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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열쇠 - 세계문학 29
A.J. 크로닌 지음, 홍준희 옮김 / 하서출판사 / 1991년 11월
평점 :
절판
천국과 지옥으로 이분된 세상이 내 의식 속에서 사라진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인것 같다. 영혼 불멸 사상을 부정하고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이 싹트면서 였던것 같기도 하고 , 신의 존재를 의심하면서도 독실한 신자인양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있는 나의 모순적인 행동에 짜증이 나면서 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어릴때는 나도 독실한 신자였다.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성당에 나가 미사를 드렸다. 그러던 내가 머리가 굵어지면서 부터는 신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착한 일을 많이하면 천국에가고 나쁜짓을 많이 하면 지옥에 간다던 무시무시한 예언이 더 이상 무섭게 다가오지 않았고, 극한 상황에 처한 이가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 사달라고 조르면 사탕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어린아이의 동심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듯 종교의 신성성에서 (종교는 순수한 믿음을 간직한 이가 누릴 수 있는 신성한 특권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없고, 그런 믿음으로 독실한 신앙 생활을 영위해 나가고 있는 모든이들을 존경한다.) 한발짝 물러서 버린 내가 '천국의 열쇠'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은 의학박사 크로닌이 2 차세계대전 중에 발표하여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베스트 셀러이다. 비단 이런 이력 때문만은 아니라도 이 책을 읽어 봐야만 할 당위성은 충분하다. 주인공 치셤 신부의 파란만장한 삶 속에 부동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신성한 믿음'은 치셤 신부의 신성한 특권이자, 독자에게는 교훈이며, 이책에 있어서는 당위성이다. 종교 문제로 갈등하던 부모를 사고로 동시에 잃고, 먼 친척 집에 맡겨져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치셤 신부는 연민의 정을 품어오던 노라 때문에 사제가 되려던 결심에 갈등을 겪지만, 사생아를 출산한 노라의 자살을 계기로 자신의 결심에 확고한 종지부를 찍는다. 이것은 단지, 치셤 신부의 종교로의 회귀가 '신의 계시'를 통해 어느날 갑자기 단정된 일이 아니며 지극히 인간적인 갈등을 겪고 이루어졌다는 것에서 그 신성성은 배가되며, 특권의 농도도 짙어진다.조금은 도전적인 성향의 치셤 신부는 첫 부임지에서 신부들과 갈등을 겪고, 중국으로 쫓기듯 선교활동을 떠나게 되는데 중국은 그야말로 인간의 내면 안팎으로도 포교활동의 장으로써도 풀 한포기 나지 않는 불모지대와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 전쟁과 페스트까지 겹쳐 치셤 신부의 선교활동은 점점 난황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 그러나 치셤 신부의 부동의 믿음은, 일생을 이곳에 묻겠다는 결심은, 비록 신부 자신에게는 육체적 물질적 고통을 안겨 주었을지라도 종교의 위대함과 함께 인간을 초월한 불가사의한 힘의 원천을 제공한다. 노년에 만난 어릴적 친구 밀리 주교의 포동포동하지만 속세에 찌든 듯한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큰 성당을 경영(?)해 나갈 수완은 없지만 일생을 바치고 희생한 뒤에 얻게되는 행복한 마약에 중독된 치셤 신부의 얼굴은 그 자체만으로 빛나는 성인(聖人)의 모습이었다. 중국에서 귀국 후, 뼈만 앙상히 남아 울고있는 죽은 노라의 소생 안드레아를 거두며 치셤 신부는 이제 안드레아를 위해 여생을 바칠 것을 결심한다.
이 책을 단지 종교적 의미로만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치셤 신부는 하느님을 절대적 유일 신으로 묘사하지도 않았으며, 노자와 공자의 사상을 존경했고,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믿음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가 보여준 것은 꾸준한 실천을 통해 몸소 증거한 사랑과 희생 정신이었다. 어쩌면 위대한 신, 혹은 절대자의 침범할 수 없는 영역으로 간주될 수 있는 천국의 열쇠는 결국 우리 자신이 쥐고 있음을 일생의 실천과 희생을 통해 보여준 치셤 신부의 지독한 인간주의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ps. 개인적으로는 책 후반에 치셤신부가 쓴, 그의 감성적 인간주의가 물씬 풍겨나는 그의 일기가 이 책의 클라이막스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