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업인'으로서의 삶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한다는 추천사를 어디선가 읽고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 읽는 내내 고심해 보고 싶은 여러 테마들이 떠올랐다.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메모를 따로 하지 않아서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 가즈오 이시구로는 삶에 대한 하나의 방향이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질문의 형태로 요리조리 판을 뒤집으며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린다. 주인공 '스티븐스'가 집사라는 직업에 대해 갖춘 충실함과 성실함, 갑갑할 정도로 지나친 원칙주의는 삶에 유익한 덕목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빼어난 덕목이 다른 부분들을 자꾸 잠식해버리기도 한다. 그에게는 직업인 그 이상으로서의 삶, 직업 너머의 인간과 사랑, 사회에 대한 통찰은 거의 배제되어 있다. 하지만 읽다 보면 또 그 철두철미한 직업의식을 마냥 부정할 수도 없다. 다만 직업 너머의 지평에 대한 사유의 부재로 마지막에 그가 겪는 (이유 모를) 울컥함, (강하게 변명하고 싶은) 자신의 삶에 대한 억울함은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 부커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소설류는 아니었다. 거의 마지막 30페이지를 위해 오랜 빌드업을 거쳐 빵 터뜨리는 식의 흐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게 [남아 있는 나날]은 그런 소설이었다. 마지막 30페이지 정도에서 하고 싶었던 말을 빵 터뜨리며 절정을 맞이하고 훅 끝내 버리는. 그렇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명확했다면 좀 더 짧게 쓸 수도 있었을 일이다. 그 앞의 에피소드들이 모두 그 메시지와 연결되어 있다면 말이다. 에피소드마다 온갖 문제를 심히 생각해보게 만드는 다면체의 입체적인 소설이 아니라면.
- 김남주가 서평에 썼던 대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악의 평범성과 꽤나 직결되는 스토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단면적인 메시지만은 아니고, 주인공을 그렇게 평면적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삶은 명확한 답과 오답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으니까. 우리는 정답이 될 수도 있고 오답이 될 수도 있는 무수한 가치들이 엉키고 뒤섞인 사회적 공간에서 살아간다. 이시구로는 이러한 매커니즘을 바탕으로 세상과 인물을 그린다. 성실함, 충실함, 충성심, 근면함, 직업의식, 원칙주의, 성공과 명예, 지위에 대한 욕망. 이것들을 마냥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이 가치들이 사회에 부유하는 모습 자체를 띄워낸 듯하다. (22. 9.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