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과 선 동서 미스터리 북스 52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품절


내가 이렇게 병상에서 자신의 가냘픈 손가락을 보고 있는 이 순간에도, 전국의 여러 지방에는 기차가 일제히 머물러 서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인생을 쫓아 내리기도 하고 타기도 한다. 나는 눈을 감고 그 정경을 상상한다. 이와 같은 일 때문에, 이 시간에는 각 선의 어떤 역에서 기차가 스치고 지나간다는 것까지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즐겁다. 기차의 교차는 시간적으로 필연이지만 타고 있는 사람들의 공간적 행동의 교차는 우연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 넓고 넓은 각 지방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인생들을 끝없이 공상할 수가 있다. 타인의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소설보다도, 나 자신의 이 공상에 훨씬 흥미가 있다. 고독한 꿈이 떠돌아다니는 즐거움이다.
지어낸 이름이 없는, 글자와 숫자로 충만해 있는 시간표는 요즈음 나의 즐거운 애독서가 되어있다--115-116쪽

요컨대, 어떤 점으로 보나 이 사나이의 범행이 틀림없다고 믿는다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선입관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작용하여, 그런 것은 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 지나치고 마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만성이 돼 버린 상식이 맹점을 만드는 일이 때때로 있습니다. 다 알고 있는 상식이라 하더라도 수사하는 데 있어서는 일단 백지화하고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162쪽

그것은 적극적으로 좋아한다는 감정과는 거리가 있다. 첫째, 우하라 겐이찌에 대해서 데이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어떠한 곳에 근무하고 있고, 어떠한 일을 하고 있으며, 형 내외와는 한집에 있다는 정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것만으로도 어쩐지 우하라 겐이찌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우하라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결혼하는 상대는 의외로 막연한 이해 아래 맺어지는 것이 아닐까? 여자는 상대가 가진 이 미지의 것에 대해서 두려움과 매혹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혼한 다음에는 이 미지의 부분은 점차 정체가 밝혀지고, 두려움은 사라지고, 매혹은 평범하게 되어 버린다. -206쪽

우하라 겐이찌는 어제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서른 여섯이라는 나이에 걸맞은 얼굴엔 조용함이 흐르고 몸 동작은 침착했다. 그 상태에서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데이꼬는 어제까지의 우하라 겐이찌가 아닌 부분을 알고 있었다. 하룻밤으로 미지의 일각이 무너졌다. 그것은 데이꼬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로 인해서 대부분을 알게된 것처럼 느끼는 위험은 여자보다 남자 쪽인지도 모른다. 그 증거로 대부분의 남자들은 마음을 놓은 듯한 얼굴이 되어 버린다. -209쪽

한 사람의 행방을 이 한 장의 인쇄된 용지가 추적한다. 데이꼬에게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서류와 인간의 관계가 뒤죽박죽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데이꼬는 남편의 얼굴 특징, 신장, 체중, 복장, 소지금과 물건, 갈 만한 장소 따위의 난을 하나하나 적어 가는 동안 남편이라는 의식이 멀어지고 우하라 겐이찌라는 전혀 모르는 인간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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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2009-06-23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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