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에도 괜한 겉멋이 들고부터 어려운 책을 붙잡고 있었다. 이해도 잘 되지않는 전집이나 성인소설(?)을 읽으며 스스로 어른이 된듯이 뿌듯해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동화책이 너무나 일찍 내 손을 떠나 버렸다.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읽는 동화는 어느 철학서에서도 찾지 못한 깨달음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특히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고 써내려간 동화는 고압적인 설득체나 교훈일색이 아닌 마음의 교감이다. <달님은 알지요>는 보통의 아이들이 접해보기 조금은 힘든 시골의 근대상을 이야기하며 언제 어느곳에서나 통하는 공감적 심상을 일으키고 부모에게는 유년시절의 향수를 자극하고 아이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 가벼움과 무거움 인간의 상대성,, 테레사는 어머니에게 한없이 약한 존재였지만 토마스에게 하나뿐인 여자이다. 토마스는 많은 여자를 누비지만(?) 바구니에 담겨 이끌려 오는 모세와 같은 테레사의 나약함, 그리고 자신과의 운명에 꼼짝없다. 사비나와 프란츠 역시 서로가 서로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간다. 인간은 부단히 상호적인 가운데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다른 것을 갈망한다. '이해받지 못한 말들' 에서 사비나와 프란츠가 같은 것을 보고 다른 것을 받아들이듯... 특히 남자와 여자는 항상 같이 있어야 하는 자연의 한 쌍이지만 언제나 일치할수 없는 이질적인 존재이다. '앞은 파악할 수 있는 거짓이고, 뒤는 이해할수 없는 진리이다.' 사비나의 말은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 있어서 과거와 미래는 무엇인가? 우리가 보고 넘겼지만 모두에게 다른 의미로 각인되는 '역사'는 왜곡되어 있다. 이미 거짓이다. 하지만 그것 자체를 인생이라 부르고 그것이 진리이다. 그리고 미래. 희망과 불안을 보듬은 미래는 헛된 기대와 알수 없는 역경의 덩어리일 것이다..그리고 그 기대나 욕망은 벌써 거짓의 그림자로 물들어 있다.글로 쓸수록 어지럽지만... 인간 이란 존재 자체가 불완전하고 거짓된 어지러운 존재인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카레닌의 미소....'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개와 인간 사이의 사랑보다 열등하게 창조되었다. 이는 이해관계가 없는 사랑이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은 행복할수 없다.'여기에서 인가이 행복할수 없는 이유... 공감되는 이야기이다. 물론 카레닌도 인간이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고뇌와 혼란이 있을지 모르지만 개가 완전해 보인다. 어지러운 인간의 이상향처럼...
글쎄.. 시끌벅적한(제2의 움베르토에코^^*) 광고 문구에 넘어가 읽은 책이었다. 계속 벼르다 읽은 책 치고는 실망이 있었지만 나름대로의 반전과 문학에 대한 지은이의 고민도 느껴졌다. 뒤마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이지만 위고나 볼레르등과 같이 평론가가 뽑는 최고의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자품을 무시 할수는 없다. 독자는 그의 책에 엄청난 호응을 보여 줌으로서 그를 인정한 것이다. 뒤마는 쓰레기로 대중을 현혹하지 않았다. 책속에 '누구든 남의 작품을 경멸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이 읽는다는 아주 단순한 뜻에서 대중소설이라 불리는 베스트셀러는 짜임새만 제대로 되어 있다면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고 존중 되어야한다.' 는 코멘트는 그가 뒤마를 두둔하는 동시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불리며 평론가들에게 혹평을 당한 자기 자신의 항변으로 들렸다. 쉬운 문학과 예술성 없는 문학은 동의어가 될수 없다. 그런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뭔가 이해되지 않는 철학적 문학에 경외심을 갖기도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웃기는 일이다^^*) 영화의 원작을 많이 배출하는 소설가들이 있다. 그런 경우 작품의 완성도를 뒤로하고라도 묘사력과 기발한 발상은 인정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레베르테도 그런 면에서 인정되어야 한다. 특히 주인공 코르소의 심리묘사나 이레네 아들레르의 미묘한 인상의 묘사는 책장을 덮고난 뒤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작가는 완전한 허구가 아닌 프랑스의 작가들을 나열하고 집어 넣는다. 그것은 뒤마가 프랑스의 역사라는 광산을 강탈했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인간은 훔치지 않고 정복한다.' 작가는 뒤마가 프랑스의 역사를 이용하듯 고전 문학가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는 그 지식을 짜집기 하고 있지 않다. 자신의 것으로 이미 완벽하게 정복하고 있다.
이 책을 읽기전에 뒤마클럽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그 책의 광고 문구에 제2의 움베르토 에코라는 말이 등장해 거꾸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이 책을 읽으며 두권의 책을 비교하게 되었다. 역시 소설을 쓰기 위해 고증을 얼마나 했는가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다.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라틴어... 그리고 중세 수도원의 묘사와 그 구성원의 다양하면서도 자세한 설면,, 철학과 종교전쟁 역사를 아우르는 그의 해박함. 모두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철학적, 혹은 종교적 배경지식의 나열이 조금은 이야기를 어렵고 지루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던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원판에서는 그 외국어들을 해석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게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을지... 우리나라 판에서는 그를 번역해서 실고 뒤에 원문을 써 넣어서 원판의 분위가와 많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윌리엄은 통찰력은 홈즈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력을 방불케해 흥미롭고 쉬웠으나 그 배경과의 괴리감이 있었던것 같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종교에 또는 유럽의 역사에 너무 무지한 나에게 국한된 이야기 일수도 있겠지만... 절제를 강요하고 그런 와중에 악마나 마술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중세, 그것도 수도원의 음습한 분위기가 전해오는 듯 하다.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내가 잘할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데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 내가 나의 일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나의 기준이 이미 사회적 인식이나 대중매체에 들었던 어느 기준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평범하면서도 뛰어나기만을 바라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밑바닥에서 남들이 꺼리는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그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그들이 시작하는 일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할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처럼 열정을 가지고 해낼수 있는가? 그 자질을 고민할 때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