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박물관
이수경 지음 / 강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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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을 하다 보면 소설을 보는 눈이 달라 놀라곤 하는 일이 잦다. 한정된 틀 안에서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 아닐까 싶지만, 예상하지 못하게 돌출해 나온 그런 차이들은 숙려의 시간을 갖게 한다. 그래서 선택의 시간이란 자주, 독서모임에 임하는 동료들과 그들이 읽어낸 작가에게 배우는 시간이 되곤 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각자 다른 취향을 가진 회원들이 골라낸 몇 권의 작품들이 올라왔다. 이미 각자의 안목에서 충분한 절차를 거친 작품들이기에 이 중 어떤 작품이 선택되더라도 이상할 것 없다. 그러니 이 작품들을 두고 생겨난 견해차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서로 다른 생각들의 존재는 분명했고, 그 속에서 생겨난 차이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 틈을 메워보느라 머리와 마음이 바빴다.

삶답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문학

결국 모두가 선택한 소설은 이수경 작가의 '자연사박물관'이었다. 22년에 별세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작가를 연상하게 하는 이 소설은 한국 사회의 약자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그들의 처지를 알리는 소설이다. 분쇄기에 손을 잃고 목을 매 자살한 방글라데시 노동자 아불의 죽음 그 부조리한 회사의 운영 방침에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감행하지만 회사가 고용한 용역 직원들에게 폭행을 당하며 결국, 해고되어 굴뚝에 오르고, 폭력을 일삼았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겨우 지옥을 벗어난 '나'가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가난이라는 또 다른 지옥이라는 이야기, 회사를 상대로 승산 없는 싸움을 시작하려는 남편을 지지하면서도 생계를 걱정하는 아내의 심정을 담은 이야기도 조세희 작가가 그러했듯 우울하고 암울한 노동자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왜 손발을 그리지 않는 거야?" 낮에 재이에게 물었을 때 재이는, "그게 없으면 힘들지 않을 테니까, 실수도 안 할 테니까...."더듬거리며 말했다. p164

이수경 작가의 소설 속을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맥점은 다음의 두 가지이며, 그것은 이수경의 문학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이다. 그 하나는 그녀에게서 소설을 쓰는 일이란 근본적으로 '어둠 속의 진실'을 밝혀내는 작업이라는 점, 그 둘은 그의 소설의 주인공들이 한결같이 '삶답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 '어둠'이 현실 혹은 삶에서의 정치, 경제, 사회적 의미의 부정적 측면들을 암시하는 것임을 간파하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고, 그렇게 볼 때 그 속에서 삶답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계층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가는 너무도 명백하다.

기초 생활수급비 43만 원으로 생활할 수 없다며 연탄을 피워 자살한 60대 부부, 쌍용차 구조조정 때 희망퇴직했던 30대 남성이 자신의 차 안에서 자살하고,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었던 한 여성은 안양의 월세방에서 숨을 거뒀다. 그녀는 이웃집에 " 저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라는 쪽지를 붙여놓은지 며칠 지난 뒤에 죽어 있었다. 그리고 강릉의 한 원룸에서는 대학생이 번개탄을 피워놓고 죽었다. 방에는 즉석복권 여러 장과 학자금 대출 서류가 있었다.

이들의 행동 밑바닥에는, 서민들 일반이 가지는, 정부의 정책이나 사회, 경제적인 상황 등의 외부적인 힘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불안정한 생활 터전에 대한 불안감에 비례하여 품게 되는 외부적인 힘에 대한 절망이 담겨 있다. 현실에서 죽음을 선택한 이들도, 소설 안에서 등장하는 이들도 모두 절박한 현실에서, 생존 문제라는 하나의 공통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줄곧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에 관심을 보여온 이수경 작가의 <자연사박물관>은 가난한 소외 계층의 일상을 날카롭게 파헤침으로써 노동 문학으로 불리는 조세희 작가의 작품을 이은 우리 사회의 무력한 소시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보석 같은 작품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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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룸 소설, 잇다 3
이선희.천희란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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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여성들은 여전히 차별받고 있다. 남녀평등의 시대가 왔다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이다. 여성들은 이 평등하다는 세상에서 오히려 일상에서 겪는 불안과 고통들을 더 말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마무리해가는 여성들은 '나'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없었다. 나보다는 가족과 아이, 타인에게 맞추는 삶이 더 익숙했고, 그게 여자의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전통적 가치가 중시되던 시대에 자라며 아이다움, 여성성과 같은 자연스러운 내면의 특성을 억압했기에 더욱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어려웠다.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소설을 한 권에 담아내어 두 여성 작가의 소설이 하나의 가능성과 희망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획된 잇다의 화려한 첫 막을 연 <백신애 최진영의 천천히 오래오래>를 인상 깊게 읽어서인지 <이선희와 천희란 작가의 '백룸'> 또한 강한 인상을 주었다. 이 책에는 불의의 사고로 다리가 절단되어 불구가 된 주인공은 남편의 애정이 감소되자 신경병적인 증세를 보이며 불안의 나날을 보내며 결혼으로 인한 인생의 상처에 대한 보상으로 남편의 목숨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이선희 작가의 대표작 <계산서>와 가부장제가 지배하던 시대에 한 여성의 몰락을 그려나간 <여인 명령>, 그리고 이 책의 표제이자 천희란 작가의 소설인 <백룸>은 게임 스트리머인 그녀가 성소수자로서, 여성으로서의 불쾌하고 막막한 일상을 그려낸 이야기가 실려있다.

가부장제는 자본주의 이전에도 있었지만 자본주의 아래서 더욱 강화되었다. 자본주의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상징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발생하고 있다. 강간, 강제 결혼, 여성 매매, 강제 성매매, 여성에 대한 고문, 소녀 매매, 여성에 대한 공공연한 모욕 등은 가부장적 폭력의 형태들이다. 상징적 폭력과 매체, 인터넷, 컴퓨터게임, 광고, 패션 산업 등에서 여성 몸을 상품화하는 것은 이윤을 위한 경쟁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 왔다.

무작위로 생성된 방들이 끝없이 나열된 미로를 묘사하는 백룸을 표제로 삼은 건 남성중심주의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이 가지는 공포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폐쇄된 공간에서 자신을 압박해오는 사회적 편견으로 숨죽여야 했던 그녀들의 입장이 되어 보면 마치 백룸에서 헤매고 있는 모습과 겹쳐진다.

"변호사의 정체가 확인되자 피의자가 올바른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소식에 대한 축하보다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여성의 퀴어 문제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정의로운 변호사에 대한 말들이 훨씬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p439

소설에서 언급하던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여주인공의 레즈비언 논란으로 떠들썩하던 시기를 기억한다. 나 역시 주인공 엘리만큼은 모두가 상상하던 평범한 행복을 찾아 살아간다는 엔딩을 기대하고 있었다. 여기서 평범한 행복, 보통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동성이 아닌 이성과의 만남이 당연하다고 단정 짓던 내 안에 깊게 뿌리박혀 있던 편견과 고정관념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성과 성적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질적인 존재라고 레즈비언을 본질화, 규범화한 남성우월주의 사회 분위기 역시 따져볼 문제다. 나는 동성애를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 동성애자를 만나거나 함께 지낸다면, 분명히 동성애를 떠올려 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말하던 배려, 소통, 공감, 연대, 정의 등은 말해질 수 있고 활자로도 적힐 수 있지만 그렇게 간단히 언급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일상적 실천이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천을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차별과 편견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의 내밀한 삶이 녹아 있다. 여성의 삶을 안팎으로 규정짓는 시선과 사회적 압박, 그리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목소리들이 중첩되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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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
김달님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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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견딤이라고 하지만, 그 이상의 슬픔과 고통을 참기 위해 안감힘을 쓰며 살아간다. 살아가면서 힘든 아픔을 주는 것은 인연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그 인연에서 위로받으며 살아나가는 게 인생이다.


인생을 살면서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우연한 만남을 경험한다. 지금 일상을 함께 보내는 가족, 친구, 연인, 동료들도 한때는 너무나 뜻밖의 우연으로 시작되었고 그들 중 누군가는 삶을 함께하는 인연으로, 누군가는 중간에 헤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수많은 사람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되는 인생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에서 저자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느끼는 삶의 희로애락을 통해 그저 가까이 혹은 멀리에서도 함게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 때, 마음의 유대는 더 특별하게 유지되고 완성되어 간다.

"나는 그러한 순간을 누군가가 들려준 말과 이야기 속에서 만난다. 모두가 아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살면서 어렵지 않게 만나는 주변 사람들의 말. 내게는 한 명 한 명 다르게 특별하지만 그 사람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은, 결국엔 내가 아는 평범하고 특별한 사람들의 말." - 프롤로그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그 가운데에서 바로 서는 법에 혼란을 느꼈다. 어디서 내가 나일 수 있으며 내가 나라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생각했다. 목소리를 높이고 내 색깔을 드러낼 때 나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으며, 묵묵하고 순할 땐 쏟아지는 탁한 이야기들을 받아들여야 했다. 마치 그들의 세상 안의 오게 된 이방인처럼.

가끔 20년이 넘게 함께 한 친구 녀석의 짜증이 이해가 되지 않고 화가 날 때가 있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화를 내었을 법도 하지만 언젠가부터 상대방을 이해해 보려는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나의 서툰 감정으로 인해 틀어진 안타까운 인연들이 아쉬웠을까 아니면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일상의 이런 익숙한 상처와 통증은 시간이 지나면 낫게 될 것임을 알기에 무심해진 탓일까.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나아질 거라는 자신만의 처방으로 상처는 더 이상 일상을 괴롭히지 않는다. 아프면, 안 아파지는 날이 올 거라 믿는 어른이 된 것이다.

"나는 그런 게 좋았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가 어떤 삶들과 함께 살아가는지 구체적으로 감각하게 되는 순간이, 내가 모르는 인생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찾아오던 놀라움과 부끄러움. 그와 동시에 또렷하게 생겨난 삶에 대한 애정과 의지가." p91

지나간 시간에만 존재하는 기억과 추억. 추억은 기억보다 따뜻하다. 외워 저장된 기억이 아닌, 지나간 많은 시간 중 잊히지 않는 그 한 번, 한순간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시간인 추억은 따뜻하다. 소중했던, 애틋했던 추억들은 아주 작은 것이라 해도 결국 견디는 힘이 되어 줄 것이라 믿고 싶다. 특별함이 아닌 내 안의 사소함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각자의 생의 시간으로부터 사소함을 꺼내어 배를 만들고, 사소함이 가진 의미로 돛을 만들어, 조금은 나은 미래로 고요히 흘러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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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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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을 묵묵히 산을 지켜온 나무들의 존재는 참으로 위대한다. 인간의 수명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영원과 같은 시간들 속에 존재해 왔던 나무의 삶은 놀랄 만큼 이상적인 인간의 삶과 닮아 있고, 인간이 삶의 영역을 확장하면서 밀려난 나무를 보고 있으면 인간에게서 느끼는 연민이 느껴졌다.

자연에 큰 영향이라도 주는 존재처럼 떠들어 대는 우리들의 오만함 위로 가을은 또 어김없이 곁에 와 있다. 어느덧 내 키보다 훨씬 커버린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의 흐름, 그건 지날 때는 무척이나 느리고 지나가면 또 얼마나 빨리 가버리는 것인지, 게다가 오는 시간은 한 살 더 먹을수록 왜 그렇게 더 빨라지는지.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이제 얼마 남았든, 괜한 짓에 나를 더 이상 낭비하는 것이 이제서야 아까워지기 시작한다.

뿌리를 사용해 미술작품을 만드는 주인공의 연인과 매우 더딘 연애를 이어가고 있는 '나'는 그의 뿌리에게서 어린 시절 고모할머니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노년에 홀로된 고모할머니는 '나'의 집에 들어와 같은 방을 쓰게 되고 자신에게 내밀었던 손을 거부했던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그의 뿌리 오브제를 통해 다시 떠올리게 된다.

"갤러리를 나와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 고모할머니의 손이 불현듯 그리웠다. 내게 남은 나날 동안 그렇게 간절히 내 손을 잡아줄 손이 또 있을까 싶은 게." p107

언젠가 아버지의 직업을 부끄럽게 생각하던 철없는 시절과 오버랩 되는 '나'의 모습에서 깨닫게 되는 건 시간은 감정을 엷게 할 뿐이고, 잊고 싶은 부끄러웠던 순간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 그 흉터는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신과 나 그 사이 눈물 나지 않을 만큼 그리운 거리, 헤어지지 않을 만큼 손잡을 수 있는 거리, 떠난 뒤에도 후회하고 돌아올 수 있는 거리, 꼭 그만큼의 사이 그 사이로 노을이 진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고모할머니가 손에 꼭 그러잡고 있던 게 뭐였는지 알아? 내 손이었어. 그녀가 양로원에서 돌아가시던 날 밤, 그녀의 손이 내 방에 날아들어 이불을 들추고 더듬어오는 걸 나는 다 느끼고 있었어. 내 손을 찾아 더듬더듬 더듬어오는걸...." p108

지금 내 곁에 함께 가는 이것들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면서 세상과 아름다움을 소통할 수 있을까. 뒤돌아 보면 눈물이 날 만큼 아련한 아픔을 간직한 것들. 눈에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보이지 않기도 하며, 손에 잡히지만 잡히지 않기도 한다. 말로써 전해지기도 하고 눈빛으로, 사소한 손짓 하나만으로도 감정과 이어지는 그것을 깨달았을 때 밀려오는 안타까움이 가슴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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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안보윤 외 지음, 이혜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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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기중심적인 동물이다. 코로나19가 끝나가는 지금 우리의 일상은 빠르게 회복되어 가지만 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이기적인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보이지 않는 곳에는 저소득층과 저기술 노동자, 돌봄 노동을 떠안은 여성과 자활하지 못하는 노인,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까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소외되고 방치되어 왔다. 적응하지 못한다고, 우리와 다르다고 차별하고 거리를 둔 것은 왜일까?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배려할 수는 있다. <공존하는 소설>에 실린 여러 이야기들로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의 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며 만들어졌다.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 실려 있는 최은영 작가의 <고백>에서는 주인공 미주가 수사가 된 옛 애인 종은에게 평생 간직하고 있었던 아픔을 이야기하면서 시작된다. 누구보다 친했던 미주, 진희 주나 세 사람은 진희의 조심스러운 고백 후 틀어지게 된다.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완벽한 신뢰를 느끼며 말했던 '무해한 사람'이란 미주의 오만에서 오는 착각이었다. 그 사람을 완벽히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오는 안도감. 성소수자였던 진희의 고백 후, 무너진 그들의 관계에서 느꼈던 안타까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해야 했던 진희, 이해할 수 없었던 주나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미주의 감정이 가슴을 울렸다.

김숨 작가의 소설집 '국수'에 실려있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에서는 한파가 들이닥친 밤에 한 노인은 죽은 아내가 데리고 온 개 한 마리와 차디찬 방안에 누워있다. 가스비가 두 달이나 밀려있고 보일러도 고장이 난 상태다. 방 안에서 온기를 내뿜는 것이라고는 아내가 데리고 온 그 개뿐이지만 절대로 가까이하지 않을리라고 다짐한다. 추위에 생명이 다해 가는 노인을 구하려 온기를 나누어주려는 개의 노력에도 결국 목숨을 잃고 만다.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성격을 가진 이 노인이 아내가 데리고 온 개의 온기라도 받아들였다면 살 수 있었을까? 결국 그의 마지막을 지켜본 것은 인간이 아닌 하찮게만 생각했던 그 개였다.

"햇빛은 그의 방 창으로도 들이쳤다. 어둠과 냉기가 밤새 매몰차게 지배하던 방 안이 서서히 밝아 왔다. 개의 누렇고 가느다란 털이 그의 얼굴 위에서 떠다녔다. 천장을 향해 한껏 벌어진 그의 입은 좀처럼 다물릴 줄 몰랐다. 보온 밥솥에는 여전히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다."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에서 깊은 인상을 주었던 <공원에서>를 다시 읽게 되었다. 주인공 수진은 큰 키에 짧은 머리로 종종 남자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불쾌함보다는 남자로 인식되었다는 안도감이다. 최근 공원에서 한 남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어린 시절에는 버스에서 추행을 당하며 여자로서의 삶이 만만찮음을 느끼게 되었다. 보호받아야 마땅한 자신의 상황이 유부남과 불륜 관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과연 주위 사람들은 그녀의 편이 되어줄까? 반대로 비난하지는 않을까?

"남자로 오해당하는 건 괜찮았다. 때로는 안전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성가신 건 내가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였다. 어떤 사람은 죽을 지었다는 듯 사과를 했는데 그것도 좀 웃긴 일이지만 그건 그런대로 점잖은 편이랄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조언을 했다. 머리를 기르라거나 화장을 하라거나 좀 더 여성스러운 옷을 입어 보라거나 말할 때 솔 톤을 내는 것이 좋다는 식이었다."

내게는 당연한 행동이 타인에 대한 혐오일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타인에게 약자에게 피해자에게 혐오를 드러내고 상처를 입히는 가해자 또는 공범자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사는 일상 곳곳에 공기처럼 차별과 혐오가 스며들어 있다.

모두가 평등을 바라지만, 마음만으로 평등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우리들은 서로에게 차별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고 경청함으로써 은폐되거나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감지하고 개선할 수 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평등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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