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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트 고 중국 (2005~2006) - 자유여행자를 위한 map&photo 가이드북 저스트 고 Just go 해외편 6
시공사 편집부 엮음 / 시공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와 둘이서 떠났던 2주간의 중국 여행 동안 우리의 여행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해낸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했던 이유는 우선, 100% 컬러로 이루어진 점과 (여행 가이드 책이 흑백이면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린다), 그 책방에 있던 책들중 가장 작은 사이즈 때문이다.(여행을 떠날땐 누구나 짐을 최소화 하고 싶어하는 법이니...) 이 책의 장점을 나열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아까 말한바와 같이 100% 컬러에 크기도 적당하다
2) 여행을 떠나기전 준비해야 할 점(항공편, 배편, 숙소 예약등)과 초보 여행자에게 도움이 될 듯한 여행 루트등이 잘 안내되어 있다.
3)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과 같이 도시별로 나누어져 여행정보가 소개되어 있으므로 여행하고 있는 도시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각 도시별 여행정보는 우선 도시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으로 시작되어 그 도시에서 둘러 볼 만한 관광명소가 명시되어 있고, 각각의 관광명소를 찾아가는 방법과 그 에 대한 설명(관광지식)이 있으며, 다음으로 레스토랑과 호텔 소개가 이어진다.
4) 책의 중간중간에 관광지를 둘러보는데 필요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놓아 이 책만 독파하다면 현지인 가이드 없이도 관광에 큰 무리는 없을 듯하기에 배낭여행을 하시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5) 특히 베이징과 상하이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다. 또한, 베이징과 상하이는 휴대용 지도도 있어서, 사용하기 편리하다.

여행을 하는 내내 이 책에 의지하며 큰 어려움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도 한가지 단점이 있다. 숙소와 음식점 소개가 주로, 고급 호텔이나 음식점 위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저렴한 여행을 즐기길 원하는 배낭 여행객들에게 (그부분에 한해서는)원하는 정보를 제공해 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숙소와 음식점에 대한 정보는 여러 여행 동호회를 통해 쉽게 정보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단점에 개의치 않는다면 이 책을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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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아침이 밝았다. 나는 23살의 끝자락에서 발버둥 쳤지만,  24라는 숫자위로 강제탑승(?) 당했다. 정말 그런느낌이다. 나는 그대로 인데 숫자만 바뀌어간다(작은 숫자도 아니고 큰 숫자로...). 하지만, 중국 관광을 할 생각에 부풀어 있던 나는 마냥 신나는 새해 아침을 맞이하였다. 집에서 먹는 떡국대신 숙소에서 제공되는 아침을 먹었다. 원동유스호스텔의 좋은점은 숙박비에 아침식사가 포함된다는 점이다. 이 식당역시 중국풍이 물씬 풍기는 곳인데, 식당에 들어서면 숙소에 묵고 있는 세계 각국의 인종을 볼 수 있어 재미있다. 또한, 가끔 숙소에 묵고 있는 한국인을 만나기도 해서 아주 좋은 정보의 교환장소가 되어준다. 종업원이 나와 '쥬스? 우유? 콜라?' 라고 묻는다. 나는 쥬스, 친구는 우유를 주문했다. 음료와 함께 제공되는 아침은 구운 식빵과 햄, 계란 구운것이었다. 친구는 우유가 매우 맛있다고 하였지만, 솔직히 쥬스는 형편없었다. 말이 쥬스지 그것은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이 자주 마시는 주황색 설탕물(이름은 모르지만) 불량식품 같은 맛이 났다. 빵은 그럭저럭 먹을만 하였다. 거기서 우리와 같은 방을 쓰는 프랑스 남,여를 또한번 보았는데 그들은 우리가 1시간에 걸쳐 씻고, 준비를 해서 밥을 먹으러 나오기 직전에 벌떡 일어나 사라지더니 우리보다 먼저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숙소에 돌아가보았을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정말이지 빠르다. 그리고.... 단 한번도 씻지를 않는다. -,-+

어제 하루치 숙박비만 지불했으므로, 관광에 나서기에 앞서 프론트에 가서 3일을 연장하고, 돈을 지불하였다. 그때였다. 이번 여행중 우리는 많은 좋은 사람들과 사귈 수 있었는데,  제일 처음 만나게된 사람이 '김C 아저씨' 였다. 연장 신청을 하는 우리옆에는 지금 막 호텔에 도착하여 방을 고르고 있는 한 한국인 남자가 있었다. 우리는 낯선 땅에서 한국인을 만난 것이 너무 반가웠다. 평소의 나라면 모르는 사람 (그것도 성별이 남자)이라면 말도 잘 걸지 않고, 대꾸도 잘 하지 않을 테지만(남성 기피증 같은게 아니다. 수줍음을 좀 탈뿐... 호호호~) , 우리는 간단한 소개를 나누었다.  같이 관광을 하기로 했지만, 그남자는 17시간 정도의 기차여행을 하고, 지금 막 숙소에 도착해서 샤워와 휴식을 원했기 때문에 우리는 다음날부터 함께 관광을 하기로 하였다.

본격적인 관광에 앞서 우리는 북경 서역으로 향했다. 중국에서는 기차표를 구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북경에서 시안으로 가는 기차표를 미리 끊어두기 위함이었다. 9시 30분쯤 숙소에서 나와 큰길까지 나온다음, (그다음이 문제였다) 북경 서역에 가는 버스를 묻기로 했다. 중국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인구가 많으므로, 물을 사람도 너무나 많다. 하지만 문제는 영어가 통하는 사람은 그중 1/10도 안된다는 것이다. 더이상 "Can you speak English?"라고 묻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란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았는데, (이것은 실로 매우 간단하고, 유용하며, 대부분의 중국인에게 통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수첩에 목적지를 한문으로 적은다음 지나가는 중국인에게 들이대면 된다. 영어로 물어보면 보통 도망을 가거나, No라고 하거나, 중국어로 당황한듯이 마구 말을 해대지만, 위의 방법을 이용하면, 손가락으로 아주 정성껏 방향을 일러준다. 그렇게 버스를 알아낸 우리는 1원(150원)의 버스비를 지불하고, 버스를 타서, 북경 서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한번 느꼈으니... 이야~ 중국은 정말 모든것이 거대하구나. 가만 생각해보면 그럴 수 밖에 없다. 그 많은 인구가 이용하는 것들이니 뭐든지 거대해야 하지 않겠는가! 북경 서역은 내가 다니는 대학보다 훨씬 커 보였다. (실제로 그랬다) 거기다 그곳이 좁아보일 정도로 사람이 들어차 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한참을 헤매다 어찌어찌 기차표를 구입하고, 다시 아까의 방법으로 물어 52번 버스를 타고 텐안먼 광장으로 향했다. 오늘 우리의 관광 코스인 텐안먼 광장, 구궁 박물원, 징산공원, 왕푸징은 모두 첸먼과 가까운 곳이어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면 모두 오갈 수 있었다.

텐안먼 광장에 도착해서 제일먼저 그 엄청난 규모에 한번 놀라주고, 그곳을 모두 검게 보이게 할만큼 많은 사람에 다시 한번 놀란다음, 우리는 가이드책을 읽으며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우선 광장의 한가운데 불쑥 솟아있는 비석이 눈에 띈다. 이것은 인민 영웅 기념비인데 약 38m의 석비로 혁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공적을 찬양한 것이라 한다. 다음으로 보이는 건물은 인민대회당으로 이곳은 중국 공산당과 중국 정부의 활동 거점으로 국제회의등이 열리는 곳이라고 하니 건물의 외관만 훑어보고 넘어갔다. 그 동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중국 혁명 바물관. 역사 박물관이었는데 원시 시대부터 아편전쟁 이전까지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하니 역시 건너뛰었다. -,-+ 이 모든 건물들이(설명한 건물 외에도 알지 못할 건물이 여러개 있다) 거대한 광장을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는 광장 중심인 인민 영웅 기념비 앞에서서 동, 서, 남, 북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장씩 찍는 걸로 이모든 관광을 가볍게 마무리하였다. ^^:

광장에서 길을 건너면 우리의 주 목적지인 구궁 박물원이 있다.  구궁 박물원을 들어서기전에 텐안먼을 지나게 되는데, 텐안먼이란 높이 33.7m의 장대한 성문을 일컫는다. 마오쩌둥의 사진이 가운데 떡하니 붙어 있는 이문은 교과서나 중국소개 책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이다. 이 문까지는 5개의 흰 대리석 다리로 이어져있고, 1월 1일이라 그런지 그 다리도 온통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사람의 물결속에 동참하여 앞뒤로 흔들거리며 안으로 조금씩 조금씩 밀려들어갔다. 솔직히, 텐안먼을 지나면 끝도 없이 웅장한 성문과, 궁들이 이어지는데, 어디서부터가 자금성인지 도저히 알수가 없다. 또한, 분명 들어올때 돈을 내었는데도 곳곳에 매표소가 있어서, 우리를 혼돈속에 빠뜨렸다. 한번은 알지못할 표를 끊었다가, 알지못할 성 위에 한번 올라갔다오는( 정말 그냥 올라갔다 바로 내려오는... 5분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 황당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 경험 후에 우리는 표를 끊는데 신중해 졌는데,  묻고 또 물어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표를 끊을 수 있었다.


자금성은 20만명의 사람의 노동력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1420년에 완공된 자금성은 그후 마지막 황제 푸이까지 명, 청대의 황제 24명의 거성이 되었으며, 700여 건축물과 약 9000개의 방이 있었다. 우리는 오른쪽 왼쪽으로 통하는 수많은 문은 못본채하고 오로지 정 중앙의 본전들만을 쭉 훑어 보았는데도 거의 반나절이 걸렸으니, 그 크기는 정말 무시무시했다. 이런곳에서 왕자가 뛰어놀다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아마 시종들이 흰거품을 물고 쓰러질때까지 찾아다녀야 했을 것이다. -,-+ 자금성에는 수많은 궁들이 있고, 그중에서도 본전 앞에는 항상 사자상이 높여있다. 대부분 건물의 지붕색깔과 같은 금빛 사자인데, 가끔씩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었지만,  재료는 다를지라도 그 모양은 항상 같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황제의 침실이나, 의자등 중국 황제가 나오는 영화에서 보는 모든것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한참을 걸어 나오면 궁의 뒤쪽에 어화원이라는 정원이 나온다. 어린 황자가 뛰어놀던 곳으로 면적은 1만 2000㎡라고 하니 이또한 왕자가 술래잡기라도 하자고 하면 시종 대여섯은 죽어나갈 넓이이다. 궁정 건축 특유의 양식으로 정원 전체가 좌우 대칭을 이루고, 태호석으로 산을 쌓는 등 단조롭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볼만은 하지만, 다리가 몹시 아픈 관계로 가볍게 훑어준다.

 

 구궁을 빠져나오면 바로 길 건너에 위치한 것이 징산 공원이다. 관광객이 징산공원에 오르는 주 목적은 징산 공원의 정상에 올라 방금 둘러보았던 자금성을 한눈에 보기위함이다. 우리는 공원의 주변산책은 생략하고 곧장 정상으로 향했다. 그리 높지 않아서 비교적 쉽게 올라갈 수 잇었는데 그곳에서 보는 자금성의 모습은 great!!! 였다. 내 눈앞에 펼쳐진 자금성을 보고 있자면, 중국 황제가 그곳에서 살아있을것같고, 왕자들이 뛰어놀것 같다. 그처럼 징산공원에서 보는 자금성은  먼 옛날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살아숨쉬고' 있어서, 내가 역사를 거슬러 과거로 온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징산공원을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구궁의 동쪽으로 달리면 왕푸징 대로를 중심으로 하는 베이징의 번화가가 이어진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걷자 포장마차가 죽 이어진 거리가 눈에 띄었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곳은 포장마차가 꽤 많이 있어서, 경쟁적으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일본사람같이 보였는지 나를 보면 보통 '곤니찌와'같은 말로 관심을 끌려고 한다. 그러다 내가 반응이 없으면 '안녕하세요?'라며 꽤나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걸어온다. 한 포장마차에서는 내 앞에 꼬치를 들이대며 "참새~참새~ 맛있어~"라고외쳐대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나는 그중에서 제일 무난해 보이는 새우를 골랐는데, 맛은 끔찍했다. -.-::

왕푸징 거리는 밤이 더 볼만하다. 하긴, 중국의 어디를 관광해도 그곳은 두얼굴을 가지는데 낮에 갔던 곳이라도 밤이면 전혀 다른 사람인듯 얼굴을 바꿔버린다. 중국의 밤은 화려하고, 활기차고, 아름답다. 우선 어딜가나 2초안에 찾아낼 수 있는 중국의 등을 밤이면 모두 밝히기 때문이고,  뿐만 아니라 어느 건물이든지 테두리에 조명을 설치하여 밤이면 불을 밝힌다. 그 작지도 않은 수많은 건물에 온통 불을 밝혀대니, 중국은 전기값이 비싸지 않은모양이다.  어스름해질때쯤 돌아본 왕푸징시장은 나에게 중국에서 물건사기를 실습할 수 있게 한 곳이기도 하다. 책에 나와있길, 중국인은 외국인에게 무조건 가격을 높에 부르니, 깎아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한 장신구를 골라, 얼마냐고 물었다. 50원정도 불렀던것 같다.(솔직히 정확한 가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책에 나와있는것 처럼 매우 사고 싶지만 돈이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쓸쓸히 돌아섰다. 그러자 그여자 나에게 원하는 가격을 말하라고 하여 (역시 책에 나와있는 것 처럼) 터무니 없는 가격인 5원을 찍었다. 내가 생각해도 터무니 없는 가격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그 여자는 그가격에 물건을 팔겠다 하였다. 중국은 그런곳이다.

시장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 어색하게 인사했던 프랑스 남자와 여자가 돌아오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차에 새로운 방 파트너(?)가 들어왔다. 프랑스 사람이랑 뭔 인연이 이리도 질긴지, 프랑스 남자 2명이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이들은 36살이었는데, 이층침대를 사용했던 남자는 28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고, 꽤나 핸섬한 스타일이어서 이틀동안 내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들도,,,, 들어오자 마자 그냥 자더라. 씻지도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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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의 마지막 날이다.  배를 타고 중국에 도착하기 까지는 거의 25시간이 걸렸다. 그 25시간 동안 우리는 배의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끝도 없는 바다를 바라보고,  비디오도 한편 빌려봤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걸로 봐서 그다지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던 듯하다.  31일 3시 40분, 만 하루가 지나서 드디어 배에서 내려 중국땅을 밟을 수 있었다. ' 아~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중국 땅에 찍은 첫 발자국을 사진으로 남겨두어야지... ' 생각했지만, 그런 여유를 부릴틈도 없이 우리는 선상비자를 받고, 몇가지 검사를 한후 밖으로 내몰려야 했다. 그후 우리는 중국에 도착했다는 감격스러움을 만끽할 여유도 없이 또다시 우락부락한 아저씨들에게 삥둘러 쌓여 버렸는데, (중국 영화에서 무술을 쓰는 사람들이 쓰던 중국 특유의 박력넘치는 말투로) 아저씨들이 동시에 우리를 향해 말을 해댔고, 우리는 너무 겁에 질려 눈만 떙그라니 뜨고 있다 도망다녔다. 그 아저씨들은 빵차를 운전하는 기사들로, 자기네 차에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 일종의 삐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중여동 정보방에서 텐진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빵차를 이용하지 말라던 글을 봤던 기억이 났다. (빵차는 우리나라의 봉고 정도의 크기의 차로 일정한 요금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흥정을 해야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교통수단을 찾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빵차에 앉아서 주위를 뱅뱅 돌던 아이들이 하나하나씩 잡혀오는 것을 보고 안도감마저 느꼈다.-.-+ 빵차를 탈려거든 40원에 흥정하라던 말이 생각났지만, 빵차에 탔던 전원이 항의를 했음에도 우리는 50원을 줘야했고, 그 차는 히터도 들어오지 않고, 심하게 덜컹거리는 데다 아저씨의 운전은 곡예수준이었다. 내가 처음 본 중국은 그 차속에서 바라본 풍경이었는데, 그날은 안개가 심하게 끼여있었고, 건물은 우중충 하고, 모든것이 우울해보였다. 흡사 교과서에서 봐왔던 공산국가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까... 2시간이 넘게 갔을까.. 북경 역앞에서 내려준다던 아저씨는 왠 알지못할 호텔 앞에 우릴 내려줬다. 우리는 너무 지쳐있었기 때문에 지나가던 택시를 타기로 했다. 처음으로 중국인과 대화를 시도해본 셈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첸먼의 원동 유스호스텔이었다. 택시 아저씨에게 우리는 단 두글자 "첸먼" 을 반복해서 외쳤다.

"첸먼! (1성조로 해봤다)  첸먼! (끝을 올렸다 내려보았다)  첸먼! (음을 떨어보았다)  -,-: " 

하지만 아저씨 모르시는 눈치... 결국 지도를 꺼내 가리키니 " 아~ 첸멘!!" 하셨다. 내가 첸먼이라고 수십번 말했잖아요~!! 그 아저씨는 나의 발음 교정을 해주시려는듯 성조를 매우 살려 "첸먼"이라고 크게 말했다. 피, 그게 그거지뭐. ^^::여하튼 우린 첸먼까지 12원인가? 그정도의 택시비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후 가 더 문제였으니, 원동 유스호스텔을 찾기 위해서는 동인당 약국을 찾으라고 하던데,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도 잘 알지 못하였다. (사실 이곳은 약국이 아니라 동인당 궁전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중국은 뭐든지 거대하다. 약국조차도...옆사진)

 그러다 동인당 약국을 안다는 사람을 만났는데  처음에는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척 다가와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한다. 그래서 따라가 보면 결국 인력거를 들이대며 타라고 하는 것이다. 잠시 후 내 주변에는 어느새 모여든 서너명의 인력거꾼들이 알아듣지 못할 말로 떠들어 대고 있었고, 돈을 구걸하는 아이가 내 발을 부여잡고 길을 막아버렸다. 나는 덜컥 겁이 나서 그들을 뿌리치고 도망쳤다. 무슨 007영화찍는것도 아니고 하루종일 뛰는구나... 우리는 1시간을 헤맨끝에야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첸먼은 꽤 번화한 거리로 밤이면 수많은 상점과 시장이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거기다 종점이기 때문에 교통도 편리하여 많은 배낭여행객들이 이곳을 찾고 따라서 그들을 위한 여관이나, 호텔도 꽤 많은 편이다. 우리가 묵은 원동 유스호스텔도 그중 하나였다. 우리는 60원짜리 4인실을 이용했다. 엄격히 말하면 원동 유스호스텔은 2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프론트가 있는 큰 건물은 호텔에 가깝고, 맞은편 건물은 모텔쯤... 두개의 느낌이 매우 달랐다. 당연히 호텔을 닮은 숙소가 가격이 비쌌고, 내가 묵은 곳은 아무래도... -,-+ 거기다 남녀 혼숙이고, 공동욕실 1개,.. 그래도 나는 뻔쩍거리는 앞 건물보다 전형적인 중국풍의 건물과 인테리어, 그리고 밤이면 붉은 등을 은은하게 밝히는 우리쪽 숙소가 마음에 들었다. (돈없는 자의 변명이리...) 밤에 잘 때 좀 추웠던 것만 빼면.. 혼숙도 나름대로 짜릿(?)한 경험이었다. ^^::  우리방 위쪽에 붙어 있는 히터를 우리는 당연히 에어컨이라 생각하고 2틀을 추위에 떨었다. 3일째 되던날 우리는 그것이 히터인 것을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지만, 곧 고장난 것임을 알게되었다. 우리와 혼숙하던 프랑스 인들이 고장신고를 하였으나 중국인 아저씨가 오면 잘나오고 가면 고장나기를 반복 포기했다. -,-:: 내가 원동 유스호스텔을 떠나던날 삐까뻔쩍한 앞건물의 화장실을 잠시 이용해보고 깜짝 놀랐던 것이 있었으니... 우리는 방에도 안나오는 히터가 거기는 화장실에서도 빵빵~ T.T 돈없는게 죄였으나,,, 그래도 난 우리건물이 좋소~

짐을 대충 정리하고, 10시 반쯤 우리는 시장기를 느끼고 가까운 식당으로 향했다. 꽤 늦은 시간임에도 많은 식당이 문을 열고 있었는데, 그 중 English menu라고 적혀 있는 식당을 선택했다. 물론, 메뉴는 있었지만 그 음식이 어떤 음식인지 짐작이 어려워 난감해 하고 있을때 우리가 한국인임을 안 종업원이 슬며시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 탕수육! 밥! O.K? "

                                         

나는 너무나 반가운 한국말에 그것들을 주문했다. 탕수육은 12원 밥은 한공기에 1원으로 우리나라 돈으로 탕수육은 1800원 밥은 150원이다. 누군가 나에게 중국에서 살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내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바로 음식에 관한 부분이다. 2주내내 나는 중국 음식을 먹지 못해 과일이나 한국에서 가져간 라면으로 연명하였는데 이날의 탕수육도  지나치게 셔서 - 식초를 5스푼은 넣었을게 분명하다 - 나에겐 너무 생소한 맛이었다. (옆 사진의 음식이 우리가 먹었던 탕수육이다. 사진속의 내 표정을 보면 맛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방에는 2층 침대 2개와, 조그만 세면대, 탁자가 전부였는데 우리가 돌아가고 얼마 안있어 프랑스 남자와 여자가 들어왔다. 나는 눈이 파랗고, 머리가 노란 사람들을 대하는게 처음이라 곧 얼어버렸고, 내가 당황하여 무슨 말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동안 그들은 재빨리 누워서 곧장 잠이 들었다. 그렇다... 그들은.... 씻지도 않고 자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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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중국이 우리의 목적지는 아니었다. 해외여행을 떠나자는 친구의 제안을 덥썩 받아문것은 순전히 깡이 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인생의 큰 전환점에 서 있는 듯했다. 왜냐하면 무려 17년 동안(유치원1년,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대학 4년) 이나 날 두르고 있던 '학생' 이라는 신분을 벗어버리려 하는 순간이 아닌가... 더이상 학생이 아니라는 것, 사회 초년생으로 입문한다는 것, 이것은 더이상 각종 학생할인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포함하여 나의 인생에 있어 아주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는 일이다. 거기다 내가 선택한 직업이라는 것이 뭔가 끊임없이 내  전신을 찔러대며 나의 자격을 의심케 하고 이대로는 부족하다 외치니, 나는 새로운 나로 거듭나기 위한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나의 모든 다른 일이 그러하듯 중국 여행 준비도 참으로 느릿느릿하게 이루어졌다. 다음 카폐의 중국 여행 동호회 방에서 수기를 몇편 찾아 읽고, 대아 여행사에서 인천에서 텐진으로 가는 배를 예매하였다. (10만 4천원에 4인실) 창원 도청에서 여권을 발급받고, (여권발급은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으면 코에 고드름이 얼 정도로 춥다는 엄마의 협박에 못이겨 두꺼운 옷 몇가지와 모자등을 구입하였다. 이것이 내 여행의 소박한 준비 과정이다. 참, 시공사에서 출판한 <중국> 이라는 책을 한권 구입하였는데, 이 책은 2주간의 여행기간 내내 우리의 착실한 여행가이드가 되어 주었다. (오른쪽 사진의 책)

12월 30일

운명적인 날이다. 12월 29일 나는 집을 떠나 친구집으로 갔으므로, 엄격히 말하면 내 여행의 시작은 29일 이지만, 30일은 내가 한국을 떠난 날이다. 30일 새벽 친구의 집인 점촌에서 새벽 5시쯤 일어나, 인천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3시간쯤 걸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버스에는 나와 친구를 포함하여 총 5명의 승객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앞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와 아주머니께서 중국어로 이야기를 나누시는게 아닌가... 나는 생각했다. 너무나 중국에 빨리 가고 싶은 맘에 우리귀가... 기능을 상실했나... 귀를 기울여 대화내용을 들어보면 가끔 한국어가 들린다. 저분들 혀가 짧아서 발음이 새시나... -,-: 중국인일까... 한국인일까... 한참을 고민하다 잠이 들어 버렸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택시를 타고 인천 제2부두로 향했다. 12200원이라는 거금을 지불하고 내린 인천 부두는 내 편협한 생각에 찌지직 금이가게 해주었다. TV에서 가끔 보았던 장면을 회상해 보자면 커다란 배 앞에 모두들 보따리를 짊어지고 죽~ 늘어서서 배에 들어가는 뭐 그정도로 예상했는데 그곳에는 공항 못지않은 번쩍 거리는 시설을 갖춘 부두가 있었다. 우리는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고, 표를 받고 배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공항보다 꼼꼼한 검사가 이어지고, 드디어 내가 TV에서 봤던 것과 같이, 우리는 저마다 짐을 들고 커다란 배 앞에 죽 늘어서게되었다.  평소 옷욕심이 과하게 많은 나는 이번 여행을 떠날때도 매우 고민을 했다. 짐을 줄여도 줄여도 가방은 무겁고, 아무리 보아도 포기할 옷은 없는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결국 배낭을 포기하고, 바닥에 지지직~ 끄는 가방에 짐을 담기로 결정 하였다. 하지만, 그 배는 6, 7, 8F이 객실 이었고, 그 객실까지 올라 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가방을 들고 올라가야 했다. 그 계단은 폭이 매우 좁아서 한 사람씩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나는 뒷사람들의 성화에 잠시도 쉬지 못하고 계단을 올라야 했고,  계단 밖 아래로 짐을 던져 버리고 싶은 욕구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배의 방은 3등급으로 나누어지는데, 이코노미 클래스, 비지니스 클래스, 그외에 비싼 방들이다. 이코노미와 비지니스는 6층에 자리잡고 있고, 7, 8층은 고급 객실이 자리한다. 우리는 비지니스 클래스에 묵었는데 4인용 객실을 운이 좋게 둘이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배는 내 생각보다 훌륭했다.  600명정도 탈 수 있는 거대한 크기의 배였기에 흔들림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식당, 술집, 노래방, 오락실, 발마사지실, 영화관, 잡화점, 비디오 대여점, 목욕탕등 각종 시설이 갖춰져 있어 우리의 무료함을 달래주었다. 배에는 한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국인들도 꽤 있었는데 나는 그 누군가의 입에서 중국어 혹은 한국어가 튀어나오기 전에는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구별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우리가 탄 배는 중국을 향해 소리없이 미끄러져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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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빨리감기를 한 우리네 삶 같다. 힘찬 시작이 있고, 슬프지만 끝이 있고,  때로는 좋은일이 때로는 나쁜일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고,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선택에 따라 다른 결과가 다가오며, 그리고 나는 매순간 느끼고 깨닫는다. 생각해보면 나의 무료하고 따분한 1년의 일상생활중 아주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순간 또는 특별히 안좋았던 기억 여하튼 다른 날들과는 다른 특별한 날들만을 똑똑 가위로 잘라내어 죽~ 이어놓은 시간을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할까... 그래서 나의 중국 여행은 비록 2주였으나, 나의 무료한 1년치의 생활과 같은 무게를 지닌다.

여행은... '내것'의 소중함을 알게한다. 너무나 가까이 있어 무심했던 것들의 값어치를 똑똑히 일러준다. 그것은 결국 나의 생활태도를 바꾸어 놓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행동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행의 파장은 큰 것이다. 사소한 변화에서 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여행은 사람을 바꾼다. 예를들어 나는 여행에서의 경험을 통해 이런 생각을 하게되었다. '내 주변에 존재하는 그 어떤것도 사소하게 여겨 함부로 취급하지 말자.  그 사소한 것이 세상 어느 곳에서 그 누군가가 너무나 너무나 오랫동안 간절히 바래왔던 것인지 모르니 말이다.'

여행은... 중독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발작중이다. 돈만 생겨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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