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본적인 물음에서 시작해 보자. 그림이란 뭘까? 그림은 명사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동사이기도 한 말이다. 나는 이런 구조의 말들이 좋다. 꿈을 꿈. 삶을 삶. 그림을 그림, 이런 말들에는 결과와 과정을 동등하게 중시하는 뜻이 읽힌다. 이런 의미에서, 그림이라고 하면 대개 종이에 남는 결과물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나에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림을 그리는 행동, 더 자세히 말해 그리는 사람 속에서 일어나는 시간의 변화이다. 자동차로 말하자면 기어 변환을 하듯, 그림을 그리는 동안 사람은 다른 시간 속을 걷게 된다. 이 변화를 경험하는 과정이 종이에 그럴싸한 무엇을 남기는 결과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누군가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어요.‘라고 말하면 나는 ‘아, 이 사람은 지금 다른 시간을 필요로 하는구나.‘라고 받아들인다. (11) - P11

초라함만이 줄 수 있는 둘도 없는 소중함과 재미는 초라함에 대한 감각이 발달되지 않았을 때만 향유가 가능하다. 초라함에 대한 세상의 통념을 받아들이는 순간 사람은 정말로 초라해진다. (61) - P61

이게 모두 괜한 고민이다. 그냥 멋대로, 그리고 싶은 부분만 그리면 된다. 색깔도 그냥 있는 물감을 쓰면 된다. 건축스케치계의 일인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림이란 그저 대상을 조금 더 깊이 즐기기 위한 수단이니, 비례가 안 맞든, 형태가 엉터리든 그저 손이가는 대로 멋대로 그리면 그뿐이다. (72) - P72

그 사람을 잘 그리기 위해 관찰한다기보다 그 사람을 잘 관찰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157)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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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및 교정 퀄리티가 처참하다. 영문으로 읽는 게 훨씬 이해가 빠르겠다. 번역자가 내용을 이해하지 않고 언어만 직역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독자에게 도달하는 텍스트에 무책임한 사람들이 만든 책. (202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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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겪는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당사자들의 일기와 편지로 빠짐없이 늘어놓는다. 하루에 몇번이고 바뀌는 혼란스러운 감정이 축약이나 통찰 없이 낱낱이 열거된다.

이것은 독자에게 단점으로 작용한다. 마치 짝사랑이나 사랑에 빠진 친구에게서 약간의 변주만 있을 뿐 똑같은 하소연을 매일같이 3시간씩 들어주는 꼴과 전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빠르게 읽히는 간결한 문장도 이 무책임한 나열을 덮어주지 못한다.

자전적인 기록이라 하던데, 로셰는 개인적 자료들을 정리한 기록물을 이렇게 널리 읽혀야 할 소설이라는 형태로 출간할 필요가 있었을까? 책의 2/3을 지나면서는 인내심이 거듭 바닥을 쳤다. 그래도 이것들을 통해 무언가 말하려는 게 있겠지 하며 끝까지 읽었다만, 그 끝은 방대한 나열에 비해 너무 짧다. 뮤리엘과 앤의 성숙, 클로드의 공허함으로 넘어가는 부분은 4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에서 마지막 20~30페이지밖에 되지 않는다. 기록들을 끝내고 마지막에 작가가 개입해서 마무리하려니 어쩔 줄을 모르겠어서 헐겁게 매듭을 지어버리는 느낌이다.

후반부 색다른 캐릭터인 앤의 본격적인 등장이 잠시 활기를 불어넣지만, 끊임없이 반복되는 뮤리엘의 자존심으로 가득한 이상론, 자가당착적 격정의 나열은 끝까지 책의 중심을 차지한 채 반복된다. 뮤리엘의 반복적 궤변을 시간순으로 배열해 그대로 쌓아올리기만 한 것은 통찰하지 않는 작가의 무책임함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기록을 생생하게 모두 늘어놓는 것 역시 의미가 있지 않겠냐 하는 질문도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사적인 기록물들을 빠짐없이 읽으려고 소설을 집어드는 게 아니다. 그리고 방대한 편지와 일기 속 텍스트는 정념의 전개를 섬세하고 날카롭게 그려내지도 못한다.

내가 이러한 감정의 시기를 지나서 더 냉소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로셰의 [쥴과 짐]도 읽어볼 생각이다. 생애 주기가 그 다음인 인물들의 이야기니까. 그리고 이를 영화화한 트뤼포로 인한 호기심이 아직 꽤 남아 있으니까. 하지만 기대는 낮을 것이다. (2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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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방해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불안이에요. (184)

우선 살아보자고요. 라벨은 그 후에 붙이고. (198)

두 가지 중에서 선택을 하기 위해선, 두 가지 모두를 알아야 해요. 나는 선과 악 중에 선택을 할 수 없어요. 아마 선만을 알고 있을 테니까요.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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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함은 젊음의 소산이고, 지혜는 노년의 소산일세. (56)

체력이 떨어진 것은 늙은 탓이라기보다는 젊은 시절에 방탕한 삶을 보낸 탓인 경우가 더 많네. 젊은 시절의 방탕은 노년에게 허약한 몸을 넘겨주는 법이네. (73)

노년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자기 권리를 지키고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고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자기 영역을 지배할 경우에만 존중받는다네. 나는 노인 같은 데가 있는 젊은이를 좋게 보네. 마찬가지로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노인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네. 그런 사람은 육체는 늙어도 정신은 결코 늙지 않는다네. (87)

내가 이 모든 것을 하는 원동력은 정신의 힘이네. 물론 이 일들을 하기에는 힘에 부칠 수도 있고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을 걸세. 그렇더라도 긴 의자에 누워서 더는 할 수 없게 된 그 일들에 대해 생각은 할 수 있지 않겠나. 내가 그 일들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그런 종류의 일을 계속해왔기 때문이네. 평생을 공부하고 열심히 활동한 사람은 노년이 다가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네. 어느 날 갑자기 노년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힘 들이지 않고 서서히 인생의 말년으로 들어가는 것이지. (88)

배우가 연극이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무대 위에 계속 있을 필요는 없네. 필요한 장면에만 등장하면 되네. 마찬가지로 현명한 사람은 관객이 마지막에 박수갈채를 보낼 때까지 이 세상이라는 무대에 있을 필요가 없네. (148)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짧더라도, 진실되고 올바르게 살기에는 충분히 기네. (148)

삶의 여정에서 그때그때 즐길 것을 모두 즐겼으면 살 만큼 산 것이네.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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