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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읽은 책은 동일 번역자의 세계사 1999年 판본이었다.
10년 전 출판본이라 그런지 책 정보에서 찾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동일 번역자의 이레 2009年 판본을 링크한다.
아직,
영화를 본 건 아니다.
다만,
내게 이 책을 소개해줬던 그것-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티비였는지.. 네이버였는지..-이 말하길,
'15세의 소년과 성숙한 여인과의 사랑' 이라고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읽기를 마음 먹었다.
사랑일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책을 다 읽은 지금은,
플라토닉이란 사랑이 허구로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카피는 거짓말이다.
그녀는 나이만 서른 여섯이었지 결코 성숙이란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여인이다.
그녀는 문맹이니까.
문맹인 상태로 서른 여섯을 맞은 여자가 어떻게 성숙할 수 있다란 말인가..!
어떻게 그렇게 열 다섯의 욕정어린 호기심을 취할 마음을 가질 수 있더란 말인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 15세의 소년은 병약했을지라도 서른 여섯의 그녀보다 훨씬 똑똑했다.
정신적으로는 더 성숙한 위치에 있었을 거라는 거다.
그 둘의 사랑은 에로스다.
플라토닉이었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결코 유지될 수 없는 사랑 말이다.
마음이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사랑.
전(全) 삶을 지배당한 사랑.
내가 읽은 판본에는 번역자의 해설이 실려있는데,
글쎄.. 내가 소설을 읽으며 해체하는 타입은 아니어서 그런지 많은 부분 그의 해설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나는 눈물을 꽤나 흘리면서 보았는데.. 해설은 그런 나를, 뭐랄까..
'너무 감상적인 거 아냐..?'
하는 것만 같았다.
이야기의 개연성은 조금 떨어지는 것 같고,
남자의 회상을 1인칭으로 그리고 있기에 여자의 사랑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그녀의 사랑을 온전히 알기는, 어렵다.
-내 생애에서 문맹이었던 기억은 아주 짧다. 나는 아마 그녀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수치심.
이 책은 그 단어 하나로 모든 게 설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