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영원의 시계방 초월 2
김희선 지음 / 허블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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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다운 문학을 해보겠다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 모두의 한결같은 소망일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틈틈이 취미 삼아 글을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필요에 의해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사회의 여러 가지 직종들 중에서 문학을 평생의 업으로 택한 사람이라면 이것을 좀 제대로 해보자 하는 생각을 안 가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오늘 서평 할 김희선 작가는 약사와 소설가의 일을 병행하고 있다. 보통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병행하게 되면 퀄리티가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두 가지 일 모두 좋지 않은 완성도를 보이는 게 특징이지만 놀랍게도 김희선 작가의 글을 보면 소설 하나만큼은 전업작가 못지않은 완성도를 보이고 있었다.

인간의 욕망이란 근본적인 생명력과 같은 것으로서 언제나 인간의 삶 한가운데 존재하게 마련이다. 삶은 꿈을 실현시키려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꿈을 지향하는 생명력으로서 욕망은 어떤 현실 원칙의 억압과 검열 아래서도 살아 있고, 그것이 살아 있는 한 당연히 현실의 한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어떤 불가능성을 꿈꾸게 된다. 인간의 삶을 삶답게 만드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러나 불가능성의 의미를 추구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SF 소설이라는 장르는 허위의 욕구가 아닌 욕망의 진실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면서 그 욕망의 목소리로 표현되고 결코 정형화될 수 없는 언제나 새로운 시도로 그 불가능성의 의미를 추구하는 일이다. 오늘은 <빛과 영원의 시계방> 수록된 8개의 단편 중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다룬 3편의 단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공간 서점>은 자신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시계방 천금당이 이제는 공간 서점으로 바뀌어 있었고 주인공인 아들은 아버지가 말했던 무언가가 공간 서점 어딘가에 있다며 사설탐정에게 의뢰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주 오래전 한 대학생에게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수리해 주고 한 푼도 없던 그에게 수리비 값으로 대신한 이상한 책 한 권을 받게 된다. 책의 표지에는 [공기를 이용하여 우편물과 화물을 빠르게 확실하게 전달하는 방법]이라고 적혀 있었다.

 

공기를 이용하여 우편물과 화물을 빠르고 확실하게 전달하는 방법

아버지는 그날부터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고 언젠가부터는 저녁에 집에 오지 않고 가게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주인공이 고등학생이 되고 어느 날 오랜만에 집에 온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믿지 못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자신이 세상 어디든, 어느 시간으로든 다 갈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었고 시운전까지 끝낸 상태라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헛소리를 하는 거라고 단정 지어 버리고 나중에 마저 들려달라며 자리를 일어나자 그는 풀이 죽더니 조용히 안방으로 가버렸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주인공은 대학생이 되었고 집과 가까운 곳에 자취방을 얻어 지내던 중 아버지가 찾아왔다.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는 그 대학생에 얽힌 이야기며, 책을 어떻게 얻었는지에 대한 이야길 들려주었다. 그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외쳤다.

그래서 하는 얘긴데,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돌아가서 할 일을 해야 할 때 말이야.

기계는 완벽히 작동하고 시운전도 여러 번 해보았으니,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지.

주인공은 계속 건성으로 대답했고 꼭 돌아가겠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하였다. 아버지는 쓸쓸하게 웃으며 주인공에게 "오랜 후의 넌 잘 지내고 있더구나."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는 자취방 계단을 내려갔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주인공은 지방 도시의 의약품 도매상에서 영업부장으로 일하고 있었고 오후 업무를 마치고 차 안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차 유리를 두리는 소리에 잠을 깬다.

눈을 떠보니 그건 나이 들고 노쇠한 아버지가 아니라 사라지기 직전의 아직 장년의 젊은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주인공은 미친 듯이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지만 아버지는 이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주인공은 어쩌면 지금껏 아버지가 했던 말들이 모두 사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사설탐정에게 의뢰를 맡기게 된다.

허버트 조지 웰슨의 타임머신과 영화 타임머신을 연상케 하는 이 소설은 8편의 단편 중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다.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간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인간은 길을 되돌아가는 것처럼 시간을 되돌릴 순 없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지지 않음은 당연했다. 열망은 불만족스러운 현실의 다른 표현이고 결국 인간은 상상 속에서라도 시간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그렇게 인류에게 '시간을 되돌린다는 것'은 SF 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회환' 형상화한 변함없이 사랑받는 소재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달을 멈추다>는 인류는 예전 인류가 가졌었던 비효율적 감정들 예를 들어 분노, 슬픔, 격정, 사랑, 같은 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한 휴먼 3.0 버전으로 다시 태어났다. 어느 날 군나르 순두 베리라는 인물이 자신의 전생이 월명사라는 스님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자신이 가야 할 곳은 '미타찰' 전원이 끊이지 않는다면 영생불사할 수 있는 공간 즉 전뇌 에뮬레이션의 첫 번째 실험자가 된다.

처음엔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에요.

나에겐 원대한 꿈이 있어요. 그리고 그게 뭔지는 차차 알게 될 겁니다.

기대해도 좋아요.

꼬박 이틀하고도 12시간이 지난 업로딩 끝에 에뮬레이션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연구원은 보고 하였다. 순드베리는 인터넷상에 살아있고 인터넷에 접속해 있는 누군가에게 예고 없이 나타날 거라 이야기하지만 예상과 달리 순드베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동원되어 군나르가 업로딩된 컴퓨터 내부 전체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 일이 일어났다. 자신을 군나르 순드베리라고 칭하는 자가 보낸 메일이 세계 곳곳에 보내졌고 그와의 교리문답식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뭔가에 홀린 듯 머리에 전극을 부착한 채 영원한 잠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느리게 진행되었지만 곧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소립자가 어떻게 미래를 바꾸지? 물론 기술적으론 이해가 가. 뭐,

북반구에서의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킨다든가, 하는 그런 얘기잖아

하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어.

주인공과 영주는 기계 속으로 들어가 순드베리(월명사)의 의식에 일으켜 지금에 사태를 막을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었다. 영주는 먼저 저쪽 세계로 떠났고 그도 지금의 파국을 되돌리기 위해 월명사가 있는 과거의 시공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려있는 '관내분실'에 나오는 마인드 업로딩 등장한다. 인간의 마음, 정신을 컴퓨터에 전송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인간의 모든 기억과 화학 반응을 칩과 같은 외부 장치에 기록해낼 수 있다면 인간의 뇌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인간의 뇌에 있는 수많은 뉴런과 시냅스를 모두 분석하여 재현해 내는 것이 현재로는 불가능하다. 또한 이것이 가능하다고 하여 컴퓨터로 재현해낸 마인드가 실제 인간과 동일하다가 간주할 수 있을까? 만약 인간과 똑같은 인격체로 업로딩 되었다면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 들여야 하지 않을까? 이미 전뇌화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에서 먼저 소개되었다. <달을 멈추다>와 비슷한 소재의 단편이 하나 존재하는데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감독의 전뇌가 들어가 있는 박스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전뇌에 연결된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내용의 단편이 있었다. 월명사가 계획한 마인드들의 거대한 커뮤니티. 돌아가기 싫을 정도의 완벽한 공간으로 초대라는 소재는 무척이나 매혹적인 소재이다.

<가깝게 우리는>은 W시 외곽의 버려진 물류창고 부근에서 한 노인이 폭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더운 여름날 프로판 가스통을 등에 메고 있다가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폭발해 버린 것이다. 그 폭발로 노인은 산산조각 났고 남은 것이라곤 쭈글쭈글하고 검게 그은 데다 일부는 녹아버리기까지 한 플라스틱 가짜 손이었다. 인명피해가 없었던 탓에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 노인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자세히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건이 지나고 한 달 후 어느 남자의 트위터에서 다시 그 손을 보게 되었고 플라스틱 손이 거대하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점점 커지던 노인의 손이 꽉 지고 있던 주먹을 펴자 거기서 녹슨 황동 빛 태영 하나가 툭 떨어졌다. 하지만 그 손은 곧바로 그걸 다시 움켜쥐었다.

결코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

혹은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다는 듯.

"태엽"

노인을 처음 만난 곳은 W의 시립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자서전 쓰기 강좌에서였다. 노인들 대부분이 주인공의 강의를 듣고 이제 겨우 한글을 뗀 정도의 글쓰기 실력을 지니고 있어서 그냥 전체적인 줄거리를 봐주면서 다섯 번의 강의만 채우면 된다는 다섯 번의 강의만 채우면 된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진수 김 베르너'라고 밝힌 기이한 노인에 의해 뒤집히고 말았다. 짧은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듬성듬성 앉아있는 노인들에게 원고지 열 장씩을 나눠주고는 가져갔던 소설책을 읽다가 자신도 모르게 졸고 있는데 '홍농종묘'라고 쓰인 야구모자를 쓴 노인이 원고지를 달라고 한 것이다. 기이한 할아버지는 조만간 자서전을 내게 될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글을 찬찬히 봐달라고 할 참이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손으로 쓴 원고 뭉치를 들고 와 건넨다

원고의 내용은 세계 기능장 올림픽에서 금상을 탄 그는 고향에 있는 작은 시계 방의 점원으로 취직했다. 어느 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내리더니 자신을 따라오라며 이것은 조국의 부름을 받아 가는 거라고 하며 그들과 함께 검은 승용차에 올라탔다. 그들은 그에게 스위스로 밀항을 해 그 프랑스인 사업가가 운영하는 비밀 공방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자케 드로의 오토마톤을 만난 뒤 그에게서 자동인형 만드는 법을 빼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어떤 것에도 세뇌되지 않고 열심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 24시간 일할 수 있는 자동인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자케 드로에게 오토마톤 만드는 법을 배웠다니요.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 사람은 스위스의 유명한 시계 장인이고

죽은 지도 200년도 훨씬 넘었단 말이에요.

주인공은 노인의 글에서 자서전적 진실을 느끼게 되었고 진수 베르너의 원고의 다음 편이 궁금해 견딜 수 없었지만 그 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자케 드로에게 오토마톤 만드는 법을 정말 배웠는지, 정부가 요구하는 24시간 일하는 인형을 만들어 주웠는지 너무나도 궁금했던 것이다. 과연 노인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정부의 노동권을 위해 투정하던 사람들을 모두 자동인형으로 교체하기 위해 그를 스위스로 파견한다는 황당한 내용의 이 소설은 <야근>이라는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황석영의 <야근>이라는 단편소설에서 황석영은 공장 노동자들의 특이한 노동쟁의의 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초보적인 부당노동행위의 개선을 요구하던 공장 종업원들이 일제히 약속된 시각에 작업을 중지하기로 결의하였으나 그 결의를 어긴 일부 종업원에 의해 단체행동이 좌절되자 한 사람이 고압 동력선을 꺼 버리고 자기는 감전사를 당하는 내용으로 서술적인 설명을 일체 배제하고 긴장된 문체의 간단한 묘사와 등장인물들의 대화로 엮어진 분량이 그다지 많지 않은 이 소설에는 산업 노동자의 노동현실의 일부가 압축되어 있다. 여기에는 지나치게 값싼 노동력의 문제가 있고, 어용화한 노동조합이 있고, 힘을 가진 자와 힘없는 자들에 대한 무시와 횡포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자들 사이를 갈라놓는 억압적 메커니즘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 들어 있다.

체험이나 경험은 한 인간의 사고나 행동 양식, 그리고 글쓰기를 결정하는 기본 요소이다. 그 체험이 한 인간의 내부에서 쌓이고 쌓여서 심리적 복합체를 형성한다. 그 심리적 복합체와 글쓰기의 관계는 창작이라는 중요한 성과를 보여주곤 한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이 그의 개인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그의 체험과 경험 때문이다. 김희선 작가의 글들에서는 그런 개인적인 경험이 느껴져 더욱 가슴에 와닿았다. 소설 곳곳에서 등장하는 군사정권, 부조리한 정부의 시책, 코로나 사태 등의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를 체험과 경험이 녹아 있는 SF 소설의 탄생은 이 시대의 어떤 전반적인 경향에 대한 하나의 진단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깊이 있는 작품으로 평가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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