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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속의 새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엄지영 옮김 / 창비 / 2023년 1월
평점 :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것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상식을 벗어나는 것들로 바뀌어 있다면 그것만큼 경악스럽고 공포스러운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말하는 비정상적인 요소가 일상적인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그들 삶의 일부가 되어가는 이 기이하고 공스러운 이야기들은 지금껏 내가 알고 있는 환상문학의 뿌리를 뒤흔드는 충격적인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만타 슈웨블린의 두 번째 소설집 '입속의 새'는 평화로운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20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제작인 <입속의 새>는 새를 먹는 아이의 이야기이다. 이혼 후 아이를 맡고 있던 아내 실비아가 찾아오게 되고 이제 아이를 돌보는 것은 한계라며 딸 사라를 가리킨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체 주인공은 아내를 지켜보고 되고 아내는 거실을 따라 차고로 들어가서는 구두 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아내는 깨지기 쉬운 물건이라도 든 것처럼 조심스럽게 상자 안에서 참새 한 마리를 꺼내더니 새장 안에 넣고 문을 닫았다. 사라는 폴짝폴짝 뛰더니 새장으로 다가가 새를 꺼냈다. 사라가 뭘 하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새가 날카롭게 꽥 꽤 거리는 가운데, 아이는 뭘 하는지 잠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새가 날카롭게 꽥꽥거리는 가운데, 아이는 뭘 하는지 잠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마 새가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해서 저러는 것 같았다. 실비아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사라가 우리를 향해 돌아섰을 때, 새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사라의 입, 코, 턱 그리고 두 손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아이는 수줍게 웃었다. 커다란 입이 활같이 휘다가 벌어지면서 시뻘건 이가 드러났다."
<인어남자>는 어느 날 부두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인어 남자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심장에 문제가 있는 주인공은 오빠의 친구 가게에서 오빠를 기다리는 중 부두에서 콘크리트 기둥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인어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홀린 듯 인어 남자에게 다가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에 빠지지만 자신을 발견한 오빠는 인어가 보이지 않는 듯하다.
"오빠는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본다. 나는 바다 쪽으로 몸을 돌린다. 아름답고 온몸이 은빛으로 반짝이는 그가 부두에서 손을 흔들며 우리에게 인사한다. 그런데도 오빠는 아무 말 없이 차에 타더니 조수석 문을 열어준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순간 이 세상은 나 같은 사람이 살기에 너무 끔찍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서글퍼진다. 그래서 나는 차에 타 마음을 진정하려 애쓰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냥 인어일 뿐이야. 그냥 인어일 뿐이야. 내일도 저 자리에 있을 거야. 나를 기다리면서."
<베나비데스의 무거운 여행 가방>은 아내를 살해하고 그녀를 커다란 여행 가방에 넣어둔 일이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찔러 살해한 뒤 시신을 쓰레기봉투에 넣은 뒤 커다란 여행 가방 안에 집어넣는다. 그는 자신의 정신과 주치의인 코랄레스 박사의 집으로 찾아가 자신의 살인을 고백하지만 박사는 곧이듣지 않고 그에게 진정을 요구한다. 다음날 그의 끈질긴 부탁해 자신이 살해한 아내가 들어있는 여행 가방을 열어본 코랄레스는 놀라운 재능이라며 베나비데스를 칭찬하게 된다.
"작품에서 발산되는 무언가가 그들을 광기로 몰아넣는다. 자줏빛 육체. 그들 몇 미터 앞에 주검이 놓여 있다. 인간의 살과 인간의 피부가, 거대한 허벅지가, 그 모든 것이 가죽에 짓눌린 채 여행 가방 속에 있다. 그리고 그 부패의 냄새. 예술가는 여전히 가방 가까운 곳에 있다."
뛰어난 작품들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큰 인지도를 얻지 못하는 그녀의 작품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아마 그녀의 작품들에 대한 홍보 부족과 아직 한국에서는 낯선 이미지의 라틴아메리카 문학이라는 거리감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입속의 새> 작품집에서는 기이한 사건 속에서 모두 인간과 현실의 문제로 귀착될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사만타 슈웨블린은 일반적인 리얼리즘에서처럼 자신이 일방적으로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친근한 일상의 경이로운 단면에 시선을 고정시켜 놓고 판단이나 의미 규정을 위해 독자의 동참을 유도한다. 작가는 현재 상황에만 시선을 밀착하도록 유도하고 마지막 순간에 사건을 역전시켜 기대와 예상을 전복시킨다. 이 모든 것이 허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사만타 슈웨블린이 전하고 싶은 환상문학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