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계절 암실문고
페르난다 멜초르 지음, 엄지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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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뇨의 미완성 유작인 '2666'을 떠오르게 하는 이 소설은 2020년 맨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태풍의 계절'은 그해 후보작 가운데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킨 작품이다. '2666'이 보여주었던 멕시코 폭력의 연장선에 있는 '태풍의 계절'은 멕시코 최빈곤층의 정말적인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이 작품은 입에 담기도 힘든 폭력적인 묘사와 성행위가 필터 없이 묘사되어 몇몇 독자들은 '차 빈곤층이 보여주는 단순한 포르노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문학적으로 순화하지 않았다



문학적으로 미화되어야만 좋은 작품인 것인가? 나 역시 외설적이고 필터링 되지 않은 폭력적인 묘사는 좋아하지 않는다.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 문제작은 언뜻 보기에는 희망을 버린 채 악몽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밑바닥 인생을 담은 블루필름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페르난다 멜초르가 보여주고 싶었던 자신의 고향 멕시코 베라크루즈 깊숙이 깔린 어둠을 숨김없이 묘사하기에는 분명,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써 내려가는 것만이 정답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으리라.

마녀(여장 남자)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으로 그녀의 죽음과 연관된 사람들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외지에서부터 마녀가 오고 그의 남편 마놀로콘데는 심근경색, 두 아들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이 죽음은 정말 우연이었을까. 언젠가부터 마녀의 집 어딘가에는 마놀로가 그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던 돈과 다수의 금괴, 가짜로 보일 정도로 큰 다이아몬드가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녀의 시선에서 시작된 이 소설은 마녀의 자식인 어린 마녀, 예세니아, 문라, 노르마, 브란도로 이어지며 욕망으로 얼룩진 마녀의 살인 사건의 조각들은 하나씩 모아진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라 마토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란 마약과 알코올에 찌들어져 삐뚤어진 쾌락만을 좇으며 살아간다. 작가는 부패와 황금만능주의의 제국이기도 한 이 공간에서 마약 밀매업자, 매춘부, 범죄들과 좀처럼 구별되지 않는 경찰들. 그들과 일상화되고 평범해지는 악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적나라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악에 관해 글을 쓴다는 것,

그러니까 글쓰기 자체를 악이 되게 하는 것



여느 소설처럼 악과 싸우거나 몰아내려고 하지 않고, 이런 악의 유형을 배제하지도 않으며, 멕시코에서 악이 나타나는 여러 양상을 넓게 살펴본다. 바로 이런 이유로 병적일 정도의 잔혹함, 위반, 집단적 야만성 등이 나타난다. 인간의 어두운 지역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이런 문학적 제안은 불가피하게 악의 모든 얼굴과 만나게 되는 동기인 것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으로 인해 한 인간의 비극적인 죽음을 담은 이 작품은 몰락하는 서양 문명에 대한 비판일 뿐만 아니라, 폭력의 부조리와 제도화에 관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악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한 멜초르의 선택을 반대하는 것도, 지지하는 것도 이 소설을 읽은, 앞으로 읽을 독자들의 몫이 아닐까. 우리가 아는 상식이나 정의의 바깥에, 우리가 아는 단어의 뜻 바깥에 있는 마음들을 담은 암실 문고의 의의를 생각하며 새카만 어둠을 담은 '태풍의 계절'에 한 발짝 다가가 보는 것도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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