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비 내리는 날
-김세완-
비가 내리는 날이면
우산도 없이 걸어온 내 삶의 먼 길은
갈 곳을 잃고
낮선 마을 처마 밑에서 듣던 낙숫물 소리로
쓸쓸히 그대를 기다리네.
마음까지 흠뻑 젖어서
지친 발걸음 그대에게 닿는다면
메말랐던 내 삶도 조금은 푸르러질 테니
그땐 빗소리로 함께 울어도 될까.
살아서 깊어지더던 먼 그리움도
저녁 어스름에 묻혀가고
그리움이 지나간 발자국마다
빗물이 고이는데
나 이렇게 빗속에서 저물어 가다가
이대로 잦아들면 무엇이 될까.
한때 스쳐 지나간 바람처럼
빗솟의 그대는 참으로 멀고 멀구나.
우산도 없이 걸어가는 내 삶의 먼 길에
그대 떠난 그날처럼 밤비는 내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