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무엇인가 - 진정한 나를 깨우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철학 에세이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엊그제 직장 동료와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직장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의레 나오는 말은 다른 동료에 대한 이야기다. 대화의 요지는 이렇다. A라는 사람과 본인과는 관계가 매우 좋다고 했다.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일을 할때 딱히 그 사람의 단점을 찾을 수 없다. 그에게 A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A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가는 많이 다르다. A는 앞 뒤가 꽉 막힌 고집쟁이에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윗 사람에게도 아랫사람에게도 인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A의 정체가 뭔지 헷갈린다고 했다. 나를 대하는 태도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것이다.

어떤 모습이 A의 진짜 모습일까? 히라노 게이치로는 그의 "나란 무엇인가?"에서 모든 것이 A의 진짜 모습이라고 말한다. A를 좋다고 말하는 사람과 있어서는 그 사람에 맞는 A가 있다. 그리고 A를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또 다른 A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히라로 게이치로는 "분인"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인간이 언제나 수미일관하며 나눌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상대에 따라 가변적이라는 주장이다.

"얌전하고 평범했던 학생이 범죄를 저질렀는데, 인터넷에 올렸던 끔찍한 내용의 블로그나 글이 발견되면 메스컴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게 바로 그의 정체인 양 요란하게 떠들어 댄다. 사실은 이런 인간이었다, 그런데 왜 못 알애챘느냐고."(71쪽)

위의 예는 우리 주변에서도 무수히 많다. 한 사람, 한 개인에 대해 한 가지로 정의하려고 하면 위와 같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그 학생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분인의 개념에 의하면 학생이 이해된다. 얌전하고 평범한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하나의 분인일 뿐이고, 인터넷에 글을 올린 학생은 인터넷에서의 그 학생의 분인일 뿐이다. 자신이 마주해야 하는 상대에 따라 그 성향이 달라질 뿐이다.

분인의 개념에서 접근하면 우리가 직장이나 사회에서 흔히 접하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 사람이 싫다면 그 사람과의 분인을 줄여나가면 된다. 물론 그 사회생활에서 그 사람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기는 어렵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분인보다 비중을 낮추면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만날때는 다른 사람과 만날때의 분인으로 그를 대하면 된다. 결국 내 안에는 언제나 여러 분인이 존재하므로 혹시 분인 하나의 상태가 나빠져도 다른 분인을 발판으로 삼으면 된다. '이쪽이 안 되면 저쪽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러는 중에 여유가 조금 생기면, 상태가 나빠진 분인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된다.

사실 "분인"이라는 개념이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개인이라는 1개의 관점으로 자신의 모든면을 바꾸려고 하면 어렵다. 그러나 한 사람을 분인이라는 개념으로 잘게 쪼개고 문제가 생긴 분인을 해결하는 것은 쉽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작은 한 부분만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생소한 경험을 했다. 집에서는 소심하고, 말도 안 듣는 아이인데, 학교에서는 전혀 소심하지 않고, 선생님 말을 잘 들을 뿐만 아니라 교우 관계도 매우 좋다는 것이다. 한 사람을 한가지 관점으로 바라볼 때는 아이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가 의심스럽다. 그러나 분인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아이는 학교에서의 분인, 그리고 가정에서의 분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분인이 아이의 마음속에는 있는 것이다. 분인이라는 개념 덕택에 아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분인의 모델에는 자아니 진정한 나니 하는 중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그때 큰 비율을 차지하는 분인이 있다"(115쪽)

"나는 초등학교 무렵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중학생이 되자 어머니가 운동회 구경을 오는게 갑자기 싫어졌다. 나 뿐만이 아니다. 동급생들은 대체로 다 그렇게 말했다.

나는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었고, 반 친구와 죽어라 기마전을 하는 모습을 어머니에게 보이기는 더더욱 싫었다. (중략) 나는 역시 부모와의 분인과 친구들과의 분인이 섞여버리는게 싫었던 것이다. 친구와의 분인에 최선을 다하고 싫어도 어딘가에서 부모가 지켜보고 있다는의식이 그것을 방해하고 만다. 집에와서 '집에서는 못 보던 표정을 봤네'라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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