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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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울료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그다지 감명 깊게 읽지 못했다. 베스트셀러라는데, 나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파울료 코엘료라는 이름은 등한시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쨋든 그와의 두번째 만남이 된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연금술사 보다 먼저 읽게 되었다면, 그의 팬이 되었을텐데.

 

흔히들 '내일 죽을 각오로 살아라'라고 충고한다. 언제 죽을지 모를 우리내 인생, 1분 1초 아깝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라는 말이다. 하도 들어서 이젠 별 감흥도 없는 충고.

 

베로니카는 죽기로 결심한다.

앞날이 너무 뻔해서.

 

장장 두페이지에 걸쳐 그녀가 늘어놓은 삶의 회의적인 독백은 구구절절 자살해야만 이유로 가득하다.

 

[결혼 첫해에는 자주 사랑을 나누겠지.두번째 해에는 조금 시들해질 테고, 그렇게 이년이 지나면 보름에 한번씩 섹스를 생각하고 한달에 한번 실행에 옮기게 될거야. 상황이 더 나빠지면 우린 서로 거의 아무말도 하지 않을꺼야. 난 그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면서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될 거야.......]

 

특히나 뻔한 결혼생활에 대한 독백 부분은 '그렇담 이 세상의 모든 부부들은 늘 자살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단 말이냐!"라는 핀잔을 듣기에 충분할 정도로 애석하기 그지 없다.

 

앞으로의 삶이 너무 뻔하게 느껴져서 선택한 자살. 그렇게 시작된 정신병원 생활. 그곳에는 미친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어찌된게 그들의 삶이 더욱 충만해 보인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흡족하게 살고 있는 것만 같다. 남이 만들어 놓은 제도,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왔던 것들때문에 미친 사람들이 본인의 세계 속에서 본인이 만들어 놓은 '재미'를 추구하며 지루하지 않게 살아 간다. 적당히 정상인들과 타이밍만 맞출 줄 안다면, 이대로 정신병원에서 나가 살아도 정상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아니...정상인 보다 훨씬 풍요롭게 살수도 있다.

 

이 책의 의미를 죽기로 결심하니 살길이 보이더라는 고리타분한 교훈으로 일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진다면,그건 다 니가 그렇게 되길 원했기 때문이야."

 

이 책이 남긴 교훈은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반성이다.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을 놀라울 정도로 바꿀 수 있는 건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

 

게다가 이 책을 읽고 나는  더욱 결혼이 빨리 하고 싶어졌다. 베로니카가 그렇게도 회의적으로 읊조리던 결혼 생활의 '뻔함'을 미치도록 재미나게 꾸려나가고 싶은 욕구.

 

그렇게 베로니카한테 복수하고 싶은 욕구가 셈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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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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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는 이미 일본에서는 추리소설의 대가로 정평이 나있는 작가 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요 근래들어 많이 소개되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모방범을 통해 그녀와의 첫 만남을 갖게 되었다.

 

오랜만에 추리 소설을 읽고 싶은 충동에 선택한 책이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모방범]은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심리 소설에 가까운 것 같다. 애초에 범인을 표면에 드러내놓고 전개되는 양식은 기존의 추리 소설과는 그 맥을 달리한다. 사건과 주변 인물을 좁히고 좁혀나가며 마침내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보통의 추리 소설과는 달리, 길고 방대한 스토리 속에 무수한 등장 인물의 심리 변화, 관계 설정, 사건의 인과 관계 등이 잘 버무려져 있다. 물론 그녀의 탄탄한 구성력과 필력은 일말의 지루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범인의 실체는 하나이지만, 작가는 그 이면에 또 다른 가능성을 심어 두었다. 무관심과 외로움을 등에 지고, 대중성과 익명의 그늘에 파묻힌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이 범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무관심과 인정 받지 못한 외로움 속에서 싹을 피우게 된 악의 씨앗은 마침내 끔찍한 범죄의 원흉이 되었고, 획일화된 대중성에 묻혀 주목 받지 못하는 한 인간의 드러내고 픈 욕망이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이끌었다. 

 

[니가 아무리 날 뛰어도 넌 결국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말거야....그게 너에게 주어진 가장 큰 형벌이야....]

 

결국 [난 모방범이 아니야!]를 외치던 그녀석이 가장 두려웠던 것은 익명에 그늘 속에서 한낮 [모방범]으로 잊혀지는 것이 었을 것이다.

 

ps. 일본 소설을 읽으면 "그나마 조금 일본어 공부했다고" 늘 거슬리는 번역체가 눈에 띈다. [참새의 눈물 만큼]이라는 표현은 일본에서 아주 적은 양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인데, 이 표현이 그대로 번역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 참새 눈물 만큼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데. 쓰지 않는 표현을 쓰는 건 something smells fishy를 뭔가 물고기 냄새가 나라고 직역해 놓은 것과 같은 느낌이다.

 

ps. 모방범은 2002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원작 소설보다 재미있는 영화는 이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모방범범]이란 영화는 정말 쓰레기였다. 원작에 충실하지도 못했고, 연출력이 뛰어나지도 못했다. 아니, 오히려 책을 보충 교재로 읽어두지 않으면 그 누구도 영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책의 내용을 깍두기 썰듯 썰어 아무렇게나 붙여 이어놓은 느낌이다. 절대 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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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 1
쓰가노 가쿠 지음, Nati 옮김, 츠츠이 야스다카 원작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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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is...(시간이 있다...)
time was...(시간이 있었다...)
time is not...(시간은 없다...)

츠츠이야스다카 원작 만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
물론 time leap 의 환상 세계속으로 인도해 주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 '시간'의 무서움을 은근 슬쩍 내포하고 있는 만화.

시간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있었던 것이 되고 이내 사라져 버린다....
[내일]은 우리들의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허상일 뿐이다. 내일에 도달한 순간 곧 오늘이 되어 버린다.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추억을 잔뜩 만들어라...그럼 그게 소중한 보물이 될 것이다."

소중한 사람과 추억을 잔뜩 만드는 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후회스럽고,
그렇게 하려하면 어렵기도 한 일이다.

ps. 츠츠이야스다카의 기발한 상상력은 [인간동물원]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속에 기발한 상상력은 좀 부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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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열쇠 - 세계문학 29
A.J. 크로닌 지음, 홍준희 옮김 / 하서출판사 / 199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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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으로 이분된 세상이 내 의식 속에서 사라진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인것 같다. 영혼 불멸 사상을 부정하고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이 싹트면서 였던것 같기도 하고 , 신의 존재를 의심하면서도 독실한 신자인양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있는 나의 모순적인 행동에 짜증이 나면서 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어릴때는 나도 독실한 신자였다.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성당에 나가 미사를 드렸다. 그러던 내가 머리가 굵어지면서 부터는 신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착한 일을 많이하면 천국에가고 나쁜짓을 많이 하면 지옥에 간다던 무시무시한 예언이 더 이상 무섭게 다가오지 않았고, 극한 상황에 처한 이가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 사달라고 조르면 사탕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어린아이의 동심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듯 종교의 신성성에서 (종교는 순수한 믿음을 간직한 이가 누릴 수 있는 신성한 특권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없고, 그런 믿음으로 독실한 신앙 생활을 영위해 나가고 있는 모든이들을 존경한다.) 한발짝 물러서 버린 내가 '천국의 열쇠'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은 의학박사 크로닌이 2 차세계대전 중에 발표하여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베스트 셀러이다. 비단 이런 이력 때문만은 아니라도 이 책을 읽어 봐야만 할 당위성은 충분하다. 주인공 치셤 신부의 파란만장한 삶 속에 부동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신성한 믿음'은 치셤 신부의 신성한 특권이자, 독자에게는 교훈이며, 이책에 있어서는 당위성이다. 종교 문제로 갈등하던 부모를 사고로 동시에 잃고, 먼 친척 집에 맡겨져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치셤 신부는 연민의 정을 품어오던 노라 때문에 사제가 되려던 결심에 갈등을 겪지만, 사생아를 출산한 노라의 자살을 계기로 자신의 결심에 확고한 종지부를 찍는다. 이것은 단지, 치셤 신부의 종교로의 회귀가 '신의 계시'를 통해 어느날 갑자기 단정된 일이 아니며 지극히 인간적인 갈등을 겪고 이루어졌다는 것에서 그 신성성은 배가되며, 특권의 농도도 짙어진다.조금은 도전적인 성향의 치셤 신부는 첫 부임지에서 신부들과 갈등을 겪고, 중국으로 쫓기듯 선교활동을 떠나게 되는데 중국은 그야말로 인간의 내면 안팎으로도 포교활동의 장으로써도 풀 한포기 나지 않는 불모지대와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 전쟁과 페스트까지 겹쳐 치셤 신부의 선교활동은 점점 난황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 그러나 치셤 신부의 부동의 믿음은, 일생을 이곳에 묻겠다는 결심은, 비록 신부 자신에게는 육체적 물질적 고통을 안겨 주었을지라도 종교의 위대함과 함께 인간을 초월한 불가사의한 힘의 원천을 제공한다. 노년에 만난 어릴적 친구 밀리 주교의 포동포동하지만 속세에 찌든 듯한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큰 성당을 경영(?)해 나갈 수완은 없지만 일생을 바치고 희생한 뒤에 얻게되는 행복한 마약에 중독된 치셤 신부의 얼굴은 그 자체만으로 빛나는 성인(聖人)의 모습이었다. 중국에서 귀국 후, 뼈만 앙상히 남아 울고있는 죽은 노라의 소생 안드레아를 거두며 치셤 신부는 이제 안드레아를 위해 여생을 바칠 것을 결심한다.

이 책을 단지 종교적 의미로만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치셤 신부는 하느님을 절대적 유일 신으로 묘사하지도 않았으며, 노자와 공자의 사상을 존경했고,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믿음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가 보여준 것은 꾸준한 실천을 통해 몸소 증거한 사랑과 희생 정신이었다. 어쩌면 위대한 신, 혹은 절대자의 침범할 수 없는 영역으로 간주될 수 있는 천국의 열쇠는 결국 우리 자신이 쥐고 있음을 일생의 실천과 희생을 통해 보여준 치셤 신부의 지독한 인간주의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ps. 개인적으로는 책 후반에 치셤신부가 쓴, 그의 감성적 인간주의가 물씬 풍겨나는 그의 일기가 이 책의 클라이막스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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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雅歌 -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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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모자른 지능 지수에 약간 모자른 운동 신경. 약간 뛰어난 예지 능력을 갖춘 당편이를 향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장애인의 반대말은 정상인이 아니라 비 장애인 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다수에 반하는 소수의 이질적인 그 무엇이 출현했을때 먼저 다가가기 쉽지 않은건 방어 본능때문인가, 익숙하지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가. 그 무엇도 아니다. 단지, 다수의 소수에 대한 횡포일 뿐이다. 감상을 늘어놓기 전에 경험담부터 늘어 놓는것이 좋을 것 같다.

대학시절. 멋모르고 따라간 봉사 활동. 정동진에 위치한 '늘 사랑의 집'이란 곳이었다. 치매 노인과 정신지체 아동을 보호하는 시설이 었는데, 약 보름간의 일정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긴 했지만 정동진이라는 위치적 유혹도 있었고 봉사활동에 대한 어줍짢은 경외심도 있었기에 별 망설임없이 선뜻 나서게 되었다. 그래, 아무생각없이 나섰다고 하는게 제일 적당할 것 같다.

그룹은 둘로 나뉘어 반은 치매노인들과 함께, 반은 정신지체 아동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나는 물론 나와 정신적 교감을 쉽게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정신지체 아동쪽을 택했다.^^;

방문을 열기 전 조금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티브이에서만 보던 직접 대면하는 비 장애인. 문을 열자, 그들이 우리를 두려워하는듯 보였다. 다수의 정신 지체인들은 소수의 비 정신지체인(이라고 분류되어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그들이 다수였다. 게다가 우리들을 신가하다는듯 만져보기 시작했다. 다수는 소수를 신기해했다.

그러나 이미 다수의 삶을 몇십년씩 살아온 우리들은 소수를 동정하고 있었다. 무조건 잘해줘야한다는 강박관념에라도 쌓인듯. 어르고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다. 동정의 근원은 상하 관계 정립에서부터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지극히 개인적인 고정관념이라 해도--;) 한쪽의 우위적 위치가 다른 한쪽의 하위적 위치에 대해 품고 있는 불쌍한 마음. 동정 따위는 필요없다.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다 동등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 생각에 흠집 따위는 내고 싶지 않다.

솔직히 나는 그들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 따위는 품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부자유한 몸때문에 하기 불편한 일들을 거들어 주면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보름동안 한 일은 그들의 놀이문화에 흡수되어 놀아준 것밖에 없는 것 같다. 한아이가 나를 잡으러 오면 나도 잡으러 갔고, 나를 꼬집으면 나도 꼬집었고--;노래를 부르면 같이 따라 불렀다.

이문열의 아가를 읽으며, 당편이에 관한 추억을 접하며, 그때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던 건, 아마도 당편이를 향한 주변인의 시각이 정상인의 입장에서 동정의 대상으로 묘사된 것이 아닌 그저 이웃에 살고 있는 모자란 녀석쯤으로 담담히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 속의 당편이는 남들보다 조금 둔한 운동신경덕에 뒤뚱뒤뚱 걷느라 물 한동이를 길어와도 반이상은 흘려버리는, 그래서 [당편이 물 이고 오나마나]란 우스갯 소리의 장본인 이며, 남들보다 조금 둔한 이해력 덕이 좋은 것 나쁜 것 구별 못하느라 조 밭을 매라하면 잡초는 남겨두고 조를 뽑아 버리는, 그래서 [당편이 조밭 맬 듯 말 듯]이란 우스갯소리로 놀림 받는 인물이지만, 결코 동정의 대상은 아니다. 오히려 이용당하고 놀림 당하는 쪽에 가깝다면 모를까. 그러나 그들의 놀림 속에는 악의가 아닌 정의(情意)가 숨쉬고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여 정상인이라 자부하는 이들마저도 우왕자왕하던 시절, 소수의 입장에서 다수의 횡포에 시달리며 눈치도 약삭빠름도없이 그야말로 소수만이 겪을 수 있는 일들을 겪다 간 당편이의 삶이 오히려 기특해 보이는 건 이문열의 마른날 소나기와도 같은 필력 때문이었을까.

당편이는 지금쯤 어느시대 어느 구석에서 당편이 하나마나한 짓들을 하고 있을런지....

기억에 남는 글귀
[고통은 의식이며 그것도 주관적인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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