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아이즈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엄지영 옮김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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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이 세계 어느 곳에서나 임의의 낯선 사람의 삶에 가상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두 사람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개인의 사생활조차 상품이 되어 팔리는 미래의 세계에 개인의 비밀이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그린 슈웨블린의 장편 <리틀 아이즈>는 2018년에 발표한 장편 <Kentukis>의 다른 이름으로 만다라체상을 받고 이 작품 역시 인터내셔널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

 

"카메라는 인형의 눈에 달려 있었는데, 동물 모양을 한 이 인형은 밑바닥에

바퀴 세 개가 숨겨져 있어서 빙글빙글 도는가 하면 앞뒤로 움직이기도 했다"

 

켄투키라는 동물 모습을 한 인형에는 카메라가 내장되어 있고 켄투키 인형을 사는 사람은 켄투키 연결카드를 사는 사람에게 관찰당하게 된다. 즉 연결 카드를 산 사람이 켄투키가 되어 자신의 주인을 지켜보고 되는 것이다. 그들은 서버에 의해 랜덤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상대를 선택할 권리는 없다.

 

"주인이 되는 것과 켄투키가 되는 것의 장단점을 두고 다들 이런저런 말들을 해댔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 보이려는 사람은 드문 반면,

다른 이의 삶을 엿보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었다"

 

 

남의 사생활을 엿보거나 간섭을 하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가리어져 있는 누군가의 삶, 훔쳐보기가 가져다주는 짜릿함 때문일까? <리틀 아이즈>의 내용을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가까운 미래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국내에서도 미성년자들을 협박하여 끔찍한 음란물을 촬영하도록 만든 N번방 사건을 비롯하여 수많은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남의 사생활이나 성행위를 훔쳐보는 관음증은 사회적으로 통용되지 않은 성행위를 즐기며 성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것으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개개인의 성적 만족을 위한 관음 행위를 벗어나 정부적 차원에서의 감시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조지 오월의 1984에서의 텔레스크린과 사법경찰들의 감시, 심장 박동까지 감시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슈웨 볼린의 우려하는 또 다른 미래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4차 산업혁명으로 모든 것이 연결된 지금, 겉으로는 인간의 자유와 해방이 실현된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 또 다른 형태의 억압과 불평 등이 존재하는 곳이다. 고도화되고 정교화된 CCTV 카메라 자이와 디지털 파눕티콘 구조 속에 사람들은 차츰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해 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슈웨 볼린의 글들이 진정한 공포로 다가오는 건 그녀의 상상이 멀지 않은 우리의 미래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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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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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속의 새>에 이어 사만타 슈웨블린의 2번째 리뷰는 대표작 <피버 드림>이다. 원제 Distancia de rescate로 구조 거리이지만 영미권의 표제를 그대로 쓰고 있다. 작품을 읽게 되면 특이한 형식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응급실에서 죽어가는 아만다와 다비드의 대화만으로 이루어진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서로 간의 관계를 알 수 없는 독백에 가까운 대화들 속에서 희미한 기억을 잡아가며 그녀가 병원에 도착하기까지의 사건들을 되짚어본다.


정확한 순간은 바로 세세한 점에 있어요.

그러니 자세히 살펴봐야 해요.


​소설 곳곳에서 죽음을 연상케 하는 초자연적인 소재들로 소설의 분위기를 무겁게 이끌고 간다. 과연 초자연적인 무언가로 인해 마을에 생기는 재앙을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만다와 다비드의 대화에서 계속 언급되고 있는 세세한 점과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소설을 끊기 있게 읽어 나간 독자라면 눈치챘겠지만 이것은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아닌 바로 환경오염으로 비 져진 재앙이었던 것이다. 사만타 슈웨블린은 비극의 원인을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는 대신 이 재앙은 환경문제로서 우리 삶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고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될 문제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수많은 자동차가, 갈수록 더 많은 차들이 아스팔트 위를 덮고 있다는 것도 교통이 정체되어 몇 시간 동안 오도 가도 못한 채 뜨거운 배기가스를 내뿜고 있다는 것도. 그이는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해. 어딘가에서 불붙은 도화선처럼 마침내 느슨해진 실을. 이제 곧 분출되지 일보 직전인, 움직이지 않는 재앙을."


소설 속에서 드럼통 안에 들어있던 '이슬'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농약 성분인 '글리포세이트'로 이것의 발암 가능성을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세계적 유전자재조합 종자회사이면서 농약회사인 몬샌토의 제초제 '라운드업'에 포함된 이 성분을 세계보건기구 산하에 있는 국제 암연구소가 2015년 3월 발암 가능성이 높은 물질로 분류하면서 GMO 수입국인 우리나라에서도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글리포세이트 성분은 인체의 암 발생 문제와 연관됐다고 보고되고 있고 일부 연구에서는 선청성 기형아 발생 위험과의 연관성도 우려했다. 사만타 슈웨블린 역시 무분별한 살충제 살포와 그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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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속의 새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엄지영 옮김 / 창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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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것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상식을 벗어나는 것들로 바뀌어 있다면 그것만큼 경악스럽고 공포스러운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말하는 비정상적인 요소가 일상적인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그들 삶의 일부가 되어가는 이 기이하고 공스러운 이야기들은 지금껏 내가 알고 있는 환상문학의 뿌리를 뒤흔드는 충격적인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만타 슈웨블린의 두 번째 소설집 '입속의 새'는 평화로운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20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제작인 <입속의 새>는 새를 먹는 아이의 이야기이다. 이혼 후 아이를 맡고 있던 아내 실비아가 찾아오게 되고 이제 아이를 돌보는 것은 한계라며 딸 사라를 가리킨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체 주인공은 아내를 지켜보고 되고 아내는 거실을 따라 차고로 들어가서는 구두 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아내는 깨지기 쉬운 물건이라도 든 것처럼 조심스럽게 상자 안에서 참새 한 마리를 꺼내더니 새장 안에 넣고 문을 닫았다. 사라는 폴짝폴짝 뛰더니 새장으로 다가가 새를 꺼냈다. 사라가 뭘 하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새가 날카롭게 꽥 꽤 거리는 가운데, 아이는 뭘 하는지 잠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새가 날카롭게 꽥꽥거리는 가운데, 아이는 뭘 하는지 잠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마 새가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해서 저러는 것 같았다. 실비아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사라가 우리를 향해 돌아섰을 때, 새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사라의 입, 코, 턱 그리고 두 손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아이는 수줍게 웃었다. 커다란 입이 활같이 휘다가 벌어지면서 시뻘건 이가 드러났다."

<인어남자>는 어느 날 부두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인어 남자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심장에 문제가 있는 주인공은 오빠의 친구 가게에서 오빠를 기다리는 중 부두에서 콘크리트 기둥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인어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홀린 듯 인어 남자에게 다가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에 빠지지만 자신을 발견한 오빠는 인어가 보이지 않는 듯하다.

"오빠는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본다. 나는 바다 쪽으로 몸을 돌린다. 아름답고 온몸이 은빛으로 반짝이는 그가 부두에서 손을 흔들며 우리에게 인사한다. 그런데도 오빠는 아무 말 없이 차에 타더니 조수석 문을 열어준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순간 이 세상은 나 같은 사람이 살기에 너무 끔찍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서글퍼진다. 그래서 나는 차에 타 마음을 진정하려 애쓰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냥 인어일 뿐이야. 그냥 인어일 뿐이야. 내일도 저 자리에 있을 거야. 나를 기다리면서."

<베나비데스의 무거운 여행 가방>은 아내를 살해하고 그녀를 커다란 여행 가방에 넣어둔 일이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찔러 살해한 뒤 시신을 쓰레기봉투에 넣은 뒤 커다란 여행 가방 안에 집어넣는다. 그는 자신의 정신과 주치의인 코랄레스 박사의 집으로 찾아가 자신의 살인을 고백하지만 박사는 곧이듣지 않고 그에게 진정을 요구한다. 다음날 그의 끈질긴 부탁해 자신이 살해한 아내가 들어있는 여행 가방을 열어본 코랄레스는 놀라운 재능이라며 베나비데스를 칭찬하게 된다.

"작품에서 발산되는 무언가가 그들을 광기로 몰아넣는다. 자줏빛 육체. 그들 몇 미터 앞에 주검이 놓여 있다. 인간의 살과 인간의 피부가, 거대한 허벅지가, 그 모든 것이 가죽에 짓눌린 채 여행 가방 속에 있다. 그리고 그 부패의 냄새. 예술가는 여전히 가방 가까운 곳에 있다."

뛰어난 작품들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큰 인지도를 얻지 못하는 그녀의 작품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아마 그녀의 작품들에 대한 홍보 부족과 아직 한국에서는 낯선 이미지의 라틴아메리카 문학이라는 거리감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입속의 새> 작품집에서는 기이한 사건 속에서 모두 인간과 현실의 문제로 귀착될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사만타 슈웨블린은 일반적인 리얼리즘에서처럼 자신이 일방적으로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친근한 일상의 경이로운 단면에 시선을 고정시켜 놓고 판단이나 의미 규정을 위해 독자의 동참을 유도한다. 작가는 현재 상황에만 시선을 밀착하도록 유도하고 마지막 순간에 사건을 역전시켜 기대와 예상을 전복시킨다. 이 모든 것이 허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사만타 슈웨블린이 전하고 싶은 환상문학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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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2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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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류의 미래는 과연 올바른 흐름 위에 서 있는 것인가?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이하여 AI 기술이 발전함과 동시에 자율 무기체계에 관한 관련 기술 또한 동시에 발전하고 있다. 인간의 희생이 염려되는 각종 산업이나 전쟁 등에서 자율 체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것이 가능한지 세계적으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인공지능 체계가 너무 빠르고 지나치게 발전되고 있어 인간을 해하는 임무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기술적 특이점(싱귤래리티)을 넘어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는 상황이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데뷔 초기작부터 '인류의 점진적 사이보그화'와 AI의 반란 같은 주제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켄 리우 작가는 이번 작품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에서도 AI가 지배하는 미래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었다. 그중 눈길을 사로잡았던 작품은 스스로 적을 인식해 공격하는 인공지능 드론에 관한 이야기인 [루프 속에서], 전작<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에서 수록되었던 3부작 형식이 이번에 도 수록되었는데 인간의 모든 걸 데이터 세계로 업로딩한 신인류를 그린 포스트 휴먼 3부작 <신들은 목줄을 차지 않을 것이다>, <신들은 순순히 죽지 않을 것이다>, <신들은 헛되이 죽지 않았다>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만약 사람들에게서 그런 결정을 면제해 준다면, 그래서 개개인이 의사 결정의 루프에서

벗어난다면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부수적 피해'를 줄일 뿐 아니라

틀림없이 더 인간적이고 더 문명화된 형태의 전쟁을 수행할 겁니다

첫 수록 작인 [루프 속에서]는 전투 드론 조종사였던 아버지의 PTSD(전쟁 자연재해, 고문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는 스트레스 장애)로 인해 화목했던 가정은 무너지게 된다. 카이라는 우연히 방위산업체인 회사에 취직하게 되고 AW-1 가디언(자율비행장치)의 윤리 제어 장치 모듈을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된다. 카이라는 드론 조종사였던 아버지의 일을 떠올리며 모듈 제작에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녀의 윤리 제어장치의 사각을 노린 테러가 발생하고 그녀는 자신이 만든 모듈에 대한 윤리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지금 세계는 드론 산업 활성화를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앞으로 몇 년 후면 운송업, 통계, 방위산업 등 모든 산업에 드론을 적용할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무인 전투기 드론에 스스로 적인 인식하고 공격하는 자동무기 시스템[LAWS]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인간의 판단에 의해 적을 인식할 경우 생기는 수많은 오류, 그 불확실성을 배제하기 위해 AI를 내세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만이 판단할 수 있는 0.1%의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포스트 휴먼 3부작>은 친구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는 매디에게 의문의 그림 메시지를 받게 된다. 아버지의 유품인 노트북을 사용하던 매디는 혹시 아버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데 곧 엄마에게 들키게 되고 엄마는 노트북의 그림 메시지를 보고 자신의 남편이 살아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엄마와 매디는 다시 아버지의 담당이었던 왁스먼 박사에게 진실을 요구하였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그는 로고리즘스의 프로젝트 중 심층 스캔을 이용한 '의식 업로딩'을 실험했고 결국 성공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유가족의 권리로 아빠의 인격체를 다시 양도받게 되고 디지털 속 아빠와 행복한 날들을 보내게 되는데 어느 날 아버지와 같은 인공 지각체 중 한 명이 인간 말살을 행동으로 옮기고 결국 세계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매디의 아버지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매디와 헤어지게 된다.

인간 이후의 존재이자 싱귤래리티 이전의 존재인 이 인공 지각체들은,

천재급 인간의 인식 능력과 세계 최고 수준의 컴퓨터 하드웨어가 지닌 속도 및 기능을 겸비했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동시에 최첨단 양자 역학의 산물이기도 했다.

이들은 우리 세계가 지닌 것 가운데 가장 신에 가까웠고,

이제 그 신들이 천상에서 전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도 인류의 발전은 생물학적 진화 속도로 인해 제한되기 때문에 인공지능 발전 속도와 경쟁할 수 없을 것이며 인공지능은 인류의 종말을 불러올 수 있다고 언급한 적 있다. 기계들이 인간 사육을 목적으로 매트릭스의 가상현실 안에 가두어 둔다는 영화 매트릭스, 인공지능 자율 체제 스카이넷의 폭주로 핵 전쟁이 일어나고 살아남은 인류와 기계의 처절한 전투를 담은 영화 터미네이터. 모두 AI 발달로 인한 암울한 미래를 그린 영화이다. AI가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이 어두운 미래도 한발 앞으로 다가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불완전한 동물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인공지능 자율 체제의 표준화는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예상되는 것은 빈부격차를 이어받은 인공지능의 격차로 이어질 차별과 편견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초지능의 발전으로 단지 인간을 유해한 생물 자체로 판단해 인류를 말살하려는 시나리오도 먼 미래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켄 리우 작가의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는 단순 SF 소설을 넘어선, 다가올 어두운 미래에 대한 경고와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을 인류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는 뜻깊은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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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영원의 시계방 초월 2
김희선 지음 / 허블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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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다운 문학을 해보겠다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 모두의 한결같은 소망일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틈틈이 취미 삼아 글을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필요에 의해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사회의 여러 가지 직종들 중에서 문학을 평생의 업으로 택한 사람이라면 이것을 좀 제대로 해보자 하는 생각을 안 가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오늘 서평 할 김희선 작가는 약사와 소설가의 일을 병행하고 있다. 보통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병행하게 되면 퀄리티가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두 가지 일 모두 좋지 않은 완성도를 보이는 게 특징이지만 놀랍게도 김희선 작가의 글을 보면 소설 하나만큼은 전업작가 못지않은 완성도를 보이고 있었다.

인간의 욕망이란 근본적인 생명력과 같은 것으로서 언제나 인간의 삶 한가운데 존재하게 마련이다. 삶은 꿈을 실현시키려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꿈을 지향하는 생명력으로서 욕망은 어떤 현실 원칙의 억압과 검열 아래서도 살아 있고, 그것이 살아 있는 한 당연히 현실의 한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어떤 불가능성을 꿈꾸게 된다. 인간의 삶을 삶답게 만드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러나 불가능성의 의미를 추구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SF 소설이라는 장르는 허위의 욕구가 아닌 욕망의 진실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면서 그 욕망의 목소리로 표현되고 결코 정형화될 수 없는 언제나 새로운 시도로 그 불가능성의 의미를 추구하는 일이다. 오늘은 <빛과 영원의 시계방> 수록된 8개의 단편 중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다룬 3편의 단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공간 서점>은 자신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시계방 천금당이 이제는 공간 서점으로 바뀌어 있었고 주인공인 아들은 아버지가 말했던 무언가가 공간 서점 어딘가에 있다며 사설탐정에게 의뢰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주 오래전 한 대학생에게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수리해 주고 한 푼도 없던 그에게 수리비 값으로 대신한 이상한 책 한 권을 받게 된다. 책의 표지에는 [공기를 이용하여 우편물과 화물을 빠르게 확실하게 전달하는 방법]이라고 적혀 있었다.

 

공기를 이용하여 우편물과 화물을 빠르고 확실하게 전달하는 방법

아버지는 그날부터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고 언젠가부터는 저녁에 집에 오지 않고 가게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주인공이 고등학생이 되고 어느 날 오랜만에 집에 온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믿지 못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자신이 세상 어디든, 어느 시간으로든 다 갈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었고 시운전까지 끝낸 상태라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헛소리를 하는 거라고 단정 지어 버리고 나중에 마저 들려달라며 자리를 일어나자 그는 풀이 죽더니 조용히 안방으로 가버렸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주인공은 대학생이 되었고 집과 가까운 곳에 자취방을 얻어 지내던 중 아버지가 찾아왔다.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는 그 대학생에 얽힌 이야기며, 책을 어떻게 얻었는지에 대한 이야길 들려주었다. 그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외쳤다.

그래서 하는 얘긴데,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돌아가서 할 일을 해야 할 때 말이야.

기계는 완벽히 작동하고 시운전도 여러 번 해보았으니,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지.

주인공은 계속 건성으로 대답했고 꼭 돌아가겠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하였다. 아버지는 쓸쓸하게 웃으며 주인공에게 "오랜 후의 넌 잘 지내고 있더구나."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는 자취방 계단을 내려갔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주인공은 지방 도시의 의약품 도매상에서 영업부장으로 일하고 있었고 오후 업무를 마치고 차 안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차 유리를 두리는 소리에 잠을 깬다.

눈을 떠보니 그건 나이 들고 노쇠한 아버지가 아니라 사라지기 직전의 아직 장년의 젊은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주인공은 미친 듯이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지만 아버지는 이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주인공은 어쩌면 지금껏 아버지가 했던 말들이 모두 사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사설탐정에게 의뢰를 맡기게 된다.

허버트 조지 웰슨의 타임머신과 영화 타임머신을 연상케 하는 이 소설은 8편의 단편 중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다.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간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인간은 길을 되돌아가는 것처럼 시간을 되돌릴 순 없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지지 않음은 당연했다. 열망은 불만족스러운 현실의 다른 표현이고 결국 인간은 상상 속에서라도 시간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그렇게 인류에게 '시간을 되돌린다는 것'은 SF 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회환' 형상화한 변함없이 사랑받는 소재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달을 멈추다>는 인류는 예전 인류가 가졌었던 비효율적 감정들 예를 들어 분노, 슬픔, 격정, 사랑, 같은 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한 휴먼 3.0 버전으로 다시 태어났다. 어느 날 군나르 순두 베리라는 인물이 자신의 전생이 월명사라는 스님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자신이 가야 할 곳은 '미타찰' 전원이 끊이지 않는다면 영생불사할 수 있는 공간 즉 전뇌 에뮬레이션의 첫 번째 실험자가 된다.

처음엔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에요.

나에겐 원대한 꿈이 있어요. 그리고 그게 뭔지는 차차 알게 될 겁니다.

기대해도 좋아요.

꼬박 이틀하고도 12시간이 지난 업로딩 끝에 에뮬레이션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연구원은 보고 하였다. 순드베리는 인터넷상에 살아있고 인터넷에 접속해 있는 누군가에게 예고 없이 나타날 거라 이야기하지만 예상과 달리 순드베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동원되어 군나르가 업로딩된 컴퓨터 내부 전체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 일이 일어났다. 자신을 군나르 순드베리라고 칭하는 자가 보낸 메일이 세계 곳곳에 보내졌고 그와의 교리문답식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뭔가에 홀린 듯 머리에 전극을 부착한 채 영원한 잠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느리게 진행되었지만 곧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소립자가 어떻게 미래를 바꾸지? 물론 기술적으론 이해가 가. 뭐,

북반구에서의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킨다든가, 하는 그런 얘기잖아

하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어.

주인공과 영주는 기계 속으로 들어가 순드베리(월명사)의 의식에 일으켜 지금에 사태를 막을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었다. 영주는 먼저 저쪽 세계로 떠났고 그도 지금의 파국을 되돌리기 위해 월명사가 있는 과거의 시공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려있는 '관내분실'에 나오는 마인드 업로딩 등장한다. 인간의 마음, 정신을 컴퓨터에 전송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인간의 모든 기억과 화학 반응을 칩과 같은 외부 장치에 기록해낼 수 있다면 인간의 뇌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인간의 뇌에 있는 수많은 뉴런과 시냅스를 모두 분석하여 재현해 내는 것이 현재로는 불가능하다. 또한 이것이 가능하다고 하여 컴퓨터로 재현해낸 마인드가 실제 인간과 동일하다가 간주할 수 있을까? 만약 인간과 똑같은 인격체로 업로딩 되었다면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 들여야 하지 않을까? 이미 전뇌화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에서 먼저 소개되었다. <달을 멈추다>와 비슷한 소재의 단편이 하나 존재하는데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감독의 전뇌가 들어가 있는 박스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전뇌에 연결된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내용의 단편이 있었다. 월명사가 계획한 마인드들의 거대한 커뮤니티. 돌아가기 싫을 정도의 완벽한 공간으로 초대라는 소재는 무척이나 매혹적인 소재이다.

<가깝게 우리는>은 W시 외곽의 버려진 물류창고 부근에서 한 노인이 폭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더운 여름날 프로판 가스통을 등에 메고 있다가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폭발해 버린 것이다. 그 폭발로 노인은 산산조각 났고 남은 것이라곤 쭈글쭈글하고 검게 그은 데다 일부는 녹아버리기까지 한 플라스틱 가짜 손이었다. 인명피해가 없었던 탓에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 노인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자세히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건이 지나고 한 달 후 어느 남자의 트위터에서 다시 그 손을 보게 되었고 플라스틱 손이 거대하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점점 커지던 노인의 손이 꽉 지고 있던 주먹을 펴자 거기서 녹슨 황동 빛 태영 하나가 툭 떨어졌다. 하지만 그 손은 곧바로 그걸 다시 움켜쥐었다.

결코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

혹은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다는 듯.

"태엽"

노인을 처음 만난 곳은 W의 시립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자서전 쓰기 강좌에서였다. 노인들 대부분이 주인공의 강의를 듣고 이제 겨우 한글을 뗀 정도의 글쓰기 실력을 지니고 있어서 그냥 전체적인 줄거리를 봐주면서 다섯 번의 강의만 채우면 된다는 다섯 번의 강의만 채우면 된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진수 김 베르너'라고 밝힌 기이한 노인에 의해 뒤집히고 말았다. 짧은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듬성듬성 앉아있는 노인들에게 원고지 열 장씩을 나눠주고는 가져갔던 소설책을 읽다가 자신도 모르게 졸고 있는데 '홍농종묘'라고 쓰인 야구모자를 쓴 노인이 원고지를 달라고 한 것이다. 기이한 할아버지는 조만간 자서전을 내게 될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글을 찬찬히 봐달라고 할 참이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손으로 쓴 원고 뭉치를 들고 와 건넨다

원고의 내용은 세계 기능장 올림픽에서 금상을 탄 그는 고향에 있는 작은 시계 방의 점원으로 취직했다. 어느 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내리더니 자신을 따라오라며 이것은 조국의 부름을 받아 가는 거라고 하며 그들과 함께 검은 승용차에 올라탔다. 그들은 그에게 스위스로 밀항을 해 그 프랑스인 사업가가 운영하는 비밀 공방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자케 드로의 오토마톤을 만난 뒤 그에게서 자동인형 만드는 법을 빼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어떤 것에도 세뇌되지 않고 열심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 24시간 일할 수 있는 자동인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자케 드로에게 오토마톤 만드는 법을 배웠다니요.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 사람은 스위스의 유명한 시계 장인이고

죽은 지도 200년도 훨씬 넘었단 말이에요.

주인공은 노인의 글에서 자서전적 진실을 느끼게 되었고 진수 베르너의 원고의 다음 편이 궁금해 견딜 수 없었지만 그 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자케 드로에게 오토마톤 만드는 법을 정말 배웠는지, 정부가 요구하는 24시간 일하는 인형을 만들어 주웠는지 너무나도 궁금했던 것이다. 과연 노인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정부의 노동권을 위해 투정하던 사람들을 모두 자동인형으로 교체하기 위해 그를 스위스로 파견한다는 황당한 내용의 이 소설은 <야근>이라는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황석영의 <야근>이라는 단편소설에서 황석영은 공장 노동자들의 특이한 노동쟁의의 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초보적인 부당노동행위의 개선을 요구하던 공장 종업원들이 일제히 약속된 시각에 작업을 중지하기로 결의하였으나 그 결의를 어긴 일부 종업원에 의해 단체행동이 좌절되자 한 사람이 고압 동력선을 꺼 버리고 자기는 감전사를 당하는 내용으로 서술적인 설명을 일체 배제하고 긴장된 문체의 간단한 묘사와 등장인물들의 대화로 엮어진 분량이 그다지 많지 않은 이 소설에는 산업 노동자의 노동현실의 일부가 압축되어 있다. 여기에는 지나치게 값싼 노동력의 문제가 있고, 어용화한 노동조합이 있고, 힘을 가진 자와 힘없는 자들에 대한 무시와 횡포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자들 사이를 갈라놓는 억압적 메커니즘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 들어 있다.

체험이나 경험은 한 인간의 사고나 행동 양식, 그리고 글쓰기를 결정하는 기본 요소이다. 그 체험이 한 인간의 내부에서 쌓이고 쌓여서 심리적 복합체를 형성한다. 그 심리적 복합체와 글쓰기의 관계는 창작이라는 중요한 성과를 보여주곤 한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이 그의 개인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그의 체험과 경험 때문이다. 김희선 작가의 글들에서는 그런 개인적인 경험이 느껴져 더욱 가슴에 와닿았다. 소설 곳곳에서 등장하는 군사정권, 부조리한 정부의 시책, 코로나 사태 등의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를 체험과 경험이 녹아 있는 SF 소설의 탄생은 이 시대의 어떤 전반적인 경향에 대한 하나의 진단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깊이 있는 작품으로 평가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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