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거울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한은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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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남편이 많다니. 그것도 정말 지겨운 일이겠어요."
마플 양이 말했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죠. 한 남자를 사랑해서 결혼하고 그의 방식에 익숙해지고 편안하게 정착한 마당에 모두 뱉어내고 또다시 시작하다니! 미친 짓 같아요."
밴트리 부인의 말에 마플 양이 노처녀답게 헛기침을 했다.
"나는 뭐라 말할 처지도 못 되죠. 한 번도 결혼을 안 했으니까. 그래도 불쌍해 보여요."-36쪽

"부인에게 아주 헌신적이었나?"
"부인이 시키는 대로 했고, 부인에게는 자기 맘대로 하게 했대요. 그렇다고 늘 헌신적이라는 뜻은 아니죠. 그렇지 않나요? 혼자 일어날 용기가 없을 수도 있죠."-75쪽

"(전략) 만약 이 직업을 택해서 특별한 재능을 보이면 특정한 유형의 사람이 됩니다. 제 경험으로는 신경이 너무 예민해져서 내내 자신감 없이 고통 받게 되는 거죠. 자신이 이 역할에 적당하지 못하다는 괴로움이나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을 해낼 수 없다는 걱정에 사로잡히는 겁니다. 배우들은 허영심이 강하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다릅니다. 그들은 자만심이 강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집착하면서 늘 확인받으려고 합니다. 계속해서 확인을 받으려고 하는 거죠. 제이슨 러드에게 물어보면 그도 똑같은 이야기를 할 겁니다. 해낼 수 있을 거라고, 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해 주고 확신을 줘야 합니다. 계속 같은 이야기로 격려하다 보면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는 거죠. 그래도 그들은 언제나 자신에게 회의적입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 말로 신경질적이라는 평을 듣는 겁니다. 그들은 신경 상태가 최악일수록 일을 더 잘합니다."-120쪽

"그래요. 그녀는 그런 요소를 모두 갖추었지요. 그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악마처럼 일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신경이 갈래갈래 찢어지는 거죠. 체력도 그다지 강인하지 못합니다. 필요할 만큼 강하지 못해요. 절마오가 환희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기질이 있는데, 본인도 어쩔 수 없나 봐요. 그렇게 타고난 거니까요. 인생도 고통이 많았죠. 자신의 결점에서 비롯된 고통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이번 결혼을 제외하면 결혼 생활도 행복하지 못했어요. 다행히 이번에는 그녀를 진심으로 몇 년 동안 사랑해 온 남자와 결혼했어요. 이제 사랑에서 안식처를 찾고 행복해합니다. 적어도 지금은 행복하죠. 이 행복이 얼마나 지속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요. 그녀는 자신이 마침내 모든 것이 동화처럼 실혀노디고 문제가 전혀 없고 다시는 절대로 불행해지지 않을 순간이나 장소를 찾았다고 생각하는 데 문제가 있어요. 아니면 인생이 파멸되어 이전이나 이후에도 사랑과 행복을 누리지 못할 사람처럼 나락에 빠지고 말죠." 그가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처럼 덧붙였다." (이어서)-121쪽

"(이어서)그녀가 이 양극 가운데에서 멈출 수 있다면 본인에게는 아주 좋을 거고, 이 세계는 좋은 여배우 한 명을 잃게 되겠죠." -121쪽

"아기에 대해 알았습니까?"
"아, 물론 알았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다들 알았어요. 그녀는 아기를 갖고 나서 좋아서 미칠 지경이었어요. 그런데 아기는 정신지체아였어요! 고소하죠. 정신지체아이건 아니건 그녀는 우리를 다시 필요로 하지 않았어요."
"그녀를 많이 증오하는군요."
"왜, 증오하면 안 되나요? 그녀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죄를 저질렀어요. 자신이 사랑받고 원하는 사람이라고 믿게 만들었다가 모두 거짓말이었다고 보여주는 거죠."-210쪽

체리는 집안일은 엉마잉지만 무엇보다 오고 싶어 한다. 더욱이 지금 이 순간에 마플 양이 가장 중요시하는 장점이 있다.
따뜻한 마음과 생명력, 그리고 일상사에 대한 깊은 관심이다.-281쪽

"(전략) 헤더 배드콕은 악의는 전혀 없어요. 한 번도 악의를 가진 적이 없지만, 헤더 배드콕 같은 사람은, 내 오래된 친구 알리슨 와일드도 그랬는데,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있어요. 그들은 친절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전혀 고려하지 않으니까요. 그녀는 자신에게 어떤 영향이 미칠까를 생각했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떨지는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어요."
마플 양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래서 죽은 거죠. 과거라는 단순한 이유로요. (후략)"-297-298쪽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재능도 뛰어났죠. 사랑과 증오의 힘이 대단했지만 안정성이러고는 없었어요. 안정성이 없다면 누구라도 안된 일이죠. 그녀는 과거를 과거로 넘기거나 미래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 상상으로만 봤어요. 배우로서는 대단했지만 여자로서는 불행했지요. 정말 뛰어난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이었죠. 절대로 그녀를 잊지 못할 거예요."-300-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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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2009-06-23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진예방접종에 대한 경각심?^^;
미스 마플의 세상을 보는 방식이라든지 캐릭터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번 작품 읽을 때는 느낌이 좀 달랐다. 몇 권 읽다보니 정들었나...;
 
점과 선 동서 미스터리 북스 52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품절


내가 이렇게 병상에서 자신의 가냘픈 손가락을 보고 있는 이 순간에도, 전국의 여러 지방에는 기차가 일제히 머물러 서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인생을 쫓아 내리기도 하고 타기도 한다. 나는 눈을 감고 그 정경을 상상한다. 이와 같은 일 때문에, 이 시간에는 각 선의 어떤 역에서 기차가 스치고 지나간다는 것까지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즐겁다. 기차의 교차는 시간적으로 필연이지만 타고 있는 사람들의 공간적 행동의 교차는 우연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 넓고 넓은 각 지방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인생들을 끝없이 공상할 수가 있다. 타인의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소설보다도, 나 자신의 이 공상에 훨씬 흥미가 있다. 고독한 꿈이 떠돌아다니는 즐거움이다.
지어낸 이름이 없는, 글자와 숫자로 충만해 있는 시간표는 요즈음 나의 즐거운 애독서가 되어있다--115-116쪽

요컨대, 어떤 점으로 보나 이 사나이의 범행이 틀림없다고 믿는다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선입관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작용하여, 그런 것은 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 지나치고 마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만성이 돼 버린 상식이 맹점을 만드는 일이 때때로 있습니다. 다 알고 있는 상식이라 하더라도 수사하는 데 있어서는 일단 백지화하고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162쪽

그것은 적극적으로 좋아한다는 감정과는 거리가 있다. 첫째, 우하라 겐이찌에 대해서 데이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어떠한 곳에 근무하고 있고, 어떠한 일을 하고 있으며, 형 내외와는 한집에 있다는 정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것만으로도 어쩐지 우하라 겐이찌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우하라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결혼하는 상대는 의외로 막연한 이해 아래 맺어지는 것이 아닐까? 여자는 상대가 가진 이 미지의 것에 대해서 두려움과 매혹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혼한 다음에는 이 미지의 부분은 점차 정체가 밝혀지고, 두려움은 사라지고, 매혹은 평범하게 되어 버린다. -206쪽

우하라 겐이찌는 어제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서른 여섯이라는 나이에 걸맞은 얼굴엔 조용함이 흐르고 몸 동작은 침착했다. 그 상태에서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데이꼬는 어제까지의 우하라 겐이찌가 아닌 부분을 알고 있었다. 하룻밤으로 미지의 일각이 무너졌다. 그것은 데이꼬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로 인해서 대부분을 알게된 것처럼 느끼는 위험은 여자보다 남자 쪽인지도 모른다. 그 증거로 대부분의 남자들은 마음을 놓은 듯한 얼굴이 되어 버린다. -209쪽

한 사람의 행방을 이 한 장의 인쇄된 용지가 추적한다. 데이꼬에게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서류와 인간의 관계가 뒤죽박죽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데이꼬는 남편의 얼굴 특징, 신장, 체중, 복장, 소지금과 물건, 갈 만한 장소 따위의 난을 하나하나 적어 가는 동안 남편이라는 의식이 멀어지고 우하라 겐이찌라는 전혀 모르는 인간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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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2009-06-23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과 선/ 제로의 지점
 
이누가미 일족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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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낡은 느낌이 좋았던 책. 마치 변사가 해설해주는 듯한 문체며, 전후 배경이지만 훨씬 더 옛날을 배경으로 한 듯한 분위기(이누가미 일족=영주 같은 느낌)가  이 가족살해극을 더욱 흥미로운 것으로 만들었다.

사실 가면을 이용한 바꿔치기 트릭 같은 건 알아차리기 쉬운 거고,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꼬여버린 상황은 어떻게 보면 추리물로써의 매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지만(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논리적인 해결편이 나오는 게 아니라 사실은 우연히 이러이러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하면 김이 빠지니까) 음습하고 그로테스크한, 이 작품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가 그러한 단점을 어느 정도 상쇄해준 것 같다.  

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이자(;;) 일본의 국민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씨는 형사 콜롬보 같은 느낌. 이 책을 꽤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이 시리즈 다른 책들도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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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7 (완전판) - 서재의 시체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박선영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4월
품절


밴트리 부인은 단꿈에 푹 빠져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이른 아침 차를 내오기 전까지의 이런 아침 꿈을 즐겼다. 그러나 아침 일찍부터 집안에서 들리는 여러 가지 소리를 어렴풋이나마 의식하기는 했다. 하녀가 2층에서 커튼을 젖힐 때 커튼 고리가 울리는 소리, 다른 하녀가 바깥 복도에서 빗질하는 소리가 났다. 멀리서 현관 빗장을 벗기는 묵직한 소리도 들렸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 사이에 꽃 품평회에서 상을 받는 즐거움을 가능한 더 많이 누려야 했다. 그것이 꿈이라는 느낌이 점점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1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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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2009-05-13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나도 그래~ 진짜 그래~"하고 동감하게 만드는 이러한 일상의 소소한 부분에 대한 묘사를 하는 작가가 참 좋다. 솔직히 최근 묵직한, 그러면서도 따뜻한 미야베 미유키에 맛을 들인 이후,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은 좀 밍밍한 느낌이 드는데 그래도 이런 묘사나 피식~하고 실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유머(특히 포와로의~)를 만나게 되면 애거서 크리스티를 여전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모래그릇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3
마츠모토 세이조 지음, 허문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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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이 황홀하게 이 음악에 몰입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어떤 사람이나 새로운 음악을 이해하려고 얼굴을 찡그린 채 가슴을 펴고 있었다. 이해하기 어려워도 듣고 있으면 매우 새로운 데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 표정에나 이해를 초월한 추상화 앞에 선 것처럼 당혹과 무지, 그리고 상쾌함이 교차되고 있었다.
지적이고 답답한 음악회였다. 사람들은 귀보다도 두뇌의 노동에 피로했다. 여기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나타내면 안 된다. 청중은 이 음악 앞에서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
-265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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