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중국이 우리의 목적지는 아니었다. 해외여행을 떠나자는 친구의 제안을 덥썩 받아문것은 순전히 깡이 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인생의 큰 전환점에 서 있는 듯했다. 왜냐하면 무려 17년 동안(유치원1년,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대학 4년) 이나 날 두르고 있던 '학생' 이라는 신분을 벗어버리려 하는 순간이 아닌가... 더이상 학생이 아니라는 것, 사회 초년생으로 입문한다는 것, 이것은 더이상 각종 학생할인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포함하여 나의 인생에 있어 아주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는 일이다. 거기다 내가 선택한 직업이라는 것이 뭔가 끊임없이 내  전신을 찔러대며 나의 자격을 의심케 하고 이대로는 부족하다 외치니, 나는 새로운 나로 거듭나기 위한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나의 모든 다른 일이 그러하듯 중국 여행 준비도 참으로 느릿느릿하게 이루어졌다. 다음 카폐의 중국 여행 동호회 방에서 수기를 몇편 찾아 읽고, 대아 여행사에서 인천에서 텐진으로 가는 배를 예매하였다. (10만 4천원에 4인실) 창원 도청에서 여권을 발급받고, (여권발급은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으면 코에 고드름이 얼 정도로 춥다는 엄마의 협박에 못이겨 두꺼운 옷 몇가지와 모자등을 구입하였다. 이것이 내 여행의 소박한 준비 과정이다. 참, 시공사에서 출판한 <중국> 이라는 책을 한권 구입하였는데, 이 책은 2주간의 여행기간 내내 우리의 착실한 여행가이드가 되어 주었다. (오른쪽 사진의 책)

12월 30일

운명적인 날이다. 12월 29일 나는 집을 떠나 친구집으로 갔으므로, 엄격히 말하면 내 여행의 시작은 29일 이지만, 30일은 내가 한국을 떠난 날이다. 30일 새벽 친구의 집인 점촌에서 새벽 5시쯤 일어나, 인천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3시간쯤 걸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버스에는 나와 친구를 포함하여 총 5명의 승객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앞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와 아주머니께서 중국어로 이야기를 나누시는게 아닌가... 나는 생각했다. 너무나 중국에 빨리 가고 싶은 맘에 우리귀가... 기능을 상실했나... 귀를 기울여 대화내용을 들어보면 가끔 한국어가 들린다. 저분들 혀가 짧아서 발음이 새시나... -,-: 중국인일까... 한국인일까... 한참을 고민하다 잠이 들어 버렸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택시를 타고 인천 제2부두로 향했다. 12200원이라는 거금을 지불하고 내린 인천 부두는 내 편협한 생각에 찌지직 금이가게 해주었다. TV에서 가끔 보았던 장면을 회상해 보자면 커다란 배 앞에 모두들 보따리를 짊어지고 죽~ 늘어서서 배에 들어가는 뭐 그정도로 예상했는데 그곳에는 공항 못지않은 번쩍 거리는 시설을 갖춘 부두가 있었다. 우리는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고, 표를 받고 배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공항보다 꼼꼼한 검사가 이어지고, 드디어 내가 TV에서 봤던 것과 같이, 우리는 저마다 짐을 들고 커다란 배 앞에 죽 늘어서게되었다.  평소 옷욕심이 과하게 많은 나는 이번 여행을 떠날때도 매우 고민을 했다. 짐을 줄여도 줄여도 가방은 무겁고, 아무리 보아도 포기할 옷은 없는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결국 배낭을 포기하고, 바닥에 지지직~ 끄는 가방에 짐을 담기로 결정 하였다. 하지만, 그 배는 6, 7, 8F이 객실 이었고, 그 객실까지 올라 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가방을 들고 올라가야 했다. 그 계단은 폭이 매우 좁아서 한 사람씩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나는 뒷사람들의 성화에 잠시도 쉬지 못하고 계단을 올라야 했고,  계단 밖 아래로 짐을 던져 버리고 싶은 욕구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배의 방은 3등급으로 나누어지는데, 이코노미 클래스, 비지니스 클래스, 그외에 비싼 방들이다. 이코노미와 비지니스는 6층에 자리잡고 있고, 7, 8층은 고급 객실이 자리한다. 우리는 비지니스 클래스에 묵었는데 4인용 객실을 운이 좋게 둘이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배는 내 생각보다 훌륭했다.  600명정도 탈 수 있는 거대한 크기의 배였기에 흔들림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식당, 술집, 노래방, 오락실, 발마사지실, 영화관, 잡화점, 비디오 대여점, 목욕탕등 각종 시설이 갖춰져 있어 우리의 무료함을 달래주었다. 배에는 한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국인들도 꽤 있었는데 나는 그 누군가의 입에서 중국어 혹은 한국어가 튀어나오기 전에는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구별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우리가 탄 배는 중국을 향해 소리없이 미끄러져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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