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천 가족 1 유정천 가족 1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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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하는 도쿄의 풍경을 좋아한다. 명승지와 교토 사람들의 일상이 담긴 식당과 찻집, 꿈을 품고 있는 활기찬 사람들, 그리고 소소한 일상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조차 가슴에 스며든다. 단순한 관광지를 벗어나 아날로그 문화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가장 아날로그답다고 인정하는 곳이 바로 교토이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 속에도 아름다운 교토를 배경으로 한다. 흐드러진 벚꽃 속의 신사와 불각, 하얗게 분칠하고 종종걸음으로 걷는 게이코, 손님을 태우고 골목을 누비는 인력거도.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교토의 신비함이 베여있다.

"기온 야사카 신사 일대는 완전히 밤 풍경으로 변해 있었다. 야사카 신사 돌계단 아래부터 시조 길을 따라 요란한 조명이 늘어서 있다. 시조에서 남쪽으로 뻗은 하나미고지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거기서 서쪽으로 벗어나 인적 드문 골목을 걸었다. 큰길에서 벗어난 기온 부근은 한적했다. 내가 자전거 페달을 밝을 때마다 요리집 불빛이 꿈속처럼 흐릿하게 빛나며 뒤로 휙휙 물러섰다." p73

그의 대표 작품인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와 <야행>의 교토의 배경처럼 <유정천 가족> 역시 교토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교토 시모가모 신사 옆 다다스 숲에 사는 시모가모 가문의 삼남 야사부로는 둔갑술에 능한 너구리이다. 그는 너구리계의 위대한 수장이었던 아버지가 인간들에게 잡혀 너구리전골로 생을 마감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쫓으며 인간과 텐구, 너구리가 공존하는 교토의 거리를 활보하며 살아간다.

"큰형은 호랑이 모습에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전통복 차림을 한 젊은 도련님 스타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로등 아래 서있는 나와 동생을 잠시 싸늘한 눈길로 바라보더니 다리 쪽으로 가서 휘익, 하고 휘파람을 크게 불었다. 그러자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자동 인력거가 나타났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큰형의 보물이다. 인력거꾼은 일찍이 교토에서 명성이 자자하던 자동인형 기술자가 발명한 가짜 인력거꾼인데, 이제는 움직임이 예전만 못하지만 큰형이 아버지의 유물인 그것을 계속 수리하면서 애용하고 있었다." p98

사건의 전개와 모티브로 한 이야기들을 활용하는 방법, 관계 형성 등 사건을 풀어나가는 작가 특유의 재치와 이야기 구성이 눈길을 끈다. 너구리 가족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가족이라는 의미를 되새겨보고, 새로운 것에만 관심을 두던 현대인들에게 아날로그적인 아름다움을 전하려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과 작별하면서 우리 아버지는 느긋한 그 피를 정확하게 넷으로 나누어 주었다. 큰형은 책임감만 이어받았고, 작은형은 느긋한 성격만 물려받았으며, 동생은 순진함만 물려받았다. 그리고 나는 바보스러움만, 완전히 제각각인 형제들을 이어주는 것은 바다보다 깊은 어머니의 사랑과 위대한 아버지와의 이별이다."p220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 속에는 그가 사랑하는 교토를 향한 마음이 담겨 있다. 오래된 것들이 낡고 시대에 뒤처진 것이 아니라 시간의 힘을 증명하는 것임을, 꿈과 일상이 하나가 된 듯한 교토라는 배경에는 그 어느 곳에서도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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