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자 되기를 꿈꾼다. 오죽했으면 몇 년 전, 온 나라 안에 퍼졌던 인사가 ‘부~자 되세요.’였겠는가.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자기개발서 및 실용서적들이 즐비하고 경제/경영 코너에는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10대를 위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처럼 보다 젊은 세대를 공략하는 책들이 널려 있다. 이 책들이 말하는 바는 하나다. ‘나처럼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부자가 되는 노하우를 잘 알고 있다면 왜 이런 책을 써서 겨우(!) 인세를 받고 있겠는가. 이들은 “우리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우리가 말하는 대로 하라.” - 사실 이들이 ‘했던’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 라며 부추긴다. 과연 이대로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한 마디는 ‘그 책 살 돈을 아껴라.’다. 큰돈은 못 벌지 몰라도 그 책값만큼은 확실히 벌 수 있다.

 하지만 국가 규모의 경제가 된다면 얘기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이미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해진 ‘세계화, 국제화’지만, 이는 현재의 어떤 나라도 문을 걸어 잠그고 살 수 없음을 말해준다. 한반도의 북쪽이 그 결과를 온 몸으로 말해주고 있지 않나. 특히 내다팔 만한 천연자원은 거의 없다시피 한 한국에서는 더욱 말이다. 그런데 생각 없이 막 달리는 사이 국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IMF - 한동안 ‘I'M Fired.’의 약자라고 불리던 - 체제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10년, 우리는 그들이 얘기한 ‘신자유주의’의 파도 속에서 노동시장 유연화와 더 많은 개방, FTA라는 돛을 달고 헤매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상징인 영국과 미국. 하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신자유주의를 표방했던 건 아니었다. 세계 자본주의의 큰 흐름이 자유방임주의-수정자본주의-신자유주의로 흘러온 건 다들 알고 있을 터. 자유방임주의, 그 중에서도 저자는 1870년에서 1913년 사이를 첫 번째 세계화 시기라고 하며, 이 시기에 “영국의 패권 하에 발전하고 있던 상품․사람․돈의 자유로운 이동은 대부분 시장의 힘이 아니라 군사력 덕분에 가능했다.”고 밝힌다. 세계사 수업 시간에도 영국이 아편 전쟁을 일으킨 주요 목적은 무역 적자의 개선에 있었다고 배운 바 있다. 즉, 산업혁명을 시작하였으며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이 지배하던 영국 역시도 이익은커녕 본전도 못 건지고 쪽박을 찰 뻔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1932년 영국이 관세를 도입했을 때에도 미국이 보호 무역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성공한 결과 영국의 경제적 우위가 쇠퇴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것. 이를 두고 19세기 독일의 경제학자 리스트는 “정상의 자리에 도달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뒤따라 올 수 없도록 자신이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아주 흔히 쓰이는 영리한 방책”이라고 한다.

 역사를 바꾼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우리가 말하는 대로 하라.”며 이를 시도하고 있다. 왜? 당연히 그 편이 이익이 되니까. 사람이라는 개체가 경제적 동물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 개인적으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경제적 동물이라면 효율을 최대로 따지기 마련인데 ‘정’ 혹은 ‘관습’ 등을 들어 효율의 극대화에 실패하는 것을 종종 보아왔다. 게다가 투표는 어떤가. 내 이익을 대변해주는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을 선택하는 허위의식은 경제적 동물이라면 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 국가는, 특히 기업화된 국가는 이익을 좇기 마련이다. 때문에 국제 사회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고. - 그러니까 카트 한 번 몰아보려고, 혹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선물(이 반대급부로 얻은 것이 없다는 전제하에. 그런데 왠지 그럴 것 같지는 않다.)을 주려고 지금과 같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는 현 행정부의 수장께서는 좀 반성하셔야 된다는.

 그러면서 저자는 거의 모든 부자 나라들이 자국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보호와 보조금, 규제 정책을 혼합하여 사용했던 역사를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보호 무역이 반드시 경제 발전의 원인은 아니라는 반론에 대해 “나는 최소한 어떤 것(경제 발전)을 그와 같은 시기에 존재했던 다른 것(보호 무역주의)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 만큼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은 오늘날의 부자 나라들이 부자가 되기 전까지 자유 무역을 실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유 무역이 경제적인 성공을 설명하는 해답이 될 수 있는 것인지를 설명해야 한다.”고 답한다. “요컨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무역 자유화는 경제 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결과”라는 것. 보호 무역과 큰 정부는 20세기가 들어온 이후 - 16세기 가격혁명 당시 중상주의/금본위제를 실시하던 때 이외에는 - 에야 발전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산업혁명을 전후해서도 관세를 비롯한 적극적인 정책이 있었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이 외에도 저자는 국제 자본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기업에도 국적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국적이 필요하다고 할 때에는 그 “해당 기업을 소유한 사람”에 대한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최소한 현재의 한국처럼 문제가 있는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국민기업’이라는 턱도 없는 이유로 - 나 역시 국민의 한 사람이지만 나는 별 세 개짜리 기업과 별 연관이 없다. 리움 미술관에 가면 위탁받은 국보와 보물이 넘치지만, 과연 그 위탁 과정이 어떠했는지, 만원씩 받는 입장료는 어디에 쓰이는지 전혀 알 길이 없는 게 답답할 뿐. 게다가 ‘행복한 눈물’을 비롯한 다른 예술품들은……. - 넘어가는 건 아니지 않은가.

 또 성공한 국영사업들의 예를 들며 반드시 민영화를 해야만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특히 ‘자연 독점’이 있는 상태에서는 정부가 사회적으로 적절한 양을 생산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 “국영 기업이 부정한 방법을 통해 경영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매각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라며 얘기하고 있는데, 2007년 말에 지금 상황을 염두에 둔 것만 같다.

 그리고 계속해서 ‘불평등한 경기장’에 대해 얘기하며 선진국에게만 유리한 지적 재산권 문제 - 선진국과 개도국이 똑같이 보호받을 수 있겠지만, 즉 “연구를 할 인센티브는 높아질지 모르지만, 그 인센티브를 활용할 사람이 없”게 되어버리는 상황을 논한다. 부패와 경제적 성과 사이의 관계 역시 여러 가지 변수에 따라 나라마다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부패를 이유로 원조를 중단한다고 할 때 결국 고통 받는 건 극빈국의 빈민층이라는 걸 염두에 두면, 지금은 일정 정도 원조를 해 주고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는 게 맞을 듯하다. 냉엄한 현실 논리, 경제 논리 앞에 이런 이야기는 몽상으로 취급받겠지만 말이다. 본문의 마지막 장에서는 또한 문화에 근거해 경제 발전을 설명하려는 시도 - 이를테면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를 비판하며 이는 “과거를 통해 확인된 바에 근거한 사후정당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글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닌데, 워낙 경제학에 조예가 없는 터라 모르는 개념들이 자꾸 튀어나오고, 거기 더해 숫자를 거의 혐오에 가깝게 싫어한다는 것이 더해지자 그저 논리를 따라가는 것도 벅찼을 뿐, 읽고 제대로 비평을 할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잡은 건 <불평등의 재검토>보다 쉬워서 지난 10여 년, 신자유주의의 깃발을 펄럭거리며 달려온 우리 경제를 되돌아보고 싶어서. 저자는 “성장의 가속화 - 필요하다면 불평등의 증대와 약간의 빈곤 증대라는 대가를 치르고라도 - 는 신자유주의 개혁이 내건 목표였다. 우리는 부를 더 많이 나누어 가지려면 그 전에 먼저 ‘더 많은 부’를 창출해야 하며, 신자유주의야말로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얘기를 되풀이해서 들어왔다.”라고 언급했고, 나 역시 이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지난 대선,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하고 물었던 어떤 후보한테 귀가 솔깃했던 건 왜였을까. 그리고 저자의 질문 “세상은 나아질 수 있을까?”에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한 가지 분명한 건 있는 자가 더 잘 살게 되어 있는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선뜻 그렇다고 얘기하기 힘들다는 거. 그럼,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조금이나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그 결과에 따라 행동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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