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안에서 사는 즐거움
송세아 지음 / 꿈공장 플러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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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외로움이 깊어지는 시간이 있다. 이러한 외로움이 찾아올 땐 인생에 있어 사랑이 올 때보다 더 귀한 시간이라고 한다. 외로움을 받아들일 때 삶은 깊어진다. 우리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불쑥 찾아오는 외로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숱하게 만나는 삶의 풍경 또한 외롭지만 가끔은 마음 한켠으로 스쳐 지나가게도 해볼 일이다. 조금 외로운 것은 '충분히'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삶이기에 그렇께 느끼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구 안에서 사는 즐거움>에서 보여지는 저자의 모습은 그녀가 애독한 <보통의 존재>를 떠올렸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의 존재에서 느껴지는 일상의 희비와 그 안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는 긍정적이며 따뜻한 소소한 이야기들. 가끔 이기적이어도 괜찮다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쉬어가며, 나답게 살아감을 격려하고, 미련을 두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녀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닌 어쩌면 지구 안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지 않을까?

"평범이라는 단어 안에 얼마나 많은 특별함이 숨어있는지 깨닫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그래야 내 삶이 조금이나마 행복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 테니. 잊지 말아야지. 평범함 속에 특별함이 있다. 사람도, 삶도, 그리고 글도. p11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받고 인정 받을 수 있는 것, 그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중요한 요소는 본질이나 자질일 것이다. 소위 명품이라는 물건도 그 이름값의 유명세를 가진 이유가 명품의 절대적 조건인 품질에 있어 최고이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쌓아온 최고의 퀄리티, 그래서 붙일 수 있는 이름이 명품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무슨 성분으로 혹은 어떤 자질로 이루어져 있나? 씨실날실이 교차된 삶의 직조에서 뜯어진 올처럼 거짓과 얼렁뚱땅한 가닥은 없었던가. 웃음에 불순물은 없었던가. 돌아보니 내 삶이 군데군데 기워져 있고 듬성듬성 걸끄러운 찌거기나 매듭들이 끼워진 듯 부끄러운 가닥들이 얽혀져 있음이 보인다. 매끈하고 윤기 나는 가닥을 채워 넣기 위해 얽힌 올을 한꺼번에 뜯어낼 것이 아니라 한 가닥씩 바꿔 나가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실오라기처럼 풀려 나왔다. 그리고 정형화된 삶이 아닌 하나밖에 없는 고유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며 자신을 발견하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뿐인 인생을 살아가는 즐거움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결같은 사람이 되어야 해' 라는 말로 스스로를 어떤 모습 안에 가두지 말자고, 우린 언제든 변할 수 있다고. 중요한 건 변해가는 내 모습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해주는 것이라고." p64

길지 않은 우리 삶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위험한 일들이 도사리고 있다. 사고가 있을 때마다 간발의 차이로 위기를 모면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듣게 된다. 주위에 한 분도 지하철 폭발사고 때 그 지하철을 타고 갔단다. 집에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온 것이 생각나 내렸더니 몇 정거장 뒤에 일어날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너무나 끔찍한 사고에 놀라 그분은 지금도 꿈속에서 헤매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하물며 사고지점에 있었던 분과 사고 당한 분의 가족은 어떠하겠는가. 그런 사건들을 대할 때마다 사람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중요한 건 마음인 것이다. 내 마음에, 내 관점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 p34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순간순간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남아있는 날들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어떻게 쓰느냐가 모두의 과제일 것이다. 송세아 작가의 글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며 언젠가 세상 저편에서 나를 필요로 할 때 언제라도 기쁘게 달려갈 준비를 하여 의연하게 그날을 맞이해야겠다. 인생의 무게가 뒤쪽으로 쏠려 있는 나이가 되고 보니 남아있는 시간들이 나를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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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여행 - 모두가 낯설고 유일한 세계에서
양주안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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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나의 세계가 얼마나 좁은지 알려주었다. 책을 묶는 작업은 나의 시선이 얼마나 편협한지 일러주었다. 부끄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글을 쓴다. 나의 미숙함이 누군가의 용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하늘이 흐린 탓이다. 베란다에 서서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본다. 눈을 뿌리던 하늘이 햇살을 땅에 내려놓는다. 아직은 뜨거운 여름이다. 베란다에 서면 손끝과 귓불로 뜨거움이 차오른다. 그동안 여행에서 깨달은 것은 그리움이고 아름다움이다. 때론 고독과 정적을 알게 해준다. 그리움은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 조용히 깊게 바라보는 외로움일 것이다. 무엇 하나도 허투루 여기지 않고 가까이 당겨 앉아 향기를 맡게 된다.

외롭다고 느낄 때 오는 가슴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만 같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에게 외롭게 해 볼 만도 하다. 뚝 떨어져 나와 정처 없이 외롭고 쓸쓸하여 울먹여도 볼 일이다. 혼자서의 여행이 날들이 낡고 바래서 서로에게 무디어질 때 다시 한번 삶을 되짚어 보게 된다.

빠른 것에 길들어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았던가. 길은 이어져 있었지만 계속 이어질까 하는 두려움에 뒤돌아 보질 않았던 것은 아닐까. 여행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펼쳐 놓고 시간의 기억으로 들어가 본다. 기억이 꿈틀거리며 흔들리고 천천히 다가온다. 사진 속 시간에 그때의 외로움은 어딘지 사라지고 그리움만 남아 있다.

감각적인 사진에 이끌려 [ARTRAVEL] 몇 권을 친구에게서 받은 적이 있다. 사진도 사진이었지만 따뜻하면서 마음을 움직이는 글들이 한참이나 가슴에 남아 있었다. 양주안 작가의 '아주 사적인 여행'의 처음 접했을 때 그가 ARTRAVEL 소속 에디터로 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쁜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똑같은 삶은 세상에 없다. 나와 당신, 우리가 살아서 쓰는 모든 이야기는 위대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고유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 서문 중에서

여행으로 삶을 변화시키며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의 이야기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삶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솔직함에 묻어있었다.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느꼈던 자신만의 이야기들. 시간에 저항하고 시간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던 아름다운 고유의 기억들은 고달픈 현실에서 찾은 한순간의 행복을 영원히 묶어 놓고 싶은 바람같이 애잔하기까지 했다.

"기억해야 할 이름들을 부여잡고 싶었다.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숱한 죽음 앞에서 이유도 모른 채 공허한 후회만 되풀이할지도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 그리움이 쌓여 삶을 짓누르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비록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몇 개의 기억으로 가는 길이 사라진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아주 작은 실마리들을 남겨놓을 뿐이다. - p256

화려한 여행담은 우리의 삶 도처에 흘러넘친다. 우리는 너무 화려한 이야기에 중독되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과거의 그리움과 추억이 있는 그런 흑백사진 같은 소박함을 그리워할지 모른다. 양주안 작가가 혼자 떠난 할머니와 잠시 살았던 노동리의 작은 언덕 집처럼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릴 추억에 쓸쓸함이 베어드는 것은 세월에는 변화가 있고 죽음과 탄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순환적이고 영원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세월은 언제나 우리 인생의 끝을 생각하게 한다. 세월은 죽음이 기억의 끝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 여행의 기억은 그저 바람같이, 한때 왔다가 사라져 가는 덧없는 시간의 허상이라 했던 게 생각난다. 하지만 순간의 신기루로 남을 여행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게 마련이다. 한때의 기억이 밀물처럼 다가와 삶의 흔적을 더듬게 한다. 우리는 낡은 사진의 추억으로만 존재하는 그리운 그때를 그리워한다. 여행은 순간순간의 기억이다. 때론 우리를 그립게 하는 기억의 창고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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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만찬회
신진오.전건우 지음 / 텍스티(TXTY)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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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의 여름이면 더위를 식혀줄 TV 프로그램으로 '전설의 고향'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식상한 스토리에 유치할 정도의 CG로 웃음을 자아내지만 당시에는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 여름의 더위쯤은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괴담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흥미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이야기다. 나 역시 괴담이라면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한 여름이 다가올수록 무더위를 잠재울 괴담을 찾게 된다. 묘한 미신 또는 귀신이 붙어 있다는 귀물에 얽혀있는 괴담을 특히 좋아하는데 그중 일상생활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가장 좋아한다.

단편 소설 여덟 편이 수록된 이번 작품집은 신진오 작가와 전건우 작가가 엄선한 이야기들이다. 특히나 이 책에서 펼쳐놓은 이야기 속의 배경은 우리 주변이다. 평범한 가정집, 하숙집, 동네 선산, 아파트 등 일상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 거쳐 가야 하는 곳이며, 누군가는 지금도 그 장소에 있을 것이다. 익숙한 공간일수록 공포감은 배가 되고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게 된다.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형의 저주의 내용을 담은 <헤이, 마몬스>, 불우한 환경으로 소외된 불행한 모녀의 이야기를 다룬 <얼룩>, 최근 유행하고 있는 해괴한 챌린지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담은 <딩동, 챌린지>, 우등생인 언니와 비교 당하던 동생이 성적 때문에 저주술을 사용한다는 <네발 달린 짐승>, 하숙집의 건물주가 젊은 무당으로 하숙집에서 일어나는 기괴한 이야기를 담은 <신딸>, 일확천금을 얻으려 주식 투자로 전 재산을 날리고 친구에게 빌린 돈마저 잃게 되고 친구와 동반 자살을 계획하지만 로또 1등의 당첨으로 친구만 죽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은<추락>, 경찰을 직업으로 둔 워킹맘의 고뇌가 담겨 있던 <만성 활력>, 대대로 내려오던 귀신불이 날아다니던 선산을 지키던 일가의 내용을 다룬 <반딧불이의 산>까지 현실감 있는 다양한 소재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공포 소설 팬이라면 알겠지만 등줄기가 서늘해질 정도의 공포 소설은 사실 그다지 많지 않다. 영상과 달리 활자로 인간에게 두려움을 선사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호러 만찬회의 소설들은 지금까지의 식상한 소설들과는 다른 재미를 보여줬다. 특히나 가난, 소외, 도태, 시기 등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여러 가지 감정들과 문제들이 소재가 되어 완성된 괴담들이 무척이나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읽고 나서 사라질 휘발성 가득한 공포소설이 아닌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의미 있는 공포 소설이었다.

도서 뒷면의 QR코드로 들을 수 있는 북음은 독자가 <호러 만찬회>를 읽는 동안 온전히 그 시간에 집중해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방면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최희영 작곡가가 작곡한 북음은 텍스티가 정성껏 준비한 <호러 만찬회>의 매력과 더해지며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올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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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레이철 워프 시리즈 5
팻 머피 지음, 유소영 옮김 / 허블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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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자신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무너져버릴 것이다"라는 한 페미니스트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음지에서 숨죽여야 했던 여성들이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는 말하기 시작한 여성들로 인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는 여전히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 삶을 걸어야 한다. 일반적인 폭력 사건과 달리 유독 성폭력 사건은 피해와 가해라는 말이 여전히 애매하게 다루어진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구분 짓기도 힘들뿐더러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는 상황을 누가 정확히 판단할 수 있을까? 강간과 섹스를 구분하지 못하고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강간 문화를 드러내는 것, 성폭력은 누구 혹은 무엇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폭력의 문제임을 밝히는 것이 바로 많은 여성들이 소리 높여 말하고 있는 페미니즘인 것이다.

<무척추동물의 사랑과 섹스>로 이미 국내에 소개된 적이 있던 페미니즘 SF 소설가인 팻 머피의 단편집 <사랑에 빠진 레이첼>은 여성주의적 관점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죽은 딸의 전기장 패턴을 어린 침팬지의 뇌에 덮어 씌워 의사소통이 가능한 암컷 침팬지의 이야기를 다룬 표제작<사랑에 빠진 레이첼>,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를 오가며 시간 여행을 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오렌지 꽃이 피는 시간>, 식물처럼 심기만 하면 자라나는 한 여성이 자신을 학대하던 남편을 살해한다는 이야기인<채소 마누라>, 자신에게 무관심하던 영화배우 아버지에게 상처받으며 자란 한 여성이 아버지를 상징하던 TV를 버리게 된다는 이야기를 다룬 <TV 속의 죽은 남자들> 등 오랜 시간 여성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어온 그녀의 작품들에는 상처받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종국에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그들을 억압하고 있던 사회 속으로 한 발짝 다가서게 된다.

인류 역사상 사회적 약자에게 정의로운 사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피해와 가해는 일상이지만, 자신을 가해자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피해는 저절로 자명한 사실이 되지 않는 것은 모두가 합의하는 피해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피해는 인정 투쟁, 집단행동, 사회 운동, 여성주의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실천을 통해 사회적 합의에 도달해 가는 과정이 요구된다. 누군가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저절로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미 가부장적 사회나 자본주의 사회는 존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피해자 되기'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로서 위치성을 끊임없이 되돌아본다는 뜻이다.

그런 그녀는 여성들의 입장에 서서 작품을 통해 사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하며, 불완전한 여성 인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과 고통을 여러 작품들을 통해 이야기해왔다. 적어도 나에게는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직간접적으로 겪어나 듣거나 보았을 이야기보다는 SF라는 상상력의 옷을 입고 있는 그녀의 작품이 더 가슴에 와닿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페미니즘 문학을 이해하기에 가장 부담이 적었던 작품이었고 이 책을 접하게 될 다른 이들에게도 충분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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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뼈, 드러난 뼈 - 뼈의 5억 년 역사에서 최첨단 뼈 수술까지 아름답고 효율적이며 무한한 뼈 이야기
로이 밀스 지음, 양병찬 옮김 / 해나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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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몸에는 206개의 뼈가 있다. 각각의 뼈들은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눈의 결정처럼 하나하나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어서 이를 통해 수천 년 전의 DNA와 영양 상태, 습관, 질병의 이력, 은폐되었던 학대와 고문, 살인의 증거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뼈는 우리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 뼈가 작용하고 한시도 쉬지 않고 뛰는 심장처럼 뼈도 생성과 파괴를 반복하는 살아있는 조직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삶과 늘 함께하면서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뼈에 소중함을 간절히 느낀 것은 무리한 운동으로 인한 반달 연골 파열이 계기가 되었다. 반달 연골은 무릎관절에 가는 하중을 분산시켜 주고 넓적다리에서 정강뼈로 힘을 전달해 준다. 또한 무릎관절을 움직일 때 삐걱대지 않도록 안정성을 주며, 움직이거나 운동할 때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고유 위치감각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 몸에서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처럼 이 작은 구조물인 반달 연골로 인해 마음껏 달릴 수 없게 된 나에게 뼈에 소중함은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껴졌다.

이 책은 40년 동안 정형외과 의사로 일해온 로이 밀스의 저서로 그의 일생의 연구가 담겨 있는 방대한 자료집이다. 뼈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던 그는 문화적, 역사적 측면에서 뼈를 바라보며 오랜 기간 연구를 이어나간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딱딱하게 저술된 책이 아닌 그의 재치와 유머가 담겨 있어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숨겨진 뼈, 드러난 뼈>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 <숨겨진 뼈>에서는 진화학 적으로 바라본 뼈의 구조 및 뼈의 역사와 인간이라면 겪게 되는 다양한 뼈 질환의 소개와 치료 등 인간 신체 안에서의 뼈를 소개하고 있다. 2부에서는 <드러난 뼈>에서는 뼈의 주인인 생물이 죽은 후 뼈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종교적 의미를 살펴본다. 살아온 고유의 기억이란 뇌에만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몸속뼈 하나하나에 고유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동물의 몸 거의 모든 부위의 연조직과 경조직에는 한 인물의 경험, 습관 및 활동이 반영되어 있다. 그것도 인간과 동물의 삶의 기록들 중 많은 부분이 골격 안에 간직되어 있어 수백만 년 전의 지구에 대해서 말해주며, 인류의 진화를 보여주는 놀라운 기록물이기도 하고, 인간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뼈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정보들

뼈란 무엇인가? 뼈는 동물들에게 왜 그토록 중요해졌을까. 어떤 원리와 무슨 이점이 그런 골격의 진화로 이어졌을까 우리 몸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뼈에 대한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나간다. 뼈의 다양한 구조와 생애, 다양한 뼈 질환과 치료법과 정형 외과계의 혁신같이 일반적인 환경에도 적용될 수 있는 정보들을 알가 쉽게 설명하며 정형외과 의사로서의 견해와 지식을 전달하고 있다.

이해를 돕는 다양한 이미지 자료

이해하기 쉽게 친절한 주석이 더해진 다양한 사진과 그림이 수록되어 있어 독자들이 책을 보는 시각적 즐거움을 더한다.



단순 지식 전달만이 아닌 뼈에 대한 독특한 주제로 관련된 문화와 역사의 딱딱하지 않은 이야기들

우리 몸속에서 한 사람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뼈, 죽은 다음에도 오랫동안 그대로 남아 지구 생명체의 신비를 밝히는 뼈. 뼈는 이렇게 인간을 가장 깊숙이 이해하는 열쇠이나 생명 탄생의 근원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모든 뼈 이야기들이 고리처럼 엮여 있어 서로 다른 대륙의 사회상과 서로 다른 시대의 역사가 어느 역사책 못지않게 생생하게 다가온다. 뼈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간직해온 오랜 역사와 문화 전반적인 이야기를 저자의 재치 있는 위트를 더해 흥미롭게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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