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xx일 x시 xx분께 xx시 xx구 xx동 x아파트 x모씨 집 안방에서 x씨가 선풍기를 켜 놓은 채 숨졌습니다.

밀폐된 방안에서 타임조절도 하지 않은 선풍기바람만을 씌우며 잠에 들게되면 선풍기의 바람때문에 잠든 사람은 결국 산소부족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 반드시 선풍기는 방문을 열든 창문을 열든 공기를 통하게 해놓고 이왕이면 타임을 맞춰 놓고 잠드는것이 좋다.(좋다? 목숨을 생각한다면 이 좋다라는 표현이 부적절 할 수도 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나는 여전히 선풍기를 켜놓은채 잠을 잔다. 어제라고 별 다를바 없이 나는 선풍기를 켜 놓고 잠에 들었다. 다만, 평상시와 다른 한가지가 있다면 방문을 모두 닫아 버렸다는 것이다. 보다싶이 나는 알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계속 켜놓으면 어쩌면, 아니 '재수 없으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어젯밤 내 좁은 모든 방문과 창문을 닫고 선풍기를 부러 켜놓은채 잤다. 뒷생각은 없었다. 죽는 것도 사는것도 아무생각이 없었다. 그저 컴퓨터로 강의를 평상시와는 다르게 12시까지 듣고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1시간 더 책을 보고, 물도 마시지 않고 그냥 그렇게 선풍기를 켜고 불을 끄고 누웠다. 2분뒤, 난 갑자기 벌떡 일어나 열려있는 창문을 닫아버리고 다시 그렇게 누웠다. 멍한 상태. 사위는 조용했다. 선풍기는 여전히 휭휭 잘 돌아갔다.

쿵! 쿵! 쿠쿠쿵!

누가 나의 방문을 계속 잡아 흔든다. 벌떡 눈을 뜬 나는 '누구지?' 아, 초대형 태풍 한분이 친히 한반도까지 행차를 하신다더니, 그분의 행차소식이었구나. 지랄병이라도 걸리셨는지 정말 요란스러우시군요. 그런데 내 방문은 뭐가 좋다고 저렇게 오도방정을 뜰며 나를 깨우는 건지 원..한대 쥐어 박아버려?...

잠깐, 잠깐. 나는 여전히 선풍기를 틀어놓고 잤고, 여전히 새벽에 잠을 한번 깼다. 평상시와 전혀 다를게 없이 똑같았다. 그러고 보니 방문과 창문을 닫았다는 일상의 자그마한 변화는 나의 큰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내가 죽지 않았다는 것보다, 태풍을 먼저 생각하고 있는 내 자신에게 문득, 놀라움을 느꼈다. 젠장, 또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죽어버렸다면 지금 글을 쓰고 있지도 않겠지. 아, 대신 매스컴 한번 탈지도 모르지. 경남 모모에서 모씨가 선풍기 바람에 궁시렁궁시렁 씨부렁씨부렁..죽지 못해 사는건지, 안죽어서 살고 있는건지..알수가 없다.

"그럼, 그게 핵심이야. 그해의 리그에서 삼미 슈퍼스타즈가 <자신의 야구>를....그 <자신의 야구>가 뭔데? 그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야. 그것이 바로 삼미가 완성한 <자신의 야구>지. 우승을 목표로 한 다른 팀들로선 절대 완성할 수 없는 - 끊임없고 부단한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의 결과야." 251p

얼마전 서울에 잠시 갔을 때, 친구와 함께 서점에 들른적이 있었다. 그때 그 친구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어보았냐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아니, 난 야구를 전혀 좋아하지도 않고, 야구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어. 지금 구단은 물론, 지금 박찬호가 소속된 팀 이름도 모르는 판국에 무슨 야구고, 무슨 삼미냐, 삼양 라면은 안다."

근데 그게 아니란다. 이 책은 야구를 전혀 몰라도 볼 수 있는 책이란다. 그 뿐만 아니라, 너무 재미난 것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의 삶에 하나의 방향점이 되더라는 것이었다. 뭐야, 난 이 책이 '삼미슈퍼스타즈'를 알고 있는 사람만이 봐야, 그 시대를 알고 있는 사람만이 봐야 공감할 수 있는 책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보지?

새삼 내가 살아있음을 자각하며 아침을 맞이하고 있을때, 마침 저 생각이 떠올랐다. 삶의 방향점이라.. 그래 어쩌면 지금의 나에겐 어떤 지표가 필요할지 모른다. 설령 이 책이 "야구선수, 나처럼 하면 한달만에 된다!!"고 포효하고 있을지라도 나는 무엇이라도 지표가 필요했다. 살아 남기위해 그 무언가를 잡을 지푸라기라도 절실했다. 그리고 이 책을 잡고, 그 친구의 말을 믿고 그 자리에서 내쳐 다 읽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과연 이게 말이 될법한 소리냐. 프로야구선수란 사람들이 이래도 스포츠맨 정신에 위배되지 않느냐. 모른다. 야구하는 사람 자기 잡기 싫고 치기 싫다면 할 수 없는 거지 뭘 바라겠느냐. 다만, 저 말이 인생에 던져주는 바는 어지간한 바보가 아닌 이상은 다 알아 차릴 것이다.

굳이 힘들려 낑낑대며 살지 말자는 것이다. 어차피 다들 힘든 인생이다. 저기 저 엘리트층에 있든 밑에서 소주잔이나 기울이고 있든 다같이 힘든 삶인데 뭣하러 힘들여가며 애써, 더 힘든 삶을 자초하냐는 것이다. 그래, 사실 이 책은 별거 없다. 특이한 유머스런 문체와, 마치 작가 자신의 삶인양 읊어 내는 그 자연스러움에는 정말 머리가 쭈삣 설 정도지만, 우리에게 던져주는 바는, 왜 그리 바쁘게 사느냐는 것이다. 왜 그리 힘들게 사느냐는 것이다. 뭐가 부족해서, 뭐가 불만이라서? 이거다.

"헛소리 마라. 삶의 실패자들이 자위적으로 내뱉어나는 그 자족적 자세가 속도가 생명인 지금의 이 프로시대에 먹힐줄 알아?"

그래, 그들은 실직자, 무직자, 부상자 등등 흔히 낙오자로 불리우는 사람들의 집합체이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낙오자일까? 그들이 과연 실패자일까? 분명 지금 나의 눈으로도 그들은 인생의 실패자들이다. 하지만 누구를 기준으로 그들은 낙오자이고 또 실패자인지. 지금 나의 시선은 어디에 고정되서 그들을 내려다 보는건지. 

왜 그들은 '삐까번쩍' 프로올스타즈와 경기를 하며 '씨익'하고 웃어 주었을까? 미쳐서? 전혀. 이 책이 흔히 인생의 저변에 있는 자들을 위한 소설이라는 말이 많지만, 사실 진정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당신은 실패자가 아니다!! 나는 실패자가 아니다!!

라는 말이다. '좌절하지 마세요.' '힘들어도 참아요.' 따위의 위로가 아니다. 왜 좌절하고 앉아 있고, 뭐가 힘드냐는 거다. 당신이 당신을 잘못된 곳으로 이끌고 있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느냐는 질책이다.

사랑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는 왜그리 삭막한 인생을 살고 있느냐는 소리를 듣고, 미래를 열심히 준비중인 친구에게는 왜 그렇게 나태한 삶을 살고 있느냐는 말을 듣고, 동창에게는 삶을 왜 그렇게 힘없이 사느냐말을 듣고, 결국 아버지에게는 호로새x라는 말을 듣게 되었...되었..되었..되었다. 룰루랄라. 지금 내가 즐거워 보인다면 나는 정녕 미친것이다.

무척이나 어지러운 나의 삶과 시선에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분명 또다른 인생의 지표하나를 나에게 전해주었지만 큰 조력자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비록 내가 가고자 하는 삶과,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부합하는 지표는 아니었지만, 내가 믿고 따를 그 지표가 되지는 않았지만, 나의 마음 속 어딘가에서 무언가 잠시 꿈틀 했다는 것은 느낀다. 그 잠시 꿈틀거림에서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고, 또한 내가 살아있음에 기쁨을 느끼고 있음을 깨달았다..

현실에 만족하는 것이 아닌 자기자신에게 만족하는 삶. 문득 호어스트 에버스의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가 떠오르지만, 그의 유머가 치즈같이 담백함으로 우리를 끌어들인 소설이었다면 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유머는 담배와 같이 텁텁하면서도 사람을 깊게 빨아들이는 맛이 있다.

잠깐, 그러고 보니 롯데라는 팀이 만년꼴찌라는 프로구단으로서는 상당히 명예로울수 있는 문구를 달고 다닌단다. 그럼에도 롯데는 제법 많은 고정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들이 롯데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왕년에는 잘했기에? 언젠가는 잘하리라는, 개천에서 용나는 꼴을 바라며? 대리만족이라도 느껴볼려고? 아니면, 삼미와 같이 프로의 세계에서도 보란듯이 너와 나, 우리의 삶을 재현하고 있기에? 후, 뭘까? 그들은 어떤 야구를 하고 있지?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숙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 숙제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고, 남아 있는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를 희마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공을 치고 던질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고, 어떤 야구를 할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278 - 279p

솔직히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분명, 삶은 전진하기만은 아깝고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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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y 2004-09-07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기억하실지..^^
서재 그만두신거 되게 섭섭해 했었는데 접속하는 순간 리뷰가 올라왔다고 알려주네요.
다시 님의 리뷰 읽을 수 있어 너무너무 반가워요.

진/우맘 2004-09-07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 전에 굉장히....감동하며 읽었더랬어요.
음....퍼가도 되려나? 그럴게요.^^

로드무비 2004-09-15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발마녀님도 이 책 리뷰를 아주 재밌게 쓰셨더라고요.
시간 나실 때 꼭 한번 읽어보세요.^^

_ 2004-09-1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하얀마녀님께서 백발마녀라고도 불리우시는군요 ^^;;
지금 당장 읽어보러 가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