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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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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관능적 언어로 소녀를 탐하는 노년을 욕하지 말라. 노년에게도 소년 소녀의 관능은 피부 깊숙이, 세포 깊숙이 살아 숨쉬고 있다. 서글픈 현실에 막혀 숨쉬기를 잠시 멈추고 있을 뿐, 우리는 모두 소년 소녀였다. 그리고 반드시 노년이 된다. 숨쉬기를 멈추고 세포 깊숙이 감춰야만 하는.......



은교를 먼저 알게 된 것은, 매스컴을 통해서 였다. 

신인 여배우의 파격적 노출을 대대적으로 어필하며, 70대 노인과 17세 소녀의 파격적인 사랑을 그린 영화라고 홍보해댔다.


매스컴을 통해 접한 은교는 정말 매력없는 영화였다. 파격적 노출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홍보 문구는 더이상 거들떠 보고 싶지도 않았다. 70대 노인과 17세 소녀의 관능적 사랑의 서사시도 궁금하지 않았다. 매스컴에 낚여 후회 가득한 모습으로 극장 문을 나서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매스컴의 희생양이 되지 말자 다짐했다. 


그래서 나는 영화 은교를 보지 않았다. 일부러.


몇년이 지나고, 얼마 전 우연치 않게 무료 티켓이 생겨 영화 '차이나타운'을 보게 되었다.

여주인공으로 분한 '김고은'이 영화 '은교'의 은교 역할이었다는 것은 녹색창에 '김고은'을 검색하고 난 뒤였다.


그리고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소설 '은교'가 궁금해졌다. 영화 '은교'가 아닌 원작 '은교'가 몹시 궁금해졌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소설 '은교'가 나를 끌어당겼던 것 같다. 17세 소녀의 관능미에 이끌리듯 그렇게 나는 소설 '은교'를 집어 들었다. 


소설 '은교'는 책을 들고 있는 내게 마치 마법을 건 듯, 놀랍고도 감성적이며 치명적인 언어의 유혹으로 한번 잡은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새벽 2시까지 '은교를 붙잡고 앉아 있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추리소설도 아닌데, 나는 다음 장이 또 그 다음장이 궁금해 책에서 손을 놓지 못했다. 


소설 '은교'는 표면적으로는 70대 노인(이적요)과 17세 소녀의 부적절한 사랑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지만, 나에게 이 소설은 오랜 경험과 연륜을 쌓은 한 노년의 지난 날들의 대한 슬픈 고백과 가감없는 사랑의 언어로 가득찬 대 서사시였다. 70대 노인의 감수성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눈부신 언어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특히 노인이 처음 은교를 대면하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마치 내가 은교가 된듯, 혹은 은교를 묘사하고 있는 노인이 된 듯, 그가 묘사하는 언어의 골자기를 따라 물 흐르듯 흘러가고 있었다. 내 감성을 그의 감성에 온전히 맡기고 그가 묘사하고 있는 상황에 흔쾌히 빠져들게 된다. 이토록 아름다운 묘사와 언어를 한달반만에 완성했다고 하니, 소설가 박범신의 필력에 새삼 존경을 표하고 싶다.  


또한 이 소설의 묘미는 절묘한 대조에 있다. 노인이 사랑한 17세 은교는 말수는 적지만 묘하게 붙임성이 있고, 관능적인 육체와는 대조적으로 천진하리만큼 순수한 미소를 지니고 있다. 그런 은교에 비해 은교를 묘사하는 노인은 겉으로는 고상함으로 치장하고 이제 세상을 다 산듯 체념하고 있지만, 보지 않고도 은교를 볼 수 있으며 만지지 않고도 은교를 느낄 수 있다. 노인을 사랑했던 제자 서지우는 멍청하리만큼 사람의 말을 잘 따르지만, 짐승의 날카로움과 야수의 욕망을 저변에 품고 있다. 그렇게 대조적인 세명의 캐릭터가 서로 각자의 시선에서 뱉어내는 고백은 스릴 넘치게 흥미롭다. 우리들의 시선에서 '은교'는 이해 받을 수 없지만, 노인의 시선에서 은교는 고결한 희생양이다. 서지우의 시선에서 노인은 이해받을 수 없지만, 은교의 시선에서 노인는 편안한 안식처이다. 


그렇기에 노인의 충격적인 고백으로 시작되어 은교의 허무한 불장난으로 끝나버린, 일종의 실망스러운 스토리는 소설 속의 '아름다운 감성'과 '캐릭터의 절묘한 대조'가 기특하게 커버해 주고 있다.


만약 소설이 사회적 윤리와 일상의 통념을 지지해줘야하는 고결한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소설 '은교'는 쓰레기이다.

그러나 일상의 틀을 넘어 부적절한 상상의 날개를 달고, 언어의 유희를 마음껏 즐기는 것이 소설이라 주장한다면 '은교'는 '페이소스'이다.


이제 원작과는 다른 시선으로 자극적 메세지만 가득했던 영화 '은교'를 보며 실컷 실망하고 욕해줄 차례인가^^

때론 그런것도 재미있겠다. 책을 먼저 읽게 되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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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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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결에서 항상 결말이 없는 하루키의 소설들. 하루키는 결말이 있는 소설을 선호하지 않는다 했지만, 결말이 없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에겐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는 소설. 난 이제 그의 소설에 익숙해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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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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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리뷰:
하루키의 문학세계야 말로 1Q84 년도에 있는 것만 같다. 달이 두개 떠 있어, 어떤 것이 현실의 달인지 짐작할 수 없구나.....


고등학교때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를 알게 되고, 참 다행이라 생각했더랬다.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을 단숨에 읽어 내리고는, 이 작가, 참 마음에 든다 라고 생각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범상치 않은 필력을 느꼈고, 범상치 않은 상상력을 접했다.
상실의 시대 이후에는 하루키의 에세이집에 빠져들었다. 하루키만의 사고방식을 가감없이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삶을 조금은 부러워하게 되었다.
재즈카페를 운영하며, 글을 쓰면서 외국을 드나드는 생활은 누구나 한번쯤은 부러워 할 법한 삶이 아니던가.


그후로 오랫동안,
하루키 문학을 접하지 않았다. 사는데 바빳기 때문일까.


해변의 카프카를 읽었지만, 잘 기억에 나지 않았다. 집중해서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아님 내가 변했거나. 하루키가 변했거나.


그리고 최근,
1Q84를 읽었다. 읽는 중간에 생각했다. 
아...이제 하루키의 세계는 너무 어려워. 추상적인 것의 도를 지나쳐서 자기 혼자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아.


1Q84의 2권을 마무리하고는 또 생각했다.
그렇지만,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렇기때문에 하루키가 사랑받는가보다.


알수없는 설정, 이해할 수없는 대사, 뒤죽박죽 섞인 사건과 시제들.
이해하는 것이 더 이상한 스토리들.


이것이 하루키의 세계다.
그래서 1Q84는 내인생 최고의 이해할 수 없는 소설이지만, 또 그만큼 오랜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어떻게 보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닮았다. 


새는 알을 깨고 나와야 비로소 세상과 만나는 것처럼,
공기 번데기를 깨고 나와 비로소 세상과 만나는 성장 소설.


곧이곧대로 성장을 얘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키라면.
비현실적이고 꽤나 상상력이 필요한 장치들을 구석구석 밀어 넣어야 비로소 하루키답다.


매우 건전한 주제이지만, 결코 건전하지 않은 이야기.

1Q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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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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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줄 총평:

쉽게 생각하면 한없이 허무하고,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여운이 남는 책.

추리 소설 제목 같지만, 결코 추리소설은 아닌 책.

 

추리 소설인가? 하고 읽기 시작하면 이 책은 한없이 허무하다.

'이제 스토리가 시작하려나' 하고 흥미 진진하게 몰입하기 시작하면 이내 스토리는 허무하게 끝나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당부하건데, 아니, 단언컨데, 이 소설을 추리 소설 장르로 규정 짓고 선택하는 실수는 하지 않길 바란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어떤 장르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이 소설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너무 어렵다. 뭐 꼭 장르의 정의가 있어야하나? 살인자의 기억법은 작가 김영하만의 장르라고 해두자. 그래서 독특하고 신선하다.

 

일찍이 이 소설에 관한 추천글을 많이 접해왔지만,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것도 아주 충동적으로 서점에 방문했다가 생각없이 집어 들었다. 몇페이지 읽어보니 추리소설 같았다. 장편소설이라 명명되어 있지만, 두어시간이면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얇은 두께였다. 그래, 머리도 식힐 겸....하는 기분으로 선택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70대 노인이 주인공인 소설은 처음이다. 책을 읽다보니 주인공이 치매에 걸린 70대 노인이란다. 첫장부터 더듬더듬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스토리가 예사롭지 않다 여겼더니 역시나 였다. 신선했다. 왔다 갔다 하는 70대 노인의 기억 속에서 살인의 추억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여기까지는 정말 완벽한 추리 소설이었다. 자신의 수양딸이 사윗감으로 데려온 남자는 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라고 정의 내린 70대 노인의 복수극이 이제 시작되려나 보다!! 하는데 스토리는 어의없게 마무리되었다.  책장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 중간도 못 간 스토리 전개때문에 이런 결말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내가 빼먹고 읽지 않은 부분이라도 있는 걸까? 다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열린 결말이라고 하기에도 찜찜한 마무리 때문에 나는 책장을 거꾸로 넘기기 시작했다. 아니. 난 제대로 읽었다. 게다가 몰입해서 읽었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 책은 원래 이렇다는 것이었다.

 

원래 이렇다. 원래 이렇게 허무한 것이다.

 

마치....속절 없는 인생사를 두고 내뱉는 우리들의 대사를 너무도 닮아있다.

 

"인생은 원래 이런거야. 원래 이렇게 허무한 거야...."

누구나 한번쯤은 내 뱉어 봤을 법한 대사. 알수없는 인생길에서 한번은 읊조렸을 그 대사.

 

그 대사를 이 책을 읽고 내뱉게 되었다.

이 책....철학서인가? 모르겠다. 뭐 장르를 꼭 규정지어야 하나....에잇.

 

책의 마지막은 반야심경의 한 구절로 마무리 되었다.

 

[그러므로 공(空)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중략)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실체가 없는 허상.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세상이 어쩌면 실체가 없는 허상일 뿐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자의적 기억속에서 공허하게 헤엄치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이 책 '살인자의 기억법이'주는 가장 큰 공포일 것이다.

 

오랜만에 신선한 여운이 남는 책을 접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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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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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을 매우 좋아하지만, [7년의 밤]이라는 소설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다.


'정유정'이라는 작가는 더욱 생소했다. 이번에 [28]이라는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작가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호기심이 증폭되며 작가의 옛 소설들을 검색해 보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알게된 소설이 [7년의 밤]이다.  


'한번 잡으면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


[7년의 밤]을 향한 찬사중에 가장 눈에 띄는 문장이었다. 일찍이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이나 [화차]를 읽으며, 블랙홀 처럼 빨려들어 가는 그녀의 문장력과 흡인력에 헤어나오지 못한 경험을 갖고 있는 나에게는 혹하는 찬사였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이 소설을 선택할 이유는 충분했다.


성미가 급한 나는 당장 책을 구매했고, 단숨에 읽어들였다. 


역시 대단했다. 낯설고 생소한 '정유정'이라는 작가에 대한 의구심의 날을 세울 겨를도 없이, 그녀의 블랙홀 같은 문장은 나를 정신없이 빨아들였다. 그녀의 문장을 읽을때마다 나의 머리속에는 마치 잘 짜여진 뮤직비디오나 디테일한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생생한 영상이 그려졌다. 나는 어느새 내 멋데로 소설속의 인물을 현실의 배우들로 캐스팅한 뒤 플롯에 맞춰 영화 한편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뿐이랴. 그녀의 유머감각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런 장면에서 어떻게 이런 시니컬하면서도 동시에 유머러스한 문장을 뽑아낼 수 있는지, 작가와 면대면으로 앉아 대화라도 나누고 싶은 심정이었다. 현실의 그녀는 과연 어떤 언어를 구사하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충동에.  


아쉬운 것은, 오직 그것뿐이라는 것이다. 

생생하고 감칠맛나는 문장력 뿐, 여타의 기술은 부족했다. (그녀는 프로 작가 일테니, 기술이라 칭해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7년의 밤]은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 집행인이었다'라는 강펀치로 시작하여, '해피버스데이'라는 엉성한 뒷걸음으로 물러난 느낌이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초반에는 허세로 가득하여 힘찬 펀치로 상대를 압도하다, 경기 5분만에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그로기 상태가 되어 관중들에게 큰 재미를 안겨주지 못하고 경기장 주변을 빙빙 돌며 쓰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안타까운 복서? 그나마 이 경기를 끝까지 지켜보게 해 준것은 중간중간 재미를 안겨주는 라운드걸의 유머감각과 안타까운 복서마저도 감칠맛나게 중계해주는 해설자였다.


기대가 너무 컷던 탓일까? [7년의 밤]이라는 제목 만으로도 '7년 동안의 대서사시'를 기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그 기대가 무너졌기에 이렇게 아쉬움도 큰 것이리라. [7년의 밤] 속에는 [7년이라는 세월의 그렇다할 스토리]가 없었다. 


우발적으로 타인의 딸을 살해하게 된 아버지와, 그로인해 지옥같은 삶을 살게된 아들. 자신의 딸을 살해 당하고 딸의 살인마와 살인마의 아들을 향해 끊임 없는 복수를 꿈꾸는 한 남자. 이렇게 멋진 등장인물을 두고, 소설은 줄곧 그들의 지나간 이야기를 지난하게 풀어내고 있다. 물론 그것이 있어야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고, 이야기의 전개도 논리를 갖추는 것은 자명하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지나간 이야기에만 매달려 있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7년이라는 복수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7년이라는 복수의 시간이 결코 복수의 시간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나 하나 뿐일까? 살인마의 아들로 낙인 찍혀 이 동네 저 동네 떠돌아 다니고, 학교 조차 제대로 못다녔다는 것이 복수였다면 할말은 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이 소설을 읽기 전에 기대했던 독자에게 안겨줄 수 있는 최상의 스토리가 아니라는 것만은 자명하다.  


중간 중간의 억지 설정도 이 소설을 '대단한 스토리를 가진 소설'이라고 칭할 수 없는 방해 요소가 된다.  그야말로 긴장감이없다. 추리소설의 묘미가 무엇인가. 얼른 마지막장을 펼쳐보고 싶은 심정으로 읽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소설은 스토리 자체가 너무 평이하다. 클라이막스가 없다. 모든 플롯이 수평선 상에 존재한다. 난투극으로 시작해서 난투극으로 마무리되는 사건의 해결방식도 너무 평이하고, 7년간의 복수를 마무리 짓게 만드는 매개체가 다름아닌 복수를 꿈꾸던 한 남자의 부인이라는 것도 우습다. 뭔가 계산적이고 치밀한 복수를 꿈꿨는데, 아하 그렇구나가 없다.


아...나 썰전 패널도 아닌데, 너무 독설만 퍼부었나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평이한 스토리로 마지막 장까지 흔들림 없이 나를 이끌어 주었으므로. 분명 뭔가 다른 힘을 내포하고 있는 소설이다. '정유정'의 힘이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망설임없이 그녀의 두번째 소설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었다. [내 심장을 쏴라]를 읽고 다시 한번 그녀를 논하고 싶다. [7년의 밤]에 대한 아쉬움을 만회 해줄 것이라 내심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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