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를 것이다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1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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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난다면

정말로 일이 그렇게 일어난 것이다.

소설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섬뜩하고 신비한 느낌의 괴담과 기담을 즐겨 읽는 편이다. 당연히 란포와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을 좋아하고 비슷한 분위기의 단편을 창작하는 작가의 작품은 빼먹지 않고 읽어왔다. 2022년 <저주토끼>가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일약 스타 작가가 되어버린 정보라 작가의 이번 단편집<아무도 모를 것이다>의 출간 소식을 들었고 기쁘게 그녀의 소설을 접하게 되었다.

정도경이라는 필명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그녀를 모르는 대부분의 독자들을 위한, 그녀의 오랜 팬으로서 그녀 작품에 목말라한 독자들의 작은 선물 같은 이번 단편집은 9편의 초기 발표작과 1편의 미발표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무> <머리카락> <가면> <금> 등의 이번 단편에서 느껴졌던 감정은 인간의 허황된 욕망과 쾌락의 끝, 호기심, 복수, 시기, 살인 본능 등의 어쩌면 인간의 원초적 죄악에 기반을 둔 단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원인 불명의 환상적 세계 속에 인물이 귀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운명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인물들의 이글거리는 욕망이 세계를 잠시 덮는 거대한 환상의 장막을 만들어낸다.

얼룩에서 나온 기이한 여인과의 정사로 쾌락에 중독된 인간을 표현한 <가면>, 물과 비슷한 미지의 생명체를 무기화하려는 인간들의 욕망을 보여준 <물>을 비롯하여 단편집의 제목이 되는 <Nessun sapra>가 눈길을 끌었다. 특히 소설 후반부에 위치해 끝까지 읽어야 표제의 의미를 알 수 있는 <Nessun sapra>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전쟁으로 도시가 봉쇄되고 정신 병동의 간호사가 자신이 돌보고 있던 천재 작가의 시체를 먹는 내용으로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을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었다. 물론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 시체를 먹음으로써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자체가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의 쓸쓸함을 이어받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작가가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작품 곳곳에서 느껴지는 애잔하면서 안쓰러운 시선은 오래된 동화나 고전에서 느껴지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헛되며 끝없이 욕망하는 자들이 남겨둔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은 작가의 세계를 대변하는 이미지로 읽히지 않는가. 희미하게 남겨진 이 존재감들은 욕망의 본질의 보잘것없음과 패배할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해 냉혹한 듯하다가도 그럼에도 '인간'일 수밖에 없는 존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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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여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4
이서수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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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인 나의 시선에서 바라본 '몸과 여자들'은 유년 시절부터 지켜본 내 주변 여성들의 모습이었다. 옆집 누나의 모습이었고, 가깝게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당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여성들의 억압을 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척이나 가슴 아픈 일이다. 단숨에 읽어 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글이 써지지 않았다. 그것은 남성인 나의 입장에서 이해는 할 수 있어도 공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저의 몸과 저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실로 부끄러운 고백이어서 저는 단 한 번밖에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가만히 들어주세요.


여성으로서 받아 들여야 하는 불합리한 일들과 여성의 몸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이서수 작가의 이번 소설은 고백 형식을 취하고 있다. 83년생의 주인공은 또래보다 마른 몸으로 유년 시절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다. 마른 몸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성장한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 결혼을 해서도 남편과의 원치 않은 관계를 괴로워하며 결국 이혼하기에 이른다. 또 다른 이야기인 주인공의 어머니인 59년 생 미복은 여성으로 성숙한 몸을 가지게 됨으로써 일어나는 불쾌한 일들과 여성이기에 교육의 기회조차 포기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남자를 높이고 여자는 낮추는 남녀 불평등한 현상을 보여 왔다. 근대 이전 유교 문화권 사회에서 통용된 남녀 불평등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습속과 관행의 형태로 잔존해왔는데, 대부분의 딸들은 아들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받으며 교육의 기회나 상속의 대상에서 배제되어왔다. 여성이야말로 권력의 장에서 가장 먼저 배제된 존재이고 여성적인 것에 이르게 된 것은 어쩌면 불행의 행로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혼한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니.


자신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길 바라면서도 미복이 딸의 이혼을 반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여성을 그릇되게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혼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어떠한가. 남자와 여자는 이혼을 해도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매년 이혼율이 급증하는 가운데 이혼 후 혼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뿌리 깊은 사회적 편견과 오해로 인해 결혼생활 실패를 경험한 여성들에게 또 다른 시련이 되고 있다.


나는 전해야 할 누군가의 목소리가 있다는 믿음을 품고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한다.

이 소설 역시 그러한 믿음에서 출발했다.

그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내 안에 고여 있었고, 자라면서 더욱 증폭되었으며

언젠가 밖으로 뚫고 나오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자세한 언급은 없지만 어쩌면 작가 개인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80년대를 살아온 여성들 대부분이 그러했듯 여성으로 억압받으며 살아온 고통의 세월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어두운 터널 같은 느낌이었을까. 아들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와 사랑, 남편에 대한 맹종, 여성에 대한 무관심과 냉담으로 일관해온 사회적 관습은 과연 '여성'의 입장에서는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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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결사 수첩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시부사와 다쓰히코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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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등의 비밀결사단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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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결사 수첩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시부사와 다쓰히코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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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밀결사단이라는 단어를 쉽게 여러 매체에서 들으며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의 템플기사단과 시온 수도회, 일루미나티, 애거사 크리스티의 '비밀결사'에 등장하는 프리메이슨 등 소설이나 영화에서 매력적인 소재로 쓰이며 우리 문화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


저자 시부사와는 비밀결사 연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과거에 독자들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 주기 위하여 집필한 '비밀결사수첩'은 하야카와쇼보의 추리소설 전문지 <E.Q.M.M>에 연재한 글에 100장 정도 가필해 '하야카와라이브러리' 중 한 권으로 간행(1966년 3월)한 것이다. 그의 [수첩] 시리즈 '흑마술 수첩', '독약 수첩'과 함께 1960년대에 나온 3부작을 형성하고 있다.

이단과 탐미와 반속

시부사와 다쓰히코의 관심사는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들을 떠오르게 한다. 환상성 가득한 단편들, 괴기와 엽기, 잔학성을 강조한 작품들을 써 내려간 란포 분위기와 닮아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오컬트, 라스푸틴, 흑미사, 그노시스,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등 어디선가 한 번쯤 관심을 가지고 들어봤을 흥미로운 테마들로 가득하다.

시대를 막론하고 의식의 비밀을 공유함으로써 속세의 인간들과

자신을 구별하고자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


정치적, 종교적 목표를 가지고 아니면 특정 목표를 가진 특별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집단을 만든다.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같은 비밀결사단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활동을 했을까. 이 책은 사람들의 입담이나 확실치 않은 소문들로 들어야 했던 비밀 결사들의 역사를 고대로부터 기원을 찾아 다양한 비밀 결사들의 명단과 그 활동 내용까지 상세하게 풀어냈다.

역사의 이면에서 끊임없이 활동하며 세계 곳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온 비밀결사단. 그들에 관해 조금이나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라면 시부사와 다쓰히코의 '비밀결사수첩'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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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계절 암실문고
페르난다 멜초르 지음, 엄지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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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뇨의 미완성 유작인 '2666'을 떠오르게 하는 이 소설은 2020년 맨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태풍의 계절'은 그해 후보작 가운데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킨 작품이다. '2666'이 보여주었던 멕시코 폭력의 연장선에 있는 '태풍의 계절'은 멕시코 최빈곤층의 정말적인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이 작품은 입에 담기도 힘든 폭력적인 묘사와 성행위가 필터 없이 묘사되어 몇몇 독자들은 '차 빈곤층이 보여주는 단순한 포르노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문학적으로 순화하지 않았다



문학적으로 미화되어야만 좋은 작품인 것인가? 나 역시 외설적이고 필터링 되지 않은 폭력적인 묘사는 좋아하지 않는다.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 문제작은 언뜻 보기에는 희망을 버린 채 악몽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밑바닥 인생을 담은 블루필름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페르난다 멜초르가 보여주고 싶었던 자신의 고향 멕시코 베라크루즈 깊숙이 깔린 어둠을 숨김없이 묘사하기에는 분명,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써 내려가는 것만이 정답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으리라.

마녀(여장 남자)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으로 그녀의 죽음과 연관된 사람들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외지에서부터 마녀가 오고 그의 남편 마놀로콘데는 심근경색, 두 아들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이 죽음은 정말 우연이었을까. 언젠가부터 마녀의 집 어딘가에는 마놀로가 그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던 돈과 다수의 금괴, 가짜로 보일 정도로 큰 다이아몬드가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녀의 시선에서 시작된 이 소설은 마녀의 자식인 어린 마녀, 예세니아, 문라, 노르마, 브란도로 이어지며 욕망으로 얼룩진 마녀의 살인 사건의 조각들은 하나씩 모아진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라 마토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란 마약과 알코올에 찌들어져 삐뚤어진 쾌락만을 좇으며 살아간다. 작가는 부패와 황금만능주의의 제국이기도 한 이 공간에서 마약 밀매업자, 매춘부, 범죄들과 좀처럼 구별되지 않는 경찰들. 그들과 일상화되고 평범해지는 악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적나라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악에 관해 글을 쓴다는 것,

그러니까 글쓰기 자체를 악이 되게 하는 것



여느 소설처럼 악과 싸우거나 몰아내려고 하지 않고, 이런 악의 유형을 배제하지도 않으며, 멕시코에서 악이 나타나는 여러 양상을 넓게 살펴본다. 바로 이런 이유로 병적일 정도의 잔혹함, 위반, 집단적 야만성 등이 나타난다. 인간의 어두운 지역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이런 문학적 제안은 불가피하게 악의 모든 얼굴과 만나게 되는 동기인 것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으로 인해 한 인간의 비극적인 죽음을 담은 이 작품은 몰락하는 서양 문명에 대한 비판일 뿐만 아니라, 폭력의 부조리와 제도화에 관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악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한 멜초르의 선택을 반대하는 것도, 지지하는 것도 이 소설을 읽은, 앞으로 읽을 독자들의 몫이 아닐까. 우리가 아는 상식이나 정의의 바깥에, 우리가 아는 단어의 뜻 바깥에 있는 마음들을 담은 암실 문고의 의의를 생각하며 새카만 어둠을 담은 '태풍의 계절'에 한 발짝 다가가 보는 것도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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