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운 서른 - 흘러가다 잠시 멈추는 시간,서른
김종길 외 지음 / 버티고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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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언니님의 서재에서

세로쓰기로 된 예쁜 시집을 찾았다며

냉큼 사버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시집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것은

계절이 바뀌고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천천히 한자한자 읽어 내려가야 하는 세로쓰기 편집을 보며

타이프로 된 옛날 시집들 이후,

'디자인'으로 좋아하는 시집이 새로 생겨 반겼었는데

함께 그런 감정을 나누었던 사람이 이젠 없구나 하는 마음에

여름에 접어든 계절이 아직 시리다. (11/06/04)

 

  펜선으로 마구 그린, 주름이 가득한 남자가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설운 서른, 이라는 표제 아래로 '흘러가다 잠시 멈추는 시간, 서른'이라는 말과 함께 '흘러왔던 길을 돌아보고 / 흘러갈 길을 내다보는 시간의 웅덩이 / 돌아갈 수도 내쳐 갈 수도 없는 / 그래서 설운 시간들 / 서른이라는 시간의 웅덩이에 / 띄워 보내는 시들'이라는 말이 남자의 어깨를 스쳐 지나갑니다. 짧은 말을 곱씹다보니 '버티고'라는 출판사명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군요. 잠시 멈춘다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원하지 않는 곳으로 흘러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나 스스로도 애쓰고 있는 터라, 당신의 말을 들을 여유는 없습니다. 당신의 외로움과 괴로움, 미칠 것 같은 그 마음을 헤아리기엔 나 역시 같은 병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욱 열거해가는 말들 속 낯선 종류들이 불쑥 나타나는 건 마치 삶이 그러하다는 걸 보여주는 걸까요. 그런 엇박자들로 인해 멀리서 바라본 우리의 삶은 웃겼고, 웃기고, 웃길 것이지만- 당신과 그러한 삶을 나누는 것은 거부하고 있지요. 나는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며 당신을 멀리합니다. 말뿐인가요. 시선의 마주침 또한 거부합니다.

 그렇지만 강한 부정은 또한 강한 긍정이라지요. 이렇게 강하게 당신을 내치는 나는 사실 당신을 잊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당신이 내게 말 걸면 웃겼던 몰골이 생각날 것만 같아서, 또 다시 마음이 흔들릴까봐 말입니다. 따로 떨어진 새침한 끝 두 행에서, 등 돌리고 있으되 사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어찌할 줄 모르는 아가씨의 뒷모습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어쩌면 내 모습일지도 모르는 그녀가 더 이상은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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