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고정관념으로 만든 두꺼운 안대를 벗어라

- 시골뜨기 시계 수리공 해리슨의 경도 이야기 -

 

세상의 모든 편견, 고정관념을 거부한다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요즘에 내가 가장 즐겨보는 TV프로그램이다. 음악쇼라는 수식어답게 노래 좀 한다는 연예인 2명이 노래를 하고, 판정단 99명의 투표로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여기까지는 다른 음악 경연 프로그램과 유사하다. ‘나는 가수다도 그랬고, ‘불후의 명곡도 그랬다. 하지만 복면가왕만이 가진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복면이다. 노래하는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쓰고 정체를 감춘 채 노래를 한다. 뛰어난 가창력으로 잘 알려진 장혜진과 신효범도, 웃기기만 할 것 같던 김영철과 고명환도 모두 가면 뒤에 얼굴을 감춘다. 누구나 평등하게 같은 조건에서 노래한다. 오직 노래로만 승부한다.

 

가면 속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니 당연히 노래 자체에만 집중하게 된다. 인기 걸그룹이 나왔을 때의 흥분도, 트로트 가수가 나왔을 때의 시시함도 복면가왕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가면 속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만 들릴 뿐이다. 이런 이유로 갓 데뷔한 신인 걸그룹 멜로디데이의 여은이라는 가수가 한 가창력 한다는 가수 이정을 이기고 가왕에 등극할 수 있었다. 가수가 아닌 홍지민도 두 번씩이나 가왕이 될 수 있었다. 수많은 전업가수들이 가수가 아닌 사람들에게 노래로 무너지는 짜릿함을 안겨 주었다. 노래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유명가수의 권위에까지 도전하는 이 프로그램, 내가 복면가왕을 즐겨보는 이유다.

 

현실에서 고정관념, 편견을 버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권위에 대한 도전은 더욱 어렵다. 자칫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놔야 하는 경우도 많다. 현재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랬다. 데이바 소벨이 지은한 외로운 천재 이야기, 경도15~18세기 대항해시대 유럽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로 꼽혔던 경도 측정법을 알아내는 주인공 해리슨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겉으로는 해리슨이 경도 측정을 위해 해상시계를 만들고, 그것을 검증받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경도 문제 해결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천문학이라고 믿는 당대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극복하고,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진정한 주제다.

대항해시대, 경도의 의미

 

지구상의 위치는 위도와 경도로 표시된다. 세종시의 위치를 경위도로 표시하면 북위 3648, 동경 12727분정도 된다. 이 경위도는 어떻게 측정했을까. 먼저 위도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하늘 위에 떠 있는 북극성 고도를 재면 그 고도가 바로 관측자 본인이 서 있는 곳의 위도가 된다. 다시 말해, 세종 밀마루 전망대에서 북쪽을 향해 서서 지평선으로부터 3648분만큼 고개를 들면 북극성이 보인다. 하지만 경도를 측정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지금이야 하늘 위에 수십 개의 인공위성이 떠다니고 있어 스마트폰만 켜도 현 위치의 경도를 쉽게 알 수 있지만, 18세기 이전만 해도 경도를 측정하는 것은 시대의 난제 중 하나였다. 경도를 알 수 없음으로써 겪어야 하는 고통은 엄청났다.

 

대항해시대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땅을 정복하거나 탐험하기 위해, 전쟁을 위해, 또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황금과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항해를 떠나는 배들이 점점 많아졌다. 하지만 선장은 자신의 배 위치를 모른 채 항해를 해야 했다. 각국의 막대한 인명과 재산이 바다 위에서 길을 잃고 떠 있는 셈이다. 항해 도중 갑자기 목적지가 불쑥 나타나는 일이 흔했다. 당대의 최고 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바스코다가마, 마젤란 등도 예외 없이 바다에서 길을 잃곤 했다. 1707년 영국남서부 근해의 실리 제도에서 발생한 영국 전함 4척의 좌초사고는 2,000명 가까운 생명을 앗아갔다.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바다 위를 헤매다 항해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괴혈병도 창궐했다. 무수한 선원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모든 일들은 바다 위에서 자신의 위치, 즉 경도를 모르기 때문에 발생되는 일이었다.

 

당시 해양대국인 에스파냐,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은 경도를 구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막대한 현상금을 내거는 등 탐구의 열정을 불태웠다. 대양에서 배의 위치를 정확히 안다는 것, 즉 경도를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은 신대륙의 발견을 의미했고, 대항해시대의 승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은 매번 실패했다. 위치도 모른 채 대양으로 향하는 어리석고 무모한 항해는 계속되었다. 배를 항해하는 선원들과, 그 배에 화물을 싣는 상인들의 탄원서가 빗발쳤다. 영국은 1714년 경도법을 제정하고, 실행 가능하고 유용한 경도 측정법을 찾아내는 사람에게 왕의 몸값이라고 할 수 있는 당시 화폐로 20,000파운드를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과학자들은 천문학에 집중했다. 위도와 같이 경도 측정도 하늘에서 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탈리아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영국의 아이작 뉴턴도 모두 달이나 별에게 도움을 청했다. 북극성이나 하늘 위에 고정되어 있는 별들을 측정하여 위도를 알아내는 것처럼, 천체를 측정하고 우주의 규칙성을 알아내면 경도도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경도법이 제정될 당시 해리슨은 20대 청년이었다. 이제 막 목공을 배워 진자시계를 만들었던 시기다. 이후 시계공으로 명성을 얻은 해리슨은 경도상을 꿈꾸며 해상시계 발명이라는 특별한 도전 과제에 덤벼들었다. 당시는 가장 저명한 과학자인 뉴턴을 포함해 그 누구도 시계를 통해서는 경도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다. 그러나 해리슨의 생각은 달랐다. 해상에서 정확한 시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배가 출항한 항구의 시간과 현재 배에서의 시간을 비교하면 경도는 금방 계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해리슨은 선박 환경에서 적합한 시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경도심사국으로 향했다.

 

권위와의 외로운 싸움

 

해리슨의 생각과 다르게 경도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경도심사국은 경도 문제를 천문학적 과제로 생각하고 있어 기계적인 방식의 해결법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심사국의 위원은 천문학자, 수학자, 항해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월거 이용법 즉, 달의 운행을 측정해 경도를 알아내는 방법까지 개발되었다. 수세기 동안 어떤 방법으로도 경도를 찾아낼 수 없었는데, 갑자기 해상시계와 월거 이용법이라는 두 가지 방법이 나란히 나타났다. 해상시계는 두 지점의 시간만 비교하면 되므로 단 몇 초면 경도 측정이 가능했다. 반면, 월거 이용법은 경도를 알아내는데 자그마치 4시간 가량이 소요되었다. 경도위원회가 내건 실행가능하고 유용한 방법이라는 조건에 해상시계가 더 부합했다. 하지만 경도심사국은 해리슨의 시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해리슨의 시계가 인정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당시의 천문학에 대한 권위 때문이다. 권위 있는 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곧 최고의 방법과도 같았다. 월거 이용법은 매우 복잡한 산식을 가질 뿐만 아니라 바다의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계산 값도 정확하지 않았지만, 최고의 경도 측정법으로 대우를 받았다. 우스운 일이지만, 월거를 측정하고 계산하는 방법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더욱 높게 평가받기도 했다. 째깍째깍 단순한 시계의 발명은 수십 수백 년간 연구해온 수학과 천문학에 대한 도전처럼 여겨졌다.

 

1795년 경도상을 받기까지 해리슨은 약 60년의 시간을 소모했다. 그 동안 많은 선장이 해리슨의 해상시계를 검증했다. 바다에서 81일을 보내 후에도 겨우 5초가 늦어졌을 뿐이었다. 이것은 경도법이 요구하는 조건보다 세 배나 정확한 결과였다. 그러나 그에게 경도상은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월거 이용법의 옹호자였던 왕실 천문학자의 반대가 극심했다. 그들은 해리슨의 해상시계가 자신들이 고안한 월거를 이용한 경도 측정법을 쓸모없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이 단순히 이기주의자이기 때문에 해리슨의 시계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당시 왕실의 천문학자들은, 국가(왕국)에 대한 애국심이 가득한 사람들이다. 경도 측정법을 발명하여 국가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감도 엄청났다. 경도 측정법을 알아낸다면, 배의 이용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식민지를 개척하고, 해상무역을 주름잡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갖게 된다는 것을 그들이 모를 리 없다. 이기심은 그들이 월거 이용법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아니었다.

 

그들이 해리슨의 시계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가진 지식과 전문성 때문이다. 그들은 천문현상을 가장 잘 알고 있었고, 천문현상을 통해 위도를 발견할 수 있었으므로, 경도 측정 문제의 해결법도 하늘에만 있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특히, 단순한 시계로 경도 측정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그들의 상식으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들이 가진 지식과 전문성은 그들에게 편견과 고정관념을 만들어주었고, 그 편견과 고정관념이 그들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해리슨의 새로운 생각을 알아보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완벽한 방법

 

우리는 편견과 고정관념의 무서움을 안다. 권위에 대한 두려움도 안다. 똑같은 아이디어라고 하더라도 일반인의 아이디어와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의 아이디어의 무게 차이는 상당하다. 일반인의 아이디어는 얼토당토않은 소리가 되는 반면 같은 내용을 전문가가 제안하면 역시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같은 말이라고 하더라고 누구의 입을 통해서 나왔는지에 따라 그 말이 가진 영향력의 차이는 매우 크다. 우리 안에 내재된 편견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낸다. 전문가나 높은 직급의 사람이 가진 지적수준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는 생각을 아무 의심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전문가, 높은 직급이라는 권위는 우리를 위축되게 하고, 편견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만약 해상시계를 시골 촌뜨기 시계공이 아니라 당대 최고 과학자가 개발했다면 어떠했을까?

 

우리는 편견, 고정관념 그리고 권위에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받아들일 수 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인정하는 문화에서 새로운 생각은 나올 수 없다. 우리 주변에 세상을 이롭게 하는, 변화시킬 수 있는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많다. 그러나 우린 아직 그것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편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권위로 만든 두꺼운 안대가 눈 앞을 가리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벗어던져야 한다. 그리고 편견 없는 순수한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주변에 있는 해리슨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지난 2014년 경도상 제정 300주년을 맞아 영국에서는 다시 경도상 위원회를 꾸렸다고 한다. 인류 난제 중 하나인 항생제 내성 문제 해결에 기여한 사람에게 1,000만 파운드의 상금을 내걸었다. 하지만, 해리슨이 경도 측정법을 발명한 것처럼, 항생제 내성 문제의 해결법을 찾는 것도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방안을 찾기에 앞서 기존 의학계, 약학계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권위를 깨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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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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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문장이 허수아비 춤이 아니길 바라며 >

 

다시 조정래를 만나다.

조정래는 이 글을 쓰는 내내 우울했다고 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이 소설은 허구가 아닌 허구이며 사실보다 더 적나라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조정래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사실들을 정면으로 들이밀며 책장을 넘기는 내내 우리의 양심을 잔혹하게 후벼 판다. 그래서 조정래는 진짜 소설가다. 조정래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집필했던 작가다. 수백 년의 역사를 막힘없이 내달릴 줄 아는 그의 역사인식과, 비난과 비판, 판매금지와 구속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날카로운 사회 의식은 그를 이미 우리문학의 장대한 산맥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그런 그가 내놓은 신작 《허수아비춤》은 또 다시 왜 그가 진짜 소설가인가를 증명하고 있다.

 

한국의 재벌과 화폐 물신주의

몇 년전 이름만 말해도 알 만한 대기업의 재무팀과 법무팀에 있던 한 변호사의 폭로가 있었다. 탈세와 불법 로비, 금품수수, 수조원의 비자금 은닉, 불법 상속과 경영권 불법 승계 등 온갖 범죄 혐의에도 불구하도 결국 그 기업 회장은 대부분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일부 유죄에 있어서도 ‘국가경제에 기여한 공이 컸고 잠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국민경제에 더 이상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는 구색 맞춤 문구로 특별사면을 받았다. 오히려 변호사와 함께 그 기업의 비리를 폭로했던 천주교 사제단의 용기 있는 신부들은 그들의 직위를 잃고 한직으로 밀려나야 했다.

 

지방의 한 사업가가 폭로했던 소위 ‘떡검, 색검’사건은 어떠한가. 가장 깨끗해야 할 검찰이 기업들의 불법로비 자금은 물론 술접대, 성접대를 받아먹고 온갖 부정과 봐주기 수사를 일삼았음에도 결국 인사이동 등의 솜방망이 징계로 마무리되었고 대중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그러는 사이에도 어느 반도체 공장의 어린 여공들은 제대로 된 언론의 집중 한 번 받지 못한 채 백혈병으로 한 명 한 명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그녀들은 100여 명이 암에 걸리고 30여 명이 숨졌어도 산재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우기는 그 기업은 보상금을 담보로 끊임없이 그녀들에게 침묵과 복종을 강요하고 있다.

 

사실 재벌들에 얽힌 비리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우리는 그러한 얘기들을 무수히 들어왔고 암암리 알고 있다. 진짜 무서운 것은 전 사회체제를 위협하는 거대하고 체계적인 부조리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과 방관, 묵인 그리고 그러한 현실에 대한 체념과 복종이다.

 

소설은 이러한 현상이 재벌들이 쥐고 있는 ‘돈’이라는 무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아니 전적으로 돈이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유식한 말로 배금주의, 화폐의 물신성 말이다. 소설 속 일광그룹 문화개척센터(자연스레 현실속의 어느 대기업의 모 본부를 떠올리고 만다)의 핵심인물인 강기준, 윤성훈, 박재우는 바로 회사에서 대가로 주는 권력과 성과급의 달콤함에 뼈 속까지 물들어 회장을 신으로 여기며 충성을 다한다. 그 충성심은 불법과 합법, 정의와 부정의를 가리지 않고 비리와 불법 로비를 주저하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들이 뿌리는 돈을 거부하고 요구를 거절하는 소위 ‘별종’들에게는 가차 없는 응징과 가하고 사회적으로 도태시킨다.

 

 

「“돈만 있으면 처녀 불알도 산다.” “돈이면 지옥문도 여닫는다.” “돈만 있으면 의붓자식도 효도한다.” “돈 있어 못난 놈 없고, 돈 없어 잘난 놈 없다.” “자기보다 열배 부자면 그를 헐뜯고, 자기보다 백 배 부자면 그를 두려워하고, 자기보다 천 배 부자며 그에게 고용당하고, 자기보다 만 배 부자면 그의 노예가 된다.” 」

 

 

 

그들이 주절대는 이 같은 속담처럼 그들이 돈을 통해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없는 대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치도, 언론도, 검찰과 사법부도, 공무원도 돈 앞에 모두 머리를 조아렸다. 돈이면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살 수 있었다. 과연 현실은 소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돈이 성공의 기준이 되어버린 사회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강기준, 윤성훈, 박재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출세한 표본이 되어가고 있다.

 

 

이루지 못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헤게모니는 ‘자발적 복종’을 뜻하는 정치적 용어다. 현대 사회에서 자발적 복종은 정당한 권력과 사회적 정의에 의해 이뤄지기보다는 권력에 의해 통제당하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좌우된다. 조정래는 소설 속 허민 교수의 기고 글을 통해 대중의 자발적 복종이 결국 재벌과 부자들의 범죄를 용인하고 국민 모두가 그들의 노예 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왜 그들의 자발적 노예가 되어왔을까. 80년 광주와, 이후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해 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구속과 수배를 당했으며 젊은 청춘들이 자신들의 관심사와 학업을 뒷날로 유보하고 거리에서 싸워야 했다. 그렇게 어렵게 쟁취해낸 민주화였다.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지고 나면 세상이 바뀔 줄만 알았고 모든 사람이 행복한 ‘참세상’이 올 줄 알았다.

 

하지만 국민이 대통령을 뽑던 그 날 이후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직장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여전히 사장의 눈치를 봐야만 했고 그들의 한 마디에 자신은 물론 가족의 밥줄까지 좌우 되었다. 모난 정이 돌 맞는다고 옳은 말 한답시고 내부고발을 한 자는 회사에서 퇴출당했고 노동조합을 만든다고 앞장선 사람들은 불순분자 취급은 물론 해고와 구속의 수순을 밟았다. 정치적 민주화와 달리 작업장과 직장으로 대변되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부조리에 눈감고 권력에 아부하고 굽실거리는 이들은 더욱 출세를 하게 되었고 더 많은 연봉과 안정된 지위를 보장받았다. 반면 그렇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고용 조건은 더욱 불안해졌고 살아남기 위한 서로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으며 저항에 대한 응징은 더욱 가깝고도 실제적으로 생존을 위협했다. 이러한 현실을 겪어가면서 온몸을 던져 민주주의를 쟁취해왔던 세대의 실망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으며 차차 저항의 의지를 잃어갔고 결국 철저히 그들의 체제 속으로 편입되는 것을 선택했다. 밥줄에 대한 통제권을 오로지 그들이 쥐고 있는 한 정치적 민주화는 피부에 와 닿지 않은 꿈같은 얘기로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밥줄에 대한 자본의 통제와 함께 자본의 이데올로기는 더욱 강화되어 갔다. 재벌들은 이 나라의 모든 권력기관에 검은 돈을 뿌렸고 정치권, 사법부, 언론, 국세청, 금감위, 공정위, 대학 등 모든 기관은 그 돈을 달게 먹었다. 물론 그 돈은 주주들과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이었고 세금을 통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쓰여야 할 자금이었다. 또한 이러한 돈은 탈세와 회계조작 등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재벌가의 비자금으로 조성되었다. 그러한 비자금이 뿌려진 결과, 재벌 출신들은 권력까지 쥐게 되거나 혹은 직간접적으로 정치를 좌지우지하게 되었고 검찰과 경찰을 비롯한 법원까지도 그들의 범죄에는 면죄부를 부여했다. 사회적 비판 기능을 담당해야 언론마저도 광고라는 재벌의 당근과 채찍 앞에 굴복하여 재벌 홍보와 기업 이데올로기를 대중에게 주입하고 그들의 부조리와 부패는 철저하게 묵인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대중은 스스로 재벌의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다.

결국 우리 사회는 선거라는 형식적이고 협소한 정치적 민주주의는 달성되었는지 모르지만 사회경제적이고 실제적인 민주주의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독재 권력보다 더욱 무섭고 직접적이며 가시적 모습을 알기 어려운 무정형의 형태로 국민들의 삶을 통제하고 있다. 그러한 통제의 결과로 인간의 관계는 더욱 더 물질화 되어가고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으며 비정규직의 양산, 청년 실업 등 고용은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 이젠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조차 펀드매니저 등 돈 많이 버는 직업이 일 순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부모들 역시 돌잡이하는 아이에게까지 돈을 쥐기를 강요하는 돈에 지배받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아쉽게도 정의, 원칙, 사회적 배려, 헌신 따위의 말들은 이제 교과서에서도 찾기 힘든 철들지 않는 바보들의 외계어 취급을 받고 있다.

 

 

‘공정사회’ 가 필요한 이유

이러한 시대에서 이명박 정부가 화두로 던진 ‘공정사회’는 그 말 자체로 반가운 말이다. 청렴하고 도덕적이고 노력한 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하니 불공정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얼마나 생경하고 또 반가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공정사회론’을 꺼내들며 시도했던 정부 핵심 고위층의 개각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그 말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청문회에서 드러난 개각인사 중 청렴하고 도덕적인 것은 차치하고라도 비리나 탈세 등을 저지르지 않았던 인사가 거의 없는 것을 보고 국민들은 또 얼마나 좌절하고 실망했을까. 거기에 더해 친인척 채용비리는 국민의 공직사회에 대한 불신을 더욱 부채질 했을 것이다. 정말 무서운 것은 이제 너무나 익숙해져 실망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때 ‘공무원에게는 영혼이 없다’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는 어느 인사의 부도덕과 비리에 눈감은 공직사회가 면피를 위한 핑계로 쓴 말이기는 하지만 상명하복에 충실하거나 복지부동의 자세를 요구받는 생리를 제대로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말이 우리 내외부의 부조리에 눈감거나 비판의 공간마저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은 결코 아닐 것이며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한 조직은 필히 정체되며 결국 부패하고 만다.

 

우리가 공정한 사회를 얘기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정한 사회일수록 그 혜택이 국민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고 사회경제적으로 이익을 창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국민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하기에 어느 누구보다도 청렴하고 공정한 일 처리가 필요하며 불법 로비와 부당한 행위에 대한 고발과 저항이 더욱 필요하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와 공정사회를 위하여

조정래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공정한 사회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부정의하고 부도덕한 기업의 불매운동을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소설 속 허민 교수와 경제민주화실천연대의 글에서 드러난다. 물론 비리기업이나 부도덕한 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매운동도 필요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기업과 직장 내에 비판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조정래가 소설 속에서 내세운 인물들, 검은 돈에 물들어가는 비리검사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가는 전인욱, 당당하게 경제민주화에 대한 자기 소신을 밝혔다가 대학 교수직에서 쫓겨나지만 시민운동 활동가가 되어 재벌에 맞서는 허민 교수, 그리고 재벌들의 비리에 맞서는 노동조합 활동가 등 사회 곳곳에 거대한 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을 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모난 사람들을 지지하고 옹호하며 그러한 단체들을 지원할 때 부패한 경제 권력도 조금씩 힘을 잃어 갈 것이다. 그때는 기업이 오너 등 소수의 이익을 위한 소유물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과 노동자들을 이익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소설가 조정래는 허구의 소설을 통해 자본의 노예가 되어 ‘허수아비춤’을 추고 있는 기성세대들에게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위한 진지구축에 나설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사회가 재벌과 부자들의 탐욕에 의해 망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의 경고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의 모습을 다시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잠시 망각했던 내게는 더욱 그렇다.

 

 

아직도 조정래와 같은 소설가가 사회의 어른으로 남아있다는 것은 나에게, 그리고 이 사회에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철저히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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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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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곂에 희망이 되는 삶을 위하여 >

 

열 여섯 소년의 눈에 비친 학교와 세상

누구나 한번쯤은 일탈을 꿈꾼다. 내가 상상하고 추구했던 이상들이 현실에 묻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때 삶에 대한 회의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도피를 갈망하게 된다. 처음에는 현실을 바꾸어 보려하지만 그리 녹록치 않다. 그래서 대부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현실에 안주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일부 이상추구도 현실안주도 선택하지 못한 사람은 도피의 방법으로 자살을 감행하기도 한다.


『호밀밭의 파수꾼』(JD 샐린저 작)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제도화된 기성사회로부터 일탈을 꿈꾸는 열 여섯 소년이다. 학점은 대부분 낙제이고, 장차 학업에 열중할 의욕도 전혀 없다. 그리고 특별히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고등학교만 네 번째 옮겼을 뿐만 아니라 네 번째 학교에서마저도 퇴학처분을 받은 그는 말 그대로 문제아이다. 펜시라는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홀든은 ‘이 바보들아, 잘들 자거라!’를 외치며 학교 문을 박차고 나선다. 그리고 사흘 간의 학교 밖 세상을 경험한다.


학교를 벗어난 홀든은 시내를 배회하며 능력 없는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듣게 된다. 사람들은 공연이 끝나자마자 박수를 쳐대며 하이에나처럼 그것에 열광한다. 그 연주가 제대로 되었는지도 모르면서 마치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모습은 그가 봤던 연극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연극의 1막이 끝나자 자신들이 얼마나 똑똑한가를 보이려는 듯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연극에 관해 지껄여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한다. 물론 이 또한 남들에게 자신은 연극 지식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홀든은 이런 솔직하지 못하고 가식적인 사람들의 모습에서 학교에서 느꼈던 실망감을 다시 느낀다.


그는 다시 방황하며 클럽을 찾는다. 그리고 옆 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한 커플을 발견한다. 최고의 명문대라는 예일대에 다니는 듯한 남자와 예쁜 여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는 자기 기숙사에서 한 남학생이 자살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손은 여자의 아랫도리를 향하고 있었다. 여자를 만지작거리면서 동시에 자살하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명문대생의 모습에서 홀든은 학교 밖에서도 바보들만 득실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물욕만 넘치고 속물 같은 인간들의 근성에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심각한 상실감을 느낀다. 세상을 마주하면 할수록 점점 그는 현실에 회의를 느끼며 세상과 단절되어 간다.


홀든의 방황과 그 이유

사실 홀든이 겪었던 학교와 학교 밖 세상의 모습은 소설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들은 아니다. 이 소설이 발간 된지 반 세기가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 변한 것 같지 않다. 어쩌면 소설보다 현재가 더욱 허위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른다. 학생들의 개개인의 재능을 발굴하고 인성을 키우기 보다는 명문대 진학을 통해 학교의 외적 위상을 높이는데 몰두해 있는 교장이 그렇다.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진심어린 관심과 사랑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의 선생님은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직업 중 한 종류일 뿐이다.


학교 밖 세상은 어떠한가. 급속한 변화와 끝을 알 수 없는 경쟁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 안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홀든이 경험했던 소설 속 사람들과 같이 능력있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있는 척, 아는 척 ‘척척박사’가 되어야 한다. 현실에 대한 평가와 비판도 필요하지 않다. 자칫 말을 잘못하면 내부고발자가 되어 영영 배신자로 낙인 찍힐지도 모른다. 절대로 조직 내에서 튀는 말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고, 다수의 의견에 의견을 개진한답시고 “No"를 외쳤다가는 ‘왕따’나 ‘사회 부적응아’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질 수도 있다. 홀든의 입장에서 보면 이 얼마나 가식적이고 허위로 가득 찬 세상인가.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현재를 살아간다. 비록 그것이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이 아니더라도.


소설 속 홀든은 퇴학을 감행하며,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갈구한다. 용기도 없고 겁쟁이인 홀든이 이런 결심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연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가 ‘질풍노도의 시기’라 불리는 사춘기 소년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가 단순히 일시적으로 방황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서 수없이 그가 말한 것처럼 그가 한 많은 행동들은 ‘그냥’ 또는 ‘그저 그러고 싶어서 했을 뿐’이었다는 것을 보면 사춘기 소년의 단순한 반항적 행동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하지만 홀든의 방황을 내적 심리상태 보다는 그의 주변 환경에서 찾는 것이 더 옳다. 사실 사춘기 시절 방황은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열병을 앓듯 일정시간 방황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홀든은 그렇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에게는 마음을 터놓고 진심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스트라드레이터나 애클리와 같은 기숙사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홀든에게 있어 단순히 기숙사 동료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에 불과했다. 어쩌면 홀든이 말하는 학교 안에서 우글대는 엉터리 같은 놈들 중 한 명 일 수도 있다. 제인 갤러허, 샐리 헤이스 등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녀들은 여자 친구일 뿐 홀든과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들은 아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를 이끌어 줄 선생님이 없었다는 점도 홀든의 비관적 성향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퇴학을 앞둔 홀든에게 선생님들은 이렇게 조언한다. “장래에 대해 전혀 걱정되지 않는단 말인가?”, “인생은 게임이야. 누구든 규칙을 따라야 해”, “내가 자네를 역사 과목에서 낙제시킨 것은 자네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런 조언 속에 진심어린 감정은 전혀 묻어나지 않는다. 그냥 원론적인 원칙만을 강요하는 건조한 몇 마디의 의미없는 소리일 뿐이다. 그래서 선생님의 조언은 그에게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감만 더해질 뿐이다. 홀든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사춘기를 혼자서 경험하고 이겨내야 했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마음을 움직이는 조언의 조건

사람이 마음을 움직이는데는 뭔가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다. 경험을 통해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지만,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스스로의 잘못을 알면서도 주인공 홀든처럼 우리는 겁이 많고,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두려워 막상 그렇게 할 용기도 내지 못한다. 그래서 스스로 변화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현실을 벗어나 멀리 떠나려 했던 홀든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앤톨리니 선생님과 동생 피비이다. 앤톨리니 선생님은 자신의 진심어린 조언에 하품을 하는 홀든을 보고도 무례함을 나무라지 않고 허허 웃으며 그를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상투적인 조언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네가 인간 행위에 대해 당황하고 놀라고 염증을 느낀 최초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거야. 그런 점에서 너는 혼자가 아니야.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네가 겪는 것과 똑같은 고민을 한 사람은 수없이 많아.”라는 말을 건네며 홀든의 마음을 이해하려 한다. 홀든은 앤톨리니 선생님의 진심어린 조언에서 가슴 따뜻함을 느낀다. 그리고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동생 피비의 말에서도 자신을 깨닫는다. “오빠는 어느 학교든 다 싫어해. 오빠가 싫어하는 것은 백만 가지는 될 거야. 그냥 싫어하고 있어”라는 홀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동생 피비의 말을 듣고서, 사회에 의미 없는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음을 느낀다. 물론 이런 아주 직설적인 말을 피비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면 홀든은 어떠한 마음의 변화도 겪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홀든이 피비에게 가졌던 믿음과 사랑은 비록 직설적인 말이라고 하더라도 진심을 전달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평소에 상호간의 교감과 믿음, 그것은 어떤 화려한 수사가 있는 조언보다도 훨씬 영향력이 크다.


내 곁에 희망이 되는 삶을 위하여

인생을 살다보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불안에 휩싸일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지만 아무도 없음을 다시 확인시켜 줄 뿐이다. 어떤 사람은 그런 불안을 스스로 잘 견뎌 내지만, 어떤 사람은 혼자인 것만 같은 소외감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도 그렇다. 세상에 희망을 갖지 못하고 방황하지만 그를 지켜줄 사람을 어디에서도 찾지 못한다. 세상은 기존 질서만을 강요하며 현실이 이러니 순응하며 따르기를 강요한다. 그 속에서 홀든은 방황하며 길을 잃고 헤맨다. 물론 그런 상황은 아집으로 인해 홀든 스스로 만들어버린 굴레 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곁에 그를 진정으로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방황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찬찬히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희망이 되어 주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내가 했던 그 많은 말들이 그들이 아닌 나의 만족을 위한 조언 또는 충고였는지 반성해 본다. 또한 배려라는 가면을 쓴 채 그들에게 상처만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본다. 그리고 홀든이 피비에게 했던 말을 되새기며 다짐한다. 내 곁의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삶을 살자고.

 

 


"어쨌거나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항상 눈앞에 그려본단 말야. 몇 천 명의 아이들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곤 나 밖에 없어. 나는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그 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거야.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것 밖에 없어.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지만 말야"(p.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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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개 입니다. 한권 두권 시간 날 때마다 내가 접하는 그런 시를 소개드립니다. 물론 선정은 내 맘대로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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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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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1권과 3권 밖에 없네요. 시적 감상 능력이 떨어지는 저에게는 이런 책들이 시적 감성을 길러줍니다.
시가 내게로 왔다 1- MBC 느낌표 선정도서
김용택 지음 / 마음산책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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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표"에서 소개되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보셨을 듯 하네요. 저에게 이 책은 시가 내게로 와서 '가슴이 아려' 왔습니다. '희망'이란 단어보다는 무언가 다른 '애잔함' 이런 언어가 더욱 어울릴 것 같은 시집입니다.
입 속의 검은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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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더욱 시적이다. 나에게도 질투가 힘이었음을 이 시집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사랑 그대로의 사랑
좋은님 100인 지음, 김용택 엮음 / 좋은생각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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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의 시를 모아놓은 것입니다. 시인들의 시보다도 훨씬 삶의 땀내음을 느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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