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꽤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음에도 윤도의 가정이 어떤지, 또 윤도의 지난 삶이 어떠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윤도의 세계는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 내 비밀의 무게에 짓눌려 남들도 자신 몫의 비밀을 짊어지고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짐작도 하지 못할 만큼 나는 어렸고, 어리석었다. (125) - P125

책을 쓰는 동안 적어도 나는 자유로웠고, 진실했다. 그것은 훼손할 수 없는 백 퍼센트의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알고 있다. 책에 쓰인 것은 오롯이 내 주관에 의해서 선택된 순전히 내 마음이 손상된 부분만을 일방적으로 기술한 절반의 진실이라는 것을. (128) - P128

"알겠어. 나 아빠처럼 되지 않을게요. 주말에 꼭 고해성사 받을게."
나는 엄마가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한 후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기도는 원망의 곡소리나 살풀이와 다름없었다. 나는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잠그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윤도와 함께 듣던 인디 밴드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쿠스틱 기타 소리를 들으며 나는 오늘 내게 찾아온 진부하기 짝이 없는 고통을 잊기로 했다. 태리와 부모님, 세상과 나 사이에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문제들에 대해. 지금껏 나는 내가 자력으로 선택할 수 없는 일들 때문에 고통을 받아왔다. 불행은 참 진부하지만 행복은 특별하다. 나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불행 대신, 윤도와의 키스에 관해, 그 특별함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는 반드시 이곳을, D시를 떠날 것이다. 윤도와 함께, 이곳을 떠나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리라. 그래서 그 누구의 감시도 없이 삶의 중심에 윤도와 나를 놓고 살아가리라. (221-222)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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