소라도 이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제주도 바다의 황폐화는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굴 속 바위 천장에 붙은 박쥐처럼 적자색 연산호가 수없이 매달려 있던 곳이다. 그리고 바닥의 자갈까지 세세히 보이는 맑은 물에 청색으로 물든 멸치 떼가 가득했다. 전갱이, 자리돔 그 뒤로 방어, 돌돔과 청소새우 등 수많은 해양생물들이 스쿠버다이버의 눈 앞에서 헤엄치며 놀았다. 「다이버, 제주 바다를 걷다」의 저자가 불과 3년 전인 2013년 9월 28일에 잠수하며 바라 본 형제섬 앞 바닷속의 모습이 그랬다. 제주 바다를 수년 간 잠수하며, 직접 손으로 써 내려간 기록과 사진이 담긴 8년 동안의 잠수일지를 모은 책이 바로 「다이버, 제주 바다를 걷다」이다. 이 책은 아름다운 제주 바닷속을 오롯이 간직하기 위한 그의 노력이다.

흔히들 바다는 어머니와 같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에게도 바다는 어머니와 같다. 특히, 제주도 바다는 더욱 그렇다. 서귀포 항구 가까운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서귀포 바다와 함께 보냈다. 어머니 손을 잡고 바닷가에 나가던 기억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잊을 수 없는 어머니의 따뜻함이 바다에서 느껴졌으리라. 그에게 제주 바다는 추억이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이 책이 그렇고, 그가 지은 또 다른 책 「우리 어멍 또돗한 품, 서귀포 바다」에서 그의 간절한 소망이 뚜렷하게 보인다.


제주 바다의 황폐화는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2005년 지귀도 앞 바닷속에서 해송과 연산호를 바라보며 그는 생각했다. ‘먼지들이 일순 피어오른다. 안타깝다. 인간이 고기를 죽이는 것 섬 위의 낚시꾼도 그렇고 매일 반찬으로 생선을 먹는 나이지만, 이런 곳도 앞으로 몇 십년(몇 년)이나 갈까 생각하면 저절로 드는 생각이다.’ 화려한 형용사 하나 없이 담담하게 던진 말이지만, 절절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에게 제주 바다가 사라진다는 것은 바닷속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것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에게는 유년시절 어머니와의 추억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는 사라지는 제주 바다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가 제주 바다의 환경과 미래를 아우르는 책을 써주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의 추억과 경험을 통해 아름다운 바다의 보존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바다 환경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추억을 지키는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양환경 오염, 생태계의 교란이 우리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사례가 있겠지만, 해양 미세 플라스틱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5mm이하의 아주 작은 플라스틱이 미세 플라스틱인데, 바다 생물들은 이 미세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해 먹고 있다. 플라스틱을 먹은 바다 생물을 큰 물고기가 잡아먹고, 그 물고기를 그 보다 더 큰 물고가가 잡아먹는다. 이런 먹이사슬을 통해 미세 플라스틱은 우리 인간의 몸속까지 들어오게 된다. 차곡 차곡 우리 몸에 쌓인 미세 플라스틱은 유해화학물질을 내뿜으며 결국 우리 몸을 파괴해 버릴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해양오염의 인간에 대한 역습이다. 더욱 걱정해야 할 것은 그들은 역습에 사용되는 공격 수단을 너무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수온상승,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로 인한 바다 산성화,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미세 플라스틱을 포함한 해양 쓰레기. 안타깝게도 그 무기들은 모두 우리가 그들 손에 직접 쥐어준 것들이다.

우리는 이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까. 너무 상식적이어서 말하기 우습기까지 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모두 방법을 알고 있다. 해수욕장에 가서 쓰레기 되가져오기, 낚시할 때 뒷정리 잘하기 등은 아주 작은 일이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지킬 수 있는 일이다. 바다를 터전으로 삼는 분들은 어망이나 배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바다에 버리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해양생태계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해양에 배출되는 폐기물을 엄격히 통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그것들이 잘 준수되고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감독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아는데서 끝났다. 행동이 아닌 머리로만 어렴풋이, 그리고 소극적으로 해양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미룰 수 없다. 적극적인 실천이 필요할 때다. 수십년이 지난 후에도 이 책 속에 담긴 아름다운 제주 바다를 계속 볼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노력에 달렸다. 우리의 후손으로부터 빌려온 아름다운 우리 바다를 온전히 그들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우리들의 의무이자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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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도 이야기 - 인류 최초로 바다의 시공간을 밝혀낸 도전의 역사 데이바 소벨 컬렉션
데이바 소벨 지음, 김진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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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만든 두꺼운 안대를 벗어라

- 시골뜨기 시계 수리공 해리슨의 경도 이야기 -

 

세상의 모든 편견, 고정관념을 거부한다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요즘에 내가 가장 즐겨보는 TV프로그램이다. 음악쇼라는 수식어답게 노래 좀 한다는 연예인 2명이 노래를 하고, 판정단 99명의 투표로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여기까지는 다른 음악 경연 프로그램과 유사하다. ‘나는 가수다도 그랬고, ‘불후의 명곡도 그랬다. 하지만 복면가왕만이 가진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복면이다. 노래하는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쓰고 정체를 감춘 채 노래를 한다. 뛰어난 가창력으로 잘 알려진 장혜진과 신효범도, 웃기기만 할 것 같던 김영철과 고명환도 모두 가면 뒤에 얼굴을 감춘다. 누구나 평등하게 같은 조건에서 노래한다. 오직 노래로만 승부한다.

 

가면 속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니 당연히 노래 자체에만 집중하게 된다. 인기 걸그룹이 나왔을 때의 흥분도, 트로트 가수가 나왔을 때의 시시함도 복면가왕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가면 속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만 들릴 뿐이다. 이런 이유로 갓 데뷔한 신인 걸그룹 멜로디데이의 여은이라는 가수가 한 가창력 한다는 가수 이정을 이기고 가왕에 등극할 수 있었다. 가수가 아닌 홍지민도 두 번씩이나 가왕이 될 수 있었다. 수많은 전업가수들이 가수가 아닌 사람들에게 노래로 무너지는 짜릿함을 안겨 주었다. 노래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유명가수의 권위에까지 도전하는 이 프로그램, 내가 복면가왕을 즐겨보는 이유다.

 

현실에서 고정관념, 편견을 버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권위에 대한 도전은 더욱 어렵다. 자칫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놔야 하는 경우도 많다. 현재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랬다. 데이바 소벨이 지은한 외로운 천재 이야기, 경도15~18세기 대항해시대 유럽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로 꼽혔던 경도 측정법을 알아내는 주인공 해리슨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겉으로는 해리슨이 경도 측정을 위해 해상시계를 만들고, 그것을 검증받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경도 문제 해결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천문학이라고 믿는 당대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극복하고,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진정한 주제다.

 

대항해시대, 경도의 의미

 

지구상의 위치는 위도와 경도로 표시된다. 세종시의 위치를 경위도로 표시하면 북위 3648, 동경 12727분정도 된다. 이 경위도는 어떻게 측정했을까. 먼저 위도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하늘 위에 떠 있는 북극성 고도를 재면 그 고도가 바로 관측자 본인이 서 있는 곳의 위도가 된다. 다시 말해, 세종 밀마루 전망대에서 북쪽을 향해 서서 지평선으로부터 3648분만큼 고개를 들면 북극성이 보인다. 하지만 경도를 측정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지금이야 하늘 위에 수십 개의 인공위성이 떠다니고 있어 스마트폰만 켜도 현 위치의 경도를 쉽게 알 수 있지만, 18세기 이전만 해도 경도를 측정하는 것은 시대의 난제 중 하나였다. 경도를 알 수 없음으로써 겪어야 하는 고통은 엄청났다.

 

대항해시대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땅을 정복하거나 탐험하기 위해, 전쟁을 위해, 또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황금과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항해를 떠나는 배들이 점점 많아졌다. 하지만 선장은 자신의 배 위치를 모른 채 항해를 해야 했다. 각국의 막대한 인명과 재산이 바다 위에서 길을 잃고 떠 있는 셈이다. 항해 도중 갑자기 목적지가 불쑥 나타나는 일이 흔했다. 당대의 최고 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바스코다가마, 마젤란 등도 예외 없이 바다에서 길을 잃곤 했다. 1707년 영국남서부 근해의 실리 제도에서 발생한 영국 전함 4척의 좌초사고는 2,000명 가까운 생명을 앗아갔다.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바다 위를 헤매다 항해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괴혈병도 창궐했다. 무수한 선원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모든 일들은 바다 위에서 자신의 위치, 즉 경도를 모르기 때문에 발생되는 일이었다.

 

당시 해양대국인 에스파냐,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은 경도를 구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막대한 현상금을 내거는 등 탐구의 열정을 불태웠다. 대양에서 배의 위치를 정확히 안다는 것, 즉 경도를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은 신대륙의 발견을 의미했고, 대항해시대의 승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은 매번 실패했다. 위치도 모른 채 대양으로 향하는 어리석고 무모한 항해는 계속되었다. 배를 항해하는 선원들과, 그 배에 화물을 싣는 상인들의 탄원서가 빗발쳤다. 영국은 1714년 경도법을 제정하고, 실행 가능하고 유용한 경도 측정법을 찾아내는 사람에게 왕의 몸값이라고 할 수 있는 당시 화폐로 20,000파운드를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과학자들은 천문학에 집중했다. 위도와 같이 경도 측정도 하늘에서 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탈리아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영국의 아이작 뉴턴도 모두 달이나 별에게 도움을 청했다. 북극성이나 하늘 위에 고정되어 있는 별들을 측정하여 위도를 알아내는 것처럼, 천체를 측정하고 우주의 규칙성을 알아내면 경도도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경도법이 제정될 당시 해리슨은 20대 청년이었다. 이제 막 목공을 배워 진자시계를 만들었던 시기다. 이후 시계공으로 명성을 얻은 해리슨은 경도상을 꿈꾸며 해상시계 발명이라는 특별한 도전 과제에 덤벼들었다. 당시는 가장 저명한 과학자인 뉴턴을 포함해 그 누구도 시계를 통해서는 경도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다. 그러나 해리슨의 생각은 달랐다. 해상에서 정확한 시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배가 출항한 항구의 시간과 현재 배에서의 시간을 비교하면 경도는 금방 계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해리슨은 선박 환경에서 적합한 시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경도심사국으로 향했다.

 

권위와의 외로운 싸움

 

해리슨의 생각과 다르게 경도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경도심사국은 경도 문제를 천문학적 과제로 생각하고 있어 기계적인 방식의 해결법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심사국의 위원은 천문학자, 수학자, 항해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월거 이용법 즉, 달의 운행을 측정해 경도를 알아내는 방법까지 개발되었다. 수세기 동안 어떤 방법으로도 경도를 찾아낼 수 없었는데, 갑자기 해상시계와 월거 이용법이라는 두 가지 방법이 나란히 나타났다. 해상시계는 두 지점의 시간만 비교하면 되므로 단 몇 초면 경도 측정이 가능했다. 반면, 월거 이용법은 경도를 알아내는데 자그마치 4시간 가량이 소요되었다. 경도위원회가 내건 실행가능하고 유용한 방법이라는 조건에 해상시계가 더 부합했다. 하지만 경도심사국은 해리슨의 시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해리슨의 시계가 인정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당시의 천문학에 대한 권위 때문이다. 권위 있는 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곧 최고의 방법과도 같았다. 월거 이용법은 매우 복잡한 산식을 가질 뿐만 아니라 바다의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계산 값도 정확하지 않았지만, 최고의 경도 측정법으로 대우를 받았다. 우스운 일이지만, 월거를 측정하고 계산하는 방법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더욱 높게 평가받기도 했다. 째깍째깍 단순한 시계의 발명은 수십 수백 년간 연구해온 수학과 천문학에 대한 도전처럼 여겨졌다.

 

1795년 경도상을 받기까지 해리슨은 약 60년의 시간을 소모했다. 그 동안 많은 선장이 해리슨의 해상시계를 검증했다. 바다에서 81일을 보내 후에도 겨우 5초가 늦어졌을 뿐이었다. 이것은 경도법이 요구하는 조건보다 세 배나 정확한 결과였다. 그러나 그에게 경도상은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월거 이용법의 옹호자였던 왕실 천문학자의 반대가 극심했다. 그들은 해리슨의 해상시계가 자신들이 고안한 월거를 이용한 경도 측정법을 쓸모없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이 단순히 이기주의자이기 때문에 해리슨의 시계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당시 왕실의 천문학자들은, 국가(왕국)에 대한 애국심이 가득한 사람들이다. 경도 측정법을 발명하여 국가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감도 엄청났다. 경도 측정법을 알아낸다면, 배의 이용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식민지를 개척하고, 해상무역을 주름잡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갖게 된다는 것을 그들이 모를 리 없다. 이기심은 그들이 월거 이용법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아니었다.

 

그들이 해리슨의 시계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가진 지식과 전문성 때문이다. 그들은 천문현상을 가장 잘 알고 있었고, 천문현상을 통해 위도를 발견할 수 있었으므로, 경도 측정 문제의 해결법도 하늘에만 있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특히, 단순한 시계로 경도 측정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그들의 상식으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들이 가진 지식과 전문성은 그들에게 편견과 고정관념을 만들어주었고, 그 편견과 고정관념이 그들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해리슨의 새로운 생각을 알아보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완벽한 방법

 

우리는 편견과 고정관념의 무서움을 안다. 권위에 대한 두려움도 안다. 똑같은 아이디어라고 하더라도 일반인의 아이디어와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의 아이디어의 무게 차이는 상당하다. 일반인의 아이디어는 얼토당토않은 소리가 되는 반면 같은 내용을 전문가가 제안하면 역시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같은 말이라고 하더라고 누구의 입을 통해서 나왔는지에 따라 그 말이 가진 영향력의 차이는 매우 크다. 우리 안에 내재된 편견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낸다. 전문가나 높은 직급의 사람이 가진 지적수준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는 생각을 아무 의심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전문가, 높은 직급이라는 권위는 우리를 위축되게 하고, 편견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만약 해상시계를 시골 촌뜨기 시계공이 아니라 당대 최고 과학자가 개발했다면 어떠했을까?

 

우리는 편견, 고정관념 그리고 권위에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받아들일 수 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인정하는 문화에서 새로운 생각은 나올 수 없다. 우리 주변에 세상을 이롭게 하는, 변화시킬 수 있는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많다. 그러나 우린 아직 그것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편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권위로 만든 두꺼운 안대가 눈 앞을 가리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벗어던져야 한다. 그리고 편견 없는 순수한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주변에 있는 해리슨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지난 2014년 경도상 제정 300주년을 맞아 영국에서는 다시 경도상 위원회를 꾸렸다고 한다. 인류 난제 중 하나인 항생제 내성 문제 해결에 기여한 사람에게 1,000만 파운드의 상금을 내걸었다. 하지만, 해리슨이 경도 측정법을 발명한 것처럼, 항생제 내성 문제의 해결법을 찾는 것도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방안을 찾기에 앞서 기존 의학계, 약학계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권위를 깨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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